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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디까지나 소꿉놀이니까. (5화)

라갤러(1.11) 2024.04.29 17:22:17
조회 655 추천 15 댓글 8
														

제5화 현실을 변경하는 그녀


하교 전, 반장 잡일 때문에 교무실에 갔다 왔다가 아카이 선배와 덜컥 맞닥뜨렸다.

선배는 이제부터 연극부로 가는 중인 듯, 나도 교사 뒷문까지 함께 걸었다.

"우리 부는 아직 문화제 주제도 정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히메바쇼 양은 오늘도 성실하게 얼굴을 내밀어 주나 봐. 같이 기초 연습을 하고 싶다고 말이야."

덧붙여 이 고등학교 연극부원은 미쿠와 아카이 선배를 포함해 여섯 명뿐.

원래부터 인수가 적은 부활동인 것 같지만 미쿠의 입부 후엔 아니나 다를까 입부 희망자가 쇄도했다. 물론 전원이 남자. 명백히 미쿠가 목적인 입부희망이어서 부장인 아카이 선배는 전부 셧아웃하고 올해 부원 모집은 일단 마감했다던가.

처음부터 재적했던 선배 부원들은 진지하게 부활동에 임하는 여자 뿐이었기도 하여 미쿠는 현재 중학교 시절에 비해서 평온한 연극부 라이프를 보내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집에서의 히메바쇼 양은 어때?"

나와 미쿠가 셰어하우스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것은 아카이 선배도 알고 있다.

"평소와 같아요. 아, 그래도 드디어 내일부터 극단 연습이 시작된다고 해서 텐션은 높네요. 대본이 완성되는 건 아직도 멀었다고 했었지만요."

"공연이 아슬아슬할 때까지 대본이 나오지 않는 경우는 다반사니까. 먼저 배역 연구는 시작하겠지만 대체 어떤 연습을 할까. 와쿠이 타카히토가 만드는 무대……관심이 가는걸."

그렇다. 나도 미쿠의 배역 연구에 협력하기 시작한 것은 아카이 선배에게는 제대로 전해두는 편이 좋겠지. 지금은 거리를 두고 있는 기간이라지만 이 사람은 미쿠의 진짜 남친이니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아아, 히메바쇼 양한테도 들었어. 연인이 된 셈치고 즉흥 연기를 하고 있다면서."

이미 미쿠의 입으로 전해들은 모양이다.

그야 그런가. 이제 부끄러워서 말할 수 없는 단순한 소꿉놀이가 아니라 어엿한 연습이라는 명목이 생겼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남친에게는 보고하겠지.

"마쿠라기 군이 그녀의 연습 상대가 되어 준다면 나로서도 기뻐.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못하니까……하하."

"저기, 만약을 위해 말씀드리지만 저와 미쿠는 진짜 그런 게 아니라서."

"알고 있다니까. 연기는 연기, 맞지?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는 게 이상해."

아카이 선배는 자조적인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뭐, 그러는 나야말로 먼저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켜 버렸지만."

"네?"

"마쿠라기 군도 들었지. 나와 히메바쇼 양이 사귀게 된 경위."

연애나 사랑에 빠진 여자의 심정을 모르겠다, 그래서 그 연기가 서툴다는 미쿠에게 아카이 선배는 제안했다. 그럼 시험 삼아 자신과 사귀어 보겠냐고.

그래서 두 사람은 사귀기 시작했다.

"처음엔 정말 그저 그녀의 연기 연습을 위해서였어. 물론 귀여운 애라곤 생각했지만――어느샌가 나는 진심으로 히메바쇼 양을 좋아하게 되었거든. 연기에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는 건 이상하다니 내가 할 말은 아니겠지."

"어, 잘 모르겠지만 그게 나쁜 건가요? 왜냐면 제대로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으니……."

"나는 그렇지만 그쪽은 다르니까. 어디까지나 연습의 일환으로 나와 연인을 하고 있었을 뿐."

"그게 아니죠. 미쿠는 제대로 선배를 좋아해서 사귀었다고――.

"……마쿠라기 군은 말이야.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적 있어?"

갑자기 이상한 말을 던져왔다.

"네? 뭐, 남들만큼은. 중학교 때는 반 애한테 고백한 적도 있고요."

"그건 정말『사랑』이었다고 자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어?"

"그야……고백했을 정도니까요. 멋지게 깨져버렸지만."

아카이 선배는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좋아도 사랑도 똑같잖아?

"……미안. 이상한 질문 해버려서. 잊어 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끊더니 먼 눈을 하며 말했다.

"아무튼 내가 히메바쇼 양에게 일단 거리를 두자고 한 건 그게 이유. 내 일방통행인 사랑만으로 남친 여친을 이어가는 건 괴로웠기 때문이야."

"…………일방통행이 아닐 텐데에……."

내 중얼거림을 개의치 않고 아카이 선배는 미안한 얼굴로 혼잣말한다.

"후후.『거리를 두자』라니 비겁한 말이지. 완전히 끊어서 다른 상대에게 눈을 돌리게 하지도 않고, 아직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에 묶어두기 위한 편리한 말이니까. 나는 말이야. 언젠가 히메바쇼 양이 진심으로 나를 좋아하게 되어 줄 날까지 이대로 기다릴 셈이었거든. 치사하고 더러운 사랑을 하고 있겠지, 나는……."

선배가 하는 말은 어려워서 잘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도 미쿠를 좋아한다면 거리를 두자는 말은 냉큼 철회하면 좋을 텐데.

그러면 미쿠는 아마――…….

"그래도 있지, 알고 있거든. 이제 그저 기다리기만 한다면 그녀를 묶어둘 수 없다는 것도……그럼 나는 이쪽이니까. 또 보자, 마쿠라기 군. 너와는……앞으로도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고, 바라고 있어."

교사 뒷문을 나왔을 때 아카이 선배는 연극부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저, 저기, 아카이 선배!"

헤어지기 전에 불러세운다.

저, 선배를 응원하니까요.

그렇게 전하려고 했는데 어째선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말이 없기에 이윽고 선배도 말없는 미소로 떠나갔다.

……왜 나는 아무 말도 못했을까.


이튿날 토요일.

미쿠는 극단 플래카드 견의 첫 연습에 참가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기운차게 셰어하우스를 뛰쳐나갔다.

그때의 얼굴은 찬란한 유원지를 앞에 둔 어린애 같아서 매우 기뻐 보였다.

"하하……그야 기쁘겠지. 출연이 정해졌을 때의 저 녀석 엄청나게 기뻐했으니까."

힘내라, 미쿠. 라고 작게 중얼거린 나는 현재 테라스에 앉아 오랜만의 풍경 스케치에 착수하고 있었다.

높은 곳에 있는 이 셰어하우스에서는 마나미하마초의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짙은 감색의 하늘과 쭉 뻗은 수평선으로 재단된 푸른 바다. 바다를 향해 뻗은 숲의 녹음은 도중에 좌우로 크게 나뉘고 그 틈바구니에 단독주택만이 눈에 띄는 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내가 오늘 간만에 붓을 들고 있는 것은 전에 키스미에게 들은 말이 계기였다.


――미술부예요. 소이치로 씨도 아직 부활동에 안 드셨으면 같이 어떠세요?


그 권유를 받았을 때 조금 흔들렸지.

옛날에 할아버지에게 배운 교습 중에서 내가 가장 빠진 게 그림이었으니까.

하지만 미쿠에 이어서 나까지 부활동을 시작하면 현재 나와 둘이서 요리 당번을 돌리고 있는 아야 형의 부담이 커진단 말이지……애당초 아야 형은 일 때문에 집을 비우는 일이 잦기도 하고.

혼자서 묵묵히 스케치를 계속하고 있으려니 찰칵 하고 카메라 셔터음이 들렸다.

돌아보니 카메라를 겨눈 아야 형이 테라스 끝에 서 있었다.

"60년대 캐논의 명기, 데미S다. 중고점에서 발견하고 그만 충동적으로 사 버렸어."

하프 사이즈의 레트로 카메라를 들어올린다. 사진가인 아야 형은 프라이베이트용으로 필름식의 낡은 카메라를 즐겨 사용한다. 필름이 귀중한 지금이기에 반대로 세련되었다던가.

"아야 형, 돌아왔구나. 어서 와."

"그래. 그런데 또 좀 있다가 출장이지만. 일감이 있다는 건 좋은 거야."

요 이삼일, 아야 형은 외박으로 지방 촬영을 하러 가 있었다. 참고로 출장 갈 때는 반드시 현지 걸즈바에 들르는 모양이다. 연인인 시호 누나에겐 물론 비밀.

"소이치로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간만에 보길래 그만 찍어 버렸어. 너는 옛날부터 곧잘 그렸으니까."

"아야 형도 알잖아. 내가 하고 있던 건 거의 묘사야."

어릴 때부터 화가의 작품을 보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유명한 그림을 흉내내어 그리는 것만 했었다. 그래서 풍경화를 포함해 자작은 별로 그린 적이 없다.

아야 형이"어디보자"라고 하며 스케치북을 들여다보았다.

"아― 보지 말라고. 못그렸으니까."

테라스에서 보이는 경치를 그려보았으나 내 스케치는 결코 잘 그렸다고는 할 수 없는 부류였다. 민가의 크기도 실물과 다르고 애초에 높은 곳의 표고부터가 다르다.

"오호라. 꽤 좋은 그림이잖아."

"아니, 어디가? 이 민가는 크잖아. 숲도 이렇게 넓지 않고."

어쩐지 위로받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그만 대들고 말았다.

그럼에도 아야 형은 웃으며 흘렸다.

"한때 고흐는 말했다. 해부학적인 정확함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감각에 의한 과장이나 일탈이 곧 예술이라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현실의 변경. 즉 표현이란 『거짓말을 하는 것』이야. 민가가 실물보다 커도 되잖아. 유리잔 바닥에 얼굴이 있어도 되잖아." *오카모토 타로의 TV광고

"그 이야긴 전제가 다르지. 고흐는 치밀한 데생이 가능해서."

"괜찮다고. 정확한 묘사만 하던 너니까 우선은 거짓말을 하는 즐거움을 알아야 해. 모든 창작활동은 거기서 시작되는 법이로다."

"거짓말을 하는 즐거움……?"

"그래. 뛰어난 표현자는 모두 뛰어난 거짓말쟁이야. 나도 나신의 여성을 찍을 때는 현실보다 가슴이 커 보이게 궁리해서 찍어. 미쿠의 연극은 더 현저하잖아. 배우는 다들 무대 위에서 거짓말을 해. 그『거짓말』이 즐거워서, 더 최고의『거짓말』을 하고 싶어서, 우리들은 점점 빠져들고 연습해 가는 거야."

뛰어난 표현자는 모두 뛰어난 거짓말쟁이.

확실히 그런 의미에서는 미쿠는 꽤 거짓말을 잘 한다. 특히 지난 번의 연인놀이는 어디까지 진심으로 말하는지 알 수 없는 장면이 있었다.

"그러니 소이치로도 지금은 잘하니 못하니 재미없는 건 신경 쓰지 마. 자신의 감각으로 마음껏 즐겁게 그려. 바다에 거대한 여자를 푹 꽂아도 된다고? 심지어 맨몸으로 에로한 포즈를 하고 있으면 최고의 예술이지. 데생 같은 자잘한 기술을 신경 쓰는 건 그 후야."

잘 모르겠지만 아야 형은 에둘러 격려해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고로 그림이 좋다면 왜 미술부에 안 들어가는데."

"어."

"혹시 우리 집 일 때문에 사양한다면 괜한 오지랖이다, 아들아. 나도 너도 귀가가 늦어지는 날은 배달이라도 시켜 먹으면 되잖아. 미쿠랑 사이좋게 텐신항이라도 먹자고. 텐신항이라도."

왜 두 번 말한 건지 모르겠지만……역시 아야 형. 전부 꿰뚫어 본 건가.

"응……조금 생각해볼게."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자. 미술부에는 키스미도 있으니까……아니, 참.

"그래 맞아. 나, 아야 형이 돌아오면 물어보려고 했던 게 있었어."

"그래. 뭔데?"

키스미랑 학교에서 만난 날 하굣길에 나는 미쿠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


――키스미네 집은 여기서 전철로 한개역인 미야마기다이인데 말이야. 네가 이사오기 전엔 키스미도 몇 번인가 셰어하우스에 놀러온 적이 있어. 아야 오빠가 억지로 불러서.

――아야 형은 그런 친척 간의 사귐을 좋아하더라.

――그것도 있지만 뭔가 아야 오빠, 키스미한테도 같이 셰어하우스에서 살지 않겠냐고 권하는 것 같아.

――어, 진짜로!? 그 녀석도 우리집에 사는 거야!? 그거 엄청 재밌겠네!?

――으음. 그게 말이야. 키스미 본인이 거절한대.


"아― 키스미도 너희랑 같은 고등학교였구나. 하긴, 집도 가까우니까, 걔."

아야 형도 처음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어떤 경위로 키스미한테도 같이 살지 않겠냐고 권한 거야?"

"큰 얘긴 아냐. 걔네 부모님은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서 말이지. 아저씨네한테 부탁받았거든. 키스미를 여기서 맡아 주지 않겠냐고. 그래도――."

"본인이 거절한다고 들었는데."

"그런 거지. 뭔가 걔가 여기에 사는 걸 싫어하거든. 이유는 모르겠지만."

"……역시 본가에 있고 싶은 걸까, 키스미는."

물론 본가에 있을 수 있다면 그만한 게 없다.

나도, 아마 미쿠도, 둘 다 본가에 있을 수 없게 되어 이곳으로 이사왔으니까.

"뭐, 아무튼 말이야!"

아야 형은 얼버무리는 것처럼 기운차게 말했다.

"너희도 같은 고등학교라면 키스미랑 사이좋게 지내 줘라. 아마 걔 외로워할 테니까."

"……그래. 물론이지."


그대로 그림을 계속 그리다 저녁이 되었을 무렵, 핸드폰에 미쿠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미쿠【곶에 있어.】

초단문.

물론'와라'라는 의미라 스케치북을 정리하고 가 주기로 했다.

오렌지빛의 석양이 내리 비치는 저녁의 해안가를 달리면서 문득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의 극단 연습은 점심 후엔 끝난다고 했었지……?

잔디가 쫙 깔린 곶의 꼭지점, 철책 앞에, 미쿠가 있었다.

"야, 미쿠. 와 줬――다……."

그만 목소리가 멎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 붓을 들고 있던 탓인지 엄청나게 그림이 되는 광경이라고 생각해 버렸으니까.

황금빛으로 빛나는 하늘과 바다. 눈부신 햇빛을 반사하면서 흔들리는 하얀 구름.

그런 기적적인 저녁놀의 하늘을 배경 삼아 이쪽으로 수심에 찬 등을 향하고 우두커니 선 흑발의 소녀――.

어딘가의 명화와 같은 아름다움이라고 느끼고 말았다.

"아, 왔네 왔어."

소녀가 나를 돌아본다.

"응? 뭐야? 회송 열차를 지켜볼 때 같은 멍한 얼굴 하구."

물론 그것은 여느 때의 미쿠. 막돼먹고 밝은 평소의 미쿠다.

"비유가 너무 독특해. 더 따로 있잖아."

아핫, 하고 웃은 미쿠는 다시 바다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도 옆에 나란히 서서 금빛의 바다를 바라본다. 사실은 푸른빛인 주제에 거짓말쟁이인 바다였다.

"극단 연습은 점심 후까지 아니던가? 지금까지 뭐 한 거야?"

"응. 그냥저~냥. 이 주변 돌아다녔어."

"왜?"

"그러니까. 그냥저~냥."

……왜일까. 미쿠의 모습이 조금 이상하다.

어조는 평상시대로인데 평소의 기운이 미묘하게 모자란 듯한 그런 느낌?

혹시 극단 연습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래서 나를 불러냈다든가.

하지만 미쿠가 아무 말도 없는 이상 이쪽에서 따져묻지는 않는다.

"……너를 여기로 부른 이유 안 물어봐?"

"그럼. 미쿠가 말하고 싶어졌을 때면 돼. 그때까지 나는 멍하니 옆에 있어줄 테니까."

"……역시, 소이치로. 너는 정말 나를 잘 이해해 주고 있어. 그런 네놈에겐 이제『미쿠 매니아』의 칭호를 하사하마."

"땡큐. 뭐, 나 정도의 미쿠 마니아는 세상 어디를 찾아봐도――――아니, 미쿠?"

미쿠는 바다를 바라본 채――눈물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뭐야?

왜 울 필요가 있어?

"……아하. 안 되겠네, 나. 오늘은 정말 안 되겠네에……."

자신의 손끝으로 슬며시 눈물을 닦는다. 표정만은 웃는 얼굴인 채로.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소이치로가 얘길 들어줬으면 해서 일부러 와 달라고 했어."

"그래……나로 괜찮으면 제대로 들을 테니 말해봐."

수긍한 미쿠는 가냘프게 말을 꺼냈다.

"오늘은 있지, 플래 견 사람들과의 미팅도 겸해서 즉흥 연기를 했어. 대본의 대사 부분은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다음 달 공연에서 각자가 연기할 배역이 된 셈치고 애드립으로 주고받았어."

"응. 그래서?"

"……아하하. 수준 차이를 직시해 버렸어."

철책을 쥐는 미쿠의 손에 꽉 힘이 들어갔다.

"나는 주연의 연인역인데. 이야기의 중요한 히로인역인데……이미 명백히 붕 떠 버릴 정도로 캐스팅 중에서……가, 가장 연기가 허접했어……."

"……그거야 어쩔 수 없지. 다른 사람들은 어엿한 극단원인데."

그런 걸 변명 삼아서는 안 되겠지만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연출인 와쿠이 씨한테서도 되게 퇴짜 맞았어."

"…………."

"사랑에 빠진 여자 연기가 전혀 안 됐다고. 마음이 전혀 표현되지 않는다고. 그 모양으론 여, 역시 강판도……고려한, 대……잘못 기대했을지도래……훌쩍."

마지막 쪽은 눈물 섞인 목소리였다.

오늘 아침엔 그렇게 기뻐서 셰어하우스를 뛰쳐나갔는데 이게……맞냐.

"억울해, 소이치로. 모처럼 잡은 기회인데, 나, 이대로 가면, 저, 정말로."

"…………그래. 억울하네."

미쿠가 억울하면 나도 억울하다.

미쿠가 울면 나도 울 것 같다.

항상 밝고 거만하며 즐겁게 웃고 있는 게 미쿠인데.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왜냐면 연기 일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지 말해 줘."

간신히 입에 담은 말이 그것.

흔해빠진 위로밖에 할 수 없는 사실에 열이 받는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진지한 마음을 열심히 전한다.

"나, 더 진지하게 연인 연습에 어울릴게. 얼마든지 연습대가 될게. 그러니까."

"……그럼 한 가지 부탁이 있어."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던 미쿠는 진심인 얼굴로 돌아보았다.


"키스가 해보고 싶어."


…….

…………안 되지, 그건.

"진짜 연인이 된 셈치고 키스까지 경험해보면 뭔가 힌트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사랑에 빠진 여자라는 걸 연기하기 위한 힌트가. 그러니까……시험해보고 싶어……."

그야 나와 미쿠는 어릴 때에도 한 적이 있지만.

"이런 일 소이치로한테밖에 부탁 못해."

우리들은 이미 고등학생인데. 그냥 어린애가 아니라고.

애시당초 미쿠에겐――.

"물론 네가 싫다면 억지로 강요하진 못하지만……."

미쿠에게는 남친이 있잖아.

남친이 있는 여자애와, 하물며 그 남친과도 친하게 지내고 있는 내가 키스라니.

"그건 그……아무래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러게."

가냘픈 대답이었다.

"나한텐 일단 남친이 있는데 너랑 키스가 하고 싶다니……아무리 배역 연구를 위해서라도 이런 걸 부탁하는 게 이상하지. 정말 미안. 잊어 줘."

미쿠는 눈물을 닦고 철책 앞에서 떨어진다.

"자기 일은 알아서 어떻게든 할 테니까."

"기다려."

돌아가려는 미쿠의 팔을 나는 붙잡고 있었다.

우리들은 이미 가족인데. 남매인데. 더구나 미쿠에겐 남친이 있는데. 아무래도 키스라니 당연히 안 된다.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텐데 나는.

"……좋아. 하자. 키스."

이건 어디까지나 연기 연습. 거기에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저, 정말……? 정말 괜찮아!?"

"그래. 왜냐면 이건 배역 연구의 일환……연기를 위해서잖아?"

"응! 물론 그냥 연기! 연인 연기를 할 뿐!"

이 미소를 볼 수 있다면 역시 나는 뭐든지 받아들여 버린다.

……아니다. 사실은 미쿠의 미소를 볼 수 있다면, 이라는 성인군자 같은 이유도 아니거니와 연습대가 되어 준다는 선량한 사람 같은 이유도 아니다.

단순히 하고 싶었다.

아까 한순간이라도 아름답다고 느낀 미쿠와 나는 키스가 해 보고 싶었다.

그것은 순전히 나쁜 남자의 발상.

그것이야말로 연기에 야비한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는 최악의 행위.

나는 속절없이 사춘기였고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는 미숙한 꼬맹이였다.

"그럼……정말, 한다? 정말, 괜찮지?"

"그래……."

――그만둬. 지금 키스까지 해 버리면 분명 뭔가가 변할 거야.

머리 한구석에 남은 이성이 그런 경종을 계속 울려대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했다.


"소 군……좋아……."


미소지은 미쿠가 긴 흑발을 쓸어올린다.

단지 그뿐인 일에 주위 공기가 일변한다.

항상 하던 놀이인 연인놀이와는 차원이 다르다.

진심으로 내 연인을 연기하는 히메바쇼 미쿠를 앞에 두고 나는 한기조차 느꼈을 정도.

이 녀석……이렇게나 귀여운 여자애였던가……?

"늘 내 어리광을 들어 줘서 고마워. 정말 엄청 좋아해, 소 군……."

숨결, 동작, 표정근.

모든 것이 완벽.

이 어디에 퇴짜 맞을 요소가 있다는 건지 나는 전혀 모르겠다.

"그, 그래……나도 좋아해……미짱."

미쿠가 표현하는 압도적인『거짓말』에 집어삼켜진 나에게 그녀는 살며시 몸을 기대오며.

"―――――응."

나는 연인인 미짱과 입술을 포갰다.

심장의 고동소리만이 쓸데없이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이윽고 미짱은 천천히 몸을 떨어뜨렸다.

"……응, 이런 느낌인가. 역시 옛날이랑 다르게 괜히 두근거렸네."

거기에 있던 것은 내 연인인 미짱이 아니라 내 친척인 미쿠였다.

"사랑을 하는 상대 앞에선 두근거림이 더 세지나……? 그럼 지금 감각을 베이스로 표정을 조금 더 굳히면……맞아, 가슴의 고동이 있으면 목소리 상태도 바뀔 테니……."

중얼중얼 분석하고 있는 미쿠에게 나는 말했다.

"……그, 어때. 조금은 참고가 되었어?"

"응! 엄청 참고가 됐어! 히메바쇼 미쿠의 표현력이 10포인트 상승이란 느낌!"

"……하하."

그만 웃음이 흘러나왔다. 안심했다. 키스를 한들 역시 우리들은 평소와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소이치로 덕분에 다음엔 더 좋은 연기가 가능할지도! 정말로 고마워!"

"그래. 나로 괜찮으면 뭐든지 말해."

때마침 그때 미쿠의 파우치에서 핸드폰 착신음이 울렸다.

그 디스플레이를 본 미쿠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말했다.

"어라, 희한하네……아카이 선배한테서야."

두근 하고 심장이 울렸다.

설마 이 타이밍에 그 이름을 듣다니.

동요하고 있는 나와는 대조적으로 선배의 여친은 여느 때의 상태로 태연하게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선배? 네. 어? 아― 말하셨죠. 저기, 지금부터요?"

……아무리 배역 연구의 일환이었다고 하지만 키스는 이제 이걸로 끝내야지.

"아뇨, 저는 전혀 상관없는데……죄송해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핸드폰을 귀에서 떨어뜨린 미쿠가 나를 돌아보았다.

"있지. 아카이 선배가 밥 먹자고 하는데 지금부터 다녀와도 돼?"

두쿵.

다시 심장이 울렸다.

아까와는 다르게 납처럼 무겁고 둔한 맥동.

"어……왜 일부러 나한테 묻는 거야?"

"그치만 소이치로 저녁 당번이잖아. 벌써 밥 준비했다면 미안하니까."

"밥 준비는 아직이지만……그, 식사라니, 아카이 선배랑 둘이서만 가는 거야?"

"응. 플래견 연습 첫날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듣고 싶대. 왜, 전에 셋이서 돌아갔을 때 담에 밥 먹으러 가자는 얘기 했었잖아?"

그 이야기는 나를 포함해'셋이서'가자고 했었잖아.

그런데 왜 아카이 선배는 갑자기 미쿠와 단둘이 식사라니.

――바보냐 난. 왜가 아니지.

애초에 두 사람은 아직 연인 사이. 단둘이 가는 게 보통이잖아.

"그, 그래……그럼 다녀와. 미쿠와 선배는, 그, 남친 여친 관계니까."

"하긴 뭐? 그럼 그렇게 할게."

웃는 얼굴로 수긍한 미쿠는 핸드폰을 귀에 다시 댄다.

"기다리셨죠, 선배. 지금부터 가도록 할게요. 그보다 진짜로 둘이서 괜찮아요? 갑자기 어떻게 되신 거예요? 저를 그렇게 피한 주제에, 진짜~."

숨죽인 웃음으로 이야기하는 미쿠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따끔 아프다.

뭐지 이건.

왜 나는 이렇게 이상한 기분이 된 거야.

"네, 그럼 또 이따 봬요! 늦으면 펀치라구요?"

이윽고 통화를 마친 미쿠가 돌아보았다.

"나는 이제 갈 건데 소이치로는 이제부터 어떡할래?"

"슈퍼에서 저녁밥 장 보고 셰어하우스로 돌아갈게."

"그렇구나. 나도 9시까지는 돌아갈 테니까. 그럼 다녀오겠슴~다."

미쿠는 여느 때의 밝은 미소로 일찌감치 달려나갔다.

곶에 홀로 남겨진 나는 불쑥 중얼거렸다.

"꽤 기뻐 보이잖아……."

당연한가. 거리를 두자고 말했던 남친한테 오랜만에 식사 데이트를 권유받았으니까.

그야 기뻐하지 않을 리가 없네.

철책에 몸을 맡기고 곶의 끝자락에서 하늘을 우러러본다.

태양은 어느샌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고 밤이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별로 우리들은 진짜 연인이 아니니까."

한없이 진짜에 몰입하지만 결코 진짜가 되어선 안 되는 소꿉놀이.

지금의 키스도 그런『소꿉놀이』의 일환. 단순한 연기 연습. 미쿠가 원한 배역 연구.

그런 거야 당연히 알고 있는데.

"……후. 크크."

바보처럼 웃고 만다.

실제로 나는 바보였다.

"후하하하하! 역시 저 녀석 천재야! 뭐가『정말 엄청 좋아해, 소 군……』이란 거냐! 진짜로 거짓말을 너무 잘 하잖아! 부하하하하!"

목덜미가 얼얼해서 손으로 문질렀다.

벅벅벅벅벅벅벅벅.

모든 것은 저 녹아내리는 듯한 사랑의 고백과 쓸데없이 달콤했던 키스 때문.

전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저 녀석이 만들어낸 탁월한 동화(허구세계)는 내 흔들림없는 현실세계에 손톱자국 하나를 남기고 갔다.

역시 키스 같은 건 하는 게 아니었다.

절대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성은 제대로 제지를 호소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모든 것을 무시하고 키스를 하고 말았다. 제대로 거부할 수 있었다면 나는 필시 이렇게 꺼림칙한 감정에도 깨닫지 못한 채였으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본능에 져서 미쿠와 키스를 하고 만 나에 대한 벌.

그것은 미쿠에게만은 결코 품어서는 안 되는 금기의 감정.


"……나, 미쿠를 진심으로『좋아』한다거나……."


이 이야기는.

극채색의 독살스러운 허구와 흑백의 덧없는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왜곡된 동화 이야기.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불안정한 전환기에 나타나는 뒤틀린 사랑의 환상담.

바보 같고 호색한 사춘기들이 선사하는 매우 웃기는 연애희극――.

그 말인즉슨.


일그러지고 일그러진'러브 코미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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