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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하나메르하나 - 첫인상 1

ㅇㅇ(203.226) 2017.07.30 09:50:53
조회 2025 추천 29 댓글 4
														

일과인 훈련을 끝낸 후,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의무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박사님이 당직인 오늘은 늦게까지 의무실에 머물러 있을 수 있어서 참 좋다. 그렇다고 딱히 내가 뭘 하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그냥 박사님이 타주신 커피-설탕을 다섯 스푼 정도 넣어야 한다-를 마시며 게임을 할 뿐이다. 그래도 좋다. 박사님이랑 한 공간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비어 있는 의무실 침대 누워서 한참 게임을 하다가 문득 박사님을 바라보았다. 박사님은 안경을 낀 채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로 무언가를 읽고 계셨다. 심기가 불편한 표정이다. 뭐지?
뭔가 싶어 슬금슬금 다가가자, 박사님이 나를 눈치 채시고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뭘 그렇게 보시는 거예요?”
“별, 별 거 아니에요.”
“별 거 맞는 것 같은데? 저도 좀 보여줘요.”
“아니, 이건 정말 별 거 아닌 건데…….”

박사님이 등 뒤로 숨기려고 하지만, 어림도 없지. 메카 조종사지만 나도 일단은 전투요원이다. 의무장교인 박사님보다 더 민첩하다는 소리지. 앗 하는 사이에 박사님이 들고 있던 종이는 내 손 안에 들어왔다. 독일어면 못 읽으니까 어쩔 수 없이 돌려드리려고 했는데, 다행히도 종이는 영어로 써져 있었다.

“…’모든 인간관계는 첫인상으로 결정된다’? 이게 뭐예요?”
“그게… 하아……. 진짜 별 거 아니라고 했잖아요.”
“박사님이 되게 집중해서 읽고 계시길래 뭔가 했죠. 뭐 이런 쓸데없는 걸 읽고 계세요?”
“…쓸데없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첫인상으로 결정되는 거면 박사님이랑 저랑 이렇게 같이 앉아 있지도 못하잖아요. 당연히 쓸데없는 소리죠.”
“제, 제가 그 정도였나요?”
“…뭐, 좋은 편은 아니었죠.”

내 말에 박사님이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깊게 한숨을 내쉰다. 나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건 그냥 첫인상일 뿐이잖아요. 얼마 후부터는 박사님이 진짜 좋은 분이라는 걸 알았고요.”
“나는 하나의 첫인상이 정말 좋았는데…….”
“좋았으면 그렇게 버려두고 가질 마셨어야죠.”
“…그러게 말이에요.”

박사님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나는 씩 웃고 기운 내라는 의미로 박사님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러자 박사님이 기분이 풀리신 듯 미소지으시곤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지금은 이렇게 연인 사이로 좋은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지만, 사실 박사님과 내 첫 만남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

입 밖으로는 절대 하지 못할 소리지만, 박사님에 대한 내 첫인상을 말해보라고 하면, 단 두 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

*

6개월 전.
오버워치에 막 도착해서 아나 사령관님에게 전입신고를 한 후, 안내할 사람을 붙여주겠다는 걸 기지 구경이라는 목적으로 거절한 것은 순전히 내 실책이었다. 기지가 이렇게 복잡할 줄 알았다면 그냥 순순히 받아들일 것을, 어린 애한테 길 안내해준다는 것처럼 느껴져서 거절했던 것이다.

하지만 비슷해 보이는 건물들 사이를 30분 정도 헤매다 보니, 원래 내가 있던 위치도 모르게 되었다. 내일이 정식 소개라서 아직 장비를 받지 못해, 홀로그램 지도에 접속할 수도 없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무력감을 곱씹으며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가늠하던 내 눈에 드디어 사람이 보였다. 아,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이 가슴 속에 퍼졌다.
한 손에 든 종이 뭉치에 시선을 박고, 다른 한 손에는 서류철을 들고서 걷고 있는 여자는 다행히도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이렇게 사람이 반갑기는 정말 오랜만이라서, 나는 그 사람이 어느 정도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

습관적으로 인사를 되돌려주던 그녀가 우뚝, 멈춰선다. 낯선 사람을 봤으니 경계하는 걸까. 나도 그녀를 본다. 밀밭 같은 금발에 깊고 넓은 바다 같은 푸른 눈, 뚜렷한 이목구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보기 힘든 미녀다. 누군지는 곧바로 알아봤다. 앙겔라 치글러, 전장의 천사. 유명한 사람이니 모를 수가 없었다. 그건 그렇고, 와, 동안이라더니 진짜 동안이네.
머리 한켠으로 그녀의 나이를 떠올리며, 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건넸다.

“치글러 박사님 맞으시죠? 저는 오늘부로 오버워치에 전입한 대한민국 육군기동기갑부대 소속 대위 송하나입니다. 코드 네임은 D.Va이구요. 이번에 오버워치로 발령받았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

응? 반응이 없다. 그녀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아, 들은 게 없어서 그런가 보구나. 의심하고 있는 걸지도. 나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오늘은 시간이 늦어서 정식 소개는 내일로 미뤄졌습니다. 저기, 제가 아직 지리를 몰라 그러는데, 괜찮으시다면 숙소 위치 좀 알려주실 수…… 아, 저기, 잠깐만요!”

내 상황을 설명하고 길안내를 부탁하는데,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나를 보던 그녀가, 갑자기 휙하고 등을 돌리더니 반대 방향으로 후다닥 달려가 버리는 게 아닌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잠시 멍때리고 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그녀가 사라진 길로 뛰어가며 외쳤다.

“박사님-! 절 버려두고 가지 마세요! 저 길 진짜 하나도 모른단 말이에요! 여기서 30분째 헤매고 있다고요!”

그러나 그녀는 정말 야속하게도,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로 흔적하나 없이 증발해버렸다. 아이씨, 뭐가 이렇게 빨라? 건물 사이를 빠져나와보니 어느새 그녀는 물론이고 하얀 가운자락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와, 진짜 매정하네. 어떻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이렇게 버려두고 갈 수가 있지?

나는 잔뜩 골이 난 채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한 때 매일같이 카메라 앞에 서던 적도 있어 표정관리에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내 인상이 안 좋았던 걸까. 직업정신을 발휘한 영업 미소를 지었어야 했나. 아니, 그래도 일단 웃으면서 말을 걸었으니까 인사 정도는 제대로 돌려줘도 되는 거잖아.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던 옛 속담 따윈 이제 통용될 시대가 지났다는 건가? 와 진짜 재수 없어.

오버워치에서 처음 만난 동료-아나 사령관님은 동료라기보다는 상관이란 느낌이 더 강했다-에게 철저하게 외면 받은 바람에 빈정이 상했지만, 곧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그래, 어쩌면 낯가림이 극심한 사람일지도 몰라.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와 인사를 하니까 너무 놀라버린 거지. 자기도 모르게 도망쳐버릴 만큼. 응, 분명 그런 게 틀림없다. 내일 만나면 입발린 소리라도 하면서 다시 인사해야지. 첫 단추를 이렇게 어이없이 잘못 꿸 수는 없는 노릇 아니야.

그렇게 속을 추스르며 무작정 걷기를 또 30여분, 겨우 새로 만난 사람에게 물어물어 숙소에 도착했고 그 날은 그렇게 끝이 나버렸다.

*

이튿날, 아나 사령관님은 요원들 앞에서 정식으로 나를 소개시켰다. 유명한 인사들의 얼굴을 확인하며 한명씩 악수를 건네면서 인사하며 이동하다가, 드디어 어제의 그녀, 치글러 박사를 앞에 두게 됐다. 솔직히 좋은 마음은 들지 않았지만, 그래, 여기서는 마음씨 넓은 내가 한수 접어야지 어쩌겠어- 하는 생각으로 신경 써서 입가를 부드럽게 들어올렸다.

“안녕하세요, 어제 잠깐 뵀지요? 송하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소문대로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

그러나 그녀는 내가 내민 손을 잡지 않았다. 내가 지금 다른 사람한테는 말도 안 한 입발린 소리까지 했는데 이 반응이야? 낯을 아무리 가려도 때와 장소라는 게 있잖아?

파삭, 하고 얄팍한 내 인내심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어제처럼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라면 몰라도 지금은 다들 모여 있는 앞인데? 힐끗 시선을 올려 그녀를 본다. 그녀는 읽어 내릴 수 없는 묘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잠깐 정적이 흐른다.

…설마 이거 텃세야? 내가 지금 같은 돌격부대에서나 겪어야 할 텃세를 의무관에게서 겪는 거야? 와, 어이없어. 하지만 여기에서 물러나면 디바가 아니지. 관자놀이에 세찬 맥박을 느껴진다. 전투 모드다. 나는 직업정신을 발휘한 영업 미소를 그리며 그녀의 손을 잡아 올리고 힘을 주어 악수를 했다. 악력이 느껴지는지 손 안에서 마주잡은 그녀의 손이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악, 하는 비명소리가 나올 정도로 잡으려다가 다른 사람도 함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의식해서 손을 놓았다. 아프긴 아팠는지 그녀의 얼굴이 약간 붉어져 있다. 쌤통이다.

다른 사람들의 태도는 친절했다. 텃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같은 부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나이가 많아보여 가장 깐깐할 것이라 예상했던 라인하르트 할아버지는 친구가 부탁했다며 사인을 해달라고까지 했다. 흠, 디바의 인기가 여기서도 통하는구나. 이럴 줄 알았다. …저 의무관만 빼면 완벽했을 텐데. 이대로 내가 피할 줄 알았겠지? 천만의 말씀이다. 게임을 하면 이겨야지. 그녀가 먼저 싸움을 걸어왔고 나는 피하지 않을 거다. 첫 번부터 잘못 보이면 끝장이라고.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일단은 정보수집이 먼저다. 그렇게 마음먹었다.

*

“그런데 치글러 박사님은 원래 낯을 좀 가리시나봐?”

점심시간.
오전에 참가한 단체 훈련에서 합을 맞춘 레나 언니와는 금방 친해졌다. 내가 오기 전까지 막내 요원이었다며, 새로 온 막내를 가장 반갑게 맞이해주었던 것도 그녀다. 식당을 안내받는 김에 같이 식사를 나누며 오버워치에 대해 이야기 하다, 틈을 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의문을 입에 담자 레나 언니가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응? 아냐, 아냐. 그럴 리가. 박사님이 얼마나 친절하신데.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도 거리낌 없이 다가가 치료해주신다고.”
“…그래?”
“그래. 내가 오버워치에 온 지도 몇 년 됐지만, 박사님만큼 사람들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가는 사람도 못 봤거든. 누구에게나 친절하시고 정말 상냥하신 분이야.”
“…아하. 그렇구나.”

젠장. 그럼 나한테는 왜 그랬던 건데? 진짜 텃세 부리는 게 맞았던 모양이다. 애써 ‘극도로 낯을 가리는 사람’으로 몰아가려던 생각이 와장창 깨진다.

같은 부대 사람이라면 결투를 해서라도 기를 꺾어놓았겠지만, 상대가 의무관이라면 조금 곤란하다. 평소에 자주 볼 일은 없어도, 목숨이 간당간당하니 위험할 때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바로 의무관 아니던가. 심지어 그냥 의무관도 아니고 야전 의무장교다. 나보다 계급이 더 높다. 여러모로 불리한 게임이 시작된 거다. 에이씨, 어쩔 수 없지. 당분간은 굽히고 들어가는 수밖에.

게임에서 무조건 들이받는 건 무식한 짓이다. 상황에 따라 상대를 잘 살피면서 전술을 바꿔야 한다. 정보를 모으는 건 가장 기본이지. 레나 언니를 필두로 사람들과 어울리며 은근히 의무관에 대한 정보를 물었다. 혹시라도 의심 사는 일 없게 밑밥도 깔면서.

친해지고 싶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의무관에 대해 묻자, 사람들은 흔쾌히 대답해주었다. 누구나 의무관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한다며, 내가 이렇게 묻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듯이.
하지만 형편없이 낮은 정보수집 난도에 비해 돌아오는 정보는 적었다.

따뜻하다, 친절하다, 상냥하다, 부드럽다, 예쁘다, 부지런하다, 똑똑하다, 천재 의학박사, 의무실에 가면 항상 웃으며 반겨주는 사람, 언제나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 위험할 때면 어디서든 날아와 구해주는 사람, 좋은 냄새가 나는 사람.

…마지막은 뭐야? 어쨌든 파도파도 미담밖에 안 나온다. 그리고 대부분은 뉴스를 통해 알고 있는 내용이고, 의무관을 만나기 전까지 내가 그녀에 대해 품고 있던 인상들과 일치한다.

혹시나 해서 사람을 무시하거나 그러지는 않냐고 물었더니, 토르비욘 아저씨는 깜짝 놀라며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만약 그랬다면 그 사람이 정말 죽을죄를 지었을 거라 단언하기까지 했다.
아니, 그럼 나는 뭔데. 길 좀 물은 게 죽을죄야?

정보수집은 그닥 효과를 보지 못했다. 얻은 거라곤 그녀가 불친절한 태도를 보인 것은 나뿐이고, 의무실에서 상주하고 있다는 정보뿐이다.
게다가 사람답지 않은 칭찬의 향연은 또 뭔데. 세상에 저런 사람이 존재할 리가 있나. 아마 가면을 잘 쓰고 다니는 것일 테지. 철벽같은 가면이 왜 내 앞에서 미끄러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 가면을 벗겨주고 말겠어. 속으로 단단히 결심했다.

*

안타깝게도 내 결심이 얼마나 굳건한지 보여줄 기회는 오지 않았다. 새로운 부대에 배치되어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기를 써야했기 때문이다. 한국 육군기동기갑부대에서는 메카 조종과 사격 연습만 제대로 하면 그 외의 훈련에 대해서는 너그러웠다. 하지만 오버워치는 달랐다. 메카 조종사에게도 백병전 기술을 요구했다. 그래서 체격이 그나마 비슷한 레나 언니와 대련을 했는데…….
눈을 떠보니 의무실이다.

“정신이 들어요?”

하얀 천장만 바라보며 눈을 깜박이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살짝 틀어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보자, 거기에는 내 투지를 불태운 원흉이 있었다. 일주일 만에 보는 의무관이다.

처음 든 감상은 목소리 좋네, 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왜 친절하게 굴지? 하는 생각. 마지막으로 내가 왜 여기 누워있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야야…….”
“한동안 누워있도록 해요. 가볍지만 뇌진탕을 일으켰어요.”
“뇌진탕요? ……아.”
“옥스턴 양이 미안하다고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레나 언니의 이름을 듣자 팔목이 마구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눈동자를 돌려서 팔목을 살펴보니 붕대가 꼼꼼하게 감겨져 있다. 체구가 작다고 얕본 게 실수였다. 돌려차기가 어찌나 강력하던지, 팔로 머리를 가드 했는데도 불구하고 한 방에 나가떨어졌지.

“옥스턴 양은 공격부대 내에서도 상위권 실력자예요. 육군 출신의 대위라길래 육탄전에 능한 줄 착각했다며 한참 동안 앉아 있다가 갔어요. 다친 왼팔은 골절하진 않았지만, 부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한동안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아, 깜짝이야. 순간 여기서도 텃세인가 싶었네. 첫 만남부터 날 무시하던 의무관이라면 몰라도 친근하게 굴던 레나 언니가 그랬으면 정말 충격 받을 뻔 했다. 그건 그렇고, 왜 이렇게 목소리가 사근사근하지?

고개를 살짝 들어 주위를 살핀다. 의무실 안에는 의무관 외엔 나밖에 없었다. 의식과 함께 끊겼던 투지가 다시금 고개를 쳐든다. 나는 의심의 눈초리로 의무관을 살폈다. 그녀는 어쩐지 곤란해보이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어찌나 표정이 자연스러웠던지 첫 만남만 아니었다면 마냥 선량해 보인다며 착각했을 정도였다.

“어디 불편함 점이라도 있나요?”
“아뇨. 궁금한 게 있어서요.”
“네, 물어보세요.”
“박사님, 저 마음에 안 들죠?”
“…네?”

의무관이 굳어진다. 이렇게 대놓고 돌직구를 던질 줄은 몰랐나보다. 눈동자가 당황으로 떨린다. 어라, 생각보다 가면이 약하네. 아니, 아니지. 저 동공지진조차 연기의 일환일 수 있다. 정신 차려, 송하나! 여긴 적진 한복판이라고!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요?”
“그거야 박사님이 처음부터 절 무시해서 그렇죠. 첫 만남 때는 미아가 된 절 버려두고 가버리고, 두 번째 만남 때는 악수도 안 잡아주고.”
“아…….”

……? 그게 끝이야? 아니, 보통 이렇게 직구를 던지면 반응이 바로 나와야 할 거 아냐. 착각이에요 혹은 미안합니다. 그런데 이 애매한 반응은 뭐냔 말이지. 움직여도 괜찮을 것 같아서 살며시 상체를 일으켜 의무관을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눈동자의 떨림이 더 커지며 볼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이게 뭐야, 진짜 당황한 것 같잖아?

“박사님?”
“아, 네. 그게… 미안해요.”
“네?”
“기분 상했다면 미안해요. 고의가 아니었어요.”

고의가 아니었다면 뭔데? 그리고 기분 상했다면, 이 아니라 당연히 기분이 상하지!
이해할 수 없는 변명에 입을 꾹 다문 나를 본 의무관은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정말 미안해요. 어떻게 하면 기분이 풀리겠어요? 그… 송 양?
“…하나라고 부르세요. 그렇게 부르면 되게 어색하니까.”
“그럼 …하나 양. 본의는 정말 아니었어요. 미안해요.”

아,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시각적인 정보가 판단에 너무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어쨌거나 눈앞에는 웬만한 모델도 울고 갈만 한 미인이 정말몹시매우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으로 사과하고-본심은 어찌 되었던 간에- 있잖아. 어제부터 이를 박박 갈게 만들었던 복수심이 마치 따사로운 햇볕을 받은 눈덩이처럼 녹아내리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시선을 돌리려던 것을 의식적으로 막았다. 방송활동을 하면서 웬만한 연예인은 다 만나봤기에 어지간한 비주얼에는 끄떡도 하지 않았는데, 이게 웬 추태야.
나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공격에 지지 않기 위해 입을 꾹 다물고 눈에 힘을 줬다. 그러자 의무관은 이제 어쩔 줄 몰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여자한테도 미인계가 통하는구나. 그 순간 이미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에이씨, 그래, 졌다 졌어. 의무관의 계속된 시각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나는 패배를 인정하고 말았다.

“…괜찮아요. 일부러가 아니라면 됐어요. 저도 아침엔 무례했으니 셈셈으로 쳐요.”
“그렇게 해준다니 정말 고마워요, 하나 양.”

무례를 점수로 따지면 2:1인데-심지어 그 중 내 점수인 1은 상대의 실책에 의한 무례였다- 패배를 인정하다니, 기념할 만 한 굴욕적인 날이다. 에이씨, 숙소로 돌아가서 게임이나 해야겠다. 나는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럼, 신세졌습니다. 이만 가볼게요.”
“별 말씀을요. 아, 하나 양. 이거 가지고 가요.”
“네?”

의아함에 뒤돌아보자, 그녀가 내민 손바닥 위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탕이 올려져 있었다. 음, 이거 지금 먹을 걸로 들짐승을 길들이는 그거 맞지? 그렇다고 방금 화해를 했는데 거절하기도 뭣해서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사탕을 받아들었다. 그러자 살짝 굳어있던 의무관-아니, 박사님이 살풋 미소를 짓는다.

“자기 전에 이 닦고 자는 거 잊지 말고요.”
“…네. 안녕히 계세요.”

이 닦고 자는 거 잊지 말라니, 내가 뭐 앤가?
의무실을 나서며 손에 쥔 사탕을 본다. 좋아하는 딸기 맛이지만, 이대로 먹기에는 자존심이 상하는데. 그렇다고 자칫 껄끄러워질 수도 있던 상대에게서 사과-비록 엎드려 절 받기였을지라도-를 받았는데 버려버리기도 그렇고. 잠시 고민하는데 알량한 자존심이 속을 쿡 찌른다. 됐어, 그냥 주머니에 넣어두자. 버리지만 않으면 된 거지 뭐.

다소 복잡한 마음으로 숙소에 돌아간 나는, 팔목 부상 때문에 제대로 게임도 하지 못하고 오랜만에 배틀전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오늘은 패배의 날인가. 되는 일이 없다.
아, 내 승률 어떻게 해.

*

그 뒤로 한동안 따로 박사님을 만나는 날은 없었다. 신체훈련은 내 수준에 맞춰 낮은 강도부터 시작했고, 메카 조종술 연습이나 사격 연습에서는 다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박사님에 대한 첫 날의 인상은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가끔 복도에서 스쳐지나갈 때 내가 인사를 하면, 박사님은 기쁜 듯 미소 짓고는 항상 내 손에 사탕이나 풍선껌 같은 걸 쥐어주곤 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어린애 취급 받는 것 같아서 그리 좋은 기분이 아니었지만, 본인 나름으로는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거겠지 싶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먹기만 했다.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 제품만 골라서 주시더라고. 거기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시간이 흐르고 나서는 박사님을 마주치면 내가 먼저 신이 나서 달려갈 정도였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오버워치에 온 지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내게는 한 가지 취미가 생겼다. 그건 바로 박사님에게 달려들어 안기는 것이었다.

“박사님-!”

아침 일찍 의무실에 찾아가보니 박사님이 선반 위에 약상자를 진열해놓는 게 보였다. 그대로 뛰어가 등에 대롱대롱 매달리니 흠칫 몸이 굳는 게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박사님은 당황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며 나를 불렀다.

“하, 하나 양. 갑자기 이렇게 뛰어오면 위험하다고 몇 번을 이야기하나요?”

말은 혼내는 건데 어조는 그렇지 않다. 나는 살짝 흔들리는 박사님의 눈을 보며 씩 웃었다.
박사님은 10대 시절부터 의학계에 몸을 담았고, 오버워치에 오고 나서부턴 오랜 세월 의무관으로서 성실한 삶을 살아온 나머지 의사와 환자 외의 관계에서 친밀한 접촉에 면역력이 없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매일 매일 이렇게 안기는데 그때마다 흠칫할 이유가 있나.


박사님한테 처음 안긴 것은 충동적인 일이었다. 오버워치에 온 지 한 달 만에 받은 첫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한 일이 신이 나서, 자랑하려는 마음에 들뜬 나머지 마침 눈에 들어온 박사님한테 가서 폴짝 안겼던 것이다.

‘와! 박사님! 저 봤어요? 제가 옴닉들 한번에, 이렇게 싹 몰아낸 거 보셨냐구요!’
‘하, 하, 하나 양…! 저, 저기…….’
‘역시 디바의 실력은 어디서나 통한다니깐! 게이머 출신이라고 무시하던 입만 산 놈들보다 훨씬 낫지 않았어요? 그쵸?’
‘그그그, 그런 것 같네요…….’
‘어어, 박사님도 인정하시는 구나? 헤헤, 거봐요. 나 나름 엘리트라니깐?’

사실 오버워치 내에서는 프로게이머 출신인 나를 얕잡아보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 대놓고 텃세 부리는 일은 없었지만, 나이도 어리고 여자인데다 군인 출신이 아니니 알게 모르게 무시 받았던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임무 시작 전까지 스트레스를 상당히 받았더랬지. 그렇지만 첫 임무를 생각 이상으로 해치우자 자신감이 바로 회복됐다. 그렇게 신이 나서 한참 박사님을 얼싸안고 폴짝폴짝 뛰고 있는데, 붉게 달아오른 박사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 박사님, 왜 그래요? 어디 안 좋아요?’
‘저, 저기 하나 양, 이것 좀 풀고…….’
‘엥? 아, 불편하세요?’
‘아무튼 놔, 놔주세요!’

흔들리는 목소리에 포옹을 풀자 박사님은 정신없어 보이는 그 와중에도 내가 어디 다친 구석이 없는지 재빠르게 눈으로 훑고는, 바쁜 일이 있다며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이상하게 처음 만날 날, 후다닥 달려가 버리던 뒷모습과 겹쳐보여서 의아했었지.
혹시나 부끄러워서 그런 건가 싶은 마음에 박사님을 유심히 살펴보길 여러 날, 나는 박사님이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의료행위 외에는 타인과의 접촉이 일절 없다는 사실을 알아챘던 것이다.

나와 초반에 있던 트러블만 제외하면, 언제 어디서나 의연하고 상냥한 표정인 박사님이 그렇게 당황하고 부끄러워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박사님만 발견하면 달려들어 안기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자꾸 안기다보니 알게 된 건데, 박사님은 마른 몸인데도 불구하고 안는 감촉이 참 좋다. 좋은 냄새가 나기도 하고 말이다. 등에 코를 박고 킁킁대는데 박사님이 움찔움찔하는 게 생생하게 느껴진다. 2개월 동안 내 어택을 받으면서도 박사님의 반응은 변함이 없다. 참 한결 같은 분이다.
나는 박사님을 풀어주고 의무실 침대에 걸터앉았다.

“박사님, 내일 세미나 가신다면서요?”
“그건 또 어디에서 들은 말이에요.”
“윈스턴 아저씨가 말해줬어요. 아- 부럽다. 어디로 가세요?”

가운자락을 붙잡고 칭얼거리니 박사님이 난처한 듯 웃으며 대답했다.

“놀러 가는 게 아니에요. 프랑스에서 열리는 기계안에 대한 세미나에 참석하는 거예요.”
“기계안? 눈 말하는 거예요?”
“네. 기계신체에 대한 연구는 많이 발전했지만, 심장을 제외한 신체장기에 대한 연구는 아직 멀었어요. 특히 시신경은 제2뇌신경이라고 불리는데, 이 신경과 기계안을 연결할 때 자칫 잘못하면 뇌에 큰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장기에 비해서 훨씬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해요. 지금까지는 시신경을 줄기세포로 배양해서 기계안과의 연결을 시도했는데, 항상 일정 부분의 세포가 죽는 현상이 일어났거든요. 이번 세미나에서는 나노생명공학기술이 발전해서…….”

아……. 분명 집중해서 듣고 있었는데 정신이 점점 혼미해진다. 박사님이 뭐라고 열심히 설명해주시는데 솔직히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TV에서는 최첨단 기계안을 낀 형사가 코트자락을 휘날리며 멋지게 사건을 해결하는 영화가 나오는 세상인데 아직 안구까지는 개발되지 않은 모양이다. 다른 사람이 이러면 못 알아듣겠다고 짜증을 냈겠지만, 이상하게 박사님한테는 그러질 못하겠다. 뭣보다 박사님이 설명하는 목소리가 좋기도 하고.

한참을 그렇게 귀 기울이고 있는데 토르비욘 아저씨가 찾아와서 두통약을 타가는 바람에 이야기가 끊겼다. 박사님은 알쏭달쏭한 내 얼굴을 보고 상황을 파악했는지, 머쓱한 표정을 하고선 뒷목을 쓰다듬으며 내게 물었다.

“하나 양, 뭐 필요한 거 있어요? 공항 가는 길에 사다줄게요.”
“필요한 거요?”

필요한 거? 뭘 사다달라고 하지? 머리를 굴려보는데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아직 보스전을 클리어하지 못한 게임도 남아있고… 프랑스에서 뭐 하는 거 없나? 머릿속으로 떠올려보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에 손가락을 딱 부딪쳤다.

“아! 박사님, 저 할 일이 생각나서 가볼게요! 내일 봬요!”

후다닥 의무실 밖으로 달려가는 내 귀에 박사님의 당황하는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네? 내일은 제가 세미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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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0KB인데 한번에 안 올려져서 나눠서 올림.
짤은 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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