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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군의 오페라(?) 그 오해와 진실

기우 2007.02.07 03:08:37
조회 1556 추천 0 댓글 13




예전에 이 곳에서 이탈리아군이 포로들에게 단체로 오페라를 관람시키는 용감무쌍한 행위를 했다는 이야기를 보고 그 동안 적잖이 그게 사실일까하는 의문을 품고 있다가 이번에 그에 대한 기회가 생겨서 드디어 원문을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제가 기대한 것(?)과는 아주 많이 다르더군요. 사실관계도 틀리고요. 하지만 아주 훈훈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올만에 번역도 한 겸 사실도 알릴겸 겸사겸사 간만에 (그래봤자 이번이 2번째)글을 올립니다. 번역이 좀 엉터리라도 이해해주시고요 정확한 진실(?)을 알고 싶은 분은 아래에 있는 출처로 가보시길요. 암튼 요번에 기회가 생겨서 이탈리아군에 대한 이것저것좀 뒷조사중인데 나중에 또 기회가 되면 올리기로 합죠. 그럼 즐감하시고요. 내용이 좀 깁니다. 그럼 이만~~ Military History Journal - Vol 1 No 1 Italian Prisoners of War in South Africa 1941 - 1947 by J.A. BALL 2차대전동안 수많은 이탈리아군들이 북아프리카에서 포로로 잡혀 남아프리카로 이송되었다. 학회의 2월 모임에서 연사로 초대된 이는 John Ball 대위였다.  트란스발의 Zonderwater에 위치한 최대규모의 포로수용소에서 1943년 12월부터 수용소가 폐쇄될때까지 근무하였다. 수용소에서 그의 첫 보직은 구역 지휘관이었으며 나중에는 참모와 이탈리아 포로들을 위한 복지담당 장교를 역임했다. Ball 대위는 이 모임에서 포로행정청이 그 분야에서 이룬 성과에 대한 폭 넓은 윤곽을 제시해 주었다. 볼 대위 연설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이 저녁모임에 강연할 기회를 주신 의장님과 여러분 그리고 여러분의 학회에 감사를 표합니다..... 그리고 제가 설레임을 가지고 강연하는 동안에 저는 여러분이 제가 이야기하는 우리의 전사에 대해 흥미를 느끼는 여러분 자신을 발견하길 기대합니다. 저는 먼저 제가 전문가로서 말하는게 아니라는 걸 밝힙니다.... 심지어 오늘 제가 강연하는 분야에서도 말입니다.....그러나 전 이 모든 성과는 보어전쟁시 유명했던 캐롤라이나 의용군 사령관이자  Spioenkop의 영웅 H.F. Prinsloo의 장자인 Hendrik Fredrik Prinsloo, O.B.E., E.D 대령의 천재적인 포로행정청의 운영과 그 성과에 있음을 알고있습니다. 전 동부아프리카와 중부아프리카전역에서 3년 반동안 있다 돌아와 Zonderwater 수용소에 '감금되어' 그곳에서 인간관계분야에 대한 지금부터 제가 말하려 하는 수많은 성과들을 봐왔습니다. 1941년 2월 거의 26년 전에 첫번째 이탈리아 포로가 남아프리카에 도착하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탈리안 소말리랜드와 에티오피안 전선이 전개되면서 우리의 Springboks(남아프리카산 영양 : 남아공군의 애칭)에 의해 보내지는 소포(이탈리아 포로들을 의미 : into the bag?)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1941에서 1943년 내내 수천명의 포로들이 이집트, 리비아, 키레나이카 그리고 트리폴리타니아에서 남아프리카로 물밀듯 내려오기 시작했으며 심각하게 많은 포로들의 숫자는 중요한 관점의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수송, 피복, 주거, 급식, 안전, 그리고 의료등은 중요한 골치덩어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 대부분은 알고 있을 겁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난데없이 몰려들면 어떤 문제가 생기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 남아프리카가 아직 준비되지도, 계획되지도, 기대하지도 않고 있었을 때 갑자기 들이닥친 이 엄청난 포로들때문에 우리 남아프리카가 직면하게될 문제의 크기에 대해서는 여러분들도 잘 이해하시리라 봅니다. 매우 자연스럽게 처음에는 확실히 혼란과 무질서가 있었습니다. 이 돌연한 사태는 우리를 난감하게 만들었지만 곧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되었습니다. 명령은 혼돈에서 벗어나도록 명했으며. Pretoria에서 23마일 떨어진 그 곳 제가 믿기에는 연합국 영토를 통털어 가장 거대한 단일 포로수용소로 성장하는 Zonderwater가 바로 그 답이었습니다. 수용소(!)를 완성하였을 때 14개의 구역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블록은 4개의 수용소를 갖고 있었습니다. 추가적으로 이동식 수용소와 방역 수용소가 있었으며 기간내내 결코 가득차지 않았던 또한 그 당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가장 큰 1,600개의 병상을 보유한 병원중에 하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그 수많은 포로들의 인도주의를 위해 제공되어야 했던 임시 숙영시설과 다른 건물 그리고 필수품들이 얼마나 필요한지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1942년의 Zonderwater 포로수용소는 이스트랜드의 베노니 다음으로 큰 백인 거주지였습니다! 그리고 수용소의 금지구역내 도로만도 24마일 이상이었습니다! 건설 초기에는 남 아프리카의 기간병과 포로들을 위한 편의시설들이 텐트안에 설치되었으며 이 광활한 텐트단지는 사실 하룻밤 사이에 완공되었습니다. 나중에 건설되는 튼튼한 막사와 편의시설들은 합판, 벽돌, 콘크리트와 골함석등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공사들은 포로들의 노동력을 이용했으며 때 맞추어 설치된 전기는 밤새 조명을 비추었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전쟁포로 구금의 조건은 억류하는 힘이나 그것의 대리인인 국가의 친절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습니다. 전쟁포로 구금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들이 1929년의 제네바 협정에 명기되어 있으며 이 협정은 그것을 '전무후무한 최고의 신사들의 동의(he greatest Gentlemen's Agreement of all time.)'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2차대전중 남아프리카는 대영제국의 일원으로서 그 구금력을 행사하는 대리인이였으며 최상의 기준은 규정되지 않았으며 포로의 취급과 구금에 대한 개선과 보완은 그 구금력의 행사자나 대리인의 호의에 의존했으며 이 경우는 남 아프리카 자신이 그 역활을 맡게되었습니다. 제네바 협약하에, 스위스와 스위스에 본부가 위치한 국제적십자사가 공동으로 남아프리카에 있는 스위스의 외교사절을 통해 포로들의 보호의 필요한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시키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 중 첫번째로 지적된 문제는 의료분야에 관한 것이으며 이에 대한 개선안이 마련되어 연방군의 의료담당 장성의 지도하에 긴급히 시행되었고 병원은 좋은 시설과 의료진에 의해 설치되었습니다. 병원은 연방군과 포로인 이탈리아군의 의무장교, 병으로 진료진을 구축하였으며 이런 종류의 모델은 그 어떤 포로 수용소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병원의 장비들은 최상의 상태로 이용가능하였으며 수술실에서 의료진들은 필요한 대부분의 시술들을 행할 수 있었으며 이 병원은 수용소본부와 주 수용소에서 약 3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수용소 각각의 블록들은 주 병원의 감독하에 이탈리안 의무장교가 담당하는 의무실을 두고 있었으며 이들은 작은 상처나 병들을 치료했고 심각한 증상의 경우엔 주병원에 보고하도록 하였습니다. Hygiene 캠프의 경우 문제는 협소한 지역에 너무나 많은 인간들이 몰려있었다는 것이었고 이 문제 또한 매우 성공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Clarifloculators(정수시설?)가 건설되어 완벽하고 능률적인 하수처리 시스템이 설치되었습니다. 이렇게 제정되어지고 유지된 높은 수준의 위생표준은 이 수용소의 역사를 통털어 매우 주목할 만한 성과중의 하나였습니다. 약 40morgen(면적단위인 듯?)의 넓은 지역에 용수가 공급되었으며 비관개지역인 270morgen이 수용소에 접해있었습니다. 이 토지들은 그때까지 묵히다시피 한 토지들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토지에 군관료의 감독하에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비록 그 관료가 농사 경험이 있다해도 말이죠. 수용소의 포로들이 이 토지에 투입되었고 단기간내 규칙적으로 농작물을 포함한 매우 다양한 채소들을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생산물은 포로들의 식탁으로 올라갔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농장중 일부는 생산 목표치를 달성했다고 봅니다. 수용소에서의 종교와 정신적인 편안함에 대한 것은 이탈리안인 포로로서 그들의 95%가 로마 카톨릭이라는 것을 이해하는데 있었습니다. 이런 정신적인 수요는 23명의 이탈리아 군목들로 달래졌으며 종종 수용소를 방문했던 교황사절들에게는 항상 목격되어 그들의 깊은 관심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몇개의 작고 화려한 예배당들이 포로들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높은 수준의 벽화들로 실내를 장식하였습니다. 하지마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지속적인 성과는 교육분야에서 이루어졌습니다. H.F. Prinsloo대령의 명령과 후원하에(O.B.E., E.D., Zonderwater의 포로수용소장) Duca d'Aosta 와 H.F. Prinsloo Schools이 설립되어 그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잡혔을당시 문맹이었던 9,000에 가까운 포로들은 남아프리카의 Zonderwater에서 그들의 모국어를 배우고 읽고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든 종류의 스포츠활동이 가능하였으며 각 블록들은 각각의 축구장, 테니스 코트, Bocce(bowls?)pitches와 pallavolo (netball)코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종종 대회가 열렸고 우승경연대회가 조직되기도 했습니다. 축구리그의 운영과 복싱 토너먼트는 수용소에서 일상적인 삶의 풍경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수용소 행정부의 연방군 스포츠 담당장교와 그의 이탈리아 포로 조력자들에 의해 제어되었습니다. 예술, 극장, 그리고 음악은 수용소 삶의 정수였습니다. 각 블록들은 그들 스스로 만든 극장과 극단중대가 있었습니다. 많을 경우 이들 중대는 약 120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공연수준은 실제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르렀으며 즉석에서 시나리오, 배경, 장치, 의상, 장식, 조명 그리고 그외 것들이 매우 창의적인 포로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이런한 것들이 포로들의 손에 쥐어졌을때 그들은 그들의 예술적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인 Frans Lehar 의 'Count of Luxembourg' 와 'The Merry Widow', Kalman의s 'Czardas Princess', Jones의 'The Maid of the Mountains' 와 많은 다른 작품들이 제작되었습니다. Rostand의 'Conte di Brechard', John Steinbeck의 'The Moon is Down'을 포함한 많은 연극들이 공연되었고, 많은 평론들, 뮤지컬, 버라이어티 콘서트들은 수용소의 일상적인 삶을 나타내는 표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남아프리카의 예술계와 극단계 대부분의 지도층들이 특별 공연을 관람하였으며 다양한 자선행위를 통하여 이들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수요송의 모든 구역은 구역별로 16~30명으로 구성된 자신들의 밴드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들 중 최상의 연주자들은 다시 약 86명으로 구성된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였으며 그 위에는 65명의 연주자들로 구성된 최고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브라스밴드가 있었습니다. 오늘 저녁의 제한된 시간내에서 제 연설의 주제에 대해 모든 것을 다 말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아프리카의 적포로수용소 분야에서 성과에 대한 가치를 묘사하는 것은 어느정도 가능할 것입니다. 남 아프리카에서 그들은 6년간 포로생활의 기간동안 약 9,000명에 이르는 포로들이 모국어(이탈리아어)를 읽고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약 5,000명에 이르는 포로들이 장사(trade)란 무엇인가를 배웠으며 (They were tradeless 'contadini' when taken prisoner?). 약 15개의 학교가 세워지고 유지되었으며 수학기간내 평균학생수는 10,000명에 달했고 각 구역에 각기 도서관이 있음에도 중앙도서관은 10,000권이 넘는 책들을 보유하고 유지되었습니다. 영화감상과 라디오 청취는 각 구역에서 일상적이고 인기있는 일상이었으며 남아프리카에 수용된 포로들의 최고 수치는 67,000 이었으며 (1942년 12월 31일) Zonderwater 수용소에서의 최대치는 63,000이었습니다. (1942년 12월 31일) 4,000명의 남아프리카 고용주들에게 Zonderwater수용소만이 부업이 허용되는 기간동안 노동력을 제공하였으며 (주로 농업노동력 ) 203명의 포로들이 구금중에 질병으로 66명의 포로들이 사고로 죽었습니다. 이 두 수치는 남아프리카 전체에 구금되어있던 포로들의 1.5%이상일 뿐임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 주제에 대해 매우 피상적으로 다루었지만 제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명백하다고 봅니다. 그것은 우리 남아프리카가 전쟁포로에대한 대우에 있어 인간관계에 대한 매우 훌륭한 성과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토록 전세계가 남 아프리카에 보내는 신뢰에 대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 이 성과에 대한 인식으로 인하여 Zonderwater 수용소의 전임 사령관 Hendrik Fredrik rinsloo. O.B.E.,E.D 대령(1943~1947년 2월 수용소폐쇄시까지)을 비롯한 세명의 장교(Ball대위 포함)들이 전후 이탈리아정부로부터 연방군 총사령부의 승인하에 the Order of the Star of Italy 서훈을 받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한 영예는 바티칸으로부터 나왔다. 교황은 Prinsloo 대령에게 "Ordine di Bene Merente"을 수여하였는데 이것은 교황의 훈장으로서 선의에 의한 공훈을 의미한다. 옮긴이 주 : 이탈리아군이 포로들에게 오페라를 보여줬다는 전설(?)이 궁금해서 원문을 뒤져보니...OTL 이런 너무나 실망입니다.ㅠㅜ 이탈리아 형님들의 무용담이 그리웠건만.....그래도 우리 형님들을 미워할 수가 없네요. 이렇게 인간적이고 순수한 형님들을 그 모진 사막 한가운데로 몰아넣은 파스타집 대머리 사장님은 밉지만 말이죠. 저도 덕분에 인터넷에 잘못 알려진 정보하나를 수정했다는 뿌듯함을 느낍니다. 아 맞다 오역 및 의역 주의하시고요. 나름대로 깔끔히 할려 노력했지만....OTL (번역기 미워~) 오늘의 교훈 : 인터넷은 정보의 보고 이기도 하지만 쓰레기의 천국이기도 하다. 쓰레기는 재활용 하자!!! 옮긴이 주 2 : 사전에도 안나오는 단어들 덕분에 고생했습니다.(남아공의 방언인듯) 또 프린슬루 대령                    뒤에 따라오는 O.B.E.,E.D는 뭔지 몰라서 그대로 표기했습니다. 연방군으로 번역한 것은                    U.D.F. (Union Defence Force)입니다. 이 외에도 몇개 더 있는 것 같지만 귀찮아서~패스                    잘못된 것이나 수정할 것이 있으면 지적바랍니다. 대 환영입니다. 그럼 이만~~ 원본출처 : http://samilitaryhistory.org/ 남아공의 軍史저널입니다.                 우리에겐 마이너인 남아공의 전사에 대해 궁금하신 분에겐 강추!!! (보어전쟁이나 줄루전쟁                 갈리폴리전역 같은 남아공이 참전한 대부분의 전쟁이나 분쟁에 대한 자료들이 있습니다.) 짤방 설명 #1 공연장이자 도서관이자 복지사무소인 건물 #2  오페라 공연중 출연배우는 전부 다 남자!!! 오늘의 가장 중요한 교훈!!! 역시 군대는 줄을 잘서야한다. 소련으로 끌려간 이탈리아 형님들을 생각하면 눈에 습기가 ㅠㅠ (54,400명이 끌려가 44,315명이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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