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특별한 이유로 사람들이 진보를 거부하는 현상'이 있다. 이것을 동굴 거주자의 원리라 하는데, 유전자연구에서 얻어진 증거에 의하면 우리와 비슷한 외모를 가진 현대인은 10만년전에 아프리카에서 처음 출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초의 출현 이후로 인간의 두뇌와 기질이 얼마나 변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는 없다. 만일 10만년전의 아무나 한사람을 현대로 데려와서 목욕과 면도를 시키고 정장을 입힌후 월스트리트 한복판에 세워 놓는다면,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과 거의 구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바람과 꿈, 기질 욕망등은 지난 10만년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즉, 지금 우리는 과거 동굴속에서 살았던 선조들과 거의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지 모른다.

요점은 다음과 같다. 현대의 과학기술과 인간의 원시적 욕구가 서로 충돌을 일으켰을때 항상 후자가 이겨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동굴 거주자의 원리' 이다. 원시인에게는 "커다란사냥감을 거의 다 잡았다가 놓쳤다"라는 감질나는 이야기보다 직접적인 사냥의 증거가 훨씬 중요했다. 그들은 확인 할 수 없는 영웅담 보다 손에 고깃덩어리가 주어지는 것을 더 선호 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대인들은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보다 종이에 인쇄된 결과물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우리는 컴퓨터 스크린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전자를 본능적으로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필요하지 않은데도 이메일이나 보고서 들을 프린터로 출력하곤 한다. 사무실에서 종이가 사라지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또한 우리의 선조들은 멀리서 소리치는 것보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나누는 대화를 선호했기에, 지금의 우리도 서로 가까운 거리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읽어내려 애쓰고 있다. 나는 이것이 '사람없는 유령도시'가 실현되지 않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회사의 사장이 컴퓨터를 통해 사원들의 능력을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서로 마주보고 앉아서 적절한 보디 랭귀지를 섞어가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상대방에 대해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누구든지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면 자연 스럽게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표정과 몸짓만으로 상대방의 생각을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 왜 그럴까? 인류의 조상은 언어를 개발하기 전에 보디 랭귀지로 의사소통을 했는데, 그때 개발된 능력이 아직도 부분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TV와 라이도를 사장 시킨다"고 예측했던 미래학자들은 이점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영화와 라디오가 처음 등장했을때 사람들은 공연극장이 사라질 거라며 아쉬워 했고, TV가 처음 등장 했을때는 영화와 라디오가 사라질거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공연극장과 영화, 라디오는 아직도 건재하다. 새로운 형식의 매체는 과거의 매체를 사장시키지 않고 저마다 자신의 영역을 확보한 채 사이졸게 공존한다. 다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 사이의 상호 관계가 변해가는 것 뿐이다.

이 모든것은 우리의 선조들이 세간에 떠도는 소문보다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는 쪽을 선호 해왔기 때문이다. 도시가 아닌 밀림속에서는 전해들은 정보보다 자신이 직접 확인한 물리적 증거에 의존하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 따라서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공연극장은 여전히 건재할 것이며, 열성적인 팬들은 여전히 유명 연예인을 쫒아다닐 것이다. 이런 성향은 오랜 진화를 통해 습득된 생존 본능과 직결되어 있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와 같이 첨단기술과 직접적인 접촉은 서로 경쟁관계에 있다. 전자는 의자에 앉아 TV를 보는 행위이고, 후자는 주변의 사물을 직접 만지는 행위이다. 우리는 둘 중 하나만을 선호하지 않고 둘 다 경험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이버 공간과 가상현실의 시대에 살면서도 공연극장과 콘서트, 종이, 관광등 직접적인 체험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동굴거주자의 원리이다. 우리는 둘다 원하지만, 둘중 하나를 골라야 할때는 직접적인 접촉을 택한다.

- 미래의 물리학, 미치오카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