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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사연게시판에 올릴껀데 재밌는 지 봐주라

111(61.84) 2015.04.12 14:41:30
조회 65 추천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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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남들보다 조숙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난 내 짝꿍을 좋아했지. 지금 생각해 보면 예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아직도 의문투성이다.

그 여자애는 존재감이 없었다. 안경을 쓰고 조용히 책 읽는 게 전부였어, 1학기 절반이 지나도록 난 그 여자가 있는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얘가 내 짝꿍이 되면서 조금씩 내 세계가 변해가는 걸 느꼈다.

4월 따듯한 봄날 이였다. 수학시간 이였지. 난 숫자만 봐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사람이라 곧 졸음이 오더라고 그러나 잠을 자면 선생이 분필을 던지니까. 반쯤 눈을 감은 상태에서 칠판을 바라봤지. 너무 고통스러웠다. 잠과의 사투를 벌이는 중, 옆에서 킥킥 거리는 소리가 들렸어. 뭐지 하고 옆을 보니까 그 여자애가 날 보고 웃는 거야. 아마 내가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재밌었나봐.

근데 그 순간 그 얘 옆모습이 예술처럼 다가왔어. 바깥에서 꽃향기가 나고 커튼이 봄바람에 살랑살랑 거리는 데. 그 여자 얘가 수줍게 웃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더라고. 난 첨 알았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그 날 밤 난 잘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그 여자애만 생각했고 내 두 눈은 항상 그녀의 옆모습을 향했지. 6교시 내내 그녀만 바라봤다. 참 신기하고 재밌었어. 여자란 게 이런 건가. 존재만으로 사내의 마음을 풍족하게 해주는 구나. 여자는 참 좋은 거다. 라고 고추에 털 안 난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애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 날, 어김없이 그 애 옆모습을 보고 있는 데, 눈이 마주쳤어 날 보고 웃더라고 나도 좋아서 실실 웃었지 요즘 속된 표현을 쓰자면 그린 라이트였다. 먼저 손을 잡고 좀 더 진도를 나가서 키스까지 하면 좋으려만 155센치 꼬맹이가 어찌 성인들의 세계를 알겠느냐. 그저 웃을 뿐.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고 여름이 왔다. 용식이가 수업시간에 내 짝꿍을 괴롭히는 거다. 지우개 가루 던지고 뒷머리를 잡아당기는 거야. 하 기분이 이상하더라. 날 괴롭히는 게 아닌데 그냥 기분이 더럽더라. 난 쇠 필통을 꽉 잡고 그 자식 면상에다 주먹을 날렸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선생님이 몽둥이를 들고 쫓아와서 우리를 말렸고 결국 난 방과 후 뒷정리, 반성문 10장을 썼지.

교문을 나섰을 때. 벌써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노을이 동네 구석구석을 아름다운 주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었지. 힘없는 걸음으로 걷고 있었는데 저 멀리 신호등 근처에서 그 여자애가 서있는 게 아니겠어. 난 뻘쭘하게 옆에 서서 신호등에 파란 불이 들어 올 때 까지 기다렸다.

“저기 괜찮아”

그 여자애가 말했다.

“응”

“너 어디살어.”

한참 뜸을 들이다가 여자애가 말했다

“현대아파트”

“나도 거기 사는 데”

“어”

대화가 단절됐다. 여자 다루는 데 능숙한 픽업 아티스트들은 분명 이 상황을 영상으로 제작해 수강생들에게 보여주며 썸 못타는 남자의 전형적인 예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겠지.

난 그 정도로 멋대가리 없는 남자애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답답한 짓거리였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 당시 상황으로 가서 과거의 나에게 여자애하고 손잡는 법부터 가르쳐 주고 싶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났다. 졸업식은 점점 다가오는 데, 우리 둘 사이의 관계는 진전이 없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나의 초등학교 시절도 종언을 고하려고 했다.

졸업식 날은 꽤 추웠다. 설상가상으로 눈 까지 내리는 데 그때가 10년 만의 폭설이라. 쌓인 눈이 발목을 덮을 만큼을 굉장했다. 차들은 도로 위에서 굼벵이 걸음을 하고 있었지.

난 교실에 앉아 창문을 통해 바깥 광경을 바라봤다. 6년 내내 뛰어다녔던 운동장, 교장선생님이 지루하게 일장연설을 늘여놓던 사열대를 이젠 다시 못 본다고 생각하니 씁쓸했다. 특히 그 여자애하고 손도 못 잡고 끝나는 게 너무 아쉬웠다.

교문을 나서는 데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교실에 뭔가 두고 온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들었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여자애한테 전해야 할 말이 있다는 걸 알았다.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었다. 한참을 헤맨 끝에 부모님과 환하게 웃는 그 여자애가 보였어. 난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그 애한테 다가갔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사랑한다? 너무 뜬금없고,

사귀자? 다 끝난 마당에 뭘 사귀는 가

날 알아본 그녀의 눈동자가 날 반기고 있을 때,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간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엽기적인 그녀, 전지현과 차태현의 진한 키스장면이 왜 그 순간 생각난 것일까?

난 다짜고짜 양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짜듯이 잡고 입술을 들이댔다. 부드럽고 촉촉한 입술의 감촉이 혀끝을 타고 전신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주변 사람들은 당황했고 난 얼굴이 시뻘게진 체 도망갔다.

난 중학생이 되기 전 날. 철마산에 올라 며칠 전에 봤던 영화 러브레터를 떠올리며 오뎅끼 데스까 와따시노 겡기 데스 라고 정상에서 외치고 싶은 강렬한 욕구에 휩싸였다. 다행히 상상에서 그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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