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하일 히틀러를 하고 죽은 전범, 반 유태인 신문 돌격병의 사장

카이텔 2006.03.02 17:22:35
조회 2320 추천 0 댓글 5

 

율리우스 슈트라이허 (1885 - 1946)

 

1885년, 슈트라이허는 아우크스부르크 부근에 플라인하우센에서 교사의 9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독실한 카톨릭 집안이었고, 슈트라이허는 자신의 어머니를 몹시 존경하여 "나의 유년기의 요새"라고 지칭할 정도였다.
1900년, 15살이 되던 때 한 유태인 상점에서 옷감을 주문했던 어머니는 크게 슬퍼했다. 이유는 옷감의 질이 형편없었기 때문이었고 크나큰 수모를 당한 것에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마을 교회 신부님의 예배에 갔을 때 마침 유태인의 예수님 박해에 대한 내용을 들었다. 슈트라이허는 이 사건을 시작으로 유태인에 대한 분노와 새디스트적인 가학주의를 가지기 시작했다한다.
1898년, 어린 나이로 교사의 길을 가기 위해 교사 학회에 들어가 공부하였고, 1904년에 초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교직 생활을 하였다. 일찍이 말재주가 능했다던 그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쉽게 얻었다하며 훗날 자신이 정당하다는 억지를 꾸미기 위한 재능이 되었다.
1907년에서 1908년까지 군역을 한 후 계속 교사일을 하며 1912년에 민주당 당원으로 활동했으며 1913년에 첫 아내 쿠니슌데와 결혼했다.
1차 대전이 터지자 1914년에 사병으로 참전하였고 군사 전갈을 이송하는 임무를 맡아 그 해에 철십자훈장 2급을 받았다. 이 일로 장교 후보생이 되어 교육을 받은 후 장교가 되었고, 1918년에 1급 철십자훈장을 받은 후 중위로 제대하였다.
돌아와 다시 교직을 재개하여 교감까지 되었고, 반 유대주의 단체인 "Schutz 와 Trutz Bund"에 공동 설립자가 되며 1920년에 우익 정당이자 반 유대주의 정당인 독일 사회주의자당을 세웠고 반 유대주의 단체인 독일 노동 공동체에도 가담하였다.
초기 슈트라이허의 당은 히틀러의 나치당과 대립할 만큼 라이벌이었고, 슈트라이허도 히틀러와는 대결하는 상대였다. 그러나 1922년, 히틀러의 연설을 자주 들으면서 그의 매력과 주장에 빠졌고, 나치당에 입당하며 자신의 파벌을 히틀러에게 바쳤다. 히틀러는 감격했고, 슈트라이허를 믿을 수 있는 부하로 받아들였다.
1923년, 슈트라이허는 자신의 인생과 나치 제국의 통치에 크나큰 획을 긋는 신문사를 설립하였다. 그것은 바로 데어 슈튀르머 (Der Stuermer), 돌격병 또는 돌격자 이었다.
돌격병을 설립한 슈트라이허는 처음에는 자신이 직접 편집장을 맡았고, 자신이 가진 반 유대주의 사상을 심어 출간을 시작하였다. 그는 철저하게 유태인들을 비난하였고, 실업, 인플레이션이 모두 유태인의 탓이라 하였다.
당시, 독일 제국이 무너지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공황이 터졌을 때 유태인들이 자신들의 자본으로 그 시기에 재정 부족으로 무너져가던 신문, 산업, 주택과 기업을 많이 매입하여 사회의 부를 주도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슈트라이허는 그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거나 왜곡하였다.
부의 형평성을 이루지 않고, 그들의 종교는 부끄러운 것을 가르치며 예수를 미워하지만 큰 이익을 벌 수 있는 성탄절은 좋아한다라고 하였다. 그들은 의사, 법률가, 고리 대금업자, 무역상, 연예인 직업만 하고 농부, 석공, 공장 노동자 등의 생산적 노동의 자리는 갖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유태인들을 백인 노예 상인이라 주장하며 그들이 매춘업의 90%를 차지하고 성적인 내용의 영화와 출판물로 이익을 얻는다고 하였다.
슈트라이허는 돌격병에다 유태인들을 이렇게 묘사하며 유태인들을 세균, 흑사병, 비인간, 기생충, 적, 악마, 질병으로 취급하였고 심지어 모두 절멸 시켜야한다고 하였다. 이런 억지 보도와 선동적 묘사는 유태인들에게 비난받았으며, 거짓된 보도로 5번의 소송을 받기도 하였으며, 출간 금지를 요청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독일 일반 시민들은 그것에 속아 돌격병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27년에는 1만4천부를, 1933년에는 2만5천부를, 1934년에는 급속도로 성장하여 4만7천부에서 그해 말에는 11만3천8백부를 찍었다. 1935년에는 더 심하여 초에 13만2천8백부를 찍은 것이 말에는 48만6천부라는 엄청난 상승을 보였으며 나중에는 전 세계적인 반 유대주의 선동 신문으로 거대한 규모를 차지하였고 정점에 시기에는 80만 부까지 찍어냈다.
1923년, 뮌헨반란이 터졌을 때 슈트라이허는 늦게 사실을 알았고, 차를 몰고 시내를 다니며 반란 참가 선전을 한 후 히틀러의 행진 대열에 합류하여 금방 히틀러 옆인 선두 대열로 왔다.
반란 실패 후 슈트라이허는 1개월형과 교사직 상실로 처벌받았으나, 나치당 활동은 여전하였고, 1924년에 중단된 돌격병을 다시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4월이 되자 돌격병의 선전의 가장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만화가 개시되기 시작하였다.
1925년부터 슈트라이허는 뉘른베르크 지역 대관구 지도자로 지명되어 활동한 후 1929년부터 프란코니아의 대관구 지도자가 되었다.
프란코니아를 장악한 슈트라이허는 첫 출근부터 채찍을 들고 나왔으며, 자신의 관구에 있는 여러 신문사를 매입하여 자신의 돌격병을 불려나갔고, 유태인들의 재산을 빼앗아 자신의 사유 재산으로 만들었다. 특히 지팡이를 휘두르며 뉘른베르크시를 자주 활보하여 "뉘른베르크의 군주"라고 불렸고 종종 수영바지 차림으로 거리를 다니기도 하였다. 그리고 뒤로는 아내를 학대하고, 바람을 피우거나 여자들에게 가학적 성행위를 즐기거나 또는 강간한다는 소문도 돌았으며 동료들에게 무례하고, 거짓말쟁이에다 비겁자로 불렸다.
1933년, 제국의회에 당선되며 돌격병의 편집장 일에 물러나 돌격병 사업에만 치중하였고, 유태인들을 향한 보이콧과 테러의 계획과 책임을 총괄하게 되었다.
1934년, 돌격대 명예 대장 계급을 받았고, 1935년에 유태인과 다른 인종의 탄압을 위한 결정적 법령인 뉘른베르크 법안 제정을 지지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 열렸을 때 외국 관광객에게 좋은 인상을 심기 위해 잠시 출간을 중단했고 이후에는 더욱 극심해졌으며, 1938년, 유태인 상점들을 향한 테러의 날인 크리스탈의 밤에서 그가 주동자 중 한 명이었다. 
1940년, 슈트라이허는 돌격병에다 한 기사를 실었는데, 괴링의 첫 딸인 에다가 인공수정으로 태어났다는 오보였다. 기사를 본 괴링은 매우 열 받아 총을 들고가서 슈트라이허에게 겨누며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하였다.
이 일이 있은 후 괴링은 적극적으로 슈트라이허 퇴출을 주장했고, 얼마 전에는 속옷 차림으로 당사에 나타나 히틀러와 당원들을 놀라게 한 사건도 있기에 순식간에 반대자들이 모였고, 괴링과 헤스, 히믈러의 주도 아래 슈트라이허 퇴출을 요구했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목적을 가졌지만, 히틀러에게는 그는 지도자의 자질이 부족하고, 반 유대주의가 너무 지나쳐서 우리의 활동을 다 소문내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히믈러, 괴링, 헤스조차 슈트라이허의 반 유대주의가 이 정도로 심할 줄은 몰랐다한다.
히틀러는 그들의 주장에 단호하게 거절하였고, 한때는 경쟁했지만, 자신의 충실하고 오랜 부하인 그를 내칠 수 없었다. 특히 "만약 내가 슈트라이허를 쫓아내고 그의 잡지사를 폐간한다면, 전세계의 유태인들은 기뻐하며 소리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에게 기쁨을 주기 싫다."라며 그의 반 유대주의가 가져온 선동의 위력 때문에 그를 내치기는 싫었다. 그러나 많은 부하들에 등쌀을 못 이겨 슈트라이허는 무기 휴가 처분하면서 해임시켰지만, 대신 그에 대한 신임과 친분은 계속 이어나갔다 한다.
1941년, 오스티라의 빈,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도 돌격병을 출간했으며, 1943년에 남편이 바람피우고 학대한다는 소문을 가졌던 아내 쿠니슌데가 세상을 떠났다.
1945년, 전쟁이 끝나기 몇 주전에 비서 아드레와 결혼하였고, 연합군을 피해 알프스로 도주하여 페인트공으로 신분을 숨겼다. 그러나 알프스 지역으로 온 한 유태계 미군 소령에게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슈트라이허는 뉘른베르크 법정으로 이송되었고, 23명과 함께 뉘른베르크 주요 전범으로 재판을 받았다. 법정은 "전쟁 공모죄", "반 평화죄", "전범죄", "반 인륜죄"를 규정하여 재판을 진행했다.
1946년, 주요 전범들은 대다수가 3가지 또는 4가지의 혐의가 발견되었는데, 슈트라이허는 나치스 유겐트의 창시자 쉬라흐와 더불어서 반 인륜죄의 혐의를 받았고, 쉬라흐는 20년형을 선고받은 반면 슈트라이허는 돌격병을 운영하며 저지른 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1946년 10월, 슈트라이허는 교수대에 올랐고 죽기 전에 이렇게 하였다.  
"1946년 부림절에 나는 이제 신에게로 간다." 그리고 사형집행인에게 침을 뱉고 이렇게 외쳤다. "볼셰비키들이 언젠가 너의 목을 매달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목에 줄을 매달고 두건을 씌우면서 "내 사랑하는 아내 아드레여...."라고 말한 후 이 마지막으로 한마디로 그는 61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외친 소리는 바로 "하일 히틀러!"였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죽은 날은 유태인의 축일인 부림절 이었다한다.

 

어록
1922 - "우리는 유태인들이 독일인의 삶에서 내쫓겼을 때 독일이 자유로워 질 것이라는 것을 안다."
1939 - "형벌부대는 러시아 유태인에게 대항해야 하며 저 살인자들과 범죄자들에게 같은 운명을 주어야 한다. 사형선고와 집행으로 러시아의 유태인들을 죽여 뿌리와 가지를 절멸시켜야한다."


 

 
1923년
1933년
슈트라이허와 차를 탄 쉬라흐
리벤트로프와 슈트라이허
헤스, 히틀러, 슈트라이허
 
왼쪽부터 괴벨스, 라이, 히믈러, 루체, 헤스, 히틀러, 슈트라이허
 
앞줄부터 괴링, 헤스, 리벤트로프, 카이텔, 칼텐브룬너, 로젠베르크, 프랑크, 프리크, 슈트라이허, 풍크, 샤흐트
뒤줄은 되니츠, 레더, 쉬라흐, 자우켈, 요들, 파펜, 자이스 잉크발트, 슈페어, 노이라트, 프리체
재판시기에 슈트라이허
죽은 슈트라이허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주위 눈치 안 보고(어쩌면 눈치 없이) MZ식 '직설 화법' 날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4/29 - -
83243 셔먼 식별 가이드 두번째 장 - 셔먼 너는 뭐가 그리 잘났는데?? [5] ㅋㅌㅊㅍ(121.151) 11.03.24 558 3
83242 혹시 게시글 최대글자수 같은거 있나요? [2] ㅋㅌㅊㅍ(121.151) 11.03.24 104 0
83241 현재_영화제작중인_영화'신해혁명'_스틸컷(3).jpg 베르마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4 273 0
83240 현재_영화제작중인_영화'신해혁명'_스틸컷(2).jpg 베르마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4 186 0
83239 현재_영화제작중인_영화'신해혁명'_스틸컷(성룡 주연).jpg [1] 베르마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4 435 0
83237 무슨 소리인가? 스탈린 오르간이라니? 어그로끄는아이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4 67 0
83235 퍼시픽에서 아이슬란드 있잖아 [7] 어그로끄는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4 479 0
83234 앞으로 귀신이란 아디로 활동하겠습니다 [4] 귀신(222.239) 11.03.24 101 0
83233 hoi2 1차대전 모드하는데...뭔가 아스트랄해집미다 [1] 슐레딩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3 351 0
83230 님들 이차개전 잼는책 추천좀 해주세용ㅋㅋㅋㅋ [4] 졸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3 150 0
83228 근데 셔먼 가이드 말입니다 [4] ㅋㅌㅊㅍ(121.151) 11.03.23 82 0
83227 횽들 로씨아 빨치산 말이야 [6] 파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3 161 0
83226 연어님께 부탁 [5] 이제큐터(124.195) 11.03.23 132 0
83225 전두환은 누구보다도 광주시민을 사랑하였다 [12] qwer(211.234) 11.03.23 334 0
83223 나도 광팔성님 글을 쭉 읽어왔는데.. [2] 귀신(222.239) 11.03.23 79 0
83222 오랫만에 입갤이지 말입니다 [3] 므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3 93 0
83219 광팔씨 보세요 [3] 부잔(125.179) 11.03.23 129 0
83218 흐규흐규... [2] 부좆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3 78 0
83216 광팔성님이 또 지랄염병 떠시는거 같은데 S-300VM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3 46 0
83215 맨날 질문만 싸지르는거 같아서 미안하긴한데.. [2] S-300VM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3 85 0
83214 광팔형님 사랑합니다!!!!!(광팔형님 찬양이라고 생각치말고 읽어봐라) [7] 항상우울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3 210 1
83213 추남 아저씨 리젠글 (2) 부잔(125.179) 11.03.23 64 0
83212 ★ 추남아저씨 리젠기념글 (장문 & 비하인드 스토리) 고시원막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3 98 1
83210 한국인 레알 위대한 민족임 [2] ㅇㅇㅇ(122.35) 11.03.23 188 0
83208 솔직히 지상최대 작전은..... [2] ㅇㅇㅅㅅ(116.123) 11.03.23 198 0
83207 뭐? 내가 친나치라고 - 에르빈롬멜 [9] 요크타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3 340 0
83206 광ㅣ팔 이 새끼 또 살아서 왔네 [2] 요하임 파이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3 111 0
83204 일본이 아시아 인종을 구했다..과언은 아니지 않냐? [1] 블러드하운드(210.107) 11.03.23 112 0
83203 일본이 있었기에 아시아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거다 [1] 저거노트(210.107) 11.03.23 69 0
83202 러시아지"북방4개섬 반환해야" 홍콩지"일본혼란 틈타 센카쿠 점령해야 블러드하운드(210.107) 11.03.23 90 0
83200 솔까 이순신 없었으면 일본이 임진년에 조선 정복할 가능성이 높을듯.... [1] 블러드하운드(210.107) 11.03.23 171 0
83199 일본 영해 바다가 중국보다 훨씬 넓군.jpg [2] 저거노트(210.107) 11.03.23 330 0
83197 야 씨팔 어떤새끼야 [4] meltyhonny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3 253 0
83196 각자 조상의 창씨(創氏)를 코른의 병사(210.107) 11.03.23 111 0
83195 조선이 패전국인 이유 블러드 레터(210.107) 11.03.23 83 0
83194 20000년 속국 신세인 우리민족을 해방시켜준 성전(聖戰) 코른의 병사(210.107) 11.03.23 79 0
83193 제국군이 되고 싶어했던 조선인들 블러드 레터(210.107) 11.03.23 90 0
83192 애국가 작사작곡을 다 친일파들이 했다. 코른의 병사(210.107) 11.03.23 221 0
83191 친일파들은 독립을 원했는데.. 블러드 레터(210.107) 11.03.23 57 0
83190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미국에 승리할 방법은 없었나? [8] ㅇㅇ(210.109) 11.03.23 319 0
83189 솔까 반자이차지 병신같긴 해도 [3] ㅎㅎ(164.125) 11.03.23 216 0
83188 일본이 러시아 안치고 미국 안친 이유가 뭐임??? [9] GuNkI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3 311 0
83187 무슨 소리인가? 스탈린 오르간이라니? [1] 어그로끄는아이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3 128 0
83186 우리는 강대국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1] 일본해병대(222.239) 11.03.23 138 0
83185 궁굼한게 있는데 [1] 일본해병대(222.239) 11.03.23 64 0
83184 미국과 일본의 대립이 시작되다. [1] 스펀지송(119.75) 11.03.23 431 0
83183 포츠머스 조약은 조선의 독립을 보장했다? 스펀지송(119.75) 11.03.23 102 0
83182 퇴갤 [2] 항상우울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2 77 0
83181 러일 전쟁시 러시아군이 처한 난관 [1] 스펀지송(119.75) 11.03.22 340 0
83179 8월 포풍 작전 서술의 참고문헌 목록과 후기 [7] 이제큐터(124.195) 11.03.22 198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