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그가 소환했던 폭풍의 심장을 가진 닌자는, 적진 한가운데 번개를 내리꽂으며 언제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었다.
그는 언제나 소환사의 협곡 가장 높은 곳에서 아군을 지휘하는 선봉장이었으며, 누구보다 찬란한, 전장의 신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변혁이, 그를 마리아나 해구 끝까지 추락시키고 있었다.
장건웅은 대한민국 최강급 탑솔러였다. 2012년의 롤챔스, 스프링 시즌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최윤섭의 팀 탈퇴, 포지션 변경. 신흥 원딜러들의 등장.
건웅은 더 이상 최고의 롤 플레이어가 아닌, 나쁘게 말해 팀의 구멍이었다.
아주부 롤챔스 서머 시즌 8강, 프로스트는 바다를 건너 온 푸른 눈의 강호, CLG.NA를 만나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 2:0의 낙승을 거두고 4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봇 라인에서의 더블리프트와 건웅은 누가 봐도 실력차이가 분명히 났고, CS는 물론이고 위치선정이나 모든 면에서 그러했다.
두 경기 모두, 봇에서의 실력차를 민성이 캐리하면서 극복한 양상이었다.
그 날도 마찬가지로, 건웅은 침대에 엎드려 몇 시간 전 했던 경기들을 곱씹고 있었다. 몇 번이고 찾아왔던 패배의 위기. 거의가 본인 때문이었다.
원딜러 포지션은 건웅 스스로가 생각했던 것처럼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자책에 빠져 있던 건웅에게 현우가 찾아왔다.
"...왜?"
"웅아, 많이 힘드냐?"
"아냐. 그래도 민기가 어느정도 받쳐 줘서 아직은 할만해."
"다음주는 형우랑 하잖아. 어차피 한규 때문에 라인 스왑도 안 통할텐데. 괜찮겠어?"
"이즈 같은 거 하면 되지. 동진이만 픽밴에서 거르면 돼."
"민기를 소라카나 룰루 위주로 시키면 좀 할만하지 않을까?"
"괜찮다니까. 상대할 수 있어."
"차라리 내가 리신 같은 걸 할까? 그러면 조금.."
"괜찮다고!!"
주먹이 두려워서인지, 팀원들에게는 아니라도 자신에게는 항상 조심스러웠던 건웅이었기에,
그가 소리치자 현우는 조금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너.."
"..그만해, 제발. 나도 알아. 내가 제일 구멍이라는 거. 근데 어쩔 수 없잖아. 윤섭이도 없고. 그렇다고 상면이를 시켜? 형이 할 거야? 민성이를 시킬까? 아니잖아. 내가 해야만 하는거잖아."
"..."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줘. 아직 민기랑 조금 안 맞는건 인정해. 근데, 나 롤 못하는 거 아냐. 형도 알잖아. 케넨. 나 그때만큼 할수 있어. 조금 시간이 필요할 뿐이야. 시간이.."
"...알았다."
"...나 좀 쉴게. 스크림 하면 불러."
다시 홱 돌아눕는 건웅에게 뭐라도 하고 싶었지만, 처음으로 본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그의 얼굴을 보곤 현우는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머 시즌 프로스트는 결국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 해 여름의 타는 듯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프로스트는 승승장구했다.
민성은 세계 최고의 미드라이너가 되었고, 현우는 초식형 정글러라는 새로운 메타를 창조해냈으며, 민기는 신이 되었다. 게다가 팀에 늦게 합류한 상면까지 안정적으로 제 자리를 찾아갔다.
하지만, 건웅은 그렇지 못했다. 거의 모든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건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날로 늘어났고 심지어는 방출을 종용하는 글까지 올라왔다.
비슷한 시기에, 강간.. 아니 강 감독의 방에 건웅이 찾아왔다.
"감독님."
"무슨 일이야? 방까지 찾아오고. 윤성이한테 사과라도 하려고?"
"...저 그만두고 싶습니다."
"...?"
강간.. 아니 강 감독이 예상치 못한 건웅의 발언이었다.
"지금 저는 팀에 방해만 되는 인물이란거 잘 알고 있습니다. 원딜은 또 저랑 별로 맞지도 않는 것 같구요. 차라리 계약도 끝난 윤섭이를 다시 데려다가 쓰세요. 민기도 그걸 원하고 있을 겁니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라."
"...네?"
"장건웅, 넌 팀의 주장이야. 지금 당장의 기량을 떠나서, 프로스트는 네가 이끌어 나가야 한다. 한규도 나간다고 하는 마당에, 너라도 있어야 팀이 자리를 잡지 않겠냐."
"그래도.."
"아직 팀원들은 니가 필요하다. 특히 현우가 그럴 거야. 민기도, 민성이도. 다 너만 바라보고 지금까지 온 아이들인거, 잘 알잖아? 상면이도 네 플레이를 보고 들어온거고."
"..."
"윈터 시즌까지만, 그때까지만 팀에 남아라. 그 이후에는 너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도 막지 않을 테니."
"...네."
건웅은 항상 팀을 승리로 이끌고 싶었다. 하지만, 익듁하지 않은 원딜러란 자리는 그의 뜻대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것을 매번 훼방놓았다.
그래서, 건웅은 롤드컵에서 이길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기로 마음먹었다. 초반 우세를 얻기 위해, 잠시 스크린을 보는 행동도 서슴치 않았다. 그 자신은 악역에 익듁해 있었기 때문에.
현우의 욕설 파문도 자신이 몸을 던져 새로운 요소를 만듦으로써 진화했다. 해외의 모든 팬들이 건웅을 비난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오직 승리를 위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롤드컵 결승에서 프로스트는 바다건너 날아온 섬짱깨 망고맨들에게 무너져 준우승에 머무르고 말았다.
아주부의 프론트에서는 새 시즌을 맞아, 새로운 선수들을 물색중이었다. 블레이즈의 탑솔러였던 한규가 팀을 떠나고, 신규 멤버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최근 부진한 건웅의 이야기도 거론되었다. 윤섭을 다시 데려오자는 의견이 점점 득세할 참이었다.
그 무렵, 아주부의 이스포츠 팀을 총괄하는 상무이사실에서는 한창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건웅이는 안 됩니다!"
상무이사 앞에서, 건웅을 변호하고 있는 이는 현우였다.
"건웅이는 MIG 시절부터 프로스트를 이끌어 왔던 주장입니다. 물론, 포지션 변경 후 요즘 실력이 안 나오고 있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프로스트의 전략 대부분은 건웅이가 짜고, 실제로도 주효합니다. 건웅이가 없었으면, 준우승도 없었을 겁니다."
"왜 그러나, 현우군. 잘 알면서. 당장에 이 판은 실력이 부족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야. 게임을 잘 모르는 사장님부터도 그 중국인 닮은 애는 짤라야 하지 않겠나, 라고 하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해?"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윈터 시즌이 남아 있습니다. 이번 시즌까지만, 제발 부탁드립니다."
"...일단 나가봐."
"부탁드리겠습니다."
"..."
꽤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상무이사는 고민 끝에 숙소로 전화를 걸어, 건웅을 방으로 불렀다.
"네, 상무이사님."
"음, 사실대로 말해주고 싶은 게 있어서 불렀네."
"...?"
"사실 이번 윈터시즌 전에, 상부에서 자네를 별로 안 좋게 봤어. 자네도 대충은 알고 있을거야. 그치?"
"...네."
"근데, 자네 팀원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야. 현우인가 하는 그 친구는 직접 나한테까지 찾아오기도 했어. 자네가 없으면 팀은 없다면서."
"..."
"그래서 나도 한번만 더 자넬 믿어보기로 했네. 마지막 기회야. 잘 해보자고."
건웅은 방에 돌아와 생각했다. 현우, 민성, 민기, 상면까지. 당장에 부족했던 나를 이끌고, 서머 시즌 우승, 롤드컵 준우승까지 올랐던 뛰어난 선수들이다.
실력이 이렇게 된 지금, 나는 그들의 짐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날 원하고 있다.
건웅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추락하는 자에게는 날개가 없다 했던가. 나는 이카루스처럼 태양을 한해 무한히 날고 있던 세계 최강의 탑솔러였다.
하지만, 어느샌가 날개는 녹아 바스라지고, 다른 인간들과 같이 하늘을 바라보기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내 앞에 태산이 나타났다. 예전처럼 다시 날개가 돋아나 태산을 날아 넘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산을 부수어 흩어놓고, 나의 길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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