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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때 포로학대로 사형당한 한국인출신 일본 장군...

아리마(221.150) 2007.02.23 15:29:55
조회 1998 추천 0 댓글 35


그러게 좀 포로대우좀 잘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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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日軍 홍사익(洪思翊)중장

  해방 전 일본군에서 한국출신으로 가장 높은 계급에 올랐던 홍사익(洪思翊)중장..

지금부터 58년 전인 1946년 9월, 洪장군은 필리핀 연합국 전범재판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해방 직후 한때는 洪장군이 살아 돌아와 어디에 은신해 있다는 소문도 돌고, 그런 분을 불러 우리나라 군(軍) 창설 일익을 맡기자는 말도 동네사람들 모임에서 자주 나왔다 한다.

   洪思翊은 1889년 3월 4일, 경기도 안성(安城) 인근의 자작농가의 3남매의 막내로 태어났고, 어려서 아버지가 사망해 형의 손에 컸다. 서당에 다니면서 총명함이 나타나 한학(漢學)을 꽤 배웠고, 특히 사서삼경을 다 외울 정도였다 한다. 그가 16세가 되던 1905년, 러일전쟁(露日戰爭)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황인종도 백인종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데에 동양사회가 들끓었고, 서울에서는 군대가 해산되고 일본세력이 더욱 확고하게 주도권을 잡는 세태가 되었다. 홍사익은 그 해 가을 형을 도와 추수를 한 뒤 단신 상경하여 세상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다음 해 봄 무관학교(武官學校)에 입학하였다. 산다는 집안마다 세상 돌아가는 눈치를 보느라 망설이던 참인지라 시골에서 혼자 올라 온 그에게 이 무관학교 입학기회가 온 것은 행운이었다. 키 크고, 귀티를 지닌 그는 한학에서 다진 교양과 성실성에서 곧 교관들의 눈에 띠었다. 그는 졸업 직전인 1909년 어린 영친왕(英親王)의 일본 육군사관학교 격인 중앙유년학교(中央幼年學校) 유학동반자로 뽑혀 동경에 가게 되었다. 당시 조선왕조는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뒤 신학문의 수입원을 청국에서 일본으로 돌려 1896년부터 이따금 한 둘의  젊은이를 국비로 일본사관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켜 국가장래를 준비해오고 있었던 바, 그런 젊은이 중의 하나가 柳東悅장군이다(그는 일본육사 12기 졸업생으로, 귀국해 대한제국 무관학교 교관으로 있다가 나라가 망하자 중국으로 일찍 망명하여 임시정부에서 활약하였다. 해방 후 돌아와 대한민국 국군을 창설한 분으로 육이오 때 모시던 아들과 함께 납북 당했다). 홍사익의 일본유학도 이러한 조류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홍사익은 죽을 때까지 그가 동경에 있을 때는 정초마다 이왕가(李王家)를 찾아 인사를 드렸다 한다.

   일본육사에서도 洪思翊은 두각을 나타내었다. 일본식 발음이 ‘고 시요꾸’, 영어로는 Shiyoku Kou 라고 썼다. 후에 유명하게 되면서 이름의 끝 자 하나가 와전되어 익(翊)이 익(翼)으로 알려져 일본군인 사회에서는 ‘고 시호우’로 잘못 불렸다. 동급생들에게는 큰 키와 건장한 체구, 겸손과 입 무거움, 그리고 사서삼경을 외우고 있는 한학실력으로 유명해졌다. 당시의 일본육사는 학생들을 주요인재로 취급해 유럽 문물을 가르치는 데에서도 그중 앞서 있었다. 예컨대 교과과정에 외국어를 둘을 해야 한다고 되어 있어 대개는 영어, 그리고 독, 불어 가운데서 하나를 택하게 하였다 하고, 피아노도 강제로 배우게 하였다 한다. 빨래는 절대로 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장교가 될 사람에게 그런 것을 시킬 수 없다는 뜻에서였다.

   홍사익이 2학년이 된 1910년 8월에 조선이 일본에 합병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때 한국계 육사생과 졸업생 여럿이 몰래 동경 아오야마(靑山) 공동묘지에 모여 자신들의 장래를 의논하게 되었는데, 모두가 이왕가에도 가깝고 인망이 있는 홍사익의 의견을 구했다 한다. ‘지금은 배울 수 있는데 까지 배우고, 흡수할 수 있는데 까지 흡수하고, 그 위에 실무를, 될 수 있으면 실전까지도 경험해서 충분히 자신이 붙을 때까지 은인자중하여 기회를 보아 일을 성사시키자’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일동이 그것을 양해하고 그렇게 하자고 맹약을 한 뒤에 헤어졌다 하고, 이 일이 뒤에 ‘아오야마의 맹세’라는 말로 일본육사출신 한국인들 사이에 전해 내려왔다 한다. 문헌으로 전해 내려오는 참석자 일부로는 李甲(이갑, 일본육사 15기), 李應俊(이응준), 金光瑞(김광서), 金錫源(김석원), 池大亨(지대형, 가명 李靑天) 등이다. 이 가운데 먼저 졸업해 일군 장교로 있던 이갑씨는 그 날을 계기로 망명하여 항일운동에 돌입했고, 몇 년 뒤 중위가 된 지대형과 김광서가 그 뒤를 따랐다.
   한국계 장교모임으로 ‘전의회(全誼會)’가 생긴 것이 그 즈음으로, 현재 홍사익의 아들이 간직하고 있는 1922년도 회보에는 ‘池大亨과 金光瑞의 처자식 생활이 말이 아니니 도웁시다. 1원도 좋고, 2원도 좋으니 월급에서 떼어서 간사에게 보내주기 바란다’라는 글이 나와 있다 한다. 우리는 李靑天 장군 이야기야 많이 알고 있는 것일 터이고, 재미있는 것은 만주로 잠적한 金光瑞씨를 뒤에 일본군에서 혹 金日成이 아닐까 했다는 일화가 있다.

 해방 전 한국계 일군장교 가운데는 홍사익만이 유일하게 일본 육군대학(陸軍大學)을 나왔다. 그는 거기서 전쟁사(戰爭史)를 전공하였다. 당시는 경쟁률에서 동경대학 입학보다 더 어려운 시험을 치러야 들어간다 하였다. 아무나 시험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단(師團)에서 해마다 2-3명을 추천해서 이들만이 입학시험을 치를 자격이 있었다. 응시자격자가 되는 데에는 경쟁이 심하였고, 그런 자격만 얻어도 명단을 정부 관보(官報)에서 실어주었을 정도로 대단한 영광이었다 한다. 추천한 사단에서는 이들이 시험에 붙는다면 자기 사단의 명예라 하여 이 입시생들에게는 한가한 보직을 주어 반 년 간 시험공부만 시키면서 매일 영양가 있는 음식을 해주는 등 현재 우리나라 강남 고3생 같은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이런 열성에도 불구하고 합격자를 내지 못하는 사단이 대부분이었다. 육군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계급이 최고 대좌(대령)로 끝난다.

   태평양전쟁 중 그는 중국에서 여단장으로 근무하다가 패전 1년을 앞둔 1944년 필리핀에 주둔한 남방군(南方軍) 총사령부 병참감부 총감으로 부임하였다. 이 남방군의 작전범위가 필리핀만이 아니라 인도네시아와 기타 남태평양 섬들 모두를 관할하였고, 필리핀에는 제14방면군(方面軍)이 있어 洪중장은 제14방면군 병참감 직책을 겸해 맡게 되었다. 병참감부는 군수보급 외에 통신, 수송, 의무, 포로관리 같은 일을 맡아 하였고, 그래서 洪중장은 자연히 태평양제도에 산재한 수많은 미국, 영국, 네덜란드 같은 연합국 출신 포로를 수용하는 포로수용소가 그의 관리 아래에 있었다. 당시의 일본 제14방면군 사령관이 야마시다(山下奉文)대장으로, 야마시다 대장은 전쟁초기 말레이반도와 싱가포르를 점령해 영군의 항복을 받아 낸 유명한 장군이었다. 싱가포르 영군수비대장 퍼시발 대장이 항복조인식에서 잠시 머뭇거리며 조건 하나를 더 꺼내려 하자 이 일본대장이 “항복할 것이요, 하지 않을 것이요?”라고 일성대갈해서 얼이 빠진 상대에게서 단박에 서명을 받아냈다는 일화가 있으며, 한때 사람들이 그를 ‘말레이의 호랑이’라고 불렀던 인물이다.
   洪중장이 그리로 부임하게 된 이유로는 사가(史家)들이 두 가지를 든다. 하나는 그가 야마시다 장군이 만주에서 연대장으로 있을 때 홍 중장이 그 연대 대대장을 해서 잘 아는 사이라 야마시다 대장이 불렀다는 설(說)이다. 다른 하나는 그 전해인 1943년, 남태평양 일본 점령지역 ‘스마란’ 섬에서 한국출신 군속들이 집단유혈봉기하여 유혈진압 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긴장된 기류가 흘러 이를 조정하는 데에 한국계 유일한 장군인 洪중장이 적합해서 보냈다는 설이다.  

   남방 부임하는 길에 동경에 잠시 들린 洪중장을 만나 기록을 남긴 사람이 있다. 당시 매일신보(每日申報) 동경특파원 김을한(金乙漢)씨가 洪중장에게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니 일본군을 탈출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의를 했더니 “내가 중경(重慶)으로 탈출하여 독립군에 가담하지 않는 것은 일본군에 대한 의리 때문만도 아니다. 지금 한국인이 수십만 명이나 동원되어 있는데, 명색이 최고지위에 있다는 내가 만일 배신을 한다면 병사들은 물론 징용된 노무자들까지 보복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나만을 생각해서 그런 경솔한 짓을 할 수가 없다”고 대답하더라 하였다. 이 일화는 1984년 8월 월간 ‘新東亞’에서 金乙漢씨가 작고 수년 전에 쓴 글에서 나온다.

   1945년 초여름부터 필리핀 주둔 일본군은 상륙한 미군에 쫓겨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밀리고 있었다. 한번은 洪중장이 전속부관에게 전쟁이 끝나면 고향에 돌아가 중학교 수학선생을 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한다. 8월 15일 항복방송이 있던 당일, 洪중장과 병참감실은 바기오 지구 밀림 속에서 반기아선상(半饑餓線上)을 헤매는 중이었고, 다음 날에야 겨우 항복사실을 알았다 한다. 이제 거꾸로 미군의 포로수용소에 들어 간 洪중장은 독실인 장군 감방에서 야마시다 대장과 복도 건너 맞은 쪽 방에 수용되었다가 포로학대 죄로 교수형 집행을 당했다. 여러 달 계속된 연합국 군사재판정에서 洪중장은 미군 검사와 미군 변호사가 무슨 말을 하건 말 한마디도 하지 않은 ‘무언(無言)피고’로 유명하다.

   일본 장군들의 사형집행 입회인이었던 기다야마(北山)목사의 회고록에 의하건대 “마지막에도 태도가 훌륭했던 사람 가운데 가장 훌륭했던 사람이 洪중장이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장군 전범들 가운데 洪중장이 마지막으로 혼자 남아있던 사형수였다. 1946년 9월 26일 밤, 처형장에 나온  洪중장에게 미군헌병이 “처형 10분 전!”이라고 소리쳤고, 이것이 그에게 마지막 말을 하라는 신호이기도 했다. 일본승려가 독경을 시작했고, 홍장군은 일어나 “사세(辭世)의 시(詩)라고 할 것까지 없지만...”이라는 전제를 한 다음 아래고 같은 詩 한 수를 읊더라 하였다.

              구질구질하게 생각해 보아도 넋두리리라
              패전이 죄라고 체념하는 것이 좋으리라

              옛날부터 억울한 죽음이 많았으니
              나 또한 그 속에 끼었을 뿐이로다

   시를 읊고도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洪중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시간이 되어 헌병이 다가오자 그는 침착하게 일어나서 “기다야마君, 자네는 젊으니 몸을 소중히 하게. 그리고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게.”라고 작별인사를 하더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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