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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그냥 요우리코가 사귀는 이야기.txt앱에서 작성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7.30 11:12:20
조회 372 추천 18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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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났을 때에는 그야말로 새하얀 아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색소가 옅은 그 피부 뿐 아니라, 그녀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희미해서, 마치 세상의 더러움 따위는 모르는 체로 어떤 색이라도 그녀를 물들이는 순간 그녀가 아니게 되어버릴 것 같은
자신을 사쿠라우치 리코라고 소개한 소녀의 미소는 펄프의 누리끼리함 조차 허락하지 않는 표백된 도화지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어떻게 다가가야할지 조금 무서웠던 나는, 그 시선이 마주쳤을 때, 처음으로 물에 빠질 뻔 했다는 것을 자각했던 순간처럼 심장이 내려앉았다.



리코 짱이 아직 '사쿠라우치 양' 이었을 적
좁은 우치우라에서 친구의 친구라는 것은 그냥 친구나 다름 없었고, 애초에 누군가를 통하지 않고도 사람을 사귀어왔던 자신에게 치카 짱을 사이에 두고 느슨하게 이어진 그녀와의 관계는 꽤 미지의 것이었다.
그렇다고 스스로 그 아이에게 흥미가 없었냐고 묻는다면 오히려 그 반대였지만

"아! 사쿠라우치 양, 수영하러온...건 아닌가보네?"

"응, 실은 음악실에 가려고 했는데, 수영장에서 와타나베 양이 보여서"

깔끔한 입수에 만족하며 물 속에서 고개를 들어올리자 교복을 입은 채로 풀 바로 앞에 쪼그려 앉은 그녀가 보였다.
말려들어간 스커트 너머에 평소라면 숨어있을 허벅지가 일렁이는 물결의 반사광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었고, 아마 내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채 자신이 꺼낸 말에 수줍어하고있는 그 아이를 본 나는 쑥스러움과 죄악감을 떨치기 위해 괜히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방금 거 보고 있었던 거야? 조금 쑥쓰럽네"

"그렇지 않아? 굉장히 멋있었어.
그런 굉장한 거 처음 봤을지도, 사람이 그런 동작도 할 수 있구나 생각했을 정도야."

"그, 그렇게 칭찬해도 아무것도 안나오지 말입니다?"

"나왔는 걸? 와타나베 양의 수줍은 표정"

"아하하...너무 놀리진 말아줘"

쓴웃음 짓는 내 앞에서, 키득키득 하고 정말 즐거운 듯 웃는 그녀에게 '허벅지 다 보인다!' 라고 말해줄까 생각했지만, 역시나 친구의 친구에게 그럴 담력은 자신에겐 없었다.
거기에, 사쿠라우치 양에게 듣는 칭찬은 다른 사람들이 해준 것과는 다르게 가슴 안쪽이 간지러운 느낌을 줘서, 차마 그 하얀 살결을 훔쳐봤다는 고해성사가 입에서 떨어지지 않기도 했으니까.
뭐, 덕분에 '사쿠라우치 양의 장난스런 미소'라는 의외의 모습도 볼 수 있었고 말이야.

"나도 다이빙 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은 그만두자? 교복이 젖으면 감기걸릴 거야."

"그렇구나, 아쉬워라.
나 와타나베 양의 소리 듣고 싶었는데."

"에, 그건"

"...나 갈게! 내일 또 봐!"

도망치듯 멀어지는 그 아이를 바라보는 나에게, 흔들리는 와인색 머리카락 사이로 조금 더 채도가 높은 붉은 색의 귓볼이 보였고
도화지같은 그녀를 혹여 물들여버릴까 두려워했던 나는 하얗다고 생각했던 그 아이의 색으로 점점 물들어가고 있었다.



연애편지라도 쓰는 것 처럼,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팬을 쥐고선 겨우 쓴 글을 다시 지우고, 또다시 쓰고, 그렇게 몇번이고 반복하다보니 방금 깎은 연필심이 부러져 책상 밑으로 떨어진다.
결국 일기장 위에는 "리코짱"이라는 글씨와 정리 안된 지우개가루만 남았다.
진이 다 빠지니 오늘의 일기는 포기하자, 어차피 누가 검사하는 것도 아닌데
그날 이후로 쭉 이런 식
시도때도 없이 그 얘쁘장한 얼굴이 떠올라 머리 속을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분명 바다의 소리를 듣기 위해 4월의 바다에 뛰어들었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와타나베 양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어쩌면 나에게로 뛰어드는 걸까.
나에게
그날 도망치던 그녀의 표정을 멋대로 상상해본다.
아마 지금 내가 하고 있을 표정을 하고 도망치는 그녀를 상상하는 것 만으로

"요, 요소로오오옷!!!!"

"요우! 시끄러워!"

"미안!!!"

바보같이 들뜨는 자신이 부끄러워서, 하루종일 그런 상태로 있었다는 것을 일기에 적을 수는 없었다.



정작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은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하고 있었다.
아침에 만나면 "안녕? 와타나베 양." 이라는 인사 뿐, 그쪽에선 거의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마치 그날 보여줬던 붉은 귓볼 따위 눈의 착각이었다고 말하는 것 처럼 태연자약하게 구는 그녀
그렇다고 내 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는 건, 왠지 어떻게 말을 걸어야할지 모르겠어서 망설이고 만다.
그래서 비가 내리는 하늘을 앞에 두고 학교 현관 앞에서 곤란해하고 있는 그 아이를 봤을 때 찬스라고 생각했다.

"요소로~리코 짱, 우산 없는 거야?"

"요, 요소로, 와타나베 양...실은 엄마가 우산 챙기라고 했는데"

강수확률 30%인데 지나치게 잔소리한다고, 조금 오기가 생겨서 가방에 넣어둔 접이 우산을 몰래 빼놓고 왔다고 말하며 혓바닥을 빼꼼 내미는 그녀
그 장난스런 모습에 무심코 숨을 들이쉰다.
'미인은 이런 표정을 해도 그림이 되는구나' 라는 순수한 감탄과는 별개로, 알아내기 힘들 것 같았던 그녀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작은 행동이지만 나에게 약간의 감동을 주었다.
이거다. '의외'의 표정, '의외'의 모습
도화지 뒷면에 숨겨진 그 색깔이 뭔지 보여줬으면 해. 그녀 스스로 보여주고 싶어했으면 해
며칠이나 고민하던 게 또다시 바보같아질 것 처럼 마음이 부글거리기 시작한다.
역시 우물쭈물거리는 건 나와는 안맞을 지도 몰라
부딪히고 깨지는 건 무섭지만, 이 아이의 이런 모습들을 놓쳐버릴지도 모르는 쪽이 더 무섭다고 생각하자, 스스로 놀라울 정도로 용기가 솟아난다.

"그럼 리코 짱은 이 와타나베 요우가 모셔다드리지 말입니다! 우산도 엄청 커다란 걸로 챙겨왔고, 크루즈에 탄 것 처럼 안심해도 좋다고?"

"그치만 버스 내리는 곳이 다른데"

"리코 짱을 데려다주고 혼자 돌아가면 되잖아?"

"그, 그런! 와타나베 양한테 너무 미안한 걸? 그냥 엄마한테 전화 할 태니까 정말 괜찮아!"

아마 평소였다면, 상대가 사쿠라우치 리코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렇구나, 그럼 조심해서 돌아가!' 같은 인사를 하며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내가 리코 짱하고 같이 돌아가고 싶어."

"으, 응?"

"안돼?"

우선 치카 짱이 없더라도 '친구'가 될 수 있도록
같이 시간을 보내고 같이 떠들다보면 아직 조금 투명해서 잘 알 수 없는 그녀의 색이, 표정이 선명해질 것 같아
그렇게 바라며 말을 건낸 나는 어느새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키가 약간 더 큰 그녀에게 시선을 맞추자 그녀는 그 금색 눈동자를 살짝 피했다.

"하아...그럼, 잘부탁드립니다..."

"헤헤, 그럼 버스정류장을 향해! 전속전진!...했다간 다 젖어버릴테니, 안전운전 요소롯!"

"풋, 뭐야 안전운전이라니? 그것도 요소로야?"

"요소로는 뭐든지 할 수 있는 만능 단어니까!"

피식 웃는 그 표정에서도 또 한번 본 적 없는 색이 스며나온다.
활짝, 꽃이 피는 것 같은 함박웃음을 지어준다면 줄곧 익살꾼으로 살아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새로운 그녀를 발견하는 것은 기분 좋고 즐거워
저절로 싱글벙글하게 된다.

"가자?"

"...후후, 고마워 와타나베 양."

아빠가 기념품으로 받아온 장우산은 정말 크고 넓었고, 여자 둘이 쓰기에는 넉넉하고도 남을 정도여서, 어깨나 손가락이 맞닿지 않을 정도로 떨어져있어도 빗방울을 거의 완벽하게 차단해주는 것이 조금 아쉽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로 괜찮아.
고마워 와타나베 양, 굉장히 이야기하기 편해서 오늘 정말 즐거웠어."

그녀의 말대로다. 정말 즐거웠다.
그녀의 이야기, 목소리, 몸짓, 표정이, 도화지에 색깔을 채워가는 것이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즐거웠다.
강수확률 30%의 비가 만들어준, 지금 이 시간이 이대로 끝나는 건, 이대로 헤어지는 건 아쉬워
그래서 나는 좀 더 욕심을 부려보자고 생각했다.

"있지, 리코 짱! 우산 씌워준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말이야, 부탁 하나만 들어줘."

"부탁? 음료수라도 사줄까?"

"그런 건 아니고 간단한 건데 말야.
이름, 이제 와타나베 양이 아니라 요우라고 불러주면 안될까?"

빗방울이 우산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녀가 잠시 멈춰섰다.
이쪽을 가만히 처다보기만 하는 그녀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난 조금 긴장했고
그러다 봄 비가 꽃망울을 때려 피어나는 벚꽃처럼

"요우 짱."

천천히, 그녀가 웃었다.
꽃잎을 갈아서 만든 물감같이 은은한 벚꽃색이 그녀의 뺨을 물들이고 있는 것이, 아마 오늘 본 것 중 최고로 얘쁘고 사랑스러웠다.
시선이 떨어지질 않는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시점에선 그녀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지만, 움직이고 있던 건 자신이었겠지

"!!"

0이 될 때까지 좁혀진 거리
하필이면 그녀가 숨을 내쉴 때 내가 들이쉰 숨이 어질어질할 정도로 달콤한 향기를 하고 있어서, 나는 입술에 닿은 물컹하고 따뜻한 감촉을 한참이나 즐겨댔다.
짜릿한 느낌에 눈을 찡그리듯 감은 채 그저 달콤한 향기를 삼키고 부드러운 온기를 느끼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결국 나는, 점점 손에 힘이 빠져 쥐고 있던 우산을 놓쳐버렸고, 차가운 빗방울이 볼을 때려 겨우 이성을 되찾은 후에야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놀란 토끼같은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는 그 아이를 보며 자신이 무슨짓을 벌였는지 자각한 나는 반사적으로 사과의 말을 던졌다.

"미, 미안! 리코 짜읍"

그리고 벚꽃 쪽에서 꿀벌에게 달려들어 온다.
이번에야말로 눈을 뜨고 확인할 수 있었던 그녀의 표정은 순백의 도화지는 커녕 물감을 엎어버리기라도 한 것 처럼 강렬한 붉은 색을 하고 있었다.
이쪽이 뒷걸음질치면 그만큼 다가온다. 내리치는 빗방울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정신이 쏙 빠질 정도로 그 붉은 색에 물든 나는, 두사람 모두 균형을 잃어 넘어지고 나서야 겨우 떨어져준 그녀가 내 위에서 박장대소하는 걸 멍하니 지켜만 보았다.

"아하하핫! 요우 짱, 자기가 먼저 키스해놓고 그런 표정하기 있기야?"

"리, 리코 짱이 싫어했을지도 모르니까..."

"싫어할 리가 없잖아, 이렇게 멋지고, 귀엽고, 무엇보다 알기 쉽게 날 좋아해주는 아이인 걸?"

즉, 이미 다 들켜 있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계속 그녀의 손 위에서 놀아난 셈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엉망진창인 마음은 빗물이 씻어간 것 처럼 사라져버렸다.

"...요우 짱?"

"리코 짱. 싫지 않았다면 말야, 한번만 더 할게."

이렇게 기분좋은 일이라면, 사랑스런 사람에게 놀아나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 않은 걸

결국 우린 사이좋게 감기에 걸려 마스크를 쓰고 등교했고, '사쿠라우치 양이 요우 짱이랑 같이 우산쓰고 하교했었어!' 라는 증언까지 더해져 양쪽 모두 한참동안 집요한 추궁을 당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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