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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인천 대한항공 일등석 기내식

Nitro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2.17 10:00:03
조회 5023 추천 127 댓글 64



예전에 미주노선 일등석 가격을 보고 '저걸 누가 타냐'며 경악한 적이 있습니다.


안그래도 비싼 비행기표. 그 비싼 일반석 가격의 열 배. 시기에 따라 가격의 변동이 있지만 대략 천삼백만원(!).


마일리지 모아서 탄다는 말을 종종 들은 적 있지만 장거리 노선인 미주노선을 타도 기껏해야 6천마일 쌓이는 마당에 어느 세월에 그 마일리지를 모으나 싶어 "일등석은 부자들 아니면 해외 출장을 엄청 자주 나가는 사람들이나 탈 수 있는, 그야말로 하늘 위의 하늘"이라고 나름 결론을 내렸지요.


그러다가 이번 한국 귀국을 앞두고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하게 됩니다.


십여년의 미국 생활을 이틀만에 정리하다 보니 미처 못 보낸 짐들이 한가득. 깨지기 쉬운 물건, 분실하면 안되는 서류들, 고가의 물건들을 부여잡고 골머리를 썩다가 그 동안 모아놓은 마일리지를 뒤적여 봅니다.


왕복이 아닌 편도 항공권. 비수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에서 신용카드 오픈하면서 받았던 5만 마일.


5만마일 소멸 할 때까지 다 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 탈탈 털어 일등석으로 업그레이드 합니다.


그 덕에 23kg 한계이던 위탁수하물 무게가 32kg으로 증가. 갯수도 원래는 두 개였으나 일등석 추가 한 개, 모닝캄 클럽 회원 한 개 추가해서 네 개. 


휴대 수하물 역시 소형 캐리어 한 개 10kg이었던 것이 캐리어 두 개 18kg으로 증가.


무게로 따지면 56kg이 146kg으로 뻥튀기 된 셈이죠. 말 그대로 이삿짐 무더기. 공항 포터 서비스의 도움을 받아가며 겨우겨우 발권 카운터 앞으로 옮겼습니다.


티켓 끊으려고 길게 늘어선 줄을 옆으로 하고 일등석 전용 발권창구로 직행하면서 "돈의 힘은 새치기도 합법으로 만든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단순히 티켓 발권 할 때만 새치기 하는 게 아니라 보안검색대도 일등석 손님용이 따로 있고 비행기에 들어갈 때도 먼저 들어갑니다.


심지어는 위탁수하물도 가장 먼저 나오지요.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고 나서 가는 곳은 대한항공 라운지.


일등석 라운지는 뭔가 대단한 게 있을까 싶어서 두근거렸건만, 비지니스 라운지와 음식은 똑같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역시 인구밀도 아닐까 싶네요. 사람들 북적대는 비지니스 라운지에 비하면 일등석 라운지는 뻘줌할 정도로 사람이 없습니다.


인테리어의 끝은 공간이라더니 넓직한 여유 공간이야말로 고급스러움을 보여주는 방법 아닌가 싶네요.




라운지에서 가장 반가운 건 샤워룸입니다.


호텔 체크아웃 후 발권 카운터 열릴 때까지 몇 시간 동안이나 대기를 한 데다가 짐이 워낙 많아서 식당은 커녕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고 한 자리에 눌러 앉아있었으니까요.


굳어서 찌부둥한 몸을 푸는 데는 뜨거운 샤워가 최고입니다. 


아무도 없는 라운지에 짐을 그냥 놓고 가도 되는건지, 아니면 직원에게 맡겨야 하는건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일등석 라운지에서 누가 후줄근한 내 짐에 신경이나 쓰겠나' 싶어 쿨하게 놓고 샤워룸으로 이동합니다.


인천공항에서는 '이게 왠 호텔 욕실인가' 싶었던 반면, JFK공항은 '이게 왠 동네 수영장 탈의실인가' 싶은 느낌도 좀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 쓸 것도 아닌데다가 뜨거운 물 잘 나오고 기본적인 샴푸와 칫솔 등은 있으니 큰 불만은 없습니다.



음식의 가짓수는 인천공항 라운지에 비하면 초라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땐 그렇게 나쁘지 않은데, 아무래도 대한항공 본진에 비하면 좀 부실한 건 사실이니까요.


그래도 볶음밥, 불고기, 닭고기, 클램차우더와 같은 뜨거운 음식에 샌드위치와 빵 등을 곁들여 먹으니 배가 부릅니다.


점심도, 저녁도 못 먹고 쫄쫄 굶다가 먹으니 완전 꿀맛이네요.



라운지에서 뒹굴거리다가 비행기 타기 전에 레미 마르탱 XO를 조금 따라서 튀김 우동을 안주삼아 호로록 마셔줍니다.


가격으로 비교하면 술이 주연에 안주가 조연이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튀김우동 컵라면이 먹고 싶어서 하나 끓여다가 코냑을 반주삼아 먹는 겁니다.


안주 하라고 각종 치즈와 크래커, 과일 등이 놓여있지만 왠지 모르게 비행기 타기 전에는 컵라면이 땡기는 거 같습니다.


평소에는 공항 면세점 사이에 끼어있는 스낵바에서 컵라면 하나 사서 먹던 것이 습관이 되었기 때문일까요.


맛있게 먹고 천천히 게이트로 향하면 입장이 시작됩니다. 


예전에 일반석 대기 줄 서 있으면서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입은 아저씨가 하품 쩍쩍 하며 다가오는 걸 보고 '비행기 타는데 왠 안방 패션으로 오나' 싶었는데, 곧바로 일등석 게이트로 들어가는 걸 보며 '오오, 역시 돈 많은 사람은 일등석도 부담없이 편하게 타는구나'하는 생각을 했던 게 기억납니다.


인식 전환이 얼마나 빠르게 이루어지는지를 스스로 자각하며 그 얄팍한 평가에 대해 자조하기도 했지요.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글들을 보면 일등석 탈 때면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면서 '일등석 자주 타는 CEO 흉내'를 내는 게 제맛이라고 하는데, 캐리어와 가방에 두꺼운 외투까지 바리바리 짊어지고 타는 제 모습은 아무리 봐도 보따리 상인입니다.



2017년에 취항한 대한항공 드림라이너, 보잉 787-9의 일등석 풍경입니다.


처음에는 에어버스 380을 예약하려다 부랴부랴 취소하고 787을 예약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좌석 사이가 칸막이로 분리되어 있는 코스모스위트 2.0 때문이지요. 


똑같은 일등석이라도 기종 혹은 편명에 따라 코스모스위트 1.0인 경우도 있고 2.0인 경우도 있습니다.


1.0은 비지니스석과 그렇게 큰 차이를 못 느낀다는 평이 많아서 2.0으로 결정! 


좌석은 중간에 위치한 2A입니다. 발권 카운터에서 "1A로 발권 해 드릴까요?" 하길래 "어디가 제일 좋아요?"하니까 웃으시면서 "다 똑같아요"라고 대답하시던데, 사실은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다시피 비행기 구조상 1열은은 앞부분이 좀 좁아지는 형태이고, 3열은 바로 뒤에 화장실과 승무원 대기실이 있기 때문에 2열이 가장 좋다는 말이 있거든요.



좌석. 넓은 좌석. 그야말로 넓고도 넓은 좌석입니다. 어느 정도로 넓은가 하면 그냥 앉으면 팔이 팔걸이에 안 놓일 정도.


사장님마냥 팔을 어깨너비보다 넓게 펼쳐야 팔걸이에 올려놓을 수 있습니다.


좌석 오른쪽에는 바람 조절 및 조명. 왼쪽에는 무드등과 각종 수납 공간, 화면 조절용 리모컨, 좌석 제어 버튼이 숨어 있습니다.



팔걸이 옆에 숨어있는 좌석 제어 버튼 및 화면 제어 콘솔.


취침, 휴식, 테이블 사용, 이착륙 상황에 맞춰 미리 셋팅 된 버튼도 있고 의자의 기울기나 위치를 세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버튼도 있습니다.


리모컨이 무슨 휴대용 게임기마냥 커다란 것도 재미있지만, 그보다도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승무원 호출 버튼입니다.


승무원 호출 버튼 누르면 무조건 5초만에 오거든요.



공간. 넓은 공간. 넓고도 넓은 공간입니다. 제 키가 180인데 발을 아무리 앞으로 뻗어도 발 받침대에 닿지를 않네요.


게다가 수납 공간은 그야말로 헉소리가 날 정도.


오른쪽 옷장에는 캐리어 두 개에 재킷에 두꺼운 외투가 다 들어가고, 발받침 아래쪽에는 구두와 스포츠백 정도 들어갈 자리가 있습니다.


항상 짐칸에 가방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다른 사람 짐을 이리 밀고 저리 쌓고 하면서 스트레스 받다보면 오래 전 아파트의 모자란 주차공간 욕하는 입주민 심정이 되곤 했는데 말이죠. 자리에 앉기 전까지 '가방 세 개라고 못 들어간다고 하면 어쩌지' 고민하던 게 덧없게 느껴지네요.


워낙 공간이 넓다보니 LCD 화면이 작아보이는 건 사소한 부작용이랄까요.



퍼스트 클래스의 광활한 넓이는 유리창 갯수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한 개나 반 개 정도 보이던 유리창이 무려 네 개 반. 바깥쪽을 보면 좁은 TV 보다가 갑자기 아이맥스 영화 보는 느낌이라 적응이 쉽지 않네요.


발받침에는 기내에서 입을 수 있는 편한 실내복과 담요가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실내복은 좀 내복 느낌이 너무 나서 안 입게 되더라구요. 


Bose 헤드폰은 사람들이 많이 집어가는지 케이스에 가져가지 말라고 커다랗게 써 있습니다.


조그만 물도 한 병 비치되어 있고, 건조한 비행기 실내를 감안해서 얼굴에 뿌리는 미스트도 하나 있네요.


그 외에는 각종 로션이나 세면도구가 들어있는 어매니티 백이 하나 주어집니다.



이륙하면서 찍은 뉴욕의 야경. 미국과 한국을 오락가락 하면서 많이 본 풍경인데도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네요.


십 여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완전히 귀국을 하는 길이다보니 다시 뉴욕에 올 일이 생길 것인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감상에 빠지는 것도 잠시. 곧이어 기내식이 제공됩니다.


참으로 신기한 게, 비행기를 타면 무슨 마법에라도 걸리는 건지 라운지에서 배부르게 먹고 온 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배가 고파집니다.


에피타이저로는 차이브를 곁들인 참치 타르타르와 조개 관자가 제공됩니다.


빵도 여러 가지 종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올리브 오일에는 발사믹 식초도 함께 들어 있어서 쉐킷쉐킷 흔들어서 접시에 부은 다음 버터 바른 빵을 찍어 먹으면 맛있습니다.


기내식은 넘어야 할 산이 많은데, 일단 공간 문제나 안전상의 이유 등으로 기내에서 요리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어쩔 수 없이 대다수의 음식은 지상에서 요리를 한 다음 기내의 조그만 전열기기로 데워서 서빙하는 수준.


그러다보니 가열이 필요 없는 참치 타르타르같은 요리가 상대적으로 맛의 손실이 덜한 편입니다.


다만 위에 얹어진 차이브 잘라놓은 걸 보니 '내가 이렇게 잘랐으면 셰프한테 욕먹었겠다'는 생각은 드네요.


부추와 비슷한 파의 일종인데, 부추와는 달리 크기가 좀 더 작고 동글동글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걸 무딘 칼로 자르면 사진에 보이는 바와 같이 짓눌려서 넓적하게 접히게 되지요. 날카로운 칼로 자르면 동글동글한 단면이 살아있거든요.


으깨지면서 향이 다 빠져나간다는 이유도 있지만, 요리하는 사람이 칼도 제대로 안 갈아놓는다는 증거라서 자칫 잘못하면 깨지기 십상입니다.


페어링은 페리에의 벨 에포크 2012년산. 높은 하늘에 떠서 식사를 시작하는데 곁들이기엔 샴페인이 제격입니다.


참치나 조개 관자처럼 맛이 강하지 않은 해산물과도 잘 어울리구요.



메인 요리는 비빔밥, 대구, 새우 완탕 국수 셋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비빔밥은 한국 가서 더 맛있는 거 먹으면 되고, 새우 국수는 방금 전에 튀김우동을 먹었으므로 패스.


딜 크림 소스와 단호박, 채소를 곁들인 대구 요리를 골랐습니다.


굉장히 부드럽게 요리되었습니다. 이게 오버쿡인지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부드러운 대구 요리를 만들려고 한 건지 감이 안잡히네요.


아무래도 생선은 부드러운 단백질이라 제한된 환경에서 제대로 조리하려면 난이도가 대폭 상승하는 게 사실입니다.


뭐,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아요. 개인적으로는 식감을 중시하는지라 차라리 튀긴 다음 급냉시켰으면 오븐에 재가열 했을 때 더 맛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은 들지만.


아마도 기내 오븐의 최고 가열온도가 그렇게 높지 않기 때문 아닐까...라고 추측만 해 봅니다.


페어링은 알베르 비쇼 샤블리, 프리미어 크뤼 2016입니다. 그랑 크뤼가 아닌 게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샤블리!


앞서 말했던 기내식은 여러 가지 한계가 불거지는 반면 지상에서 좋은 와인은 하늘 위에서도 여전히 좋은 와인입니다.


좋은 와인을 옆에 두고 먹으니 푹푹 부스러지는 대구도 술안주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



후식으로는 각종 과일이 등장합니다. 이 역시 지상에서의 맛과 크게 다르지 않은 덕에 기내식으로 좋은 메뉴지요.


다만 높은 고도에서는 음식의 맛이 그대로라고 해도 사람의 미각이 둔해지기 때문에 맛도 미묘하게 다르게 느끼게 됩니다.


이런 미각을 속이기 위해선 알콜을 부어 주면 됩니다. 약간 취기가 올라올 정도로 적당히 마셔 주면 혀의 미뢰 세포가 살짝 파업하는 정도는 가뿐히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페어링은 알콜 도수 살짝 높으면서 과일의 단 맛에도 지지 않는 샌드맨 포트 와인을 골랐습니다.


달달한 술을 마시다가 상대적으로 덜 달콤한 과일을 먹으면 과일 본연의 맛이 좀 더 잘 드러나는 느낌이라 재밌습니다.



마지막으로 커피 한 잔.


예전에 한 일등석 승객의 후기를 보니 "어떤 와인을 드릴까요?"라고 묻자 "쫙 다 깔아주세요"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를 읽고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평소에 접하기 힘든, 상대적으로 고가의 와인들이라 다 깔아놓고 시음회 하듯 비교해서 마셔보는 것도 여행을 즐기는 한 방법이지요.


하지만 이 경우엔 코와 혀의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상대적으로 맛이 약한 화이트 와인이나 섬세한 요리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대한항공에서 제공하는 와인 리스트를 보면 각각의 와인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과 어떤 요리에 잘 어울리는지를 적어놨으니 개인적인 와인 취향이 따로 없다면 그 설명에 맞춰서 고르는 것도 좋은 선택입니다.



식사가 끝나고 테이블보를 걷으니 광활한 넓이의 테이블이 등장합니다. 


노트북 펼치면 키보드가 절반 이상 테이블 밖으로 삐져나오기 십상이었던 일반석에 비하면 퍼스트 클래스의 테이블은 노트북은 물론이고 여기에 책 한 두권 펼쳐놓고 A4 프린트물 몇 장 뿌려서 뭔가 중요하고도 심각한 작업 하는 척 하기 딱 좋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저는 솔직하니까, 그냥 밀린 여행 사진이나 좀 정리합니다. 그래봤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피로가 몰려오는 바람에 포기했지만요.


승무원 호출 버튼을 누르고, 잠자리 셋팅을 해달라고 요청한 뒤 화장실로 향합니다.



화장실은 비지니스 클래스와 퍼스트 클래스가 공유합니다. 그런데도 상대적으로 사용하는 인원 수가 적어서 그런지 비어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게다가 넓이도 두 배 정도 넓네요. 변기 옆에는 앉아서 구두끈 묶으라고 간이 의자도 있습니다. 왜 넓디넓은 좌석을 놔두고 여기서 구두끈을 묶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꽃도 놓여있고, 무엇보다도 일회용 면도기가 비치되어 있는 게 마음에 드네요.



열심히 양치를 하고 세수를 끝마친 후 돌아와 보니 취침모드로 셋팅이 다 되어있습니다.


"파홈의 하인은 주인의 괭이로 땅을 파고 그를 묻었다. 파홈이 차지한 땅은 그의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의 길이, 고작 3 아르신 (약 210cm)이었다. 그것이 그가 차지할 수 있던 땅의 전부였다"


- 톨스토이,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중에서


톨스토이는 그의 소설에서 아무리 아둥바둥 재물을 긁어모으고 땅을 넓혀도 결국 최후에 가질 수 있는 건 자신의 한 몸 뉘일 만큼의 공간 뿐이라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그건 달리 말하면 사람에게는 편히 누울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서울과 지방 소도시의 땅 값이 다르듯, 지상과 하늘의 공간 역시 그 가격이 다릅니다. 


땅 위에서는 가장 저렴한 고시원 쪽방 수준의 공간이라도 고도 1만 미터가 넘는 하늘에서는 어마무시하게 비싼 값을 치뤄야 하지요.


이런 희소성 때문인지, 아니면 이삿짐 나르고 공항에서 대기하다가 마침내 누운 탓인지 눕자마자 기절하듯 잠들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잠의 힘이 강해도 반드시 중간에 깨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대한항공 일등석에서 반드시 먹어봐야 하는 심야의 라면이지요.


일반석에서 먹었던 미지근한 물에 담긴 컵라면이 아니라 진짜 라면을, 그것도 각종 토핑 넉넉히 얹어서 반찬과 함께 제공합니다.


국물 온도가 뜨거워서 주의를 요하는 데다가 만드는 것 자체도 손이 꽤나 많이 가는 요리인지라 승무원 인력을 어마어마하게 잡아먹는 메뉴이고


그러다보니 승무원들 할 일이 상대적으로 뜸한 취침 시간에 라면을 주문하는 게 정착되었다는 썰도 있습니다.


그래봤자 누구 한 명이 라면 주문하면 그 매력적인 냄새에 다들 깨어나서 너도나도 요청을 하게 되지만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그냥 동네 분식집에서 토핑 넉넉히 얹은 수준의 라면이지만


하다못해 동네 뒷산만 올라가도 컵라면의 맛이 달라지는 판에 구름 위에서 먹는 라면의 맛은 각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라면 먹고 바로 자면 얼굴 팅팅 부으니까 다시 카메라를 들고 사진도 한 번 찍어 봅니다.


코스모스위트 2.0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바로 저렇게 슬라이딩 도어가 있어서 공간을 완전히 분리시켜 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항공사 측에서는 차원이 다른 프라이버시를 제공한다고 강조하기도 했지요.


뭐, 그래봤자 일어서기만 해도 담(?) 너머로 뭐 하는지가 다 보이긴 합니다만.


서양의 오랜 속담 중에는 "좋은 담장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확실히 이 정도 높이면 승무원 서비스를 받는 데 불편이 없으면서 동시에 옆 좌석 승객을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널부러져서 잠을 잘 수 있을 듯 합니다.


에티하트 항공의 "더 레지던스"처럼 아예 비행기 안에 객실을 차려주는 게 아닌 이상, 이 정도만 되어도 심리적 부담감은 훨씬 줄어드네요.



그렇게 편히 쿨쿨 잠을 자다가 그만 일등석 초보 티를 내고야 말았습니다.


항상 단체 급식만 먹다 보니 일등석 아침 식사는 요청하기 전에는 안 준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지요. 


어차피 사람 수도 몇 명 되지 않으니 굳이 조명 켜 가며 잘 자는 승객 깨우기 보다는 배고파서 일어난 사람에게만 주는 게 더 효율적이기는 합니다.


다행히 도착 두 시간 전에 일어나보니 담장 너머 옆 손님이 아침 먹는 소리가 들리길래 저도 얼른 주문했지요.


제 앞좌석 손님도 저처럼 일등석 처음 타 봤는지 한 시간 전에 일어나더니 허겁지겁 아침을 먹더군요.


일단 시작은 씨리얼과 요거트입니다. 씨리얼은 여러 종류 중에서 선택해서 섞어 먹을 수 있는데 저는 그냥 쌀로 만든 씨리얼 한 가지로 통일.


여기에 딸기맛 요거트를 곁들여서 속을 깨워줍니다. 


이 외에도 각종 빵을 선택해서 먹을 수 있습니다.



조식은 훈제 연어와 꼬리곰탕 중에서 선택. 밤중에 라면을 먹긴 했어도 아침은 역시 뜨끈한 국물이 속을 풀어주는 게 제격인지라 꼬리곰탕을 주문합니다.


맛은 그냥저냥 괜찮은 수준. 국밥 맛집 수준까지는 아니고 평범한 음식점 수준입니다.


다만 곰탕 그릇의 깊이가 매우 얕은 게 불만. 그야말로 가성비 최악의 꼬리곰탕이네요.


국물 먼저 떠 먹다가 고기도 좀 집어먹고, 어느 정도 수위가 낮아지면 밥까지 말아서 한 그릇 비우면 속이 든든하고 잘 먹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야말로 국밥의 미덕이거늘...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모듬 과일과 오미자차로 마무리 합니다.


처음으로 경험한 비행기 일등석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여행이라고 할 만 했습니다. 


넓은 공간도 공간이지만 아무래도 전공 때문인지 기내식에 엄청난 관심을 쏟은 여정이었지요.


정신병동의 그 모진 수감 생활도 다 참아 낸 한니발 렉터 박사마저도 비행기 기내식만큼은 참을 수가 없어서 자신의 도시락을 몰래 들고 탔지만


일등석 기내식은 전반적으로 만족감을 주는 경험이었습니다.


이게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그렇게 대단히 맛있다고 할 정도는 절대 아닙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관적으로 봤을 때는 맛있다고 느끼게 만든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정도 이유를 꼽을 수 있을 듯 합니다.


첫째는 주변 환경. 일반석에서 받게 되는 조그만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3분 요리와 비교한다면 일등석 기내식은 훨씬 더 맛있다는 걸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게다가 하늘 위에서 먹는 만찬이라는 사실은 똑같은 음식이라도 뭔가 고급스럽고 희소성이 있는 특별한 음식을 먹는다는 느낌을 마치 향신료처럼 팍팍 뿌려줍니다. 제가 음식의 맛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중시하는 여섯번째 감각 - 즉 사회문화적 경험이라는 게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식사였습니다.


두 번째는 요리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극한 환경을 극복 해 나가는 최전선을 보는 느낌이어서 좋았습니다. 앞서 말했던 조리 방법의 한계 외에도 단체 식중독을 막기 위해 위생에도 신경써야 하고 (수 백명의 승객이 몇 개 되지도 않는 화장실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좀비 영화를 방불케 하네요), 정해진 예산에 맞춰가며 기압 변화와 장기간 좁은 공간에 갇혀서 감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극한 상황. 이 모든 것을 최대한 만족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엿봤다고나 할까요.


뭐, 결국 가장 강렬하게 남는 감상이라고 하면 '돈 벌자! 돈 많이 벌어서 일등석 타고 다니자!'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지만요.



출처: 기타음식 갤러리 [원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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