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화 보기]
공소관의 일기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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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나... 과거사 썰을 풀다가보니 너무 길어진다. 과거사를 빨리 끝내야 현재 이야기랑 밸런스가 맞는데... 1장부터 대위기네. 사실 1장에서 과거사 끝내려고 했는데 썰을 풀다보니 2장 분량이 되어버렸다. 못난 글쟁이 놈을 탓해줘.
아무튼 이번 편은 오리지널 캐릭터 과거사 위주로 진행될테니... 노잼일지도 모르겠다. ㅠㅠ
그러면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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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리드는 왕궁의 집사장 카이의 딸이었다. 당시 국왕의 배려로 왕궁 가까이에 집이 있기는 했지만, 가끔 있는 휴가를 제외하고는 늘 왕궁에 머무르며 왕실 사람들을 보좌해야 했던 집사장의 직업 특성상 카이가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잘 없었다. 하지만 잉리드가 어렸을 때까지만해도 아렌델 왕궁은 '열린 왕궁' 정책을 표방하고 있었고, 어린 잉리드는 아버지가 보고 싶어질 때면 어머니와 함께 왕궁 한켠에 마련된 고용인용 응접실에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잉리드가 8살이 되던 해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잉리드가 8살이 되던 해, 아렌델 국왕 아크다르는 갑자기 열린 왕궁 정책의 중단을 선언했다. 겉으로 드러난 바로는 어디까지나 '폐지'가 아닌 '중단'이었기에 언제라도 왕궁을 다시 열 수 있다는 것이 아렌델 왕실의 공식 입장이었으나, 그 날짜가 정해지지 않았기에 왕궁의 문이 다시 열릴 때까지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왕궁 소속 고용인들의 수가 축소되었고, 남은 고용인들의 가족 면회도 엄격히 제한되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였던 잉리드는 어려운 정치 이야기는 잘 몰랐지만, 아버지와 자주 만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전에는 아빠가 보고 싶다고 엄마에게 칭얼대면 만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 해에 잉리드가 아버지를 만난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한 달에 한 번 보는 것은 자주 보는 것이었고, 한 번은 거의 반년 가까이 아버지를 보지 못한 적도 있었다. 왕궁에서는 수시로 아버지의 편지가 전해졌지만, 잉리드는 아버지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아직 부모 양쪽 모두의 사랑을 고루 받아야할 나이였던 잉리드에게 아버지와의 생이별은 너무도 힘들었다. 잉리드가 아버지와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2년 후, 잉리드가 10살이 되던 해였다.
잉리드가 10살이 되던 해 여름날 밤, 국왕 아크다르는 카이를 자신의 집무실로 불렀다. 집사장이 사실상의 국왕 비서로서의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늦은 밤에 부르는 일은 좀처럼 없었기에 카이는 다소 의아해하며 국왕 앞으로 나아갔다. 카이의 인사를 받은 국왕이 꺼낸 말은 다소 뜬금없는 것이었다.
"카이 집사장에게... 딸이 한 명 있다고 했나?"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여러 해동안 왕궁에서 집사로 일한 카이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는 기색으로 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잉리드라 합니다."
국왕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 아이 생일이 엘사와 같았던걸로 아는데."
카이가 답했다.
"정확히는 엘사 공주님이 하루 빠르십니다. 엘사 공주님이 태어나신 밤이 지난 새벽에 나온 아이니까요."
"그 날 집사장은 종일 왕궁에 있었지?"
"말씀대로이십니다. 딸이 태어나는 것도 지켜보지 못한 못난 아비지요."
국왕이 이렇게 집사장의 가정사를 꿰뚫고 있는 건 카이가 늘 국왕을 가까이에서 모시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잉리드가 태어난 날 때문이기도 했다. 국왕 부부의 첫 아이, 엘사 공주가 태어나고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잉리드가 태어났다. 잉리드로서는 다소 운이 없었던 일인데, 아렌델 왕실은 왕위 계승 법칙으로 절대적 맏이 상속법*을 택하고 있었으므로 엘사의 탄생은 곧 뒷날 여왕이 될 공주가 태어났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왕국 전체가 공주의 탄생을 축하했고, 그 때문에 왕궁 전체가 한동안 바빴기에 카이는 딸이 태어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다. 며칠 뒤에야 뒤늦게 그 소식을 들은 국왕이 카이를 위로하고 또 축하하는 의미에서 휴가령과 함께 선물을 내리기는 했다. 딸 아이가 태어났음에도 카이가 왕궁에 속한 사람으로서 왕실의 일을 저버리고 갈 수는 없다고 하자 국왕이 "내 딸은 그대 아니라도 볼 사람 많지만 그대의 딸은 그대 아니면 봐 줄 사람이 없지 않은가"라며 덧붙여 "또 다시 휴가령을 거부하면 다음 번에는 국새가 찍힌 왕명으로 휴가를 보내버리겠다"라는 엄포까지 놓았던지라, 두 사람 모두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일이 있었던지라, 원래 아렌델 왕실 법도대로라면 당시 막 집사장이 되었던 카이가 왕위 계승 1순위인 엘사 공주의 보좌를 함께 맡아야했지만, 하우스키퍼였던 겔다가 대신 엘사 공주의 보좌를 맡게 되었고 카이는 3년 후 태어난 둘째 공주 안나의 보좌를 맡게 되었다.
"그, 다하지 못한 아비로서의 도리 이야기인데 말이야."
국왕이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이 교육으로 다 해볼 생각은 없나?"
"예?"
카이가 의아한듯 되물었다. 돌려서 말하는 건 안되겠다 싶었는지, 국왕은 직설적으로 자신의 뜻을 전했다.
"잉리드가 왕궁에서 교육을 받게 할 생각이 없냐고 묻고 있는걸세."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카이가 고개를 숙이고 다시 한 번 의문을 표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제안을 하고 있는 상대는 아렌델의 국왕이다. 그리고 카이는 집사장이라고 해도 왕족보다는 한참 지위가 낮은 평민이었다. 그런데 평민의 아이가 왕궁에 들어와서 교육을 받는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엘사의 교육 문제로 왕궁 문을 닫고 엘사를 사람들과 떨어트려 놓은 것까지는 좋았지만... 안나가 너무 외로워하고 있어."
"그건 그렇습니다. 어제는 여름날인데도 엘사 공주님의 방문을 두드리면서 눈사람을 만들러 가자고 하시더군요."
그 말을 들은 국왕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가 이내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래. 엘사도 걱정이지만, 그보다도 안나가 제대로 크지 못할까봐 걱정이네. 겉으로는 활달한 척을 하고 있지만, 자꾸 엘사한테 다가가려는 걸 보면 속마음은 어떨지..."
"자매들을 떨어트려놓고 키우는 것이 정서에 좋지 않다는 것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카이가 답했다. 2년 전에 국왕이 취한 행동은 열린 왕궁 정책의 중단뿐만이 아니었다. 왕궁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방을 쓰던 엘사 공주와 안나 공주를 서로 다른 방에 떼어놓았고, 두 자매가 서로 만나는 일이 없도록 하는 통제도 함께 이루어졌다. 신하들 모두가 반대했지만, 평소에는 신하들 의견을 귀담아듣던 국왕이 유독 이 문제에 관해서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신하들은 이 말도 안되는 조치를 철회시키기 위해 두 자매의 어머니인 이둔 왕비에게 기대를 걸어보았지만, 왕비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결국 신하들의 반대를 뚫고 두 자매는 갑작스럽게 떨어져 자라게 되었고, 그것이 올해로 2년째였다. 언니인 엘사는 그런대로 국왕의 조치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동생인 안나는 그렇지 못해 하루가 멀다하고 엘사의 방을 찾아가 방문을 두드리며 놀자고 조르곤 했다.
"엘사 공주님이 안나 공주님을 거부하고 계시니, 안나 공주님께 있어서는 더더욱 말이죠."
왕궁의 고용인들이 놀란 것은 엘사의 반응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국왕 몰래 방을 빠져나와 안나와 함께 뛰어 놀았을 엘사인데, 어찌된 일인지 방을 따로 쓰게 된 이후에는 안나가 아무리 방문을 두드려도 문을 열어주는 일이 없었다. 다소 과격할지 몰라도 '거부한다'라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였다. 안나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은 카이로서는 안나의 정서교육이 신경쓰이지 않을리 없었다.
"그래서 자네의 딸을 왕궁에서 교육받도록 하겠다는 거네."
국왕이 이야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엘사는 강한 아이야. 조금 힘들긴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혼자서도 버틸 수 있을거야. 하지만 안나에게는 곁에 있어줄 사람이 필요해. 그렇지만 나나 왕비로는 한계가 있어. 엘사와 비슷한 나이의, 안나와 이야기를 해줄 아이가 필요하네. 필요한 모든 교육은 다 시켜주겠네. 그러니, 그 때만이라도 안나와 함께 있도록 해줄 수 없겠나?"
카이는 고개를 들어 국왕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로서는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왕궁 집사장의 딸이라고 해도 결국은 평민, 받을 수 있는 교육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국왕은 잉리드가 평민으로서는 받을 수 없는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제안하고 있는 것이었다. 국왕에게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카이는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국왕은 자기 신하의 딸을 정치적 의도로 사용할 정도의 성품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고, 눈빛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마음 속으로 결론을 내린 카이는 자신의 뜻을 전했다.
"하오나 폐하, 체스판의 말에게도 제자리가 있는 법입니다. 안나 공주님이 외로워하시는 것이 문제라고 하신다면, 차라리 예전처럼 엘사 공주님과 한 방을 쓰도록 하시는 것이 어떨는지요? 제 딸아이를 데려오는 것보다는 그 편이 안나 공주님께도..."
"그건 안 되네."
국왕이 카이의 말을 잘랐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건 내가 양보할 수 없어. 엘사가 안나에게 가까이 가서는 안 되고, 안나도 엘사에게 가까이 가서는 안 돼.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만은 안 되네. 두 아이를 위해서야. 어쩔 수가 없네."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국왕을 보고, 카이는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국왕의 뜻을 꺾기 힘들 것 같았다.
"정 폐하의 뜻이 그러시다면, 내일 집에 연락을 넣도록 하겠습니다."
"괜찮겠나? 자네는 별로 내키지 않아하는 것 같은데, 억지로 할 필요는 없네. 다른 사람의 딸을 데려올 수도 있으니까."
"아니요, 감히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을 정도로 감사하신 말씀입니다. 자식에게 더 좋은 교육을 시켜주신다는데 마다할 아비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딸아이도 분명히 좋아할겁니다. 다만..."
"다만?"
카이는 천장을 한 번 바라보고 말을 끝마쳤다.
"안나 공주님의 보좌로서, 가장 공주님께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 것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폐하를 불편하게 해드렸다면, 정말로 죄송합니다."
카이가 국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 국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니야. 그렇게까지 안나를 생각해주니 오히려 내가 고맙네. 하지만 엘사와 안나가 다시 한 방을 쓰는 것을 나는 허락할 수 없네. 자네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주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가 주제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글쎄, 괜찮다니까. 그러면 받아들인 걸로 알겠네. 이만 가보게."
"예, 폐하."
카이가 뒷걸음질로 물러나와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카이가 막 나가려는 찰나, 국왕이 카이를 불러세웠다.
"아, 잠깐만."
"예, 폐하."
"이것 하나만 약속해 줄 수 있겠나?"
"말씀하십시오."
카이가 다시 몸을 돌려 고개를 숙였다.
"왕궁에 들어와있는 동안 자네의 딸이 왕궁에서 어디를 가든지 그것을 금하지는 않겠네만, 엘사의 방에 가서는 안 되네. 절대로, 절대로 그 아이가 엘사와 어울리는 일은 없어야 할거야. 이것 하나만은 지킨다고 약속해주게."
그 말에 카이는 즉시 대답했다.
"그 말씀 받들겠습니다."
-공소관의 일기 제1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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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상식
절대적 맏이 상속법 : 왕위 계승의 법칙에서 아들, 딸 구분 없이 무조건 먼저 태어난 자녀나 형제에게 군주의 계승권을 주는 법칙. 현실에서 이를 최초로 도입한 것은 1980년 스웨덴 왕실이다. 이후 1983년 네덜란드, 1990년 노르웨이, 1991년 벨기에, 2009년 덴마크, 2011년 룩셈부르크가 절대적 맏이 상속법으로 전환하였다. 현재 아들 우선 상속법을 채택하고 있는 영국 왕실도 곧 절대적 맏이 상속법으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다만 절대적 맏이 상속법으로 전환하더라도 영국 왕실의 왕위 계승권자는 현재 찰스 왕세자, 윌리엄 왕세손, 조지 왕세증손에 이르기까지 모두 아들이므로 엘리자베스 2세 이후로 여왕을 보기는 매우 힘들듯. 재미있는 사실은 스칸디나비아반도 3국 모두 이 법을 택하고 있고, 차례로 여왕 시대가 예고되어 있다는 점. 덴마크는 현재 국왕이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이며, 스웨덴은 현재 왕위 계승 1순위가 빅토리아 왕세녀. 바로 이 분을 위해서 스웨덴이 1980년에 왕위 계승법을 뜯어고친 것이 최초의 절대적 맏이 상속법 되시겠다. 그리고 아렌델의 모델이 된 노르웨이의 경우는 호콘 왕세자의 첫 아이가 딸 잉리드 알렉산드라 공주라서 다다음 대에서 여왕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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