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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하나메르하나 - 길들이기 4

ㅇㅇ(223.33) 2017.08.05 17:05:09
조회 2042 추천 51 댓글 17
														

건조한 메르시가 보고싶어 쓴 글 4







복직 날짜가 잡혔다.
12월 28일로, 새해도 되기 전에 일을 시작해야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한숨이 나오는 것만 같았다. 예전 같으면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을 텐데, 1년 쉬었다고 그새 게을러진 듯하다. 앙겔라는 병원에서 온 전화를 끊고, 소파에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요리 프로그램을 보고 있던 아이에게 말했다.

“복직 날짜가 잡혔어요.”
“정말요? 언제예요?”
“12월 28일이요.”
“아… 열흘도 안 남았네.”

아이가 탄식했다. 12월 20일, 아이는 거의 앙겔라의 집에서 생활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아이는 수능이 끝난 이후 3학년은 등교하지 않아도 된다는 학교의 결정을 구실삼아 앙겔라의 집으로 쳐들어왔다. 기존에 있던 양호 선생이 수능이 지난 이후 복직하기로 하는 바람에 생각보다 일찍 보건의 자리를 내려놓게 된 앙겔라는 별 말 없이 아이를 맞아들였다.
독감으로 고생했던 날, 더 이상 아이를 밀어내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대하기로 결정한 결과였다. 덕분에 하루 종일 아이와 같이 지내는 생활이 시작된 지가 벌써 한 달이었다.

“박사님, 크리스마스이브에 약속 안 잡혔죠?”
“쉴 거예요.”
“그러지 말고 저랑 같이 놀아요. 네?”

아이가 앙겔라의 손을 잡고 방긋방긋 웃으며 졸랐다. 간호를 받은 이후 아이의 스킨십이 자연스러워져서 손잡는 일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앙겔라는 잡힌 손을 보면서 아이랑 놀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날짜가 문제다.

“…크리스마스 날에 보죠.”
“왜요? 쉬실 거라면서요.”
“하나 양이 이브라는 날에 큰 의미를 둘 것 같아서요.”
“아, 눈치도 빠르시네.”

이브는 연인들의 날이다.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아이를 밀어내지는 않았지만, 진짜로 18살이나 어린 아이를 받아주는 것은 좀처럼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박사님, 그 날 저랑 놀아주시면 제가 프랑스식 이브 만찬 대접해드릴게요. 네?”
“둘 뿐인데 만찬까지 차릴 필요가 있나요?”
“양을 적게 하면 되죠. 많으면 이튿날까지 먹어도 되고요.”
“……안 돼요.”
“힘 빡주고 요리할 건데. 샴페인은 이미 준비해놨고, 오르되브르로는 캐비어를 곁들인 메추리알이랑 양송이버섯이 크림 들어간 가리비 그라탕 내놓을 거고, 앙트레로는 연어 타타키 샐러드, 메인 요리로는 모과 퓌레를 끼얹은 푸아그라랑 샤퐁, 디저트로는 정석인 부쉬 드 노엘이랑 바닐라 크림 브륄레를 내놓을 예정이에요. 그 외에도 카나페 같은 자잘한 것들 준비할 거고요.”

앙겔라는 갑자기 쏟아져 나온 요리들에 잠시 말을 잃었다.

“……메뉴가 너무 많은 건 둘째 치고 만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요.”
“그런 건 제가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다 먹기도 힘들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천천히 드시면서 저랑 밤새 놀아주셔야죠. 어차피 이브 날에는 밖에 나가봤자 어디를 가나 사람들로 꽉꽉 차있어서 귀찮고 피곤하기만 하잖아요. 네?”

말하는 걸 보니 이미 어느 정도 준비를 해놓은 모양이었다. 며칠 전부터 이브 날에 뭐 할 건지 자꾸 캐묻더니 설마 만찬 준비를 하고 있을 줄이야. 부담스럽기도 부담스러운데 이 와중에 아이가 말한 요리를 맛보고 싶어 하는 스스로를 깨닫고 앙겔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11개월 동안 아이에게 완전히 위장이 사로잡힌 자신을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었다.

앙겔라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정말로 아이와 놀기만 할 것인지, 아니면 설마 고백이라도 받을 것인지. 전자는 괜찮지만, 후자라면 문제다.
……과연 문제일까? 교복만 입었지 나이로는 성인인데다 이제 더 이상 교사도 아닌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던 앙겔라는 흠칫했다. 아이한테 너무 길들여진 모양이었다. 순간이라도 그런 생각을 해버리다니!

거절해야겠다, 하고 마음먹었을 때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그저 빤히 앙겔라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어린 아이답게 눈동자가 참 맑았다. 눈을 마주하고 있자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더니 이윽고 조용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머릿속에 아이의 장점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착하고, 잘 웃고, 속 깊고, 배려심 있고, 요리도 잘하고, 무엇보다 앙겔라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한순간의 호기심이 아닌 진지한 마음이라는 것을 인정한 지는 꽤 됐다. 젊은 10대가 갖는 한순간의 감정이라고 하기엔 아이의 속이 너무 깊었다. 앙겔라가 살아온 인생을 통틀어 이렇게까지 제게 다가와 준 사람이 없었다. 이런 애를 또 만날 수 있을까?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몹시도 회의적이었다. 아이는 앙겔라에 비해 어리다는 점만 빼면 나무랄 곳이 없었다.

앙겔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이를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일단 복직을 하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바빠질 것이 뻔했다. 수술 일정이 빼곡히 잡힐 테고, 과장으로서 해야 할 업무도 많을 것이고, 긴급콜이 들어올 때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병원으로 달려가야 할 텐데. 아이가 그걸 버텨낼 수 있을까? 그냥 이대로, 호감 가는 어린 친구 하나 사귀었다고 생각하며 지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발상이었다. 아이가 저를 기다려 온 시간을 생각하면 어영부영 넘기는 건 비겁한 일이었다. 결국 앙겔라는 이브 날에 어떤 식으로든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대신 간단하게 해요.”

앙겔라의 표정을 따라 덩달아 심각해졌던 아이의 얼굴이 그 말 한마디에 활짝 피었다. 어쩐지 눈이 부셔서 앙겔라는 어색하게 눈을 돌렸다. 한동안 생각이 많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이브 전날까지 앙겔라는 아이를 계속 의식했다. 여러 고민들이 머릿속에 잔뜩 떠올랐다 사라지곤 했다. 자다가도 깨서 한숨을 내쉬며 골몰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답은 나오지 않고 그저 생각만 많아질 뿐이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가운데, 단 하나 점점 선명해지는 것이 있다면 그건 아이에 대한 앙겔라의 감정이었다. 의식하지 않고 지내온 나날 동안 아이의 호의에 젖어들었고, 감기로 쓰러져 간호를 받은 이후로는 아이가 제 곁에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아이의 호의는 더 이상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편하고 기분 좋은 것이 되었다. 그런 스스로에 대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앙겔라는 속이 답답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결국 아무 결정도 하지 못한 채로, 앙겔라는 오후 6시쯤에 집으로 오라는 아이의 말에 옷을 갈아입고 위층으로 향했다.

매번 아이가 제 집으로 찾아왔기 때문에 아이의 집에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벨을 누르자 잠시만요-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문이 열렸다.

“박사님, 어서 오세요! 어? 그건 뭐예요?”
“빈 손으로 오긴 뭐해서요.”

앙겔라는 와인을 건넸다. 언젠가 선물 받은 와인이었다.

“마침 와인은 뭘 고를까 고민 중이었는데, 감사해요.”

아이가 싱긋 웃으며 와인을 받아드는 것을 보고 앙겔라는 생각했다. 아이의 준비성 정도면 식사에 어울리는 와인 정도는 이미 준비해뒀을 텐데. 요 며칠 새 아이에 대해서만 생각해서 그런지 예전이라면 눈에 보이지 않았을 아이의 배려가 눈에 들어왔다. 겨우 비워둔 머릿속이 또다시 복잡해지는 느낌이었다.
외투를 벗는 앙겔라를 아이가 앙겔라를 식탁으로 이끌었다.

“배고프시죠? 여기 앉으세요.”

식탁 위에는 샴페인과 전채요리가 예쁘게 데코 되어 놓여 있었다. 앙겔라는 아이의 인도에 따라 의자에 앉았다. 아이가 기쁜 듯 웃으며 샴페인 잔을 건넸다.

“올 한 해 저랑 같이 보내줘서 정말 감사해요.”
“…저도 하나 양이 있어서 즐겁게 보냈어요.”
“와, 박사님이 이런 말을 해주다니! 기념할 만 한 날인데요?”

아이가 개구지게 웃으며 식사를 권했다. 앙겔라가 우려했던, 고백 타이밍을 살피는 분위기는 없었다. 앙겔라는 천천히 음식을 맛보기 시작했다. 아이 혼자 애써서 만든 음식인 만큼 맛의 깊이가 평소보다 깊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이는 요즘 보는 TV프로그램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고, 요 한 달 동안 아이의 옆에서 강제로 동반 시청을 했던 앙겔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기에 대화에 부담은 없었다.

아이는 계속 신이 나 있었다. 평소에도 잘 웃긴 했지만 오늘따라 특히 그랬다. 전채 요리에서 이어진 앙트레를 먹고 메인요리가 나올 때 즈음 앙겔라는 문득 떠오른 의문을 입에 올렸다. 감기가 나으면 물어보려 했다가 이상하게 말을 꺼낼 타이밍을 찾지 못해 묻기 어려웠던 의문이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대답해 줄 수 있어요?”
“네, 물론이죠. 뭐든지 물어보세요.”
“하나 양이 전에 말했던, 사는 게 심심했다는 소리 말이에요. 지금의 하나 양을 보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말인데, 정말 그랬나요?”

아이는 동그랗게 눈을 뜨더니 기억을 더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아, 하는 소리를 냈다.

“박사님 감기 걸리셨을 때 했던 말말이죠?”
“네.”
“아, 그냥 창피한 이야기인데.”

아이가 부끄럽다는 듯 웃더니 앙겔라의 잔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샴페인을 따라주며 입을 열었다.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제가 좀 풍족하게 태어났어요. 돈이든, 머리든, 외모든. 아, 마지막은 웃으라고 한 소리니까 웃으셔도 돼요.”

앙겔라는 웃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아이의 말 대로였다. 집이 잘 살았고, 공부를 따로 안 해도 성적은 평균을 상회했으며, 예쁘장한 외모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모으곤 했으니까.

“배경도 좋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게 친절하게 대해줬죠. 어릴 때는 그게 마냥 좋았는데, 중학생 정도 되니까 뭔가 괴리감이 느껴지는 거예요. 앞에서는 웃으면서 뒤에서는 시기하는 사람들도 많고, 부족한 것 없이 산다고 몰래 욕하는 사람도 있고. 어느 날 곰곰이 생각해보니 친구는 많았지만, 진짜 친하다는 친구는 한 명도 없더라고요. 제 주위에는 죄다 겉모습만 보는 사람들 투성이라는 걸 깨달으니 모든 게 재미없어졌어요. 갑자기 학교 적응을 못하니 부모님이 어학연수를 핑계로 미국에 보내셨죠.”

앙겔라는 잘 듣고 있다는 표시로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학연수로 간 곳은 그런 경향이 더 심했어요. 누구는 어디 집안, 누구는 어디 학교 출신, 뭐 이런 거. 그땐 제가 삐뚤어져 있어서 그런지, 죄다 시시한 사람들뿐인 것 같았죠. 연수원에서도 적응을 못해서 방황하는데, 그 때 홈스테이 했던 집주인 아줌마가 제가 요리에 관심 있는 걸 알고서 배워보라고 하더라고요. 제대로 배워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재밌던데요. 게다가 요리에는 제 배경 같은 건 다 필요 없고 오직 맛으로만 평가 받으니까 더 마음에 들었죠.”

그렇게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하게 된 거였구나. 앙겔라는 구김 없어 보이는 아이의 의외의 면에 놀라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한국에 들어왔는데, 몰두할만한 취미는 생겼지만 그렇다고 주변 환경이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요리에 정 붙이면서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환경이 바뀌길 기대했는데, 거기서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그냥 따분한 마음으로 살게 됐죠. 그 뒤로는 박사님이 아시는 대로예요. 담배 피다가 박사님한테 야단맞아서 반하게 된 거.”

아이가 키득키득 웃었지만 앙겔라는 웃지 못했다. 그렇게 주변에 마음을 열지 않고 살아가던 아이가 제 한 번뿐인 변덕에 마음을 열고 다가왔다는 점에 마음이 쓰라렸다.

“방황기가 길었네요.”
“네, 몇 년 됐으니까요. 아마 박사님하고 만나지 않았으면 지금도 그랬을 걸요. 그래서 전 박사님이랑 만나게 되어서 정말 좋아요.”

아이의 때 묻지 않은 진심이 눈부셨다. 앙겔라는 마음이 잔잔하게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마음이 간질간질하면서도 따뜻했다.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 전, 아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박사님은 그저 변덕이라고 하셨지만, 그게 제 방황기를 끝내게 된 계기가 된 건 사실이잖아요. 그러니까 전 앞으로도 박사님이랑 오래오래 같이 있고 싶어요.”

예상치 못했던 타이밍에 치고 들어오는 말에 앙겔라의 손이 멈췄다. 푸아그라를 향해 뻗고 있던 포크가 허공을 배회했다. 아이는 그런 앙겔라를 보더니 곤란한 듯 웃었다.

“아, 원래 이런 식으로 말할 건 아니었는데. 괜찮아요, 박사님. 대답 안 하셔도 돼요. 그냥 제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니깐요.”

그러나 한 번 들어버린 진심은 앙겔라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토록 맛있게 먹고 있던 만찬의 맛마저 잘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맛으로 식사를 마쳤는지도 몰랐다. 앙겔라의 머릿속에는 아이가 했던 말만이 계속해서 맴돌고 있었다.

식사를 끝낸 뒤 아이는 앙겔라를 제 방으로 데려갔다. 깔끔하게 청소된 방 침대에 앙겔라를 앉히곤, 책장에서 제 앨범을 꺼내 침대 위에 펼쳤다.

“전에 박사님이 앨범 보여주셨으니까, 이번엔 제 앨범 보여드릴게요.”
“…그래요.”

머릿속이 복잡하긴 했지만 아이의 사진이라고 하니 관심이 갔다. 앨범이 펼쳐진 첫 장을 보자 앙겔라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눈이 동글동글한 귀여운 갓난아기가 제 덩치보다 더 큰 토끼인형을 꽉 끌어안고 있는 사진이었다.

“언제적 사진이에요? 정말 귀엽네요.”
“100일 사진이래요. 토끼 인형은 사진관 소품이었는데 제가 안고서 안 놓는 바람에 돈 주고 사왔다고 들었어요.”
“이 사진에도 그 토끼인형이 있네요. 아, 여기에도.”
“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진 어딜 가나 끌어안고 다녔대요. 그래서 어릴 때 사진 보면 대부분 그 인형이 찍혀져 있어요.”

앙겔라는 아이의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앨범을 넘겼다. 사진 같은 거, 그냥 기록 보존용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아이의 성장 스토리와 같이 들으니 이처럼 흥미진진한 것이 없었다. 앨범을 다 보았을 때는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얼마나 집중해서 봤는지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다는 점에 놀랐을 정도였다.

“박사님, 영화 보실래요? DVD가 좀 있는데.”
“그래요, 그럼.”

앙겔라는 아이를 따라 거실로 향했다. 책으로 가득 찬 제 집 거실과는 달리 거실에는 커다란 스크린TV와 오디오가 놓여 있었다. 마치 홈시어터 같았다.

“영화 좋아하나봐요?”
“그런 편이에요. 많이 보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작품은 여러 번 돌려보거든요. 이 중에서 뭐 보고 싶은 거 있으세요?”

앙겔라는 아이가 가리키는 DVD 목록을 쭉 훑다가 타이타닉을 골랐다. 한번 본 적 있지만 다시 봐도 좋을 것 같았다. 아이도 별 말 없이 DVD를 틀었다.

*

영화를 보는 도중 몇 번인가 아이의 시선을 느꼈다. 앙겔라는 눈으로는 영화를 보고 있었지만 머리로는 생각이 많았다. 아까 봤던 아이의 사진들도 생각났고, 아이가 식사하며 말했던 방황기의 이야기나 거기에서 이어진 고백 같았던 말도 생각이 났다. 몇 번이나 그 말을 곱씹었다. 이브인 오늘 어떻게든 결판이 날 것 같았다.

문득 앙겔라는 제 나이를 생각하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해서, 10년만 젊었으면 앞뒤 생각할 것 없이 아이의 고백을 받아들였을 터였다. 그만큼 아이는 앙겔라에게 진실하게 다가왔고 한결같이 배려했다. 그 정성에 마침내 앙겔라도 어느새 물들어 있었다. 이런 아이를 제 생애에 다시 만날 것 같지가 않았다. 솔직히 욕심이 났다.

하지만 저는 27살의 앙겔라가 아닌 37살의 앙겔라였고, 대학 병원 외과 과장이었으며 한때나마 아이의 선생님이었다. 앙겔라는 제 마음을 인정하는 것과 동시에 너무 많은 장애물이 있음을 인지했다. 아이를 생각했을 땐 기분이 좋아졌다가,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서 생각했을 땐 기분이 가라앉다가를 반복했다. 앙겔라 생애에 처음으로 겪는 극심한 감정변화였다.

오락가락하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킨 앙겔라는 곧 침착을 되찾고 시야를 넓게 가져보려 했다. 아이를 거절하면 어떻게 될까. 저로 인해 오랜 방황기를 끝냈다던 아이가 다시 삐뚤어질 수도 있다는 걱정이 떠올랐다. 반면에 속이 쓰리긴 하겠지만, 앙겔라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대로 선을 긋고 살아가면 그럭저럭 살아는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한 번도 제 선 안에 이렇게 가까이 사람을 들여 본 적이 없었던지라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속물적인 이야기지만, 근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완전히 길들여진 제 입맛이 인스턴트식품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이를 받아들였을 때는?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사람들의 이목이었다. 18살이나 차이나는 연인 사이. 애초에 남의 이목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던 앙겔라는 어느 정도 귀찮아지겠지만 무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이가 걱정이었다. 부모가 알게 되었을 때 반대도 극심할 것 같았다. 외동딸이 여자를, 그것도 18살이나 많은 여자를 만난다고 생각하면 뒷목 잡고 쓰러질 일이었다. 그리고… 그 외의 문제는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앙겔라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머릿속에서 '받아들인다'와 '거절한다'는 선택지가 맹렬하게 다투고 있었다. 1년 전의 자신이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었다. 세상에, 18살이나 어린 여자 애인이라니! 하지만 그 자리에 아이를 올려놓고 생각해 보면 이상하게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숨만 푹푹 쉬는데 아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어디 안 좋으세요, 박사님?”
“아뇨… 생각할 게 좀 많네요.”

아이는 그 생각할 거리가 자신이라는 것을 눈치 챈 듯, 입술만 달싹이다가 다시 영화로 시선을 돌렸다. 얼핏 긴장한 아이의 옆얼굴이 앙겔라의 눈에 들어왔다. 서로가 서로의 속내를 빤히 아는데도 조심스럽게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 조금 우습게 느껴졌다. 서른일곱이나 먹어선……. 앙겔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결국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채 스크린이 꺼졌다. 아이는 부엌에서 카나페와 와인을 가져왔다. 건네받은 와인잔을 손에 들며 앙겔라는 머릿속을 정리했다. 18살이나 어린 애한테 먼저 시작하라고 하기에는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제 일 아니면 관심이 없었어요.”

아이가 앙겔라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앙겔라는 손에 든 와인잔에만 시선을 주며 말을 이었다.

“머리는 좋은 편이었고, 공부도 썩 잘하다보니 의대를 갔죠. 배우는 게 힘들긴 했지만 보람 있고 재밌더라고요. 새로운 수술 방법을 연구하거나 아직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은 병에 대해 연구하는 것도 좋았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이름이 좀 알려진 상태가 되더군요. 많은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고, 그 중에서 가장 대우가 좋은 선택지를 고르다보니 한국에 오게 됐어요.”
“좋은 선택이었네요.”
“맞아요, 좋은 선택이었죠.”

앙겔라가 수긍하자 아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정면으로 보지 않아도 그 변화가 눈에 똑똑히 들어오는 바람에 앙겔라는 조금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한국에 온 당시에는 불만이 많았어요. 새로운 환경에도 적응해야 했고,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았던 한국어도 제대로 다시 배워야 했으니까요. 게다가 외과 과장 자리에 외국인을, 그것도 여자를 앉혀 놓으니 얼마나 견제가 심하던지…….”

피식 웃는 앙겔라에게 아이가 염려스러운 눈빛을 보내왔다.

“자존심 때문에 버텼어요. 무시하는 인간들의 콧대를 꺾어주고 싶었거든요. 원래도 주위 일에 관심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귀찮은 구설수에 휘말릴까봐 일 외에는 일절 눈길도 주지 않고 달려왔죠. 주위가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고 느꼈을 때는 의국 내에서도 인정받고 있었고, 그래서 좀 쉬면서 미뤄뒀던 논문이나 쓸 겸 보건의 자리를 수락했어요.”
“제가 박사님이랑 만날 수 있던 건 타이밍이 좋았던 덕이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아니었다면 아이와 만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앙겔라는 집과 병원만을 오갔을 테고, 아이는 계속해서 방황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앙겔라는 새삼 운이 좋았다고 느꼈다. 절로 입이 열렸다.

“하나 양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박사님…….”
“하지만 그것과 하나 양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건 별개의 이야기예요.”

본론에 들어간 것을 알아차린 건지 풀어졌던 아이의 얼굴이 재차 굳기 시작했다. 앙겔라는 와인잔에서 시선을 거두고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눈동자에 자신이 담겨 있었다.
제게로 온통 쏠려있는 아이의 감각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앙겔라는 점점 기우는 제 마음을 느꼈다.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고 싶었다.

“하나 양, 현실적으로 생각해봐요. 18살이나 나이가 많은, 그것도 여자를 좋아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알아요.”
“아뇨, 상상하는 것과 실제 체험하는 것은 달라요. 하나 양은 아직 사회를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젊은 패기라고 할 수 있죠. 한 때의 실수로 평생 후회하고 싶지 않으면 하려고 하는 말, 하지 말아요.”

차갑게 말하는 앙겔라에게 아이가 의연하려 애를 쓰며 입을 열었다.

“어리다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에요. 저도 고민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그냥 호기심이라고 생각했는데 박사님이 계속 생각나고, 나 좀 봐줬으면 좋겠고, 옆에 다가가고 싶고……. 그러다가 좋아한다고 인정했어요. 처음엔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박사님 말대로 18살이나 많은 여자를 좋아하는 거니까. 아직 학생인 나한테는 너무 버거운 일이잖아요. 그런데 자기 전에는 수없이 고민하다가도 아침이 되면 박사님이 보고 싶고, 말 걸고 싶고, 옆에 있고 싶고…….”

앙갤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이는 눈을 떼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일단 부딪쳐보자고 생각했어요. 계속 깨지다보면 박사님을 좋아하는 마음이 식을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박사님이 점점 곁을 줬잖아요. 점점 내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눈도 마주쳐주고, 내가 좋아하는 사탕도 쥐어주고 박사님 집에 오래 있게 해주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점점 더 좋아졌는데,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같이 있고 싶어졌는데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세요? 박사님도 저 좋아하잖아요. 거짓말하려고 하지 말아요. 내가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바보는 아니니까!”

아이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것을 보고 앙겔라는 흠칫했다. 낭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마음이 이렇게 깊어진 데에는 자신의 책임도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물기 어린 눈을 보니 아까 아이의 고백 비슷한 말 때문에 미처 이름 붙이지 못했던 감정이 다시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앙겔라는 그 감정에 연민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었다. …그러나 아닌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럴 수 없었다.

용기를 내야 할 때인 것 같았다. 이 이상 아이 혼자 애쓰게 둘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앙겔라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가 그 한숨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중에 가서 후회할지도 몰라요.”
“안 해요.”
“앞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하더라도 박사님을 좋아한 걸 후회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아이의 말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때 묻지 않은 젊음의 패기라고 느끼면서도 앙겔라는 그 목소리를 한번 믿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저 병원 복직하면 바빠서 같이 있을 시간이 별로 없을 텐데, 괜찮겠어요?”
“괜찮아요. 저도 재수하느라 바쁠 텐데요. 집에서 쉴 때 같이 있으면 되죠.”
“…의사 정말로 되려고요?”
“그래야 박사님이랑 계속 같이 있을 수 있잖아요.”
“이런 일로 진로를 정하는 건 조금 성급한 결정 같은데…….”
“어차피 수시 넣은 대학은 별로 가고 싶은 곳도 아니었어요. 대충 성적 맞춰서 넣은 곳이라서.”

아이가 아직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웃었다. 앙겔라는 손을 뻗어 아이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결정은 이미 내렸다. 이제는 진심을 보여야 할 때였다.

“그래요, 그럼. 한번 잘 해봐요.”
“…무슨 계약하세요? 되게 사무적이야.”
“미안해요, 원래 말투가 이래놔서.”
“됐어요, 그런 점도 좋아하니까.”
“취향 참 특이하네요.”
“안 그래도 그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앙겔라와 아이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가슴이 후련했다. 앞 일이 어찌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에 충실하자고 생각했다.
그저 지금은 아이가 내민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앙겔라는 제 손에 쥐어진 따뜻한 온기에 미소 지었다.




끝.




진심 최선을 다해서 씀. 이거 첫편이 지름작이라 진짜 아무생각없이 썼다가 수습하느라고...
아마도 다음 편에 너네들 좋아하는 키스 나올 거라고 생각해...
근데 이 편 쓰고 기력 고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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