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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순서영 상플) 미망인(未亡人) –中

ㅇㄱ(223.62) 2014.10.31 22: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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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인(未亡人) –中






머리, 많이 자랐다. 그새 까만 머리가 나와.


소파 위에 누워서 남순의 만화책을 보던 서영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소파에 등을 기댄 채 바닥에 깔린 전기장판에 앉아 역시 만화 삼매경에 빠져 있던 남순이 서영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누워 있는 서영과 앉아 있는 남순의 눈높이가 맞아 얼굴이 제법 가까웠다. 인지하는 순간, 심장이 멋대로 수축한다.


음… 한 달도 넘었으니까. 까만 머리가 너무 튀어서 다시 염색해야 하나 싶어요.

뿌리 염색?

아뇨, 금발은 탈색해야 해서 그냥 다시 어둡게요.

흐음….


소리도 없이 서영의 손가락이 남순의 머리카락 안으로 들어왔다. 조심스레 머리카락을 넘기며 정리하는 서영의 손길에 남순이 반사적으로 마주한 시선을 내렸다. 만화책을 들고 있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곧 바로 책을 내려 놓았다. 떨리는 손도, 멋대로 움직여 지나치게 큰 제 심장 소리도, 서영에게 들킬까 겁난다. 늘 이렇다. 같이 있는 시간은 너무 따뜻하고 아늑하지만 터지듯 넘치는 마음을 숨겨둘 곳이 마땅치 않아서 조마 조마 하기도 했다. 서영이 눈치챌까 불안하지만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함부로 마음을 드러낼 수 없었다. 이렇게 라도 봐야 그리움에 갈증 난 가슴이 잠잠해 질 테니. 반한 사람은 한없이 약자였다.


처음 만난 이후 서영은 말한 대로 종종 남순의 집에 왔다. 서로 연락처를 알곤 있지만 따로 연락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늘 남순이 집에 있는 시간에 초인종을 눌렀다. 남순이 일하는 시간이 불규칙적인데도 항상 집에 있을 때 들르곤 했다. 오는 시간도 가는 시간도 일정하지 않았다. 일하다 온 듯 오피스룩을 입은 채 초밥을 사 온 날도 있었고, 운동하다 생각나서 왔다며 테니스복 차림인 날도 있었다. 따뜻한 죽이 먹고 싶어 왔다며 새벽같이 들러 남순을 깨워 죽을 먹으러 간 적도 있었다. 처음 만난 날처럼 몸에 착 감기는 드레스를 입고 와인을 들고 와 밤새 퍼 마시다 전기장판 위에 엉켜 쓰러지듯 잠들기도 했다. 눈이 펑펑 내리던 어떤 날은 눈싸움을 하자며 저를 끌고 나가 옷이 다 젖도록 아이처럼 뛰어 다니며 놀기도 했다. 해가 바뀌기 전 크리스마스에는 남순이 친구들과 놀다 집에 들어온 자정이 넘은 시간에 서영이 케이크 상자를 들고 와 아주 유명한 파티쉐가 만든 케이크라며 같이 촛불을 끄고, 케이크를 먹으며 성탄 특선 영화를 보기도 했다. 새해 첫날이 지난 그 다음 날엔 군고구마와 군밤을 사와 동생과의 추억을 잔뜩 이야기하고 갔었다.


그리고 오늘은, 한 손 가득 장을 봐와 남순은 라면 끓이는 일 외엔 쓰지도 않는 주방에서 뚝딱 뚝딱 밥을 해 상을 차려줬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을 받고 남순은 부끄럽게도 서영 앞에서 울먹이다가 결국은 주륵 눈물을 흘렸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따뜻한 밥상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잡곡밥에 김치찌개, 계란찜, 마른 반찬 몇 가지인 단출한 상차림이었지만 남순에게는 어떤 진수성찬과도 바꿀 수 없었다. 너무 행복하고, 반면에 이런 따뜻함을 알아 버려서 앞으로 더 외로워 지겠다는 예감이 치고 올라와 당황하는 서영 앞에서 괜찮은 척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래도 간신히 눈물을 멈출 수 있었던 건, 같이 하는 시간만큼은 서영과 자신에게만 집중하자고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행복이 얼마나 지속될 지 모르지만 괜한 걱정에 아까운 시간을 헛되이 흘려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일상에 스며든 서영과의 시간이 한없이 소중한 기억으로, 눈처럼 차곡차곡 자리 잡으며 겨울의 한가운데 들어섰다. 해가 바뀌어 한 살 더 먹은 남순은, 기억이 쌓일수록 가슴 벅차고 그만큼 초조했다. 가능한 일이라면 서영의 시계는 아주 천천히 흐르고 자신은 아주 빨리 흘러서 제가 서영보다 두 배는 빨리 나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가능하다면 둘 만 있는 시간이 흐르지 않고 멈췄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만화책 속에서나 가능한 판타지 같은 소망이라는 생각에 늘 뒤끝이 슬픈 바람이지만.


같이…

응?

아, 아니에요. 귤 더 갖다 줄까요?

그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너무 포근해 하마터면 실언을 할 뻔했다. 같이 미용실에 가자고. 서로 입밖에 내뱉진 않았지만, 눈싸움을 했던 오피스텔 옥상처럼 가까운 곳에서 해결이 가능한 일이나 식사 시간을 비켜간 시간에 식당에 가는 일 외엔 함께 외출하지 않았다. 두 사람 다 대부분 집에서 뭐든 해결하는 성향이기도 했지만 그 것과는 별개로 타인에게 노출되기를 꺼렸다. 모르긴 몰라도 서영은 위너스의 임원급은 되는 지위로 보였고, 남순 역시 밖에 나가면 간혹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말없는 배려였다. 서영은 서영대로 남순은 남순대로 서로를 지키려는 마지노선이었다. 당연한 규칙처럼 여겼지만 남순은 그 경계를 느낄 때 마다 가슴이 휑하니 허전해졌다. 어차피 드러내지 못하면서 둘이서는 마음껏 밖을 다니지 못한다는 사실에, 제 마음은 불륜처럼 금기 시 돼야 한다는 억울함에, 울컥, 무언가 치고 올라오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패륜처럼 여겨지는 뜻 없는 죄의식은, 서영이 곁에 있는 내내 가라앉지 않는 아슬아슬한 열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았다.


서영은 남순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럼없었다. 남동생이 있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열 살이라는 나이차가 더 그렇게 여기게 만드는 것 같았다. 처음 제 이마에 가볍게 하던 입맞춤부터 그랬다. 지금처럼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이야기 하는 도중 가볍게 저를 치기도 하고 팔이나 어깨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잡기도 했다. 어떤 날은 서로의 등을 맞대고 기대 앉아서, 또 어느 날은 제 무릎에 머리를 올려 놓고, 책을 보기도 했고 영화를 보기도 했다. 눈싸움 했던 날은 씻고 나서 자신의 머리를 말리곤 부드러운 손길로 남순의 머리까지 직접 말려주기도 했다. 좋았다. 너무 좋아서 문제였다. 불쑥 불쑥 한 곳으로 치닫는 열기를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마음이 가면 몸이 가는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거고 남자라면 의례 당연한 일이었지만, 일방통행인 마음으로 저 혼자 상대를 의식해서 제 몸하나 주체 못하는 건 여간 꼴사나운 일이 아니었다. 서영이 가고 나면 혼자 뒤처리를 해야 하는 것도, 다 큰 녀석이 욕망 하나 주체 못하고 꿈 속의 서영을 상대로 몽정을 치르는 것도 괴로웠다. 이 열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겁도 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영을 안 보는 건 더 힘겨웠다.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 시한부 만남이었다. 겨울이 지나면 눈이 녹아 사라지는 것처럼 내일 당장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언젠가는 그렇게 사라질 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프도록 달아오른 몸을 추스르는 일이 끝없는 제 치기에 열패감을 불러 일으켜도 서영을 막을 수 없었다. 막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예감했던 끝은, 생각보다 빨랐다.






그 날은 수하를 보러 갔던 날이었다. 성무 패션 광고 모델인 수하의 촬영을 구경할 겸, 성무의 직원이라는 여자친구를 소개해준다고 해 별 생각 없이 갔다가 뜻밖에 서영을 보았다.


어, 서영 언니! 여기!!


촬영이 끝나고 옮긴 카페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서영을 보고 놀란 것도 잠시, 그녀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부터 남순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 버렸다.


수하야, 여기 위너스 어패럴 사장님, 이서영. 여긴 수하 친구, 고남순.


수하와 그 여친, 그리고 서영까지 서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무슨 얘기를 건넸는지 모르겠다. 언뜻 스친 서영의 표정이 아주 잠시 동요한다고 생각했지만 찰나에 잘못 본지도 몰랐다. 서영은 저처럼 흔들리지 않고 위너스 어패럴의 대표였고, 성무 패션 마케팅 실장 장혜성의 지인으로 앉아 있었다. 저와 함께 있을 때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이 아닌 낯선 무표정의 타인이었다. 수하의 어디 아프냐는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자리를 벗어나 집에 도착했을 때, 남순은 꽉 막혀있던 숨을 토해내듯 내뱉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생각해야 했다.


몰랐다고는 할 수 없다. 아무리 타인에게 무관심한 자신이지만 서영에게까지 무관심할 순 없었으니까. 서영은 트레이닝 복조차 남달랐다. 남순의 직업이 모델인 이상 그녀가 걸치고 두른 것들이 얼마나 고가의 제품인지 알 수 밖에 없었다. 간간히 제 옆에서 통화하는 내용을 들으면 비서가 따로 있을 정도로 직급이 높은 사람이었고, 타고 다니는 차부터 언뜻 보았던 운전 기사, 그리고 자신에게 올 때는 떼놓고 오는 것 같았던 경호원까지, 어렴풋이 짐작은 했었다. 알게 되면 자신과의 만남이 지속될 수 없다는 예감에 묻지도 않았고 서영 역시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떠오른 서영과 처음 만났던 날 들었던 떠도는 이야기들. 그 날 그 파티의 주인은 다름아닌 서영이었다.


낯짝도 두꺼워, 강회장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초호화 파티람.

제 아버지뻘 되는 남편으로 어디 만족스러웠겠어? 병치레에 부부관계도 못했을 거고,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썩힐 몸인가 어디.

강회장만 호구였던 거지. 결혼 5년 만에 병 얻어 죽고 자식도 없으니 이변호사한테 재산은 전부 상속되고. 죽 쒀서 개준다는 말이 괜히 있어?

변변찮은 변호사가 대기업 고문 변호하다 로또 맞은 거지 뭐. 위너스 그룹도 이제 다 된 거 아냐? 경영의 기억자도 모르는 저런 초짜가 지분은 죄다 갖고 있으니. 곧 경영권 행사하려고 보란 듯이 여는 파티겠지. 위너스 어패럴 대표 취임한다던데? 아주 알짜만 알아 보는 거 보니 눈은 있어.


남편 잘 만나 팔자 고친 위너스의 미망인, 그녀가 바로 이서영이었다. 현기증이 핑- 돌았다. 집 안을 서성이다 주저 앉아 주의를 둘러보고 온 몸을 떨며 울어 버렸다. 자신의 집에서 같이 보낸 시간이 적지 않은데, 함께 한 공간이라곤 자신이 집이 거의 전부였는데, 서영의 흔적은 없었다. 그저 손님처럼 머물다 갔을 뿐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둘의 관계의 끝을 알고 있었다. 지난 두 달 남짓, 혹독한 추위에 잠시 머물 따뜻한 곳이 필요했을 지 모른다. 그리고 미련이나 흔적 없이 떠나야 할 곳이어야 했을 거다.


배신감이 들 만큼 평등한 관계도 아니었다.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던 자신의 위치에서 남순은 그저 기다려야 했으니까. 재벌가의 미망인이라는 것도,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도 남순에겐 그다지 큰 일이 아니었다. 서영이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과거 그녀의 선택은 남순이 관여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들은 남순과 서영이 이뤄 질 수 없는 조건이 되기에 충분했다. 멍청한 모델과 대기업의 지분을 가장 많이 상속 받은 젊고 유능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자신 보다 열 살 연상의 여인. 남순은 그 사실이 가장 괴로웠다. 둘이 함께할 수 없는 이유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 전에, 이제 서영은 더 이상 자신을 찾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 건, 차라리 공포였다.


남순의 예감대로 서영은 발 길을 끊었다. 일주일 한 두 번, 많게는 서너 번씩 오던 서영이 오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앓아 누워 꼬박 삼 일을 자리보전하던 남순은 한밤중에 걸려온 수하의 전화를 받고 정신을 차렸다.


- 왜 이렇게 연락이 안돼?

- …아팠어.

- 그래? 그 날 너 넋 놓고 가길래 걱정했는데 몸살이라도 걸린 거냐?

- 이제 괜찮아.


시답잖은 소리에 머리가 울려 대충 전화를 끊으려다가, 생각 나는게 있어 수하에게 물었다.


- 너 지금 만나는 여자 연상이랬지? 몇 살 위라고 했냐?

- 하여간 기억력하곤. 여덟 살 위야. 갑자기 왜?

- 여덟 살…. 어떻게 잡았냐?

- 흐음…. 너 여자 생겼냐? 연상?

- …응.

- 상사병이었구만.

- 헛소리 말고.

- 그냥 들이댔어. 솔직하게, 최선을 다해서.

- 솔직하게… 최선을 다해서…?

- 그래, 임마. 안되는 머리 굴리지 말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해. 그게 정답이야.


전화를 끊고 남순은 마음 굳혔다. 아직 자신은 아무 것도 한 게 없었다. 적어도 후회하지 않으려면 수하의 말대로 최선을 다해볼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보지 못할 거면 고백이나 해보고 차이는 게 미련은 없을 거다. 저장된 서영의 번호를 뚫어지게 바라보다 전화를 걸었다.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연락해본 적 없어서 그런 건지, 며칠을 앓아 누워 그런 건지, 심장이 요동쳐서 그런 건지, 핸드폰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받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끊기겠구나 할 정도로 한참을 울린 신호음이 멈췄다.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한게 무색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서영 역시 전화를 받아 놓고 한참 말이 없었다. 무거운 침묵을 버티다 남순이 겨우 말을 건넸다.


- …나에요, 고남순.

- 응.

- 나 좀 만나 줄 수 있어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 ……지금, 문 앞이야.

- 문 앞? 우리 집이요?

- 응.


달달 손을 떨던게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용수철 튕기듯 침대에서 일어난 남순이 달리듯 나가 문을 열었다. 한파에 얇은 코트 하나만 입은 서영이 문 앞에 서서 떨고 있었다. 처음 만난 날처럼 생각도 말도 아닌 행동이 먼저였다. 눈 앞에 보이는 서영이 신기루일까 싶어 보자마자 팔을 끌어 당겨 품 안에 가둬 버렸다. 뒤늦게 문이 닫히고 잠금 장치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 경직된 서영을 끌어 안고 며칠 째 씻지도 못하고 식은땀을 흘린 제게 불쾌한 냄새가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그런 걸 배려할 겨를은 없었다. 품 안에서 차갑게 날라든 체취에 내린 줄 알았던 열이 확 치솟았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닿은 손끝을 시작으로 부르르 전신이 떨렸다. 말없이 안겨있던 서영이 움츠리며 떨어지려 하자 다급하게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가, 가만히…. 잠시만, 조금만 더요.

남순아….

나 많이 아팠어요. 당신이 안오는 동안 너무 아파서 내내 앓다가 좀 전에야 정신차렸어요. 그러니까 잠시만요. 조금만 더.

…….

…마주 보고 말하고 싶은데, 엄청 떨려서… 그냥 얘기할게요. …알죠? 내 마음. 알고 있었죠? 나는 단순해서 당신처럼 똑똑한 사람은 눈치채고 있었을 거에요. 그죠?

…….

보고 싶었어요. 다시는 못 볼 거 같아 너무 힘들었어요. 안되는 이유 많다는 거 알아요. 이럴까 봐, 알게 되면 찾지 않을까 봐 아무 것도 못 물어 봤어요. 저 위에 있는 당신한테 나는 너무 어리고 모자란 상대라는 것도 알아요. 그러니까 영원히 곁에 있어달라는 욕심 같은 거 안부릴게요. 내 마음 받아주지 않아도 돼요. 그치만 당신한테 소중한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만, 그 때까지만 내 옆에 있어줘요. 당신은 나랑 다른 마음인 것도 알고, 말도 안되는 것도 아는데, 이제껏 그랬던 거처럼 아주 조금씩만 나한테 시간을 내줘요.


차마 좋아한다, 사랑한다, 이런 말은 꺼낼 수 없었다. 입에서 꺼내고 나면 제 마음이 산산조각 나 그대로 서영의 발 밑으로 흩어져 버릴 거 같았다. 그래서 남순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언어들로 서영을 붙잡았다. 최선을 다해서.


남순아….

그, 그러겠다고 해줘요.


속사포처럼 붙잡은 말들 뒤로 나온 목소리는 제가 듣기에도 처참하게 떨고 있었다. 어느새 가만히 제 팔을 잡아 내리는 서영의 손을 피할 수도 없어 결국엔 눈을 마주 했다. 서영의 눈빛이 젖은 채 흔들렸다. 마치 처음 본 그날처럼. 왜 당신이 더 슬픈 얼굴일까. 어째서 이렇게 울듯한 얼굴을 하고도 울지 않는 걸까.


울지마, 남순아.


조용히 내뱉은 서영의 말을 듣고야 우는 사람은 저라는 걸 알았다. 차가운 손이 올라와 뜨거운 눈물을 닦아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 얼굴 위에 있는 서영을 손을 포개 잡으며 재차 애원했다.


옆에 있을 거죠?

…아니. 그럴 수 없어.

왜….


안된다는 말에 흐르던 눈물 위로 또 다시 와락,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겉잡을 수 없이 흐른 눈물 때문에 말을 잇지 못했다.


너처럼 반짝이는 아이 옆에 있기에 나는 너무 탁해. 들었지? 내가 누구랑 결혼했는지? 죽은 남편 덕에 제대로 팔자 고친 것도?

그게… 그건… 아, 아무… 흡… 아무 상관 없… 윽….

상관없지 않아. 네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내가 너무 넘쳐서 옆에 있으면 안돼. 내 옆에 있으면 너도 같이 휩쓸려 더러워 질 거야. 그러니까 나 같은 여자한테 마음주지 마. 나 때문에 아프지도 마. 나한테 미련 갖지도 마. 이전처럼, 몰랐던 때처럼 그렇게 지내. 예쁜 금발처럼 눈부시게.

무, 무슨 말…. 이, 이해할 수 없… 으윽…. 억….


세차게 고개를 휘저으며 서영의 팔을 붙잡았지만 소용없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들 사이로 분수처럼 터져 나온 눈물 때문에 서영의 얼굴이 가물거렸다.


오늘은 마지막 인사하러 온 거야. …따뜻한 겨울을 선물해줘서 고마웠어.

가, 가지마요…. 가면 안…….


꽉 잡은 팔을 떼어내는 서영의 손길이 단호했다. 손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서 더 붙잡을 수도 없었다. 왜 이렇게 힘이 빠진 걸까. 낮고 조용하지만 정확한 음성으로 전한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닫힌 문밖으로 서영이 사라졌다.


안녕.


제대로 된 고백도 아니었건만, 간신히 꺼낸 마음이 결국엔 산산조각 나 바닥으로 흩어져버렸다.
























남수나...ㅠㅠ


다음 편은 모레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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