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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패전원인-과달카날,레히테,임팔,오키나와,미드웨이 (2)

TSUNAMI 2005.12.27 20:59:12
조회 2420 추천 0 댓글 54




3.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전략수립 - 분위기의 지배 일본군의 전략 책정은 일정한 원리나 논리에 바탕을 두었다기보다는 다분히 정서나 분위기가 지배하는 경향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것은 아마도 과학적인 사고가 조직 사고의 습관으로 공유되기에 이르지 못한 사실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일견 과학적 사고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어도 그것은 과학적이라는 명제로 포장된 신화적 사고에서 탈피하지 못한 것들이다. 오키나와 작전의 수립에 있어 마지막까지 과학적 합리성을 주장한 야하라 고급 참모가 일본군은 정신력이나 단기적인 책략적 운용의 효과를 지나치게 중시하고 과학적 검토가 결여된 면이 한 두가지가 아니라고 한탄한 것은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제 15군이 미얀마에서 임팔작전을 계획했을 때도 무다구찌 중장의 "필승의 신념"에 대해 보좌관과 막료들은 '이제 무슨 말을 해도 무리'라는 좌절스러운 분위기에 감싸여 버렸다. 이 무모한 작전을 변경내지는 중지 시켜야할 상급 부대도 잇따라 조직내의 융화와 조화를 우선시켜 버리고 군사적 합리성을 여기에 종속 시켰다. 더욱이 최고 책임자인 스기야마 참모총장이 데라우찌 남방군 총사령관의 강력한 희망이라는 이유로 반대의견을 낸 마다 작전부장에게 번복을 촉구하고 마다 역시 스기야마의 인정론에 굴복하고 말았다. 오키나와전 당시 연합 함대 사령부는 야마토가 다른 잔존 함선과 함께 해상 특공대로서 오끼나와 서방 해면에 돌입하여 적 수상 함대와 수송선단을 공격한다는 작전을 세웠다. 군령부까지도 이 작전에 쉽게 동의하지 않았다. 야마토이하의 함선이 호위기 없이 적이 완전히 제공권을 장악한 해역을 진격해서 오키나와에 도달하기란 절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장대한 자멸 작전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연합 함대 사령부의 회의에서도 참가자 누구도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성적 판단이 아닌 정서적 판단, 정신적 판단에 자신들의 생각을 양보하고 말았다. 이 "분위기"는 개개전투에서 주요작전의 책정준비 실시의 각 단계마다 수시로 드러나고 있다. 분위기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모든 의논 끝에 가서는 분위기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과학적인 숫자나 정보, 합리적인 논리에 바탕을 둔 토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러한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에 모종의 분위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일본군은 처음에 작전계획의 대전략이나 원리가 있었다기 보다는 현실에서 출발하여 때마다 임기응변으로 대응하여 그것들의 결과를 쌓아올라가는 사고 방법이 장기였다. 이와같은 사고 방식은 객관적 사실의 존중과 그 행위의 결과에서 오는 피드백(feedback)과 번번히 발생되는 불확실한 상황하에서 매우 효과적이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적한바와 같이 참모본부 작전부에서의 정보경시나 병참경시의 경향만 보아도 일본군의 평균적 경향은 과학적 방법과는 인연이 먼, 독자적이고 주관적으로 쌓아올리는 방식에다 전략 책정을 해왔다고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군이 개인 및 조직에서 다같이 가져야할 전투에 대한 과학적 방법론이 결여되어 있는데 반해 , 미군의 전투 전개과정은 논리 실증주의의 대명사격이었다.  태평양 해전에서 일관하여 제시된 미국의 작전이 지닌 특징의 하나는 언제나 질과 양의 면에서 안정성을 확보한 연후에 공세로 나왔다는 사실이다. 수가 분명히 우세해질 때까지는 공격을  피하고 물량적으로 정비된 연후에야 공세로 전환했던 것이다. 과달카날에서는 일본군의 지구전 전력이 크기 때문에 공격하기 쉬운 진지를 먼저 공략하며 견고한 진지는 일단 회피한 후에 화력을 집중하여 공격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그후 이 방법은 뉴기니아와  그밖의 전장에서도 적용했다. 한편 일본군의 엘리트에는 개개의 전투에서 "전투의 기회는 바로 이때다, 결사적으로 임무를 수행하여 성지를 따르도록 해야한다. 천우신조, 신명의 가호를 초월하여 국운을 걸고 단행할 것임" 등 추상적인 미사여구가 난발했을 뿐 구체적인 방법까지 접근해 제시하는방법론은 어디에도 없었다. 따라서 사실을 정확하고도 냉정히 직시하는 소양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신화적인 허구의 세계에 몸을 던지거나 전투의 성격,본질과는 연관성이 없는 세부적인 서무의 일에 몰두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 거기에다가 근대전에 관한 전략론의 개념도 거의 영,미,독일로부터 수입한 것이었다. 물론 개념을 외국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러한 개념을 충분히 소화시켜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며 나아가서는 그 속에서 새로운 개념의 창조를 향한 방향성이 결여되어 있던 점에 있다. 따라서 일본군 엘리트의 학습은 현장 체험에 의한 쌓아올리기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지휘관,참모,병사들은 다 같은 기존의 전략이란 테두리 안에서는 힘을 발휘하지만 이전의 명제가 무너지면 불의의 사태에 대비한 계획이 없는 것은 물론 다른 전략을 수립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일본군의 전략 책정이 상황 변화에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은 조직 속에 논리적인 토론을 할 수 없는 제도가 풍토화 했다는데 큰 원인이 있다. 일본군의 최대의 특징은 「말을 빼앗는것」이라고 지적했듯이, 전략 책정을 수립했을 경우에도 거기에 대한 수정과 변경은 작전 중지,철퇴등의 결정적인 국면을 맞을 때까지는 불가능했다. 과달카날, 임팔의 작전은 그 전형적인 예이다. 옛날부터 서전의 결전에서 단숨에 승리를 거두는 기습 전법은 일본군이 좋아하는 전투 패턴이었으며, 그 결과 일본군의 전략선택권은 미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아지는 결과를 낳았다. 전략 선택권이 좁다는 것은 하나의 작전 계획에서 중요한 전제가 성립되지 않았거나 변화했을 경우의 대응 계획을 경시한 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 육군의 <필승의 신념>은 정신주의,보병 주병주의, 백병전주의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생각되지만, <보병 조전>의 강령에 「필승의 신념은 주로 군의 빛나는 역사에 바탕을 두고 주도한 훈련으로 이를 배양하며 탁월한 지휘 통수로서 이를 충실케 한다」고 명기되어 있다. 또한 사단 이하의 전투 방침에 대해 정한 <작전 요무령>에서는 「군의 주임무는 전투」라고 했으며 「그리하여 전투 일반의 목적은 압도 섬멸하여 신속하게 승리를 획득하는 데에 있다」면서 전투의 중시, 단기 결전 지향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다시 방면군, 군 이상의 고급 통수의 방침은 <통수강령>에 정해져 있으나 거기에서도 「작전 지도의 본지는 공세로서 신속하게 적군의 전력을 결멸하는 데에 있다」고 한 다음 작전 방침이나 계획은 일단 결정한 이상 관철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오카자키 히시히코에 의하면 통수 강령과 같이 고급 지휘관의 행동을 세부적으로 규제한 것은 영국의 전통적인 군사사고에도 독일의 전략전술에도 없는 일본군 특유의 규정인 듯하다. 어쨌든 이러한 일련의 강령류가 존재하고 그것들이 성전화하는 과정에서 시야의 협소화, 상상력의 빈곤화, 사고의 경직화라는 병리 현상이 진행되여 끝내는 전략의 진화를 저해하고 전략 선택권의 폭과 깊이를 현저하게 제약하는 결과를 낳게 했다고 단정할 수 있을 것이다. 4. 불균형적인 전투기술체계 야마토와 제로센의 경우: 레이테 작전에서 처음으로 해전에 참가하여 46cm의 주포에서 포탄을 발사하기는 했지만 만족할 만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레이테 만을 눈앞에 두고 함수를 돌린 야마토 함은 오끼나와 전에서 전함특공으로 출격 도중에 격침되었고, 이는 일본군의 균형을 잃은 기술 체계의 상징이기도 했다. 워싱턴 조약에 의해 전함의 보유 비율이 미/영의 10에 대해 일본은 6이라는 비율로 열세였기 때문에 함대 결전에 의해 미국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구경이 큰 대포로 적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기 전에 공격을 가하여 세력의 약화를 도모하고 세력비가 동등해졌을 때 전함대가 결전에 임하여 격멸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 목적을 위해서 세계 최대인 46cm포를 장비한 초대형 전함의 건조가 시작되었다. 야마토함의 제원을 보면 ①기준 배수량 6만 4천 톤 ②후력 27노트 ③항속력 16노트~7천 2백 해리 ④장비 46cm 포 9문, 15.5cm 포 12문, 12.7cm 고사포 12문, 25mm 기관포 24정, 13mm 기총 4정, 수상정찰기 6대, 사출기 2기 로 주 포의 최대 사정거리는 40킬로미터로  일본의 건함 기술의 정수를 모은 해군전체가 기대하는 거함이었다. 당시 미군의 전함은 대서양 연안의 도크에서 건조되어 파나마 운하를 거쳐오기 때문에 함독 33m, 배수량 3만 5천톤이라는 것이 최대한의 규모이며 거기에는 40센티포까지만 실을 수가 있었다. 〈야마토〉의 건조비는 히류형 항모 3척의 건조비용에 맞먹는 것이었다. 1937년 11월부터 41년 12월까지 4년에 걸쳐 완성된 〈야마토〉는 적의 전함으로부터의 포격에 대해서는 20km의 거리에서 명중한 46cm 철갑탄에 견딜 수 있는 갑판을 가겼으며, 어뢰 공격에 대해서는 한 발의 명중으로는 전투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으며 두발을 동시에 같은 뱃전에 맞았을 경우에도 응급조치로 전투 능력이 떨어지지 않는 강도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항공 공격에 대한 방어, 곧 대공 화기라는 점에서는 약점이 있었다. 따라서 수차에 걸친 확충으로 기관총, 레이더 등이 증설되었다. 그러나 레이테 해전에서 보여 준 바와같이 〈야마토〉의 주포의 위력은 충분히 발휘하지도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원거리 포격에 필요한 레이더의 성능이 좋지 못한데다가 그것과 연결되는 사격이 훈련 부족으로 질적 저하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야마토〉도 같은 형의〈무사시〉도 가진 능력을 발휘하지도 못한 채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여기에서 일본 해군의 기술 체계상의 불균형을 엿보게 되는 것이다. 〈제로식 전투기〉에 대해서도 많은 언급이 있었지만, 장대한 항속력, 속력, 전투 능력은 세계최고 수준이었다. 물론〈제로 전투기〉의 개발은 일본 기술진의 독창이라기보다는 그때까지 개발된 고유기술을 극한까지 추구함으로써 생겨난 이노베이션(혁명)이었다. 그러나 전투기로서의 공격력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방어 성능을 희생시켜 최저선까지 경량화를 도모했으며, 재료도 가벼운 초 듀랄루민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 입수와 가공이 매우 곤란했으며 대량 소모를 충당하고 대량 생산을 확립할 수가 없었다. 〈제로 전투기〉에 대항하는 전투기로 미군이 개발한 것이 그라만 F6F〈헬캣〉이다. 이 비행기는 〈제로 전투기〉의 두배의 마력을 가졌으며 최대 시속도 604km(제로기 540km)의 신예기였으며 표준화에 의한 대량 생산이 단행되었다. 더욱이 2:1의 전법이 채택됨으로써〈제로기〉도 급속도로 소모되어 보충이 곤란해졌다. 미군 기술체계의 특성: 미군의 주력 전차였던 M4 셔먼은 제 2차 대전을 통하여 5만대 이상 생산되었다. 이것은 최대장갑 두께 75mm, 75mm 포를 탑재한 대전차용 전차였으나 대응하는 일본군의 일식 중전차는 최대 장갑의 두께 50mm, 47mm 포 탑재여서 성능적으로 열세인데다가 전체의 생산대수는 570대 정도에 불과했다. 육해공의 주요 병비의 생산량에 이렇게 차이가 있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국이 대서양,태평양의 두 전선에서 싸워야 했다는 사정에다 자원, 에너지의 조달,보유량의 차이와 생산 설비의 규모의 차이를 반영한 것이다. 〈제로기〉에 대해 〈헬캣〉이 2:1 의 전투를 전개할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 공격 능력의 차이를 무시하고는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병기 생산량의 차이를 물리적인 면에서의 국력의 차이, 거기서 건조되는 병기에 대한 사고 방식의 차이가 작용한 점도 경시할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의 제품 및 생산 기술의 체계는 과학적 관리법에 바탕을 둔 철저한 표준화가 기본이었다. 잠수함으로 예를 들면 미국은 함정의 형태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같은 모양의 함정을 가능한 한 장기간 설계변경을 하지 않고 대량 생산 방식으로 만드는 데 주력했다. 잠수함이 수송 선단의 파괴를 주목적으로 한다는 임무룰 명확하게 인식한데다가 레이더를 갖춤으로써 함 자체의 성능으로서는 각별히 강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일본 해군에서는 제 2차대잔에 참가한 잠수함만도 다중 다양한 것들이었다.   ① 일등 잠수함(이호) 27함형 합계 113척      일개 함형 평균 건조척수 4.2(최소 1~최대 20척)   ② 이등 잠수함(로호) 7 함형 합계 57척      일개 함형 평균 건조척수 8.1(최소 1~최대 12척)   ③ 삼등 잠수함(하호) 3함형 합계 21척      일개 함형 평균 건조척수 7(최소 1~최대 10) 이와 같은 사정은 항공기/항공모함/수송선 등의 생산에서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항공기에 대해서는 이미〈제로센〉의 생산 기술에 대해 언급한 바와 같이 '일점호화주의'가 추구되어 미국에 비하면 양산이라는 점에서는 제약이 있었다. 미국의 경우 항공 모함도 표준화, 대량 생산의 예외는 아니었다. 에섹스 형(배수량 2만 5천톤)을 정규항모의 표준함(후에 샨글리어 형도 추가)으로 규정한 것은 물론 상선을 개조한 호송 항모를 대량 건조했다. 미군은 현재 진행중인 전쟁이 일대 소모전이며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모든 무기를 대량으로 계속 생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개발에는 철저한 표준화를 추구하여 양산할 것, 그렇게 함으로써 건조기간의 단축과 단위당의 코스트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을, 자동차 등의 대량 생산 시스템을 통해 경험적으로 익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미군은 고도의 기술을 개발해도 그것을 생산 공학의 발상에서 평균적 군인의 조작이 용이한 무기 체계로 조작화해 갔다. 일점호화주의로 그 조작에 숙달된 경지를 요구한 일본군의 지향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 <일본의 주요전쟁 패배사례와 원인분석>, 한국기술교육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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