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윈터 시즌, 다시 건웅은 프로스트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12강 풀리그에서, 건웅은 여러가지 전략들을 시험하며 변화된 시즌3의 메타에 빠르게 적응했고,
이전과는 다르게 라인전에서도 준수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그가 창조한 원딜탱이라는 메타는 LOL계를 뒤집는 혁명과도 같았다.
장건웅은 이제 롤 커뮤니티에서 매번 재평가되기 시작했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를 '건웅갓' 이라 칭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그가 다시 탑솔러의 영광을 얻을 때처럼, 원딜러의 최정점을 찍은 것은 아닐지라도, 프로스트에서 건웅은 확실히 제 몫을 하는 사람이었고 그가 팀의 중심임은 확실했다.
다시 한번 프로스트는 전성기를 맞은 듯 했다. 윈터 시즌 결승까지만 해도 그랬다.
윈터 시즌 결승에서, 건웅은 이전과는 달리 힘을 쓰지 못했다.
나진 소드는 건웅의 좁은 챔프폭을 찔러, 미스 포춘과 블리츠크랭크를 연이어 밴했고 종인이 연이어 게임을 캐리했다.
1경기는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그리고 2경기에서 거의 다 역전한 경기를 패배하는 등 프로스트는 이전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3경기의 픽밴, 현우는 의도치 않게 먹은 짜장 두 그릇이 상했는지 배가 살살 아파왔지만, 현우의 머릿속에는 이겨야 한다는 생각보다도 다른 것이 먼저였다.
"형, 뭐 골라?"
민성이 다급히 재촉했다.
"..."
"빨리, 시간 얼마 없어. 뭐 할거야?"
이 경기를 패배한다면, 당연하게도 건웅이 모든 비난을 받을 것이다. 비록 그가 이번 결승에서는 잘못하지 않았더라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만약, 이번에도 건웅이 모두의 표적이 된다면..
생각 끝에, 현우는 건웅 대신에 모든 짐을 짊어지기로 생각했다.
결국, 프로스트는 패배했다.
윈터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CJ로 스폰서가 바뀌고, 더 좋은 숙소와, 상당히 많이 오른 연봉 등. 프로스트의 선수들은 실력을 차치하고서라도 게이머로써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윈터 시즌 이후 바로 이어진 클럽 마스터즈에서도, IEM 예선에서도 프로스트는 큰 힘을 보여주지 못했다. 전 라인이 예전같지 않은 기량이었다.
프로스트에게, 롤챔스 서머 직후에 보여주었던 찬란한 영광은 없었다.
유일하게, 그때 빛나지 못했던 건웅만이 제 몫을 해주고 있는 플레이어였다.
스프링 시즌을 대비한 연습을 마치고, 건웅은 방으로 가던 중 익듁한 소리를 들었다.
현우의 방에서, 민성이 징징거리고 있었다.
"형, 언제까지 할거야?"
"뭐가."
'..?'
궁금해진 건웅은 살며시 방문에 귀를 대었다.
"게임, 언제까지 제대로 안 할 거냐구. 나 클럽 마스터즈 때, 카메라 갖고 싶었단 말야. 형이 사 줄것도 아니잖아."
"조금만 있어, 조금만 더.."
"이런다고 웅이 형이 뭐 달라져? 아니잖아. 그냥 우리 중에서 쫌 잘해 보이는 거지."
"다 생각이 있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봐."
현우는 타이르듯 말했다. 그 때, 건웅이 방문을 홱 제쳤다.
"...무슨 소리야, 그게."
"...!"
"아, 아니야 형. 그냥 현우 형은 탕수육을 어떻게 먹는지 물어본 거야. 낄낄."
"정민성, 넌 닥치고 있어."
민성은 에그니비아가 된 마냥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형, 무슨 소리야. "
"..."
"대체.. 뭔 소리냐고 씨발!!"
긴 침묵, 그리고 현우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뭐?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대체? 일부러 그렇게.."
"...다 널 위해서였어."
"..."
"너, 솔직히 자신 없었잖아. 윤섭이 나가고, 그 때부터. 니가 아무리 A급 탑솔러였다 해도, 원딜은 부담됐었잖아. 안 그래?"
"...형,"
"그래서 그랬어. 너 자신감 다시 되찾아 주려고. 그 거만했던 장건웅, 다시 그 모습 보고 싶어서. 사람들한테 욕 먹고 의기소침한 모습 보기 싫어서. 애들한테도 내가 시켰어. 너 돋보이게, 장건웅이 캐리할 수 있게 하라고."
"왜.. 왜 그랬는데.. 대체 왜!!"
"뭐가 불만인데? 결국 잘 된거 아냐? 너 이제 원딜 잘 하잖아. 장건웅 하면 미포, 우르곳. 워모그 가서 끝까지 안 죽는, 원딜탱. 너가 만들었잖아. 이제 다 쓰잖아. 너 다시 A급 된거야. 원딜러로. 예전에 너 탑솔 할 때처럼."
"...꺼져. 다 필요없어."
지금까지 한 마디도 못한 상면이 들으라는 듯, 건웅은 방문을 세게 닫았다.
방을 나온 건웅은 충격에 휘청거리며 연습실로 갔고, 그곳에는 자신의 Bitch인 민기가 있었다.
"...민기야, 왜 말 안했어?"
"들었구나."
민기가 마치 기계처럼, 표정없이 말했다.
"언제부터, 언제부터 그런 건데?"
"음.. 현우 형은 아마 롤드컵 때부터? 결승에서 계속 아무것도 안 했잖아. 쉬바나 같은거 한다고 그러고."
"..."
"나나 민성이나 상면이 형은 윈터 8강 쯤? 현우형이 하도 그러더라. 내가 다 생각이 있다고. 그래서 그 다음부턴 대충 했지 뭐. 어차피 스폰도 확정된 상태였는데."
"그럼 설마, 결승에서도..?"
"그건 뭐, 블크가 밴된 것도 있는데, 사실 그렇게 열심히 할 마음은 없었어. 근데 트런들은 들은 건 없는데, 혹시 모르지."
"됐지? 그럼 난 잘 준비가 완료되서, 이만."
민기가 떠나고, 혼자 연습실에 남겨진 건웅은 자신이 항상 연습하던 그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검은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건웅이 강간.. 아니 강 감독의 방을 두드린 것은 늦은 새벽이었다.
"감독님."
"늦었는데 왠 일이냐. 윤성이한테 전화라도 왔어? 팀에 들어오고 싶다고."
"이번엔 정말로, 그만두겠습니다."
"..."
현종은 때가 왔다는 듯한, 미묘한 표정이었다.
"감독님도 아셨죠? 현우 형이랑, 애들."
"...그래."
"서머 시즌 끝나고 저랑 하셨던 약속, 잊진 않으셨겠죠."
"...어디로 갈 생각이냐?"
"그냥, 잠시.. 쉬고 싶습니다."
몇주 후, 장건웅의 팀 탈퇴 소식이 전해졌다. 공석은 MVP 블루에 있었던 김강환이 자리를 채우기로 했다.
짐을 정리하던 건웅에게, 현우가 다가와 물었다.
"...후회 안 할거냐?"
"후회하긴. 형도 잘 알잖아, 내가 원딜 하면서 왜 미포만 했는지."
"행운은 멍청이를 싫어하는 법이지, 이거?"
건웅은 일부러 보라는 듯,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 프로스트에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였던 거 같아. 내 실력도, 팀원들 생각도. 아무것도 몰랐어."
"..."
"그래서, 난 행운을 찾아 떠나기로 했어. 멍청이에서 벗어나려면, 공부가 필요하겠지. 시간이 필요할 거구."
"...알았다."
그 날 저녁, 장건웅은 숙소를 떠났다.
건웅이 떠나고, 강환이 합류한 첫날 저녁, 무거운 침묵 속에 첫 호흡을 맞추고, 경기는 무난하게 강환이 킬을 쓸어담으며 승리했다.
깔끔한 승리였지만, 누구도 좋아하는 기색 하나 없이 무거운 침묵만이 흐를 뿐이었다.
먼저 입을 뗀 것은 민성이었다.
"거 봐, 이기잖아."
이어, 현우가 기지개를 쭉 켜며 말했다.
"아 씨-발. 장건웅 그 새끼 쫓아내느라 존-나게 오래 걸렸네."
"역시 현우형이야, 가차없지. 낄낄"
"그 새끼 집안 무서워서 건들 수가 있어야지. 뭔 그룹 회장이라매, 아빠가. 맨날 혼자 짤릴 때 죽빵을 갈길라는걸 몇 번을 참았는지 모르겠다."
"나도 나이만 나보다 어렸으면 반 조져 놨을걸. 걸어나가는거 보니까 존나 속 시원하더라."
"강환이도 생각보다 훨씬 잘 해주고, 스프링은 할 만 하겠네."
"맞아, 상면이 형 봤어? 현우형 연기 하는거. 소름이 다 돋더라. 너 때문에 그랬어. 알어?? 막 이러는데, 낄낄."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 웃음 참느라. 그 새끼 나갈 때 봤냐? 내가 말 거니까 온갖 똥폼은 다 잡고. 지랄을 하더만 아주."
강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민성의 방에 민기가 찾아왔다.
"민성아."
"응? 무슨 일이야?"
민기가 예의 그 표정없는 얼굴로 말했다.
"요즘.. 현우형이 좀 못해지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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