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지금 젊은 한의사 1,700명 가량이 실업자 상태에 있다"

지난해 4월 9일 보건복지부와 대한한의사협회 공동 주최로 열린 '우수 한의인력 육성 및 활용방안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김필건 한의협회장이 한 발언이다. 

당시 김 회장의 발언은 한의계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현대의학에 밀려 갈수록 경쟁력을 잃고 한의사 인력의 일자리도 감소되고 있는 현실을 강조하기 위해 상황을 다소 과장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의사 배출 현황과 한방 병의원 증감, 요양기관종별 한의사 인력 현황을 살펴본 결과, 젊은 한의사 1700여명이 실업자 상태라는 말이 터무니없이 부풀린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한의사 국가고시를 통해 해마다 800여명 가까운 인력이 신규로 배출되고 있다. 
 
연도별로 한의사 국시 합격자 수를 보면 2009년 888명, 2010년 769명, 2011년 823명, 2012년 823명, 2013년 869명, 2014년 782명 등이다. 

한방병의원 등의 요양기관에 근무하고 있는 한의사는 얼마나 될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요양기관현황 자료에 따르면 한의사 수는 2009년 1만5,626명에서 2010년 1만6,156명, 2011년 1만6,826명, 2012년 1만7,353명, 2013년 1만8,199명, 그리고 2014년 3분기 현재 1만8,699명에 달한다.   

심평원의 요양기관현황 자료는 각 기관에서 신고된 인력을 반영한 숫자다. 

요양기관에 근무하는 한의사 인력은 해마다 500~600여명 증가하는 반면 신규 배출되는 한의사 인력은 연간 800여명에 달한다는 걸 감안하면 해마다 200~300명 가량이 실업 상태라는 걸 의미한다. 

특히 한방 병의원의 일자리 수요는 갈수록 정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내 한방병원 수는 2009년 158개에서 2010년 168개, 2011년 184개, 2012년 201개, 2013년 212개, 2014년 219개 등으로 61개가 늘었다. 

한의원 수는 2009년 1만1,782개, 2010년 1만2,061개, 2011년 1만2,401개, 2012년 1만2,705개, 2013년 1만3,100개, 2014년 1만3,381개 등으로  최근 5년간 1,599개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마다 신규 배출되는 한의사 수가 800여명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정체 상태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일부 한의과대학에서 정원외·편입학을 허용하면서 한의사 과잉공급을 부추기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대학 부속 한방병원 폐원이 추진되면서 한의계의 위기감이 고조됐다. 



요양병원이 한의사 새 일자리로 급부상 

흥미로운 사실은 최근 들어 국내 의료기관 중에서 한의사 인력을 가장 많이 흡수하는 곳이 바로 요양병원이란 점이다.

심평원의 요양기관현황 자료를 보면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한의사 수는 2009년 511명(4분기 기준)에서 2010년 650명, 2011년 836명, 2012년 1,052명, 2013년 1,217명, 2014년 1380명 등으로 늘었다. 

이 기간 동안 한방병원에 근무하는 한의사 수는 1,166명에서 1450명으로 늘었을 뿐이다. 

작년 말 기준으로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한의사 수(1,380명)와 한방병원에 근무하는 한의사 수(1,450명)가 거의 비슷할 정도다. 
 
한의사와 한방 의료기관의 과잉공급 상태에 현대의학과 경쟁에 밀려 갈수록 환자가 줄어들면서 한의계의 위기감은 상당히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한의대를 막 졸업한 젊은 한의사 중에는 월급 200~300만원 수준의 일자리로 내몰리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열린 '우수 한의인력 육성 및 활용방안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한 개원 한의사는 "최근 12년간 한의사 배출은 2배 이상 증가했지만 한의원 수는 최근 5년 사이 증가폭이 감소했다"며 "현재 과잉공급이 이뤄지고 있는 한방의료시장은 그나마 새로운 수요 창출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의료계는 경쟁력을 잃고 위기 상황에 직면한 한의계가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국민의식 수준과 의학의 발달로 인해 한의사들의 입지가 크게 좁아지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달린 현대의료기기의 사용을 주장하는 것은 의료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을 상실한 행위"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