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일반] 펄그림 24장 (2) - [오라, 달콤한 망각이여]

Fra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8.24 10:00:02
조회 956 추천 21 댓글 17

자신의 동맹 병력이 샐러맨더 군단과 레이븐 가드 군단에게 포문을 여는 모습에 페러스의 얼굴이 멍하게 굳어지자, 펄그림은 그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급습을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던 두 군단의 전열에 볼터의 일제 사격과 미사일 폭격들이 떨어지자 순식간에 수백 명의 전사들이 죽어나가고, 그 이후로도 수백 명의 전사들이 뒤이어 죽어나갔다. 두 군단의 한가운데에서 폭발이 일며 전사들을 증발시키고, 전차들을 찢어발겼다. 네 군단의 병력들이 충성파 군세의 첫 열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페러스 매너스는 공포에 질린 채, 말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염의 폭풍이 코락스를 집어삼키고,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에 경악과 격분에 휩싸여 있던 불칸이 서있던 곳에서 초대형 폭발이 일어나 버섯구름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올랐다.


구릉지 아래에 있는 충성파의 대열 사이로 끔찍한 학살이 벌어지고 있는 한편, 퇴각하고 있던 워마스터의 군세는 그 방향을 돌려 자신들의 사이에 끼어 있는 적군의 전사들을 향해 병기를 조준하였다. 수백 명에 달하는 월드 이터 군단과 선 오브 호루스 군단, 그리고 데스 가드 군단의 전사들이 아이언 핸드 군단의 베테랑 중대를 향해 급습을 가했다. Ⅹ군단의 전사들은 용맹히 항전하였으나 절망적으로 중과부적이었고, 곧 산산조각으로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페러스 매너스는 고개를 돌려 펄그림을 마주보았다. 엠퍼러스 칠드런 군단의 프라이마크는 형제의 얼굴에 새겨진 절망을 볼 수 있었다. 페러스의 은빛 눈동자는 빛을 잃고 흐릿해져 있었으며, 한 점의 생기도 존재하지 않았다. 위대한 승리를 순식간에 빼앗겨버린 그 기분이란, 분명 터무니없기 그지없는 느낌이리라. 펄그림은 자신의 형제와 자신의 입장이 바뀌어서 자신 역시 그 감정을 맛볼 수 있기를 거의 바라고 있을 정도였다.


“자넬 기다리는 것은 오직 암울한 패배와 죽음뿐이야, 페러스.” 펄그림이 말했다. “호루스는 자네를 죽일 것을 명령했네. 하지만 만일 자네가 무장을 해제한다면, 내 우리의 옛 우정을 생각해 호루스에게 자네를 살려달라고 탄원을 해보겠네. 항복해야 하네, 페러스. 자네가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없어.”


페러스 매너스는 충성파 병력이 학살을 당하고 있는 광경으로부터 억지로 시선을 떼어 내었다. 페러스의 입술 사이로 드러난 이빨은 자신의 고향 행성이 지닌 화산 같은 분노를 그대로 드러내어 보여주고 있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이 반역자야. 하지만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오직 불명예뿐이다.” 페러스가 침을 내뱉었다. “황제 폐하께 충성을 바치는 전사들은 결코 네게 항복하지 않는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네놈은 우리 모두를 마지막 한 명까지 죽여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펄그림이 말했다. 펄그림은 페러스 매너스에게로 뛰쳐들며 막강한 워해머를 휘둘렀다. 한때 형제애로써 주조되었으나, 이제는 복수만을 위해 휘둘러지고 있는 프라이마크들의 두 병기는 타오르는 에너지 기둥을 일으키며 충돌하였다. 그 두 병기가 일으킨 격렬한 에너지에 전장은 수백 미터 바깥까지 밝게 비추어졌다.



viewimage.php?id=20b4de2fe4c62db46bb8d7b813&no=24b0d769e1d32ca73ced87fa11d028316059171f52f1b44ff514cd48dd7bc91ed1bf113e87573f62e32038cc69eeed84adb33e001f447d79d909297d6e248032fe95a80377dc64ab

(일러에선 펄그림이 레란 소드 들고 있는데, 원래는 포지브레이커 들고 있어야 정상임)



두 프라이마크들은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병기들을 몇 번이고 부딪혔다. 그 힘은 군대를 패주시키고 산을 무너트리기에 충분한 것이었고, 두 프라이마크들은 마치 필멸 세계에서 그들의 분쟁을 끝마칠 것을 강요 받은 신들처럼 서로와 맞서 싸웠다. 페러스 매너스는 타오르는 화염 검을 휘둘렀고, 페러스가 가하는 매 일격은 그 자신이 수없이 많은 원정에서 휘둘렀던 망치의 흑단 자루에 막혔다.


펄그림은 망치를 크게 휘둘러 허공에 호선을 그렸고, 그 묵직한 망치 머리에 담긴 힘은 타이탄의 장갑판조차 곤죽처럼 으스러트리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두 전사들은 오직 서로 갈라선 형제들 만이 끌어낼 수 있을 그런 증오를 가지고 싸움을 벌였고, 그들의 갑주는 우그러지고 뜯겨 나가며, 맹렬한 결투 속에서 점차 검게 그을려갔다.


그처럼 막강한 적수와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특권과도 같은 일이었다. 망치와 검이 부딪히고, 타오르는 궤적이 자신의 살을 가르고 지나갈 때마다, 그리고 포지브레이커가 페러스의 갑옷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페러스가 고통으로 신음할 때마다 펄그림은 그 감각을 음미하였다. 두 프라이마크는 고통스런 비명과 야만적인 환희성이 터져 나오는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서로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페러스 매너스의 휘하의 몰록들은 살육을 당하고 있었으나, 아직까지 남아있는 몇 안되는 몰록들은 마치 영웅들처럼 절박한 항전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페러스는 펄그림의 한쪽 견갑을 베어 가르고, 몸을 빙글 돌리며 펄그림의 방어 안쪽으로 파고들어 펄그림의 사타구니를 향해 치명적인 찌르기를 날렸다. 펄그림은 페러스의 일격에 맞서 앞으로 걸어 나서며, 포지브레이커의 자루로 타오르는 검의 칼끝을 쳐내었다. 그러고 난 다음, 펄그림은 페러스의 머리를 향해 워해머의 망치 머리를 내리쳤다.


아이언 핸드 군단의 프라이마크는 그 일격을 얻어맞고 한쪽 무릎을 꿇었지만, 관자놀이에 생긴 상처로부터 핏줄기가 흘러 내리고 있는 와중에도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타오르는 칼끝은 펄그림의 복부를 가르고 지나갔고, 펄그림의 갑옷은 쩍 벌어지며 그 속의 살갗까지 갈라졌다. 그 고통은 엄청난 것이었고, 펄그림은 뒤로 물러섰다. 펄그림은 양손을 들어 몸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핏줄기를 막으려 하였고, 그가 들고 있던 망치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두 프라이마크 모두 고통과 출혈로 인한 현기증으로 무릎을 꿇은 채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펄그림은 가슴속에서 다시 한 번 크나큰 슬픔을 느꼈다. 부상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형제의 깨진 머리가 피로 뒤덮여 있는 모습은 그의 가슴을 찢어놓고 있었다. 그 감각은 마치 강한 산바람과도 같이 그를 숨막히게 옥죄고 있던 안개를 날려버렸다. 그것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있는 지조차도 몰랐던 마음속 안개를.


“내 형제여.” 펄그림이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나의 친구여.”


“네놈은 나를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잃은 지 이미 오래다.” 페러스가 으르렁거렸다. 페러스는 힘겹게 몸을 일으킨 뒤, 비틀거리며 펄그림에게로 다가가 파이어블레이드를 들어 올렸다.


펄그림은 울부짖었고, 타오르는 칼날이 허공에 궤적을 그리며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들자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허리로 향하였다. 펄그림이 레르 종족의 사원으로부터 탈취하였던 검이 뽑히자, 은빛 강철이 번뜩였다. 펄그림은 은빛 검으로 떨어져 내리는 칼날을 막았다. 페러스의 검은 은빛 칼날을 파고들며 쉭쉭거리는 소리와 함께 불똥을 튀겼고, 아이언 핸드 군단의 프라이마크는 힘을 주어 타오르는 칼날을 밀어 내렸다. 수 센티미터씩, 파이어블레이드가 펄그림의 얼굴을 향해 점점 내려오고 있었다.


“안 돼!!” 펄그림이 외쳤다. “이건 잘못되었어!!”


펄그림의 검 손잡이에 박힌 자수정빛 보석이 사악한 빛으로 박동하며, 페러스 매너스의 얼굴을 악의 어린 보라색 빛으로 뒤덮었다. 칼날로부터 물밀 듯 힘이 뿜어져 나오고, 사향 안개와 귀가 먹먹할 정도의 소리, 그리고 눈이 멀 듯한 빛이 두 사람의 주위로 피어 올랐다. 펄그림은 무시무시한 존재감이 자신의 주위로 부풀어 오르듯 나타나는 것을 느꼈다. 그 존재의 힘과 그것의 이름없는 정수는 그가 지금껏 상상해왔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무시무시하고, 또 중독적이었다.


악마적인 힘이 사지로 밀려들고, 펄그림은 페러스 매너스의 힘에 대항하여 칼날을 밀어내었다. 그의 저항하는 힘에 형제가 놀라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짐승 같은 분노의 포효와 함께 펄그림은 벌떡 몸을 일으키며 페러스 매너스를 뒤로 내던져버렸다. 펄그림은 몸을 빙글 돌리며 검을 거칠게 휘둘렀다.


은빛 칼날이 형제의 흉갑에 깊은 흠을 만들고, 아이언 핸드 군단의 프라이마크는 울부짖으며 다시 한 번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에너지로 타오르는 은빛 칼날은 페러스의 검은 갑주를 마치 차갑게 굳은 기름을 손톱으로 긁어내듯이 갈라버렸다. 뜨거운 피가 상처부위로부터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파이어블레이드가 고통으로 헐떡대는 페러스의 손에서 빠져나왔다.


끝장내버려! 죽여!! 머릿속 목소리가 비명을 질렀다. 펄그림의 귀에 그 목소리는 마치 시간과 공간을 넘어 그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머릿속 목소리의 명령에 담긴 힘에 펄그림은 비틀비틀 휘청거리며 걸음을 떼었다. 마치 그의 사지가 그 자신의 통제력에서 벗어나 있는 것만 같았다.

평소에 그가 지니고 있던 품위와 기백은 이미 잊혀진 채 사라져 있었고, 펄그림은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은빛 검으로 페러스 매너스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릴 태세를 갖추었다. 미지의 힘이 톱니 모양 칼날 위로 번쩍이며, 그의 팔을 따라 부상당한 육신의 살과 뼈로까지 내려왔다.


펄그림은 보라색 화염에 휘감겨 있었다. 지직거리는 번개줄기들이 호선을 그리며, 마치 연인처럼 부드럽게 그의 몸을 애무하였다. 번개줄기들은 그의 몸 속으로 들어가고자 쩍 벌어진 상처부위들을 찾아다니며, 어른거리는 불꽃으로 상처 위를 핥아대었다.


펄그림은 페러스 매너스의 머리 위로 우뚝 섰다. 난폭한 힘이 그의 몸을 차지하려 하면서, 펄그림의 가슴은 발작적으로 들썩거리고 전신은 덜덜 떨려왔다.


놈을 죽여야 해! 아니면 놈이 널 죽일 거란 말이야!


펄그림은 패배한 적수를 내려다보며, 거울 같은 페러스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영원과도 같은 순간 속에서 펄그림은 자신이 어떻게 변모해버렸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무시무시한 배신행위에 발을 담가버리고 말았는지를 깨달았다. 그 영원한 순간 속에서 그는 자신이 레르의 사원에서 그 검을 뽑은 것이 무시무시한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이 지경까지 전락하게 만든 그 저주받은 검을 손에서 놓기 위해 애를 썼다.


펄그림은 자신이 얼마나 타락해버리고 말았는지, 자신이 더는 멈출 수 없을 지경까지 왔다는 것까지 깨달았고, 그를 통해 펄그림은 자신이 싸워온 것이 오직 거짓을 위한 것이었을 뿐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은 그 저주받을 무기를 꽉 쥔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슬로 모션 영상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펄그림은 페러스가 자신이 떨어트린 검을 향해 손을 뻗으며, 와이어로 감긴 손잡이 위로 페러스의 손가락이 감기는 것을 지켜보았다. 창조자의 손길이 닿음과 동시에, 파이어블레이드의 칼날 위로 다시 한번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네가 죽기 전에 놈을 죽여! 지금 당장!!


펄그림의 검이 스스로 생명을 얻은 듯 움직였지만, 은빛 검이 그런 식으로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펄그림은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검을 휘둘렀다.


은빛 검은 허공을 가르고 페러스 매너스에게로 떨어졌고, 펄그림은 고대의 존재가 승리감으로 환호하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그 검 안에서 거하고 있었음을, 펄그림은 이제는 깨달아 알고 있었다. 펄그림은 다급히 그 일격을 멈춰 세우려 했지만, 그의 근육들은 더 이상 그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있었다.


워프로 주조된 비자연의 강철 검이 프라이마크의 강철 같은 살갗과 맞닿고, 그 비정상적인 칼날은 페러스의 피부와 근육, 그리고 뼈를 가르고 들어갔다. 그 순간, 필멸자의 이지에서 벗어난 영역에서는 날카로운 함성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잘려나간 목으로부터 피 분수가, 그리고 황제의 아들들의 살과 뼈에 갇혀 있는 막대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타오르는 에너지에 눈이 가려진 펄그림은 뒤로 물러서며 은빛 검을 떨어트렸다. 펄그림은 밴시의 합창처럼 날카로운 통곡소리가 자신의 주변으로 유령 같이 날뛰는 것을 들었다. 뼈만 남은 손들이 그의 몸을 할퀴어대고, 일천 개의 목소리들이 그의 정신을 찢어발겼다.


유령들의 소용돌이가 펄그림의 몸을 사로잡고, 그의 몸을 빙글빙글 회전시켰다. 유령들은 펄그림을 손아귀에 붙잡고는, 그의 몸을 축 늘어진 누더기 천처럼 비틀어대고 사지를 뜯어내어 복수를 하고자 하였다. 펄그림은 그렇게 죽음을 맞는 것 역시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하였으나, 그 순간 또 다른 존재가 그를 지키려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은빛 검을 들고 있던 그의 팔을 인도하고, 그는 몰랐지만 레란 원정 이후로 그와 항상 동행하였던 바로 그 존재가.


바람이 그를 놓아주자 펄그림은 지면 위로 떨어졌다. 바람은 좌절하여 비통하게 울부짖으며 사라져버렸다. 펄그림은 거칠게 바닥에 떨어졌고, 곧 옆으로 몸을 굴려 일어섰다. 헉 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어 폐 속에 차가운 공기를 받아들이는 동안, 전장의 소음이 다시 귓가로 들려왔다. 펄그림은 고통스러운 비명소리와 총성, 폭발음과, 볼터가 끊임없이 일제사격을 가하며 규칙적으로 쏘아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곧 죽음의 소리였다.


학살의 소리였다.


펄그림의 전신은 고통과 상실감으로 욱신거리고 있었다. 펄그림은 힘겹게 몸을 똑바로 일으켜 세웠다. 그의 주변에는 피와 전장의 잔해물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갑주를 걸친 금욕적인 전사들이 놀라움이 담긴 시선으로, 펄그림 앞의 검은 대지 위에 누워 있는 목 없는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펄그림은 떨리는 숨을 들이쉬며, 양손을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렸다. 자신의 형제가 이토록 잔혹하게 죽음을 맞이한 모습에 펄그림은 상실감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펄그림이 울부짖었다. “옥좌시여, 저를 구원하여 주소서!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해야만 하는 일을 한 거지.


펄그림의 귓가에 머릿속 목소리가 쉬쉬거리며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존재가 내쉰 호흡이 그의 목구멍 속에서 뜨겁게 닿아왔다. 펄그림은 자신의 목을 비틀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보이지 않는 목소리의 주인도, 그리고 기이한 어떤 존재도.


“페러스가 죽었어.” 펄그림이 중얼거렸다. 자신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죄책감과 상실감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내가 죽였다고.”


그래, 네가 죽였지. 네 손으로 직접 네 형제를 죽였어. 너의 안녕 만을 바라고, 그 오랜 시간 동안 너와 함께 충직하게 싸워왔던 그 형제를 말이야.


“페러스는…. 페러스는 나의 형제였어.”


그랬지. 그리고 지금까지 녀석은 계속 너의 명예를 지켜주려고 하고 있었고.


어렴풋이 나타난 존재가 펄그림의 주위를 둘러싸고 말을 걸어왔다. 그 존재는 실체가 없는 손가락으로 펄그림의 두 눈을 할퀴어대고 있는 것만 같았다. 펄그림은 자신의 정신이 확 비틀어 떼어지며 기억 속의 공간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다시 한 번 그는 디아스포렉스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고, 피스트 오브 아이언 호가 다가와 파이어버드를 구해주었다. 펄그림은 그때 자신이 느꼈던 분개심을 느꼈다. 이제서야 그는 페러스 매너스의 행동에 담긴 이타심과, 페러스의 이타적인 행동으로 그의 군단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이전까지 그는 형제의 행동이 스스로를 뽐내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제서야 펄그림은 그것이 얼마나 영웅적인 행위였는지를 깨달았다.


펄그림은 쏘아진 화살처럼 날카로웠던 형제의 비평적인 언동이 자신을 깎아내리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제 그는 그것이 그의 거만함을 지적하고 겸손을 되찾아주기 위한 농담이었음을 깨달았다. 그가 오만한 뽐내기나 성급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모두가, 그가 악의적으로 무시하였던 페러스의 용맹으로 인한 행동들이었다.


그를 배신하고자 했던 펄그림의 시도를 페러스가 거절하였던 것은 진정한 친구로서 당연한 행동이었으나, 이제서야 펄그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형제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그를 구하려 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viewimage.php?id=20b4de2fe4c62db46bb8d7b813&no=24b0d769e1d32ca73ced87fa11d028316059171f52f1b44ff514cd48dd7bc91ed1bf113e87573f62e32038cc69a8b0dec80c118d9ff824003229ac19a488239b257b49b4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스스로가 저지른 일에 대한 공포가 번개처럼 펄그림을 강타하고, 펄그림은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펄그림은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을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사랑하는 군단에 일어난 끔찍한 변화가, 쾌락주의로 위장하고 다가온 도착적인 왜곡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내가 해온 모든 것들이 잿더미로 변했구나.” 펄그림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황금빛 파이어블레이드를 홱 들어 올렸다. 방금 전까지 그의 형제가 펄그림이 받아들인 악(惡)을 제거하기 위해 휘둘렀던 그 검을.


펄그림은 파이어블레이드를 역수로 쥐고 그 타오르는 칼끝을 자신의 몸으로 가져다 대었다. 타오르는 칼날은 그의 손을 검게 그을렸고, 불꽃이 갑옷에 난 흠집 사이로 파고들며 그의 살을 태웠다.


지금 이 모든 것을 끝내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일일 터였다. 자신의 급소를 향해 날카로운 칼날을 찔러 넣는 것으로 죄책감을 지우고 고통을 씻어내리라. 펄그림은 검을 단단히 쥐었고, 칼날이 손바닥의 살갗을 파고들면서 피가 흘러나왔다.


아니. 명예로운 자결은 네가 할 만한 일은 아니지, 펄그림.


“그러면 날 보고 뭘 어쩌란 말이냐?!” 형제가 벼려낸 검을 내던져버리며 펄그림이 울부짖었다.


망각. 바로 영원한 평안이 존재하는 달콤한 공허이지. 난 네가 갈구하는 그것을 네게 줄 수 있다…. 네 모든 죄책감과 고통을 끝내줄 수 있어.


펄그림은 양손을 들어 손바닥 위에 고인 피를 바라보았다.


“망각.” 펄그림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맞아. 난 공허의 은혜를 갈구한다.”


그렇다면 네 마음을 내게 열어라. 그러면 내가 이 모든 것에 종지부를 맺어주마.


펄그림은 마지막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산한 표정의 전사들이, 마리우스가, 율리우스가, 그리고 수천 명의 전사들이 어리석게도 자신의 운명을 워마스터에게로 투신하였다. 그들의 운명은 이제 종말이 결정되었으나,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주위 사방에서 미래의 소리가 들려왔다. 전쟁과 죽음만이 존재하는 미래의 소리가. 자신이 황제의 꿈을 파괴하는 죄악에 동참하였다는 그 생각이 가져다주는 죄책감이란, 그가 지금껏 알아온 그 어떤 수치와 슬픔보다도 더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을 끝낼 수만 있다면, 그것이 곧 축복 받은 안식이리라.


“망각이여.” 펄그림이 두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그것을 다오. 나를 끝내다오.”


펄그림의 마음의 장벽이 무너지고, 펄그림은 시간 그 자체보다 더 오래된 생명체가 그의 영혼 속 공허로 쏟아져 들어오며 기뻐하는 것을 느꼈다. 그 생명체가 그의 육신을 차지한 순간, 펄그림은 자신이 생애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펄그림은 그 생명체를 몰아내고자 비명을 지르며 저항하였으나,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펄그림의 의식은 무너져, 지금껏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어두운 마음의 구석 속으로 내던져졌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육신의 새로운 주인이 일으킬 파괴를 말 없이 지켜보고만 있게 되리라.


한때 펄그림은 프라이마크이자 황제의 자손들-엠퍼러스 칠드런의 일원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카오스의 것이 되었다.



────────────────────────────────────────────────────────────




viewimage.php?id=20b4de2fe4c62db46bb8d7b813&no=24b0d769e1d32ca73ced87fa11d028316059171f52f1b44ff514cd48dd7bc91ed1bf113e87573f62e32038cc69a8b0dec80c118d9ff82400632bfc4bf58a709a81f32b8d



결국 페러스를 죽인 죄책감을 못 이긴 펄그림은 슬라네쉬 데몬한테 몸을 내주고.... 후회는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지.



이렇게 보면 참 비극적인 한 편이지만, 결국 스스로가 초래한 비극이라는 점에서 펄그림한테 굳이 동정표를 줄 필요는 없는 거 같다.


굳이 따지자면 레란 소드를 주워온 것부터 모든 게 잘못 돌아가기 시작했지만, 여기까지 읽었다면 다들 알 수 있듯이 펄그림은 몇 번이나 레란 소드의 유혹을 거부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그 기회들을 못 붙잡은 것은 결국 펄그림 자신의 정신적, 성격적 결함 때문이고, 남탓을 할 여지도 없다.


펄그림은 오롯이 자기 자신 때문에 타락했을 뿐임. 파비우스가 완벽하게 만들어진 펄그림 복제품을 왜 부숴버렸는지도 대충 각이 나오지.


내일은 개인적으로 사정이 있어서 좀 빠른 시간에 올렸다. 일단 펄그림은 이 다음 장으로 끝이 날 예정이고, 25장을 올리는 동시에 링크집과 함께 대망의 마오맨 서장이 함께 올라갈 예정.







출처: 미니어처게임 갤러리 [원본 보기]

추천 비추천

21

고정닉 5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53 설문 연인과 헤어지고 뒤끝 작렬할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4/22 - -
246728 일반 [A갤] [ㅇㅎ] 청순 스미레 그라비아 [424] ㅇ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87134 309
246727 엔터 [브갤] 용감한 형제가 5년전부터 하던일 [484] o.o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52809 1153
246726 엔터 [히갤] 브리라슨이 호감이고 크리스햄스워스는 개새끼인 이유 [356] ㅇㅇ(121.173) 21.04.13 113546 873
246724 일반 [연갤] [ㅇㅎ] 간지럼에 가장 약한 그라비아 아이돌 [185] ㅇㅇ(118.130) 21.04.13 154721 210
246723 일반 [파갤] 한국여자들이 근육을 싫어하는것에 대한 기저 [901] ㅇㅇ(210.217) 21.04.13 159787 786
246722 시사 [야갤] 오세훈 업적 2. jpg [808] ㅇㅇㅇ(220.71) 21.04.13 178007 3671
246721 게임 [중갤] 몇몇 게임회사 이름의 유래 [220] 글레이시아뷰지똥꼬야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32271 360
246720 일반 [주갤] 마신거 [93] 정인오락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81289 61
246719 시사 [야갤] 깜짝... 갈데까지 가버린 서울시 시민단체 근황 .jpg [786] 블핑지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53423 2369
246718 엔터 [야갤] 김딱딱 논란 어이없는 점 (feat. 페미민국) [772] ㅇㅇ(203.229) 21.04.13 154143 2952
246717 일반 [겨갤] [ㅇㅎ] ㄹㅇ 역대급 [144] dd(118.235) 21.04.13 148633 184
246716 일반 [자갤] M235i산 게이다..1개월탄 후기 써봄(3줄요약 있음) [166] 깡촌빌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73074 174
246715 일반 [중갤] 3살 체스 신동... 인생 최대 난관....jpg [410]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30062 863
246714 일반 [중갤] 17금) 의외로 겜잘알인 누나... jpg [330] 케넨천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90273 589
246713 일반 [여갤] (전) 세러데이.. 초희.. ㄹ황.. [84] ㅇㅇ(223.62) 21.04.13 99897 155
246712 시사 [주갤] 해운대 9.5억 뛴 신고가에 부산이 화들짝…매수자는 중국인 [208] ㅇㅇ(119.204) 21.04.13 79404 654
246711 스포츠 [해갤] 해버지 현역시절 슈팅스페셜.gif [233] 곰보왕박지성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71845 295
246710 일반 [일갤] [ㅇㅎ] 타츠야 마키호 그라비아 발매 [37] ㅇㅇ(223.38) 21.04.13 79444 75
246709 시사 [야갤] 진중권...레전드 ㄹㅇ...JPG [984] 아츄아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26971 1598
246707 FUN [중갤] 여초 사이트에서 말하는 포지션별 롤하는 남자.jpg [56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37246 612
246706 일반 [중갤] 여왕벌 소신발언 레전드.jpg [315]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30422 1277
246705 일반 [야갤] 야붕이 pc방 사장님이랑 싸웠다 .jpg [1492] 블핑지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88760 3075
246704 시사 [싱갤] 안싱글벙글 핵융합 기술 [370] 건전여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70665 543
246703 일반 [싱갤] 싱글벙글 휠체어 전도.gif [152] ㅇㅇ(39.7) 21.04.13 73619 359
246702 일반 [싱갤] 싱글벙글 한남 고등학교 [128] 에이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92838 390
246701 일반 [싱갤] 싱글벙글 리얼돌카페 [179] ㅇㅇ(59.20) 21.04.13 102495 282
246700 FUN [싱갤] 싱글벙글 람보르기니.gif [182] ㅇㅇ(39.7) 21.04.13 83009 261
246699 일반 [코갤] 슈카월드 라이브... 2030세대의 분노.jpg [398] ㅇㅇ(223.62) 21.04.13 80839 709
246698 일반 [야갤] 삭재업)여경 기동대 폭로 신작.blind [1243] ㅇㅇ(175.125) 21.04.13 115410 2252
246697 일반 [싱갤] 꼴릿꼴릿 가능촌 [109] 으규으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26225 693
246696 일반 [야갤] 경희대.. 에타근황ㄹㅇ....jpg [443] ㅇㅇ(58.140) 21.04.13 128829 2153
246695 시사 [야갤] 30000vs1...잡히면 따먹힌다...추격전...JPG [960] ㅇㅇ(220.116) 21.04.13 167991 999
246694 일반 [주갤] 행동하는 주붕이 정의구현 하고 왔다 [91] 버번위스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46752 462
246693 일반 [새갤] 하태경 페북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147] ㅇㅇ(121.171) 21.04.13 53409 448
246692 일반 [토갤] 플레이스토어 110만원 해킹당한거 후기.jpg [155] K보스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65779 285
246691 스포츠 [해갤] 진짜 개미친새끼...gif [115] KB(112.148) 21.04.13 71877 218
246690 일반 [야갤] 운빨..만렙..1조..잭팟..동남아..누나..JPG [848] 튤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21095 1129
246688 일반 [야갤] 공무원갤 논란....jpg [337] ㅇㅇ(210.178) 21.04.13 71570 272
246686 일반 [L갤] 네이트판 캡쳐 [98] ㅇㅇ(118.32) 21.04.13 59147 222
246685 일반 [육갤] 군대와 이 세계의 공통점 [137] ㅇㅇ(223.62) 21.04.13 74746 643
246684 일반 [식갤] 무화과 나무 잎으로 차 만들었습니다. [104] 식둥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39482 191
246683 일반 [기갤] 유노윤호랑 서예지 방송에서도 티냈었네ㅋㅋ [115] ㅇㅇ(211.36) 21.04.13 75446 139
246681 일반 [과빵] 시작하는 빵린이를 위하여(1. 무엇을 사야하나) [50] ㅇㅇ(223.38) 21.04.13 41478 86
246680 일반 [카연] (스압) 단편 비주류 사람 [272] 잇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45224 467
246679 일반 [야갤] 깜짝.. 윾승사자.. 또 떳다....JPG [341] 사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23308 1506
246678 일반 [한화] [ㅇㅎ]큰 가슴 [72] 거유(175.223) 21.04.13 97572 262
246677 스포츠 [한화] 코구부장 안경현 저격.jpg [52] oksusu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39258 102
246676 일반 [야갤] 조련누나..자해 후.. 김정현 태도 변화...gif [149] ㅇㅇ(39.123) 21.04.13 75682 297
246675 FUN [유갤] 저번 주말...차박 성지들 근황...jpg [133] ㅇㅇ(1.230) 21.04.13 130083 174
246674 일반 [야갤] 여성만 혜택주는 서울시에 항의전화 함 [508] ㅇㅇ(211.33) 21.04.13 53349 1236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