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말했다. 이 세상은 감상적으로 살기엔 너무 험하다고. 그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은 너무나도 험한 세상이다. 남자들이 그렇고, 또한 나와 같은 여자들이 그렇다. 남자들은 어떻게든 날 깔아뭉개려고 안간힘을 쓰고, 여자들은 어떻게든 날 상처주려고 애를 쓴다. 남자들은 이해할 수 있지만, 왜 여자들이 나에게 그러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냉소의 날카로운 비수로 날카롭게 날 쏘아대는 그녀들. 그리고 난 비수에 맞아 휘청거리며 걷고 있다. 걸어왔다. 그리고 지금도 걷고 있다.

오늘 하루 괴로움, 오늘 하루 고통, 오늘 하루 불안... 힘을 내세요. 희망을 잃지 마세요.

 강바람이 너무 쌀쌀하다. 왜 나는 여기에 온 것일까? 대체 무엇 때문에 난 여기 온 걸까... 저 문구들은 단지 말 뿐인 걸 아주 오래전에 깨달았다. 유명인사들의 말들은 나에겐 아무런 쓸모도 없어. 그 사람들도 힘든 시기가 있었겠지. 아니 분명히 있었을 거야. 그래서 힘들 때도 포기하지 말란 말을 하지. 하지만, 난 그 사람들이 아니야. 난 딱 여기가 끝인 걸. 저들은 이 다리에 글귀를 새기고, 난 여기에 와서 이 글귀를 보고. 난 딱 여기까지인 그런 사람이야. 이게 그들과 나의 차이지. 저들은 지나고 나서 희망이 있다는 걸 알았겠지. 하지만 저들은 알까? 정말로 희망이 없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이제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흠. 이 망할 놈의 세상... 하지만 이 세상이 무슨 죄가 있겠어? 죄가 있다면 나에게 있겠지. 그런데 난 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을까.. 난 그걸 모르겠어. 난 왜 이렇게 우울한 거지? 흠. 아니야. 사실 우울할 필요는 없잖아? 난 사실 아무런 죄가 없어. 단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지. 생각. 그래 생각. 흠. 그나저나 아직 날씨가 춥네. 젠장. 나오지 말 걸. 뭐하러 나왔지? 뭔가 밤의 쓸쓸하고 한적한 느낌을 느껴보려 나왔는데 이게 뭐야. 춥기만 더럽게 춥고, 그런 감상은 전혀 나질 않아. 언제부터 이랬을까. 그래 그 때부터였을거야. 당선전화를 받던 그 날부터였어. 무덤덤했지. 그토록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는데 아무런 느낌도 없었어. 그리고 난 그 느낌에 대해서 천착하기 시작했지. 왜 무덤덤했던 것일까. 분명 기뻐야 당연한 건데, 왜 난 기뻐하지 못했던 것일까. 허무한 그런 것은 아니었어. 단지 보였던 것은 끝없이 펼쳐진 어둠. 그래. 어둠. 그건 허무가 아니었어. 어둠이 존재했으니까. 어둠은 실존하는 거야. 문제는 분명 기뻐야 할 그 날, 난 어둠을 봤다는 거야. 그리고 난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고 있고...

포기하지 마세요.. 오늘의 불안, 오늘의 아픔, 오늘의 괴로움...

근데. 저 사람은 저기서 뭘 저렇게 하염없이 바라보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