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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하나메르하나 - 첫인상 2

ㅇㅇ(203.226) 2017.07.30 09:51:50
조회 1617 추천 34 댓글 8
														


*

이튿날 정오.
나는 오랜만에 오버워치 정복을 차려입고 기지 정문에서 박사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버워치에 온 이후, 나는 아직 한 번도 외출 휴가를 받지 못했다. 기밀 유지를 위해 최소 6개월간은 홀로 외출할 수 없는 규칙 때문이다. 물론 오버워치에서의 일상은 즐거웠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건 답답함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그러던 도중 박사님의 세미나 이야기를 듣고 떠올린 것이, 경호를 핑계로 같이 놀러가는 것이었다. 물론 박사님은 세미나에 참석하시겠지만. 아나 사령관님은 내 얕은 수 따위는 눈에 훤하다는 듯이 웃고는 허가해주셨다. 이게 다 평소의 내 행실이 좋은 덕이다.

“박사님!”
“하나 양? 하나 양이 왜 여기에…….”
“흠흠, 오늘부터 1박 2일간 박사님을 경호하게 된 송하나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경호요? 전 경호를 신청한 적이 없는데…….”
“에이, 혹시라도 모를 일에 대비해야죠! 일이란 건 벌어지면 그땐 이미 늦은 상황이란 말이에요. 자자, 어서 프랑스로 가요!”

신이 나서 외치자 그제야 박사님은 상황 판단이 되었는지 난감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말했던 내일 보자는 게 이거였나요…….”
“여행에는 동행이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에요. 제겐 그 때가 지금이구요!”
“…주객이 전도됐다고는 생각 안 해요?”
“세세한 건 따지지 않는 법이에요. 저 바깥바람 쐬고 싶단 말이에요, 네? 같이 가요~.”
“바깥바람… 하아…….”

어쩐지 박사님의 얼굴이 복잡해 보이지만, 착각이겠지, 응.
결국 박사님은 거절하지 못하고 나와 함께 프랑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밤늦게 호텔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박사님이 예약한 룸을 트윈 룸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스위트룸으로 하고 싶었는데 빈 방이 없다길래 선택한 차선책이었다. 명목상은 경호니까 같은 방에서 자는 게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차액은 내가 냈다. 박사님은 자신이 내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내가 놀러온 거니까 내가 내는 게 맞다고 우겼다. 사실인데 뭐.

호텔 룸에 들어가 박사님이 먼저 씻을 동안 나는 짐을 풀었다. 사실 짐이라고 해봤자 갈아입을 옷과 게임기뿐이다. 필요한 건 사면 되지.
창가 자리의 야경이 좋은 침대는 박사님 쓰시라고 하고 나는 그 옆의 침대를 골랐다. 그 사이 박사님이 씻고 나오셨는데, 와……. 미처 닦지 못한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가슴께로 뚝 떨어지는 모습이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왜인지 모르게 바짝 솜털이 돋을 정도로 엄청나게 섹시해보였다. 감탄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자, 박사님이 나를 의아하다는 듯 보셨다.

“하나 양? 안 씻을 거예요?”
“아뇨, 씻어야죠. 와, 박사님 진짜 최고예요. 진심 최고.”

양 손의 엄지를 들어보이며 샤워실로 향했지만 박사님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씻고 나오자 박사님은 하얀 셔츠에 검은 슬랙스 바지 차림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내일 있을 세미나 준비를 하고 계셨는데, 막 씻고 나온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쩐지 묘하게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박사님에게 말을 걸었다.

“박사님, 뭐 불편한 거 있으세요?”
“네? 아, 아뇨. 저기, 그런데 하나 양. 가운만 입으면 춥지 않겠어요? 뭐라도 걸치는 게…….”
“춥긴요, 여름인데. 전 요즘 잘 때 이불도 안 덮고 자는걸요. 박사님이야말로 그렇게 입으면 안 더워요?”
“네…….”
“체온이 좀 낮으신가보다. 전 몸에 열이 많은 편이라서요.”

박사님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듯 나지막한 숨을 내쉬고는 논문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방해되지 않게 헤드폰을 끼고 게임기를 잡았다.

침대 위에서 한참 자세를 바꿔가며 공들였던 보스전 공략에 성공했을 때는 어느덧 12시가 지나 있었다. 박사님은 뭘 하고 있나 하고 보니, 그녀는 침대에 정자세로 앉아서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상태였다. 잘하면 모니터 안으로 파고 들겠다. 되게 불편해 보이는데, 왜 저러시지?

“박사님? 그 자세 안 불편하세요?”
“아뇨, 편해요. 저는 신경 쓰지 말아요, 하나 양.”
“목소리가 왜 이리 딱딱해요?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요?”
“아뇨, 없으니 어서 자기나 해요.”
“……?”

이상하다. 왜 갑자기 또 저런 태도람? 자세히 보니 목부터 얼굴까지가 벌겋다. 뭐지? 더우신가? 에어컨 온도는 쾌적한데…….

“박사님, 더우면 에어컨 더 세게 틀까요?”
“아뇨, 그냥 가운 좀… 아니, 네. 그렇게 해주세요. 머리 좀 식히고 싶네요.”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가운이 좀 흐트러져 있길래 다시 옷매무새를 여미고, 에어컨 온도를 2도 정도 낮췄다.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 돌아보자 박사님은 아까보다는 편한 표정으로, 그러나 묘하게 기운 빠진 느낌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고마워요, 하나 양.”
“뭘요. 그럼 이제 잘까요? 내일 세미나도 있으시잖아요.”
“그럴까요.”

침대 옆 무드 등을 켜고 나머지 불은 다 껐다. 오버워치에서 나왔을 때는 친구들과 여행가는 것 같아서 마냥 신났는데, 막상 박사님이 옆침대에 누워있으니까 신기한 기분이다. 친구들이랑 온 여행이었으면 고전적이긴 해도 첫사랑 이야기도 하면서 밤을 새웠을 텐데. 그러고 보니, 박사님은 첫사랑이 누구였을까?

“박사님, 주무세요?”
“아니요… 잠이 잘 안 오네요.”
“저도요. 그럼 박사님, 우리 조금만 이야기해요. 네?”

조르듯 말하자 박사님이 살짝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요, 그럼 무슨 이야기 할까요?”
“첫사랑 이야기요?”
“쿨럭, 쿨럭!”
“박사님, 괜찮으세요?”

사레가 들리셨나, 갑자기 기침을 하시는 바람에 천장을 보고 누웠던 몸를 돌려 박사님을 쳐다보니 당황한 표정이다.

“사레 들리셨어요? 물 좀 드릴까요?”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네에…. 그런데 박사님 첫사랑은 언제 해보셨어요?”
“……글쎄요. 그러는 하나 양은요?”
“전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음… 네, 없네요.”
“인기 많았을 것 같은데요.”
“바로 보셨어요! 제가 인기가 좀 있었죠. 후후, 농담이고 그럴 정신이 없었어요. 어릴 때는 게임에 빠져 지냈고, 그 다음에는 군에 들어갔는데 다들 저보다 나이가 한참 많았거든요.”
“…나이가 많으면 별로인가요?”
“음- 이왕이면 또래가 좋잖아요. 말도 잘 통하고, 같이 놀기도 좋고. 게다가 게이머라고 다들 얼마나 절 무시하던지. 그래서 군에선 딱히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데 오버워치는 좀 다르더라고요. 친절한 사람들도 많고, 좋은 사람들도 많고.”
“…다행이네요.”

응? 어쩐지 기운 빠진 목소리다. 나는 무드등 건너로 보이는 박사님의 얼굴을 보았다. 박사님은 기운 빠진 분위기에 생각이 많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따로 언급을 안 해서 그런가?

“아, 박사님도 좋은 사람이에요. 엄청 좋은 사람.”

내 말에 박사님은 힘없이 푸스스 웃으며 대꾸했다.

“첫인상이 좋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거야 뭐…….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반전 있었잖아요. 친절하고 상냥하고 말도 잘 들어주고 의무실 놀러갈 때마다 먹을 것도 주고. 맨날 같이 놀러 다니는 레나 언니한테는 비밀인데, 사실 전 오버워치에선 박사님이 제일 좋아요.”
“쿨럭, 쿨럭!”

박사님은 또다시 사레에 들리셨다. 아까 그냥 물 드릴걸 그랬나보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작은 생수병을 따서 가져다드리자, 박사님은 붉어진 얼굴로 고맙다며 물을 마셨다. 기관지 되게 약하신가보네.

“박사님도 제가 제일 좋죠? 물도 떠다주고. 그쵸?”

장난삼아 얼굴을 들이대고 씩 웃었더니 박사님은 오랜만에 진도 7의 동공지진을 보여주셨다. 너무 가까이 다가갔나? 의아하게 생각하는데 박사님이 어색하게 몸을 뒤로 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후후, 그럴 줄 알았어요.”

뿌듯하게 웃자, 이제 좀 진정이 되신 듯 박사님이 하아, 하고 큰 숨을 내쉬었다. 많이 지친 얼굴이길래 다시 침대로 가 누웠다. 나는 내일 일정이 없어도, 박사님은 세미나가 있으니까 이만 자야겠지?

“이만 잘까요?”
“네. 박사님, 안녕히 주무세요.”
“하나 양도 잘 자요.”

어쩐지 복잡하게 들리는 따뜻한 박사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서서히 몰려오는 잠기운에 빠져들었다.

*

이튿날, 휴대폰에 맞춰놓은 알람시계 소리에 눈을 뜨니 박사님은 벌써 일어나 계셨다. 절로 나오는 하품을 길게 하며 기지개를 켰더니 박사님이 흠칫해서 나를 보신다. 응? 왜 저렇게 피곤해보이시지?

“박사님, 잠 못 주무셨어요? 눈이 좀 빨개요.”
“아… 그게, 네. 조금.”
“잠자리 바뀌면 잘 못 주무시는 타입인가보다. 불편하겠어요.”
“그건 아닌데, 생각이 많아서…….”
“세미나가 걱정되세요?”
“네, 뭐, 그러네요.”

박사님이 눈두덩을 손으로 꾹꾹 누르시며 대답한다. 되게 힘없어 보이시네. 박사님처럼 똑똑한 분도 세미나가 걱정되기는 하는구나. 전에 박사님에 대한 기사를 검색해서 읽었을 땐 하도 대단하다는 말밖에 없어서 숨 쉬는 듯 자연스러울 줄 알았더니, 좀 의외다. 그래도 어쩐지 친근하게 느껴져서 좋긴 하네. 박사님은 힘드시겠지만.

우리는 세수를 한 다음 호텔 식당으로 내려가 가벼운 아침 식사를 했다. 박사님이 세미나에 가 있는 동안 나는 백화점에서 쇼핑이나 할 생각이었다. 사고 싶은 건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깐, 뭐.

박사님은 입맛이 없으신지 스프와 빵을 조금 드셨을 뿐 나머지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저래서 세미나에 참가할 기운이 날까? 기지 안에서는 박사님이 내 걱정을 하셨는데 기지 밖에선 자꾸 내가 박사님 걱정을 하게 된다. 어떻게 하지? 고민하는데 갑자기 좋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평소에 얻어먹은 게 많으니 박사님께 식사대접이라도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박사님, 세미나 끝나는 시간이 언제예요?”
“세미나가 끝나고 질의시간을 가지니까… 아마 7시에는 끝날 거예요.”
“그럼 저랑 저녁식사 하실래요? 제가 사드릴게요.”

내 말에 박사님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셨다.

“어떻게 그래요. 제가 사는 거라면 그렇게 할게요.”
“에이… 알았어요, 그럼. 제가 맛있는 레스토랑 아니까 거기로 가요.”
“그럴까요?”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박사님의 얼굴을 보며, 확실히 기운 없는 박사님보다는 웃는 얼굴의 박사님이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백화점을 빙빙 돈다.
뭘 사겠다고 정하고 온 게 아니라서 그런지 뭘 봐도 감흥이 없다. 오버워치에 있던 3개월 동안 새로 나온 게임들을 훑어봐도 끌리지가 않는다. 대신 생각나는 건 아침에 봤던 박사님의 기운 없는 얼굴이다. 에잇, 매사 똑부러지게 행동하는 분이 기지 밖에선 왜 이렇게 신경 쓰이게 하는지 몰라.

의류 매장을 한참 돌다가 박사님이 입으면 예쁘게 잘 어울릴 것 같은 롱카디건을 하나 샀다. 박사님이 가운을 입고 있는 모습만 봐서 그런지 뭔가 걸쳐야 할 것 같은 이미지다. 그러고 나서 샌드위치로 가볍게 점심을 때웠다. 저녁은 아침에 예약해놓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거니까, 뭐.
박사님은 식사 하셨을라나? 아침에 못 먹은 만큼 뭐라도 든든히 드셨으면 좋겠는데.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세미나에 참석하는 일이란 게 원래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보다. 진짜 속상하게. 아, 자꾸 박사님 생각만 머리에서 빙빙 돈다. 놀러 나온 건지, 진짜 박사님을 챙기러 나온 건지 알 수가 없네.

결국 백화점 꼭대기에서부터 지하까지 빙빙 돌며 건진 것이라곤, 박사님의 카디건과 박사님이 자주 마시는 커피 원두와 새로 나온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하나다. 이상하게 살 게 없는 백화점이다. 도중에 나를 알아본 몇몇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주다보니 귀찮아져서 백화점을 나왔다. 호텔로 돌아가서 게임이나 해야겠다.


박사님은 7시가 조금 넘어서 돌아오셨다. 급하게 오신 듯 더위를 잘 안 타시는 분이 이마에 땀이 조금 배어 있다. 천천히 오셔도 됐는데. 어차피 레스토랑까지는 여기서 걸어서 10분정도밖에 걸리지 않으니 말이다.

걸어서 레스토랑으로 가는 길에 나는 박사님에게 말을 걸었다.

“박사님, 오늘 세미나 어땠어요? 할만 했어요?”
“네, 유익한 정보가 많더라고요. 기계신경에 대한 연구가 조금만 더 진척되면 기계안을 이식할 때 세포가 죽는 현상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잘 됐네요. 오늘 점심 뭐 먹었어요? 아침에 조금밖에 안 드시던데.”
“점심은 샌드위치 먹었어요. 다들 발표하느라 시간이 부족했거든요.”
“어, 저돈데. 근데 그거 먹고 지금까지 버틴 거예요? 대단하다.”
“하나도 게임할 때는 식사 잘 안 하잖아요. 그거랑 비슷하죠.”

게임이랑 세미나랑 같나? 하지만 박사님이라면 연구하는 데에 빠져 그럴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박사님이 저렇게 좋아하니까 세미나에 대해 궁금해진다. 나중에 한번 데려다 달라고 해볼까?


레스토랑에 도착해서 안내받은 자리는 야경이 아름다운 창가 자리였다. 운이 좋았다. 인기 있는 자리인데 예약이 취소되었고, 그 직후에 내가 예약을 잡았다고 했다. 박사님은 야경을 보고 나서 기분이 좋아지신 듯 했다. 나도 따라서 기분이 좋아진다.
가장 잘 나가는 A코스를 시켰다. 몇 년 전, 스타6 세계대회에서 우승하고 나서 뒤풀이로 찾은 곳이 이 레스토랑이었다. 송아지 볼살 스테이크가 정말 맛있었지. 박사님도 내 추천에 따라 같은 메뉴로 골랐다.

우리는 식사를 하며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개 박사님의 유학 시절 이야기였다. 분명 특별할 거 없는 이야기였는데도 불구하고 재미있었다. 전쟁이 모두 끝나고 한가로워진다면 대학에 가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식사를 끝낸 후, 우리는 이 레스토랑의 명물 중 하나인 테라스에 나가 난간 아래 융단처럼 펼쳐진 야경을 구경하기로 했다. 식사 중에 와인을 한 잔 마신 박사님은 기분이 금방 취기가 올라서, 아침과는 달리 기분이 아주 좋아보였다. 하기야 나도 기분이 좋긴 했다. 부드러운 음악과 맛있는 식사, 그리고 아름다운 야경까지 어우러지니 기분이 나쁠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저번에 왔을 때는 테라스에 못 나와 보고 그냥 돌아갔거든요. 그래서 꼭 한 번은 다시 여기 와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박사님 덕분에 소원성취 했네요.”
“저야말로 하나 양 덕에 좋은 레스토랑 알게 되었는걸요.”

활짝 웃는 박사님의 얼굴이 참 예뻐 보였다. 가끔씩 박사님의 나이를 잊곤 하는데, 37살에 저런 얼굴이라니 진짜 반칙이란 생각이 든다. 나도 나이 먹어서 저렇게 동안을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여기 야경이 정말 예쁘잖아요. 예약 자리가 비어 있던 것도 그렇고, 꼭 선물 받은 기분이라 기분이 좋아요.”
“그러게요. 확실히, 하나 양과 이 야경을 볼 수 있다는 건 제게도 선물 같은 일이네요.”
“…….”

박사님은 그렇게 말하고서 생각 많은 얼굴로 야경을 바라보았다. 본인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인식을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거 내가 지금 느낀 게 맞는 거야? 당황스럽다. 그러니까… 박사님의 대사가 꼭… 날 좋아하는 사람의 그것 같잖아?

말도 안 돼, 하고 고개를 저으려고 했으나 파노라마처럼 뇌리에 여러 장면들이 스쳐지나간다. 지금껏 이상하게 생각했던 모든 장면들이 갑자기 퍼즐이 끼워 맞춰지는 것처럼 딱딱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 만났을 땐 말하다 말고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갑자기 도망가고.
다음날 만났을 땐 굳어져 있어서 손을 꽉 잡았더니 얼굴이 빨개지고.
마주칠 때마다 껌이며 과자며 항상 뭔가를 쥐어주지 못해 안달이고.
내가 달려가 안길 때마다 매번 매번 당황해하며 눈이 요동쳐대고.
어제 내가 씻고 나오니까 얼굴이 빨개져서 안절부절못하고.
나이 차 나는 사람 별로라고 하니까 시무룩해져서 잠도 못 이루고…….

슬쩍 박사님을 본다. 박사님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눈치 채지 못한 척 넘어가려면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나는 멍해지려는 정신줄을 잡으려 애를 썼다.
그러니까 ‘그’ 앙겔라 치글러가 나를 좋아한다고……. 난 여잔데? 박사님보다 한참 어린데? 박사님이랑 나랑 몇 살 차이더라? 뭔가 현실감이 없다.

어떻게 하지? 모르는 척 해? 잠시 생각해봤다. 생각보다 거부감은 적었다. ……그래, 뭐 좋아할 수도 있지. 요즘은 사랑에 국경도 나이도 성별도 초월하게 된 지 좀 되지 않았나. 내가 거기에 해당될 줄은 몰랐지만.
누군가 그랬다. 상대와 연애를 할 수 있을지 어떨지를 판단하려면 키스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절로 시선이 박사님의 입술로 향한다. 부드러울 것 같은 입술… 저기에 내 입술이 겹쳐질 생각을 하니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가슴이 쿵쿵 울려댄다. 순간 느꼈다. 나도 박사님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거기다 오늘은 나도 모르게 하루 종일 박사님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백화점을 빙빙 돌며 박사님한테 어울릴 옷이나 고르고 있었고.

다시 한 번 박사님을 쳐다봤다. 그녀는 반짝이는 야경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시선이 느껴져서 돌아보니 주위에 앉은 남자들의 시선이 모조리 이쪽으로 쏠려 있었다. 순간 울컥했다. 절로 입이 열렸다.

“박사님.”
“네?”
“저 좋아하시죠?”
“…….”

박사님은 처음에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았다. 그러나 곧 마주치는 박사님의 눈동자가 어제보다 더 크게 떨리기 시작한다. 입을 떡하니 벌리고 굳어 있는 모습이 되게 귀여워서 절로 웃음이 났다. 나는 올라가는 입 꼬리를 숨기지 못하며 말했다.

“그럼 우리 사귈까요? 오늘부터 1일 어때요? 아, 이거 너무 구닥다리 대사 같나?”
“저저저기, 하나 양, 그게…….”
“네? 그러자고요?”
“그게 아니라…….”
“아니라고 거짓말하지 말아요. 저 다 눈치 챘단 말이에요.”
“……하아, 하나 양. 저기,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박사님이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고는 그렇게 말했다. 어, 이 흐름 뭔가 불길한데. 거절하는 전형적인 패턴이잖아? 나는 박사님의 말꼬리를 자르듯 얼른 입을 열었다.

“저는 박사님 좋은데. 박사님은 저 싫어요?”
“아뇨, 그건 아닌데……!”
“그럼 사귀면 되잖아요. 뭐가 문제예요?”
“……우린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잖아요. 하나 양은 아직 한참 어리고…….”
“저 이제 성인이에요. 다 큰 성인이 서로 좋아한다는데 거리낄 게 뭐 있어요?”
“그래도 다른 사람 이목이란 게 있잖아요. 하나 양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그냥 이대로…….”
“이대로 뭐요, 감정이 사그러들기를 기다린다고요? 만약 그랬는데 감정이 안 줄어들면요? 그리고 굳이 그럴 필요가 있어요? 저도 박사님이 좋고, 박사님도 저 좋잖아요. 쓸데없이 시간 버리는 짓이에요, 그거.”

내 말에 박사님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셨다. 뭐지 이게. 꼭 내가 고백하고 박사님이 고민하는-심지어 거절하는 방향으로- 그런 구도 같잖아. 아니, 그런 건 이제 상관없다. 나도 내 감정을 자각했으니까, 누가 먼저냐는 걸 따지는 건 불필요한 일이다.

“하나 양, 다시 생각해봐요. 난 나이가 너무 많고…….”
“전 박사님에 비해 철이 없잖아요. 아까부터 계속 나이 타령인데, 솔직히 나이만 빼면 박사님이 더 아깝지 않아요?”
“아뇨! 절대 그렇지 않아요. 하나 양은 예쁘고 착하고, 메카 조종도 잘 하는데 저는 그에 비해…….”

박사님의 변명이 계속된다. 더 이상 들어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섰다. 나는 박사님의 얼굴을 양 손으로 잡은 후, 그대로 돌진했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박사님의 말이 뚝 끊긴다. 미운 말을 하려는 박사님을 저지하기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그냥 우리 사귀면 안 돼요? 내가 잘 할게요. 네?”
“아…….”

다시 한 번 쪽. 와인향이 살짝 묻어나는 입술에 도장을 찍자 박사님이 화들짝 놀라 얼굴을 뗀다. 어느새 달아오른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다. 아, 이거 되게 기분 좋네. 박사님의 변명으로 내려가던 기분이 급격히 좋아지기 시작한다.

“제 고백 받아줄 때까지 뽀뽀할 거예요. 이래도 싫어요?”
“아니, 저기,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다시 뽀뽀를 하려고 얼굴을 접근하는데 박사님이 벌게진 얼굴로 물러서며 그렇게 말했다. 에이, 재미 들리던 차였는데 아쉽게. 시무룩한 눈으로 보니 박사님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시선을 방황시킨다.

“그럼 우리 사귀는 거 맞죠?”
“하아… 후회할지도 몰라요, 하나 양.”
“그럴 수도 있겠죠. 근데 모르는 척 지나가면 더 후회할 것 같아요. 박사님도 그렇잖아요. 그냥 마음 편하게 먹어요. 네?”

손을 잡고 칭얼거리니 박사님이 한참 생각하는 듯 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절로 터져 나오는 웃음에 활짝 웃자 가라앉기 시작하던 박사님의 얼굴이 다시 빨개진다. 와, 이거 되게 재밌네.
나는 손을 뻗어 박사님의 부드러운 손을 잡았다. 흠칫 굳는 것이 느껴졌으나 다음 순간 박사님도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아주셨다. 절로 지어지는 미소에 박사님을 보며 말했다.

“박사님, 오늘 내가 백화점에서 뭐 샀는줄 알아요?”
“글쎄요… 새로 나온 게임이라든가?”
“그것도 샀지만… 가장 먼저 산 게 박사님 드릴 선물이에요! 이따 호텔가서 보여드릴게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는데.”
“하나 양이 산 거라면 뭐든 마음에 들 거예요.”

박사님이 웃으며 말하신다. 가슴이 몽글몽글한 낯선 감각이 느껴지는데, 그게 또 싫지가 않다. 오히려 좋다. 박사님도 그랬으면 좋겠어서 나도 활짝 웃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를 바라보며 웃기만 했다.

***

잠깐 잠이 들었나보다. 눈을 뜨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박사님은 침대 옆 의자에 앉아서 노트북에 무언가를 타이핑하고 있었다. 나는 그 등에 얼굴을 묻고 비볐다. 따뜻하고 좋은 냄새가 났다.

“깼어요, 하나?”
“네- 우리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사귀기 시작할 때까지를 꿈꿨어요. 그때 레스토랑에서 박사님이 막 내 뽀뽀 피하고 그랬는데.”

박사님이 웃음을 터뜨린다. 아까 첫인상이니 뭐니 하는 쓸데없는 종이를 읽고 가라앉았던 기분이 날아간 듯 해보여서 기분이 좋다.

“지금 와서 말하는 거지만 박사님이 저 처음에 버려두고 갈 때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몰라요.”
“갑자기 가슴이 쿵쿵쿵 뛰는데 어떻게 해요. 살면서 그런 적이 처음이라 저도 당황스러웠단 말이에요. 정신 차리고 보니 의무실에 돌아와 있고. 미안해요, 하나.”
“사과할 필욘 없어요. 그냥, 너무 돌아왔다 싶어서.”

처음부터 평소처럼 친절하게 대해주셨으면 금방 박사님이 좋아졌을 텐데. 놓쳐버린 3개월이 너무 아깝다.
그런 내 말을 들은 박사님은 따뜻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뭐, 지나간 일은 됐고 우리 다음 휴가 때 어디 놀러갈지 생각해봐요.”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요, 하나?”
“사실 박사님이랑 함께라면 어디든 좋긴 한데… 이왕이면 1주년 기념으로 파리에 있는 그 레스토랑 한 번 더 갈까요?”

박사님은 좋은 생각이라며 내 이마에 쪽 하고 입술을 부딪쳤다. 예약하기 어려운 곳이니 이따 숙소에 돌아가면 바로 예약해야겠다. 1주년 선물로 뭘 사드리면 좋을까? 뭘 고르면 좋을지 생각하다 박사님의 비어 있는 손을 보고 생각을 정했다. 반지로 해야지. 사이즈는 아니까 디자인만 고르면 되겠구나 싶다.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박사님은 또 무슨 생각을 하길래 그렇게 예쁘게 웃냐며 내 볼을 살짝 집는다.
말해드릴까 하다가 서프라이즈로 놀라게 해드리고 싶어서 그냥 웃었다.
의무실에는 박사님을 닮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흐른다.
오늘도 평화로운 한때가 지나고 있었다.



끝.
짤은 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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