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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현대史-사회주의와 민중운동] 사회주의와 민족해방운동

베르마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1.06.14 12:4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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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이래 동아시아 각국에는 사회주의가 당국의 탄압 속에서도 광범하게 유포되었다. 1922년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잡지 \'신생활\'은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러시아혁명 기념 특집을 게재하고 사회주의사상을 선전하다가 이듬해 총독부에 의해 폐간되었다. 동아일보는 1925년 레닌 1주기 추도식을 수십차례 보도했으며 조선일보는 1924년부터 1933년까지는 사회주의신문으로서의 논조를 유지했다. 심지어 기독교 교회 안에도 사회주의가 파급되었다. 가령 1920~30년대에 조선기독교청년회가 발행한 잡지 \'청년\'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기독교 윤리에 반하는 체제라고 보아 평화적 방법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특히 이대위(李大偉)가 대표적인데, 그는 사회주의야말로 \'최상의 데모크라시\'이며 공정한 분배를 통해 개성의 인격존업을 실현하는 인간성의 회복이며 따라서 기독교 사상과 사회주의는 서로 같다고 보았다. 여기서 기독교 사회주의는 일본에서 더 일찍 더 널리 유포되었었다.

이제 각국에서는 사회주의를 신봉하고 사회혁명을 논하지 않는다면 지식인 축에도 들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회주의는 젊은 식자층 사이에 급속하게 파급되어갔다. 마치 유행병처럼 확산된 사회주의는 일종의 \'처세의 상식\'이라는 치장용 지식으로 전락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혁명의 사상과 운동이 식민지 약소민족으로서 독립을 열망하는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커다란 희망의 등불이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사회주의가 일본을 제외하고는 모두 민족해방이 무기로 수용되었다면 실제로 민족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흔히 사회주의세력의 등장으로 민족운동이 분열되어 내부갈등을 심하게 겪게 되었다는 점이 강조되곤 한다. 우파는 부패로 망하고 좌파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듯이, 급진사조에 의거해 혁명적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세력들에게는 늘 당국의 가혹한 탄압이 가해지기 때문에 분열의 소지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앞서 보았듯이 사회주의 수용의 경로가 극히 다양했던 터라 그 사상에 대한 이해의 정도와 방식이 각기 달랐고 실천의 방식은 더욱 달랐다. 게다가 그들이 각기 코민테른의 인정을 받고 재정적 지원을 받고자 경쟁적으로 주도권 쟁탈을 벌인 결과 분파투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해졌다.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세력과 반사회주의 세력이 서로 내전을 벌이거나 상화적대하여 민족적 약략을 갉아먹기도 하였다.

사실 이러한 분파투쟁은 겉으로는 사상의 갈래를 기준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조직의 주도권 쟁탈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광의의 민족운동세력은 제국주의 침략을 민족의 위기로 인식하면서 서구의 다양한 사회사상을 민족의 독립에 희망을 주는 대안으로 받아들였다. 초기의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한 이들은 스펜서의 사회진화론, 푸리에의 공상파 사회주의, 톨스토이의 인도주의를 비롯하여 아나키즘에서 맑스주의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다양한 사회사상이 상호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성을 가진 것으로 인식했고, 그에 따라 이 사조들은 내셔널리즘과 결합하여 구국의 방편으로 수용되었다. 리다자오가 1차대전 중 톨스토이의 인도주의에 공명하고 나아가 아나키즘에 접근했다가 러시아혁명에 커다란 충격을 받고 급속하게 맑스주의로 기울어 중국공산당 창립자의 한사람이 되는 과정은 이런 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고 코민테른이 성립되자 그 지도를 따를 각국 공산당을 결성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코민테른과의 관계를 기준으로 정통이니 이단이니 하는 구분이 생겼고 그에 의거해 작은 차이를 부풀려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풍조가 생기곤 했다. 작은 차이를 끌어안고 크게 단결해야 하는 민족운동의 대의명분 앞에서 그것은 진정 바이러스와도 같은 것이었다. 물론 이런 분파투쟁이 사회주의자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민족주의자들 사이에도 분파와 주도권 쟁탈은 늘상 있는 일이었다.

그렇더라도 사회주의 세력의 등장은 민족운동 전체의 역량 강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우선 조직면에서 당을 중심으로 각종 대중운동 단체들이 연계되어 전국적으로 사회 각 영역의 민중이 상호연계속에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북돋웠다. 노동자와 농민대중을 조직하여 이를 민족운동의 주체로 삼으려는 전략은 사회주의세력의 등장으로 인해 비로소 본격화 되었다. 중국, 조선, 베트남에서 1920년대초부터 노동조합과 농민조합이 각기 그 총연맹을 결성한 것은 바로 그 덕분이었다. 둘째, 당군의 개념을 바탕으로 자체의 군대를 양성하여 무장투쟁 역량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소련공산당을 모델로 중국공산당이 홍군을 양성해 자신의 근거지와 지역 정권을 확보하자 중국에서 활약하던 조선과 베트남의 독립운동세력도 그것을 모델로 자체의 독립군을 편성하여 활동하기 시작했다. 

물론 민족주의 세력은 오래 전부터 독립군을 양성해온 경험이 있었지만 전국적 연결망을 가진 당조직에 의해 주도되지 않은 탓에 그 활동은 지극히 분산적이었다. 셋째, 통일전선의 논리와 경험이 좌우의 이념을 망라한 대동단결을 촉진하였다. 중국의 1~2차 국공합작, 조선의 신간회와 조선독립동맹, 베트남의 인도차이나 반제민족통일전선과 베트남독립동맹 등이 그런 역할을 담당한 대표적인 예다. 넷쩨, 소련 혹은 코민테른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 연결망과 정보망을 갖추게 되면서 제국주의 국가의 사정, 특히 전쟁 중에는 전황을 파악하기가 용이했다.

각기 다른 이념의 기반 위에 자체의 무력을 가진 두 세력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을 형성하면 무장투쟁 역량이 배가될 수 있지만 거꾸로 대립하고 싸울 경우 결정적으로 약화된다. 그래서 통일전선은 민족해방의 승리를 보증하는 가장 긴요한 관건이며 거기에 참여하는 다양한 세력들의 이해와 요구를 타협,조정하는 민주주의 원리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민주주의 없이는 통일전선의 형성도 유지,강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1920년대의 각국 공산당은 흔히 당면한 혁명의 목표를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이라고 규정하곤 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부르주아민주주의의 경험이라곤 거의 없었고 이제 처음부터 배우면서 시작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뿐만 아니라 현실적 필요에 따라 많은 세력들이 각종 유파의 사회주의에 공감하여 이를 수용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아직 산업화 정도가 미약했떤 식민지 농업국의 해방운동을 직접 지도할 수 있는 충분한 이론도 조직역량도 미약했다. 따라서 맑스-레닌주의가 민족해방운동에 대하여 유효한 지도사상으로 작용하기까지는 어떤 형태로든 운동의 경험과 축적이 필요했다. 공산당이 당군의 군사력에 의거해 자신의 지역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중국에서조차 급진좌경의 계급혁명 노선으로는 인민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획득하기 어려웠다. 산업노동자가 빈약한 조건에서 농민대중, 도시 중산층, 지주, 상공업자 등을 규합하여 조직한 통일전선은 그런 의미에서 더욱 중요하고 절실했다. 1930년대 후반에 가서야 중국,베트남,조선의 사회주의자들이 어느정도 그런 역량을 초보적으로 갖춘 것은 그 이전의 뼈아픈 실패의 경험을 지혜롭게 성찰한 결과였다.

이는 소비에트혁명기 공산당의 근거지가 국민정부군의 포위공격으로 붕괴되고 무작정 탈주를 거쳐 북상항일의 대장정으로 활동방향을 조장하는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1934년 10월, 10만명이 루이진을 출발하여 2년 동안 십여개의 산맥과 강을 넘고 건너 1936년 10월까지 최종 목적지 옌안에 도착한 사람은 그 10분의 1도 채 안되는 8000~9000명 정도였다. 도중에 그들은 국민당군의 추격작전에 걸려들어 거의 전멸할 위기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사회주의와 공산당이 프롤레타리아의 이해를 대변하기 때문에 결국 승리한다는 필연적인 이유는 거의 없었다. 이 한줌밖에 안되는 그들이 다시 살아난 것은 민족해방이라는 당면요구에 부응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민족적 대의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앞서 일본제국주의가 중국을 전면 침략하여 그런 기사회생의 기회를 부여해준 덕분이기도 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은 조선에서도 사회주의,공산주의 세력이 분열과 해산을 거듭하면서도 결국 재기하여 존재감을 과시하고 민중의 지지를 얻도록 만들었다. 중국 내에서 활동한 조선독립동맹을 비롯한 여러 세력이 그러했고 만주지역에서 활동한 김일성 일파도 그러했다. 프랑스와 일본제국주의 이중지배하에 있던 베트남의 호치민 세력도 마찬가지였다.

호치민이 후일 "처음에 나를 레닌과 코민테른에 대한 신뢰로 이끈 것은 실로 애국주의였지 공산주의는 아니었다"고 회상하였듯이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은 그를 국제공산주의운동으로 이끌었다. 코민테른의 요원이 된 호치민은 이후에도 일관해서 베트남인의 내셔널리즘과 공산주의를 결합하는 데 노력했다. 그는 내셔널리즘을 기초로 하여 형성되는 공산주의운동은 어디까지나 베트남인의 운동이라는 그 민족적 성격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컨데 제국주의의 침략과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운동이야말로 사회주의 실행의 정치경제적 조건이 결여된 식민지,반식민지에서 사회주의 세력이 등장하고 세력을 넓히게 만드는 원천을 제공하였다. 일본의 사회주의자들이 혁명정당과 의회정당 사이를 동요하면서 겨우 명맥을 유지해 결국 의회정당으로 남게 된 것과 달리 조선,중국,베트남의 사회주의자들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민족해방 세력의 일익을 담당하여 정권을 다투는 세력으로 급성장하였따. 이들을 \'민족해방 사회주의\'라고 불러도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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