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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남녀 - 폐허의 서울 4,5,6화

김짺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5.03.17 21: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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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시 업로드서버가 병신이라 막 순서가 꼬입니당. 4번째 다시 올리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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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 능력의 활용법 - 3


"잠깐!"

"응?"

"뛰어서 가자."

동공이 마구 흔들리는 불안한 표정으로 내 팔을 붙잡는 수연.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무섭단 말이야, 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지속시간이…"

뭐라고 반박하려했지만 지-긋이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럽다. …게다가 이미 맘대로 해버린 전과가 있기 때문에 마냥 내 고집만 주장할 수는 없었다. 하긴, 달려가지 못할 이유도 없지. 지금이라면 염동력으로 이곳에서부터 체육관까지의 모든 벽을 뚫어서 일방통행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인데.

"그럼 달-"

"아니, 아냐아냐아냐아냐 날아서 가자."

달려갈까? 라는 말이 나올려던 참이었다.  

아예 온 몸으로 자기가 했던 말을 부정한다. 이게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괜찮겠어?"

"응!"

그리고 읏차- 하며 가볍게 뛰었는데 무슨 체조 선수의 점프처럼 높게 떠올라서 안겨오는 김수연. 팔은 가슴으로 모으고 발은 하늘을 향한 채 옆으로 날아오는, 일단 저게 가능한가 싶기도하면서도 딱 봐도 제대로된 착지가 가능할 리 없는 자세였다.

"잘 받아!"

"우아아아아!!"

저녀석이 아무리 가볍다지만 F=ma 에 의해 내가 곧 받아내야할 힘은 평소의 나였다면 솔직히 자신 없다! 

살폿-

"어라."

얼떨결에 아까랑 같은 상황이 됐… 아니, 다분히 의도된 상황이군. 아니아니 그보다!

"무슨 짓을 했길래 그 높이에서 떨어지는 걸 받아냈는데 무게감이 없냐?"

너무 경황이 없어서 염동력을 사용할 생각도 못했다. 아무튼 맨몸으로 받게 됐는데(비록 버프가 있긴 했지만) 그냥 좀 충격이 적었다 정도가 아니라, 받아 낼 당시에만 내 몸이 살짝 밀렸을 뿐  그 후엔 마치 처음부터 내가 얘를 들고 있었나?하고 착각이 들 정도로 무게감만이 느껴졌다. 내 얼빠진 표정을 본 김수연의 얼굴에 의기양양함이 그려졌다.

"하항, 나쯤되는 고수는 이런 것도 다 가능하지."

"퍽이나, 중력 관련 스킬도 얻었어?"

"진짜라니까."

티격태격 대화를 나누며 한 편으로는 [파동감지]에 감각을 집중했다. 

두쿵- 두쿵-

생물의 심장소리를 뇌로 직접 전달받는 듯한 느낌. 이것이 시스템이 언급했던 '감정의 편린'인가.  본래는 괴물들을 탐지하기 위함이었지만 김수연과의 거리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들려왔다. 뭐라고 해야할까- 이건 마치 심장소리 같기도하면서, 일종의 드럼비트 같기도 했다.  어떤 주제를 갖고 그 주제와 걸맞은 박자, 다양한 종류의 드럼을 조합하는 독주. 그러니까 그 비트가 표현하는 주제는 감정인 것이고 그렇다면 이건 음..

"야, 뭘 멍하니 있어."

"어? 어, 그래 가야지. 출발해야지."

부웅

[파동감지]에 걸려든, 우릴 찾고 있는 괴물의 수는 총 12마리. 모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정확히 베타파 때 일어난 크레이터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하, 우리 이거 옥상에 올라오는게 10초만 늦었어도 사정없이 물어 뜯길 뻔 했네.

꾸욱-

몸이 떠오르자 수연이 깊게 밀착해오는게 느껴진다. 

"꽉 잡아."

콰과쾅!!

만일에 대비해서 놈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체육관의 정 반대 방향에 염동력을 일으켜 주변 건물들을 마구 두드린 다음, 체육관을 향해 곧장 날아들었다. 현재 위치에서 체육관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이백미터. 도달 예상 시간은 5초! 

전력을 다해 염동력을 운용하자 상상 이상의 가속감과 함께 순식간에 공간이 압축되는 듯한 기분이 들며-

콰장창-!

당연히 신사적으로 문을 열고 걸어서 들어올 생각은 없었다.  

우리가 가야할 곳은 3층이나 됐으니까.

"다친데 없어?"

"음, 없는 듯."

우린 유리가루를 털어내며 체육관 내부를 둘러봤다.

수연이 그렁그렁 매달린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역시 아무도 없네."

"그 아무도에 괴물도 포함된 건 다행이네... 아, 비품실이 여기던가."

꽤 두꺼운 철문이었지만 염동력을 사용하자 별 저항 없이 시원하게 뜯겨나간다.

지끈-

다시금 두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마 방금 전의 급가속-감속에 꽤나 많은 기력을 사용해버렸기 때문인 것 같은데... 보통 이런 곳은 사용하지 않는 날엔 자물쇠로 잠궈둬서 어쩔 수 없다. 

"뭐 쓸만한 거 있는 것 같아?"

수연이 다가오며 말했다. 대충 살펴봤지만, 조명이 켜지지 않은 비품실엔 빨간 빛으로 빛나는 어떤 버튼들만이 시선을 빼앗을 뿐이었다.  

"어두워서 안보여. 혹시 이게 스위치인가?"

"그건 체육관 조명 버튼이고 비품실 용은 여기 따로 있단다."

딸칵- 

탕탕탕, 전기가 공급되자 오래된 형광등들이 점멸하며 방을 비췄다.

"생각보다 별 거 없네."

바닥을 굴러다니고, 그나마 정리해 놓은 게 노란 박스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것이 전부인 학교 체육 용품들. 이 배드민턴 라켓은 줄이 다 나가서 비눗방울 만들기에 좋겠다.

"움- 예상 범위 안이지.. 엑스칼리버나 챙기자."

"그 놈의 엑스칼리버, 누가봐도 동양 칼인데."

"무려 왕을 선정한 신성한 칼이잖아. 검의 여왕."

"아 그 선배."

하긴 바위에 꽂혀 있었다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건 뽑는 사람이 왕이었다는 상징성이지.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며 이곳저곳 뒤적여본다. 줄다리기용 거대 로프, 삼각 콘, 축구공…… 잘 사용하면 어떻게 쓰임새가 있긴 할 것 같으면서도 캠핑도 몇번 못 해본 평범한 나로서는 그냥 낡은 물건들일 뿐이었다. 굳이 고르자면 로프 정도? 그나마도 너무 굵어서 해체해서 가져가야 할 판. 

"이거라도 가져갈까?"

"가져가자. 정글의 법칙 보면 끈은 필수요소야."

"여기 서울 한복판인데..."

구시렁대면서 단단하게 매듭지어진 줄의 끄트머리를 잘라낼 무언가를 찾아다녔다. 기본적으로 로프는 실을 꼬고 꼰 실로 또 꼬고 또 꽈서 만든 거라 적당한 단계로 풀어내면 쓸만한 로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디 톱 같은 건 없나."

뭐 가위 정도론 턱도 없을 두께다. 진짜 톱 같은 걸로 썰어야겠는데. 구석에서 자기 키만한 수납장 위를 뒤적이던 수연이 내 혼잣말을 듣고 무언가를 건내줬다.

"이것도 톱이지?"

"오, 실톱."

아쉬운 대로 가장 쓸만한 것이 나왔다. 여유만 있었으면 영선실에서 절단기라도 가져오는 건데.. 뭐 별 수 있나.

"대충 이정도면 되겠다."

날이 잘 들어서 의외로 금방 끝났다. 얇게 풀어낸 로프를 어깨에 멜 수 있게 둘둘 말고, 염동력의 남은 지속시간을 확인해보니 약 14분. 

"나도 끝!"

얘는 그 사이에 뭘 했나 봤더니 포장끈으로 허리띠를 만들고 다시 포장끈으로 허리띠와 검집을 특이한 매듭으로 연결시켜 놓았다. 

"그 매듭은 뭐야?"

"아, 이거? 띠돈이라는 건데 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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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니, 허리띠로부터 팔八자로 뻗어 나온 포장끈 두개가 검집을 잡고 있는 것이 기본적인 구조였다. 

"이럼 다양한 방식으로 멜 수 있어서, 봐봐, 이렇게- 뒤집어놓으면 활 쏠 때 거추장스럽지 않거든."

흠.. 칼집계의 숄더백이나  크로스백 같은 느낌이다. 허리띠에 메달려 있지만.

"그나저나 활이라니, 활도 쏠 줄 알아?"

아니 못하는 게 뭐야? 내가 유치원생 때부터 알던 김수연 맞아? 놀람을 수습할 시간도 없이 김수연의 설명이 이어졌다.

"우리 가문의 무술은 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하셨던 조상님이 창시하셨는데, 그분이 칼과 활을 정말 귀신같이 다루셨대. 칼 다루는 방법은 적군들이 쓰는 방식을 보고 스스로 정립하셨고 활은 원래 잘 쏘셨지. 그런 것들이 직계후손들에게만 대대로 내려오고 있어. 무려 500년짜리 전통무술!"

"와.."

그냥 말이 안 나온다. 듣기로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무맥이 없어서 전통을 살리고자하는 무예가분들이 옛 기록들을 보고 복원하고 있다던데.. 이런 걸 보면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모르는 어떠한 세계가 있는 것도 같다. 

"그나저나 일본의 검법으로 일본군을 상대하셨다니 복마검법같은 개념인가."

무협소설을 보면 자주 등장하는 그런 게 있다. 사도와 마도의 무술을, 오히려 비슷한 형태를 취함으로써 제압한다는 공동파의 절기. 마치 말로만 듣던 전설을 직접 겪는 듯한 기분에 가슴 속 깊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듯한 기분이다! 

수연이 작게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러게. 장점만 가져오신 걸 보면 상당히 깨어계셨던 것 같아. 무려 전쟁중이었으니 일본을 굉장히 증오하셨을 텐데. 지금도 보면 칼날이 위로 향해 있는 패용 방식들은 왜색이 짙다고 싫어하는 분들이 많거든."

"음.. 주변에서 견제를 많이 받았겠네."

"뭐 그렇지. 그런 균형을 어떻게 잘 조율해온 우리 가문 조상님들의 지혜가 돋보인달까. 그리고 이제와서는 우리나라에서 우리 가문보다 오래된 무맥을 이어온 곳이 거의 없다시피하니 명분에서도 앞서고 있는 상황이고."

이쪽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데 누가 뭐라할 수 있으리. 게다가 이녀석은 현대적인 무술까지 모조리 꿰차고 있어서 무력으로도... 이게 무슨, 나랑 똑같은 17년을 살아온게 맞긴 한 건가?

"네가 있어서 정말 든든하다 친구야."

"엣헴."

좋아 도구도 다 챙겼고, 무력도 충분하다. 그렇다면 남은 10분 동안은..

"사냥을 가자."

* * *

우린 전력 확인을 위해서라도 싸워 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한시적으로나마 염동력을 사용 할 수 있고, 무술의 고수인 수연은 버프의 힘으로 인간의 신체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했었다.

"크하."

-격렬한 베타파입니다. 염동파의 파형이 변화합니다.

찌릿찌릿!

염동력으로 구현시킨 왼손으로는 머리를, 오른손으론 골반을 잡고- 

우두둑!

척추를 탈골 시킨다.

-염동력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운용의 손실이 하락하고, 전환 할 수 있는 출력이 한 층 증대됩니다. 


-염동력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염동력에 대한 이해도가…

탓, 타탓, 탓!

내게 당한 녀석은 마치 처음부터 이 기회를 위해 마련된 연막이었다는 듯, 내가 눈으로 인지할 수 없는 사각의 영역에서부터 달려드는 놈들의 발톱들이 콘크리트와 부딫히며 기괴한 박자를 연출한다. 동시에 지옥 끝부터 치밀어오르는 듯한 소름끼치는 울음소리와-

[키햐아아아아!]

송곳처럼 뾰족한 이빨이, 단검 같은 발톱이.

쉬이이익!

목숨을 끊으려 날아든다. 

"비켜!"

머리를 깨부수는 돌려차기와, 나갔던 발이 땅을 딛자마자 이어지는 섬광같은 발도(拔刀), 그리고 다시 안쪽으로 베어 들어오는 3격. 내게 달려든 세 마리의 괴물들은 벌레처럼 나가떨어졌지만 그 놈들의 희생을 발판삼아 또 다른 습격이 이어진다.

"으으아아아!"

두두두두두두두-

수연이 만들어준 순간의 틈으로, 현재 낼 수 있는 모든 출력을 끌어모아 [파동감지] 안에 걸려든 모든 괴수들을 잡은 뒤 한데 모아 내가 올릴 수 있는 최고 높이까지 들어올려서- 

콰쾅!

건물 구석으로 패대기쳤다. 

묵직한 중량과 15미터 가량의 높이, 그리고 염동력으로 가속된 괴물들은 엄청난 속도로 지면과 부딫혔고, 동시에 자욱한 연기를 일으키며 땅 속 깊이 처박혔다.

……잠시간의 정적은 놈들의 몰살을 암시하는 듯 했다.

"끝났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낭랑한 목소리의 경고가 귓가에 때려박힌다.

"아니, 몇 놈 뛰어온다! 조심해!"

"아오!"

연기에 가려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 놈들이 달려들 법한 방향으로 양 팔을 뻗고- 거대한 양 손의 이미지를 현실로 끌어낸다. 그리고 마치 박수를 치듯 범위 내의 모든 것을 쓸어담으며..

부우웅- 콰콰콰콱!

"잡았다."

모두 다 잡았다. 이제 이걸 움켜쥐고 빨래 쥐어짜듯 돌려 꺾으면..

"아니야!!"

"뭐!?"

타탓- 

아주 낮은 자세로 날렵하게 파고 들어와서는 바로 앞에서 목을 노리고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는 괴물 한 마리!

"꺼져!"

부웅-! 콰득!

발악하듯 차 올린 발길질이었지만, 전혀 맞지 않고 목 대신 다리가 꿰뚫리게 되었을 뿐이게 되었다. 어찌보면 다행이었지만 무자비한 크기의 송곳니가 살갗을 파고들자 마치 인두로 지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다리를 빼려는 내 움직임과 반대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엄청난 저항감이 느껴졌다. 

"씨팔!"

우드드득!

나로써도 이해할 수 없는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일단 염동력에 잡힌 다수의 괴물들은 으깨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다리를 문 괴물의 목을 비틀어버리려 했지만-

파팍!

순식간에 날아든 수연의 칼날이 괴물의 턱 관절과 경추를 끊어버렸다.

"괜찮아?!"

대답하고 싶었지만 정말 대답할 겨를이 없어서, 한 쪽 턱이 끊어진 괴물의 머리통을 벗겨내고 발버둥치듯 발로 차 버린 후 허벅지를 부여 잡았다. 잔뜩 굳은 표정으로 주저 앉아서 내 상처를 눌러 지혈하던 수연은, 어느정도 안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히 동맥은 피해간 것 같아."

쫘악! 

그리곤 과감하게 자신의 소매를 찢어서 상처를 압박해 묶었다.

"일단 이걸로 묶어서 지혈할게."

덧붙여 '근처 약국에서 붕대랑 약을 구해와야겠어'라고 작게 중얼거리는 수연. 너무 피를 많이 흘린 것 때문인지, 기력을 너무 많이 사용한 것에 대한 반동인지, 흐릿해진 시야처럼 귀도 먹먹해져왔지만 저 소리만큼은 똑똑히 들려왔다. 

"야, 어,딜 가려고, 위험해."

폐부에 남아 있던 단 한 문장 분량의 공기를 쥐어 짜내봤지만 수연은 잠깐의 멈칫거림도 없이 단호한 의지를 표명했다.

"누워 있어. 금방 구해올테니까."

질끈! 막 출발하기에 앞서 신발끈을 조여 멜 때였다.

"오, 검도 소녀! 그 소년의 말이 맞아. 학교 밖은 위험하다구."

"네?"

애초에 주변에 멀쩡한 사람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도 못했지만 말도 안 되게 평화로운 말투에, 아픈 것도 잊고 상체를 벌떡 일으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자리엔..



(1)확장-1


"아! 소개가 늦었군. 내 이름은 언더 블랙, 너희에게 간단한 장비와 용품들을 보급해줄 사람이다. 블랙이라고 불러."

자신을 언더 블랙이라 소개한 남자는 185cm는 될법직한 멀끔한 키와 댄디하게 정리한 턱수염, 짧게 정리한 머리로 자신을 연출했는데 정말 '모델 같다'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흑인이었다.

"보급..품이요?"

그렇게 말한 수연의 목소리엔 '너 미심쩍음'이란 느낌이 강하게 녹아있었다.

"흠! 지금 필요한 퍼스트 에이드 킷이나 대거 같은 걸 구비하고 있어, 소녀."

그리곤 들고 있던 상자를 텅! 소리가 나게 내려놓으며 우리에게 내용물을 확인시켜줬다.

"자, 붕대 필요하지? 이건 지혈가루랑 소독약. 여기 진통제와 항생제도 있으니 빨리 바르고 먹여. 이게 바르는 거, 이게 먹는 거. 자자 빨리빨리! 시간이 없다!"

그러면서 약 같은 걸 이것저것 한 아름씩 챙겨주는데, 의심하고 자시고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수연도 할 말은 많아 보였지만 일단 그것들을 받아서 다시금 제대로 된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 붕대를 갈기 위해 방금 묶었던 천을 들어내자, 응고되기 시작한 피가 끈적하게 떨어져 나갔고 아깐 미처 보지 못했던 흉악한 상처들이 드러났다. 

"윽."

내 상처였지만, 생각보다 엄청난 몰골에 차마 보기 힘들었다. 마찬가지로 내 상처를 본 블랙이 얼굴을 과도하게 찌푸리며 한 마디 거들었다. 

"오우, 제대로된 치료를 받지 않으면 다리를 절 수도 있겠는데."

붕대를 감던 수연의 손이 잠깐 멈칫-하다 곧 재개됐다.

"……맞아요. 그리고 당신은 보급관이랬나요?"

"그걸 묻는 이유는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 생각해서인가?"

"이 상처를 단숨에 낫게 할 기적의 물약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요. 최소한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라도……"

블랙이 고개를 저었다.

"흠! 미안하지만 전자 쪽이 더 가능성 있겠는 걸. 지금 이 곳은 인력이 필요한 서비스들은 모조리 없다고 봐도 좋아, 그리고 그 정점은 의료겠지. 물론 기적의 물약 같은 것도 내겐 없어."

"……."

그리고 한층 어두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는 수연. 조용히 듣고 있던 나는 둘이 나누던 대화의 맥락에서 숨어있던 어떠한 정보들을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올릴 수 있었다.. 약의 영향인지 정신이 몽롱해져왔지만 이건 꼭 확인이 필요했다.

"보급관이란 건, 우리 같은 사람들을.. 지원하는 어떤 단체가 있다는 것.. 아닙니까? 저희들을 거기로 데려다 주시면.."

그의 말에서는 서울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듯한 뉘앙스가 노골적으로 풍겨져 나왔고, 심지어 우리의 전투가 끝나자마자 꼭 필요한 보급품들을 가지고 등장했다. 마치 학교라는 던전을 클리어하길 기다리기라도 한 듯. 그렇다면 그는… 이 게임의 NPC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리고 굳이 던전 클리어 보상을 게임 자체의 시스템적인 지원이 아닌 NPC를 보내서 간접적으로 지원한다는 건 그에 걸맞는 구체적인 '설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NPC가 가진 설정은 '어떤 비밀기관의 요원'일 거라 추리하게 됐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어떻게 나올 거라 짐작했던 그 어떤 방향과도 달랐다.

"음? 단체? 너… 염동력자가 아니었… 아하! 그랬군, 그랬던 거였어."

그는 요요히 빛나는 눈으로 나를 살펴보았다.

"너는 초짜가 아니라 '일반인'이었구나."

그의 눈길이 수연에게도 스쳐지나갔다. 묘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아가씨도."

"아깐 소녀라더니 왜 이번엔 아가씨에요."

기습적으로 농담을 던지는 수연. 그가 한 방 먹었다는 표정과 리액션을 취하며 말했다.

"오, 난 외국인이잖아. 단어 선택에 경미한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좀 이해해줘, 아임 쏘리."

저걸 저렇게 말하면 누가 이해해주나 싶을 정도로 유창하게 말해놓고는,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몹시 고뇌하는 블랙.

그리고 그 후로 한참이 지났지만 도저히 다음 말을 이어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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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

"그래 일반인. 네가 뿜어댄 염동파의 출력은 내가 봤던 다른 염동력자들을 상회하는, 초짜라곤 믿을 수 없이 가공할 힘이었지만 그런 힘을 가진 존재가 모순적이게도 그의 기준에서는 '일반인'이더군. 지금 넌 프로선수 급의 운전실력이지만 사실 2종 보통 면허도 없는 놈이랄까."

아까 자신을 외국인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실 한국 토박이가 아닌가 할 정도의 유창한 한국어였다. 아, 이게 중요한게 아니지 참. 그의 말에서 또 새로운 정보가 흘러나왔다.

"기준..? 면허?  그렇다면 이능력자에게.. 등급에 맞는 라이센스를 발급하기라도 하는 겁니까..?"

이 질문은 아주 중요했다. 앞서 언급한 단체의 유무, 앞으로 우리가 동료로 만날 수도 있는 NPC와 플레이어 등등. 초짜와 일반인..? 이 둘의 차이는 잘 알 수 없었지만 분명 배경 설정의 일부일게 분명하다. 블랙의 말이 이어졌다.

"음! 그런 것들이 있다고는 하더군. 하지만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야. 이건 그……"

파지지직!

"이크."

그의 왼손 끝에서 강렬한 스파크가 튀더니 중지와 검지 손가락 두 마디 정도가 재가 되어 흩어졌다.

"경고로군."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별 거 아니라는 듯 손을 흔들어 터는 블랙. 

"이게 무슨?"

"이건 네가 '일반인'이어서 그런 거야. 난 일반인에게 해선 안 될 말을 하려 했던 셈이 되는 거고."

그가 말하는 일반인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것 같다. 대체 뭐지?

"워, 고민이 많군 그래. 난 떠벌거리는 걸 정말 좋아하는 타입이지만 보시다시피 함부로 말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앞으로 내 대답은 적절히 필터링을 거치게 될 거다. "

"그렇다면 이건 대답해 줄 수 있습니까?"

"일단 물어봐. 대답할 수 있다면 꼭 해주도록하지."

"당신은.. NPC인가요?"

나를 바라보는 블랙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지며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렇게 불리고 있다. 삐빅."

그러면서 로봇을 흉내내기 시작하는 블랙.

"아 쫌, 장난치지 마세요. 당신은.. 아무리봐도 사람 같아."

사람 같다는 내 말에 크게 반응한 블랙은 장문의 얘기를 하기 위해 산소를 준비, 숨을 크게 들여마셨지만 준비하던 말 또한 '경고'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허무하게 흩어지는 한숨이 되었다.

"중요한 사실은 내가 유령이던, 인공지능이던, 진짜 사람이던, 이 세계에 대해 아는 건 많고 말은 못해서 답답하단거지. 그 외에도 다양한 제약이 있지만 핵심적인 시스템에 관해선 이만 말을 삼가토록하겠다."

'도를 넘으면 완전히 삭제당하거든'이라고 말하며 검지와 중지가 없어져버린 왼손을 보여주는 블랙.

"하지만 이 정돈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군. 여긴 정상이 아니야."

"정상이.. 아니라구요..?"

"그래, 나는 꽤 오랫동안 일이 없어서 보급관 NPC로서의 기능이 정지당한 채 다른 곳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이 일은 없을 예정이었지만 오늘 딱 너희 앞에 이런 신분으로 나타나게 되더군.. 여긴 왜 이따위로 변해버린 거고,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

내가 보기엔 그에게 NPC라는 명칭은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초짜와 일반인이란 단어를 다른 의미로 구별해 나를 지칭했으며, 스토리 '외'적이라 생각되는 말들도 서슴없이 하고 있었다.. 근데 그런 인물이 이곳이 '정상'은 아니라고하는 걸 보니 순식간에 사람들이 증발하고, 괴물들이 나타나게 된 건 플레이어에게 혼동을 주기 위한 게임의 설정이 아니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이게.. 정상적인 게임의 진행은 아니라는 겁니까? "

"그래, 원래는 한참 전에 정리된 곳이라 깨끗해야해. 나는 솔직히 석기시대로 돌아간 기분이다."

그리고 그는 큰 소리로 박수를 두어 번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자- 일단은 살아야겠지? 곧 밤이 되면 그 어떤 건물도 너희가 안심하고 지낼 보금자리가 될 수 없을 거다. 임시 진지를 구축시켜줄 빌더(Builder)가 필요한데 내가 적합한 이능을 가진 자를 이곳으로 안내하도록하지. 그도 이번에 발생한 피해자야."

피해자라는 말에 수연의 고개가 홱 돌려졌다.

"주변에 살아 남은 사람들이 있었나요? 어떻게?"

"아아, 내 탐색망에 걸리더군.. 그리고 그는 초짜가 아니니까. 금방 다녀오마."

콰과광!

그리곤 엄청난 폭음과 함께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우리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의외로 육체파네 저 사람."

"그러게."


***


콰과과과과과-! 쾅!


그가 허공을 가르고, 박차며 가속할 때마다 대기는 비명을 질러댔다. 그가 하도 엄청난 기세로 공기를 밀어대는 덕분에 고압으로 압착되어 순식간에 응결된 수분들은 순백의 띠를 형성한다. 그렇게 마치 로켓처럼 쏘아져 나가는 그는 아주 약간의 동작만으로 글라이더가 기류를 타고 활공하듯 날고 있었다. 그리고 몇초나 지났을까, 하강할 지점을 찾은 블랙이 다시 한 번 밟을 지점을 응집시켜서- 

콰콰콰쾅!

엄청난 각력으로 박찼다. 그리고 감속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는지, 포탄과도 같은 기세 그대로 자세만 잡아 지면을 향해갔고, 착지하는 순간 수낙천지생(水落天地生)의 수법으로 넓은 면적에 충격을 분산시켰다. 하지만, 애초에 그가 품고 있던 에너지가 워낙 엄청나서 그 여파만으로도 인근에 있던 낡은 건물의 유리창들이 모조리 깨져버리게 됐다.

"쿨럭쿨럭- 대단히 요란한 등장이군, 언더."

그 자리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한 남자가 자욱하게 일어난 먼지를 헤치며 그에게 다가왔다.

"흠, 금방 다녀 오겠다고해서 말이야."

정작 소동의 원인인 그는 이 난리 속에서도 먼지 한 톨 묻지 않으며 태연히 연무 속을 걸어나왔다. 그런 모습이 얄밉지도 않은지, 남자는 블랙을 반갑게 맞이했다.

"하하, 그 아이들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어?"

블랙이 고개를 끄덕였다.


(1)확장-2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지만 둘 다 침착하고 똘똘한 것 같더군. 그리고 관념에 갇히지 않은 채 상황을 유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어. 어른과 아이의 장점을 어색하게 구겨넣은 것 같았지."

진지하게 그들을 평가하는 블랙.

"하얀 머리의 심리학자라도 흉내내는 거야? 의외의 모습인 걸."

남자는 그런 블랙을 보고 엄청 웃기다는 듯 웃음을 빵빵터트렸다. 

"뭣하면 네 놈 마음도 꿰뚫어볼까? 지잉-"

"푸하하."

뭐가 그리도 웃긴지, 남자는 한참이나 웃어댔다. 블랙은 그런 그를 팔짱을 낀 채 못마땅한 표정으로 지켜보다, 슬슬 잦아든다 싶을 쯤 슬쩍 운을 띄웠다.

"그보다 로어, 이번엔 대체 어떤 일을 벌인거지?"

로어라 불린 남자는 아직도 새어나오는 웃음을 겨우겨우 수습하며 대답했다.

"간단해, 닐의 보안체계를 해독하는 것에 성공했지."

"나로선 감히 거론조차 할 수 없는 그 분의 이름이군."

그렇게 말하며 왼손을 얼굴에 붙이고 밑둥만 남은 검지와 중지를 빠르게 까딱였다.

"우와, 하나도 안귀여워. 엄청 그로테스크해."

"난 심각하다."

"큭큭, 아- 대충 짐작했겠지만 이 섹터의 관리자 권한을 얻었다는 의미였어."

블랙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물론 그의 손가락도.

"그렇다는 건?"

로어의 면면에 진한 미소가 걸쳐졌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있던 그의 눈이 황금색으로 빛나기 시작하며 그의 시선이 닿았던 하늘이 마치 로직 퍼즐처럼 조각났고, 그 조각들은 곧 질서정연하게 재조립되기 시작했다.

"그래, 해방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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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이 떠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어느새 밤은 소리 없이 다가와 완연히 어둠을 내리깔고 있었다.

타닥타닥, 딱-

그가 가져온 상자에는 모닥불을 피기 위한 간단한 도구들이 있어서, 부서진 학교 자재들을 모아 어렵지 않게 불을 피울 수 있었다. 수연은 약에 취해 헤롱거리는 종현을 열기가 골고루 닿는 곳에 눕혀 재운 후, 그 옆에 앉아서 일렁이는 모닥불을 한 가득 눈에 담았다.

'언더 블랙.'

수연은 아버지로부터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20세기 최강의 체술사(體術士)이자, 압축과 팽창의 웨포너(Weaponer). 하지만 그는..

'죽었다고 했는데.'

악마적인 통치자가 집권한 독재 국가에서 태어난 그는 부당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그리고 혁명을 위해 치열하게 정부와 대립했지만 결국 비원을 이루지 못한 채 장렬히 산화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자손들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해외로 도피했고, 그곳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비록 그의 후손들은 그 체술의 중추를 이루고 있던 '본질'은 전해받지 못했지만 형태로나마 맥을 이어서 반 세기동안이나 제자를 받고 키워온 결과, 대통령 경호원, 각종 격투기 챔피언 등을 꾸준히 배출해내며 저명한 유력 가문중 하나가 되었다. 그것이 70년 전의 일.

'설마 동일인물인 건가.'

솔직히 믿을 수 없었다. 당시에도 서른은 넘겼다고 들었는데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건 그가 무려 한 세기를 살아온 인물이란 말이 된다. 

'그의 자손? 본인? 아니면 정말.. 여기는 게임 속이고, 그는 프로그램?'

"Yo."

금방 돌아오겠다던 블랙의 말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지켜지게 되었다. 수연은 잠시 생각을 멈추고 그들을 맞이해야했다.

"아, 오셨네요. 옆에 분은..?"

"자기 소개를 부탁하지."

"반가워요, 로어 알스타인이라고 합니다."

파아아아-

자신을 로어라 소개한 남자의 손에서 빛이 일자, 일대의 무너진 자재들이 공명하듯 따라 빛나며 부숴지고 합쳐지며 재조립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주변 환경을 조작할 수 있어요."

"우와아, 순식간에 난로가 만들어졌네요. 혹시 다른 것도 가능한가요?"

그가 순식간에 만들어낸 철제 난로는 마치 공장에서 막 나온 듯 정교해서, 수연이 놀란 토끼눈으로 탕탕- 두드려보기도 했다. 로어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재료만 충분하다면요. 다행히 석재와 철은 넘치는 것 같네요. 목재도 많구요."

빛나는 그의 손길이 지휘를 하듯 선을 그리면 그 흐름에 맞춰서 각종 자재들이 나눠지고, 뭉쳐서 순식간에 어엿한 가구로 변모했다. 마치 동화의 한 장면 같은 광경에 수연이 넋을 잃고 있을 때였다.

"자자, 마술쇼 구경은 이쯤하고, 슬슬 올라가 볼까."

블랙이 수연의 어깨를 툭툭치며 말했다.

"네? 어딜요?"

'요'라는 말이 끝난 직후였다.

쿠구구구구구구-!

"꺄아아아아악! 뭐야아아아아!"

그들이 쉬고 있던 지반이, 난로가 된 모닥불을 중심으로 지름 10미터 가량의 원기둥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몰랐어? 로어의 천공탑이라고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몰라아아!"

"이런 걸 무서워하다니 의외로군."

블랙은 머리를 감싸고 납작 엎드린 채 소리만 지르고 있는 수연을 보며 낄낄 웃었다. 

드드드드드드---

약 50미터 쯤, 최대 높이에 도달한 원기둥은 이것저것 외벽부터 살을 붙여나가며 순식간에 실내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실내에 벽을 세워서 용도에 맞게 구역을 나누고, 그의 능력에 의해 급조됐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가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심플하지만 당장 4인 가족이 입주해서 살 수 있을 정도의 방이 만들어졌다. 이런 대 이적을 행사한 그에겐 지친 기색 하나 없었다. 

"이제 괜찮아요, 다 올라왔어요."

"..미리 말 좀 해주세요."

얼굴을 붉힌 채 스르르 일어나는 수연.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고래고래 소리지른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듯 하다. 그리고 수연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됐다. 

비록 전기는 들어오지 않는 듯 했지만, 블랙의 상자에 들어있던 랜턴과 난로에서 벽난로가 된 모닥불의 빛, 유리창 까지 구현 된 창가로 들어오는 달빛만으로도 충분히 시야가 확보되어 안락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찬 바닥에서 옷가지 정도를 깔고 누워있던 종현은 그럴싸한 목재 침대 위에서 찬 기운 정도는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난 근처에서 요깃거리와 이부자리라도 구해오도록 하지. 쉬고들 있어."

"고마워, 언더."

블랙은 손인사로 대답을 대신하고 창 밖으로 뛰어 내렸다.

콰콰쾅!

그리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로켓처럼 쏘아져 나가는 블랙.

"우리도 저런 방식으로 내려가야하나요?"

수연이 질색하는 표정으로 로어에게 물었다.

"보통은 염동력자나 텔레포터 같은 대량 수송이 가능한 이능력자의 힘에 기대는 편입니다만, 여의치 않은 상황엔 제 힘으로 탑을 감싸는 나선형의 레일을 구성해서 수레를 타고 내려가게 됩니다."

로어가 대답했다. 결국 바깥을 보지 않고 도보로 나갈 수 있는 출구는 없다는 의미. 고소공포증이 있는 수연에겐 모두 달갑지 않은 방법이었다. 수연이 테라스에서 탑의 높이를 가늠해보며 부르르 떨고 있을 때였다.

"저 소년 말입니다만."

로어가 테라스로 걸어오며 말을 걸어왔다. 

"아 저희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김수연, 저 남자애는 임종현이에요. 네." 

"그렇군요. 종현 군의 상처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 싶은게 있습니다. 블랙에게 들은 바로는 상세가 심각하다던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제게 완벽히 치료할 약이 있습니다."

"약이라면..?"

수연이 생각하기에 그가 말하는 약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약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지 않았다. 종현의 상처는 외과 수술적인 부분이 필요한 큰 상처였고, 응급처치는 했지만 겨우 그정도로는 절름발이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로어가 품 속에서 향수병만한 무언가를 꺼내며 말을 이어갔다.

"코어(Core), 아니 천인장(天人腸)의 정수(精髓)라고 하면 알아보시겠죠."

"그…게, 무슨."

"종현군은 완전히 잠들어 있습니다. 안심하세요."

선문답이었지만 로어의 말을 통해서 수연은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언더 블랙이 종현에게 '일반인'을 언급 했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았다고. 그가 단순히 알아보지 못 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은 그저 오만이었다. 그런 수연을 보며 로어가 말했다.

"당신만 동의한다면, 저는 기꺼이 이것을 사용할 용의가 있습니다."

수연은 밀려오는 부담감 때문에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천인장(天人腸). 우리의 조상들이 하늘 사람의 신체기관이라 불렸던 내공의 공급체. 이름과는 달리 인간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서 간혹 천인장을 가진 동물이나 식물이 영성(靈性)을 깨우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영물(靈物)이라 불렀고 그러한 영물들의 천인장을 내단(內團)이라 불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것들은 기력회복과 각종 보양에 특효약처럼 여겨졌고, 기대만큼 효과는 굉장했다. 하지만 영물은 영물. 초절한 지성과 압도적인 지식, 그리고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 그 시대의 인간들은 분명 강력했지만 영물들도 마냥 사냥당하기만 하지 않았다. 영물들의 격렬한 반항 덕분에 한 웅큼의 내단을 얻기 위해서는 수 많은 사람들의 피가 흘러야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단의 악마적인 효능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유혹했다. 게다가 요즘에 들어서는 살아있는 영물을 사냥한다는 것은 물리적, 윤리적으로도 상상 조차할 수 없는 일이라, 로어가 선뜻 사용하겠다고 한 천인장의 정수는 감히 가치를 메길 수 없을 정도의 보물이었다. 하지만 수연은 복잡한 어른들의 사정 같은 건 잘 알지 못했다. 다만, 상식처럼 알고 있는 것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다시는 없을 기회이기도 합니다."

수연은 생각한 끝에 블랙이 언급한 '일반인'의 기준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이능의 사용 여부 따위가 아니었다. 조건은 천인장이 신체 내부에 자리 잡는 것. 그가 정수를 접하는 순간, 천인장의 정수는 종현의 상처를 수복하기 위해 활발히 활동을 개시할 것이고, 어느 순간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일반인'이 아니게 된다.

조용히 수연을 지켜보고 있던 로어가 말했다.

"당신은 이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데도, 일반인이 아니게 된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깨닫고 있으신 것 같군요."

수연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게 아니에요, 다만 저도 눈과 귀가 있으니 전혀 모를 순 없죠. 특수한 어딘가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어른들은 그 실체에 대해서는 항상 함구하셨어요. 그것이 '규칙'이라면서."

미성년자인 수연에겐 그곳에 대해 그 어떠한 정보도 줘선 안 된다는 뉘앙스의 규칙들. 어른이 되면 차차 알게 될 거라 말하던 집안 어른들의 말씀이 떠올랐다. 로어가 그에 대답했다.

"그 규칙이 RON에 위배되는 사항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약속이긴 해요."

"RON..?"

수연으로서는 전혀 들어본 적 없는 단어였다.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그것에 대해선 이 사태를 해결해가며 차차 알아가도록 하죠. 그보다, 결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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