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몇년 전에, 잠깐잠깐 눈팅하던 때에는,

evidence 어쩌구 한까들이 그러면 대부분의 한빠들이 \'동양에는 동양만의 검증방식이 있다\' \'서양식으로 동양의학을 재단하지 마라\' 이런 반응 일색이었던 것 같은데...

이젠 \'일부\'를 제외하고는 evidence based medicine을 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요.

그래도 못 알아 듣는 경희개똥벌레 등을 위해,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wiki/Evidence-based_medicine 에 자세히 나와 있고, 각 기관별로, 다양하게 EBM을 정의해 보았는데, 사실 그게 그거긴 합니다.
영어로 되어 있다고 안 읽을 일부를 위해 다시 정리하면, 그리고 여기 영어에 빠진 것까지 해서 간략히 하면,

1. meta-analysis에서 효과 있는 거 (Ernst의 Pain지 논문 - 침술은 통증에 효과가 없던데?)
2. 여러 이중맹검무작위배정실험에서 일관성 있는 결론이 나오는 경우
3. 한두개의 이중맹검무작위배정실험에서 효과 있다고 하는 경우 (신종플루에 한약이 효과 좋더라, 감기에 소청룡탕이 좋더라)
4. 이중맹검 하지 않은 무작위배정실험에서 효과 있다는 경우
5. Cohort study에서 효과 있다고 나오는 경우
6. 후향적 연구, case-control study 등에서 효과 있다는 경우
7. Case-series (치험례 몇개 묶어서 발표하는거, 넥시아 치료의 유일한 학문적 근거)
8. Case report (이것이 간증!)
9. 전문가의 의견 (내가 음양오행에 따라 환자를 보니 치료효과가 좋더라고)

정도로 서열을 매길 수 있겠습니다.

누누히 말하지만, 그 아랫단계의 의견은 수백만개가 있어도, 그 윗단계의 증거가 반대되는 내용을 제시한다면 이에 의해 밟힙니다.

즉, 치험례를 묶어 놓은 황제내경이나, 넥시아 팔아먹는 근거로 쓴 case series 2 case 같은 것은 저기 7~9 단계의 아주 하등한 근거에 속합니다.
저런 하등한 근거는, 이제 막 시작하는 분야이거나, 아주 희귀해서 제대로 된 연구하기 힘들 때는 accept가 되지만, 넥시아 같은 항암제를 마구 팔아먹는다던지, 전화상담하며 불티나게 팔리는 편강탕 같은 것에서는 용납이 안되는 근거 수준입니다.

이런 EBM이 한방측에서는 커다란 장벽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역으로 생각한다면 경락이니 기니 하는 걸 굳이 입증 안하고 넘어가도, 저 RCT 단계에서부터 바로 효과를 입증해 버리면 전세계에 ㅇㅋ 하고 어필할 수 있다는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또 실제로 일부 효과 입증된 것은 쓰이고 있구요.

EBM의 이러한 근거 수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아 수천년간 써 왔으니 모든 증거는 확ㅋ보ㅋ 하는 건 정말 무책임한 짓입니다. 서양에서 갈레노스 이후 쓰인 사혈법도 2천년간의 임상례가 쌓여 있습니다. 아마존에서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풀\' 도 수천년의 치험례가 있을 겁니다. 아프리카에선 십몇만년간 쓰인 방법도 있을지 모릅니다.
정말 무지한, 아주 통탄할 일입니다.

한방은 출발도 느리고, 압도적인 현대의학에 비하면 아주 보잘것 없습니다. EBM을 받아들여 열심히 evidence를 쌓아도 한참 모자랄 판에, 저렇게 헛되이 \'한의학은 이미 과학이다 껄껄껄\' \'한의학이 만성질환에는 현대의학보다 효과 좋다 크하하\' 하는 걸 보니 어이가 없습니다.

저런 EBM을 할 수 있는 증거가 없는 한, 한의학은 과학이 아닙니다.
저런 EBM으로 입증하지 않는한, 어떠한 만성질환에 대해서도 한의학은 현대의학에 비해 결코 우월한 효과를 보인단 말을 감히 할 수 없습니다.

모든 한의사가 연구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희생이겠지요.
그래도, 연구는 안해도 좋으니, EBM이 필요 없다는 헛소리는 하지 맙시다. 진짜 무당이 되는 지름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