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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하나메르하나 - 길들이기 번외 : 질투

ㅇㅇ(223.33) 2017.08.06 21:33:45
조회 2982 추천 60 댓글 17
														

건조한 메르시가 보고 싶어 쓴 글 - 번외 : 질투






강의실 안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앙겔라의 높낮이 없는 목소리만 울려 퍼졌고, 칠판에 적힌 강의 내용을 받아쓰는 소리만 어렴풋이 깔렸다. 얼굴 표정과 어조는 평소와 똑같은데, 분위기가 사뭇 살벌해서 어느 누구도 수업 내용에 대해 질문하지 못했다. 평소라면 시답잖은 질문이라도 만들어내서 '그' 앙겔라 치글러 교수의 눈길을 받아보려 애썼을 학생들마저도 오늘은 조용했다. 눈만 마주치면 리포트 다발과 F를 거침없이 던져줄 것 같은 분위기에 다들 몸을 사렸다.

눈으로는 칠판을 보고 입으로는 강의를 하고 있었지만, 앙겔라의 머릿속은 아침에 있던 일들을 곱씹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려,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의 말을 꺼낸 제 자신을 없애버리고 싶었다.

*

아이가 MT에 가고 싶다고 했다.
앙겔라는 속으로 온갖 욕지기를 내뱉었다. 아이를 향해서가 아닌, MT를 주도하는 학생회를 향한 욕이었다.

앙겔라보다 무려 18살이나 어린, 만 21세의 파릇파릇한 연인은 누가 봐도 눈길을 잡아 끌 정도로 예뻤다. 특히 앙겔라에게는 그 정도가 더없이 심했는데, 너무 예뻐서 품안에만 넣고 싶어한 나머지 남자들이 우글우글 대는 새내기모임에도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아 바쁜 주말을 쪼개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을 정도였다.

덕분에 아이는 아는 사람이 없어 학기 초에 고생을 좀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앙겔라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다. 이번 학년 새내기들은 남자가 80%에 달했는데, 얼마 없는 여자애들끼리 친해질 기회를 제 질투 때문에 날려버렸으니 할 말이 없었다. 아이는 앙겔라와의 제주도 여행이 더 가고 싶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은 사실이었다.

다행히 얼마 후, 말을 튼 여학생이 있어 같이 다닌다고 했다. 아이의 구김살 없이 밝고 긍정적인 성격 덕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앙겔라의 죄책감이 조금 가라앉았다. 하지만 앙겔라는 그것으로 끝이 나지 않을 거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MT라는 폭탄이 터진 것이다.
아이는 학과 동기들과 친해지기 위해 MT에 가고 싶어 했고, 앙겔라는 금요일에 수술 일정이 잡혀 있어 또다시 여행을 빌미 삼을 수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제 눈치를 살피며 MT에 가고 싶다는 말을 꺼낸 어린 연인에게 앙겔라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웃으며 허락하는 것밖엔 없었다.

*

망할 학생회 같으니. 수업 내내 학생회에 대한 온갖 저주의 말을 왼 앙겔라는 수업이 끝난 직후 곧바로 교수실로 향했다. 새삼 교직을 맡은 것이 후회되었다.

아이는 1년의 재수 끝에 앙겔라가 몸담고 있는 대학 의대에 입학했다. 1년간 성실하게 공부한 끝에 얻어낸 결실이었다. 이제 앙겔라를 더 가까이이서 볼 수 있겠다며 좋아하는 아이를 그녀는 미소 띤 얼굴로 받아주었다. 마침 1년간 교수직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차였기에, 아이와 학교에서 마주칠 일이 많겠다 싶었다. 그때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곧 걱정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입학 전부터 교수들 사이에서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예쁜 외모와 좋은 성적 때문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조교들의 입에서, 재학생들이 새내기 모임에 나타날 아이를 노리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 결과 앙겔라는 급히 아이와의 제주도 여행을 꾸렸던 것이다. 하지만 MT만은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가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의 대학생활을 망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다면 괜찮았을지도 몰랐다. 그저 아이가 대학 생활을 잘 즐기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말았을 테니까. 그러나 내버려둬도 혼자 잘 떠드는 조교가 하는 말들은 앙겔라의 심기를 너무나도 불편하게 했다. 아이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같은 대학에 다니는 고교 동창의 입에서 나온 아이에 대한 정보가 이미 학과 내에 퍼져 있었다. 대기업 이사인 부모, 차석 입학, 예쁜 외모와 밝은 성격. 여기에 MT에 가서 발휘될 아이의 요리 실력을 생각하니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앙겔라는 깊게 심호흡하며 심기를 가라앉히려 애를 썼다.

아이는 겨우 2년 만에 앙겔라를 바꿔놓았다. 아이와 관련되지 않은 부분에서는 여전히 드라이한 앙겔라 치글러 박사였지만, 아이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그저 어린 연인이 예뻐 죽는 팔불출에 지나지 않았다. 대놓고 우쭈쭈하는 일은 없었지만, 예전의 성격과 비교하면 놀랄 일었다.

“박사님, 수업 잘 했어요?”

교수실에는 아이가 와 있었다. 앙겔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려 애를 쓰며 아이의 포옹을 받았다. 밖에서는 웬만해선 아는 체도 하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둘만 있을 때는 평소처럼 지내기로 했었다.

“하나, 공강이에요? 오늘 수업 많은 걸로 아는데.”
“교수님이 휴강하셨어요. 보강은 나중에 한대요. 선배들 말 들어보니까 중간고사 직전에 몰아서 보강 하는 타입이라고 하더라구요.”

앙겔라는 아이가 휴강을 해서 저를 찾아온 것보다 그 말을 해준 '선배들'에 대한 것들이 더 신경 쓰였다. 그 선배들이 제 수업을 듣는지 안 듣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듣는다면 쓸데없는 곳에 관심 보이지 않도록 리포트 다발을 선물해주리라 마음먹었다.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아이는 앙겔라의 왼손을 만지작거리며 방긋 웃었다. 앙겔라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는 밋밋한 금반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이와의 커플링이었다. 아이는 앙겔라가 수술할 때 거추장스럽지 않게 아무런 특징 없는 금반지를 커플링으로 골랐다. 앙겔라도 그런 아이의 배려를 받아들였다. 거기에는 나중에 병원에서 마주할 때 남들이 한눈에 알아보지 못할 거라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아, 맞다. 이거 물어보려고 왔는데. 박사님, 혹시 MT가세요?”
“저는 금요일에 수술이 잡혀 있어요. 못 갈 것 같네요.”
“아, 아쉽다. 다른 교수님들은 온다고 해서 박사님도 오실 수 있는 줄 알았어요.”

아이가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니 아침부터 뒤틀렸던 속이 살살 풀리는 것 같았다. 앙겔라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술이 빨리 끝나면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기대는 하지 말아요.”
“네-. 그래도 오셨으면 좋겠어요. 박사님이랑 2박 3일 동안 어떻게 떨어져 있어요.”

하마터면 한숨을 내쉬는 아이에게 그럼 MT를 가지 말라고 할 뻔 했다. 앙겔라는 입술을 깨물고서 제 자신을 탓했다. 아이는 이제 겨우 1학년이었다. 가뜩이나 동기들보다 두 살이 더 많아서 신경 쓰이는 판국에 더 사이를 벌려놓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학교 강의는 어때요? 들을 만 해요?”
“고등학교 때 배웠던 거랑 수준이 달라서 적응하는 데 좀 걸릴 것 같아요. 그래도 선배들 말로는 아직 예과 1학년이라 널널한 편이라고 하더라구요.”
“…선배들이요?”
“네, 여기 오기 전에 학과 사무실 들렀는데 거기 있던 선배들이 알려주더라고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아이의 말에 앙겔라는 '학과 사무실'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앞으로는 자주 학과 사무실에 들르는 학생들을 스캐닝 해야 할 것 같았다. 아이가 재수학원에 다닐 때는 이정도로 신경 쓸 일이 없었는데, 한 공간에 있다 보니 별 게 다 신경 쓰였다.

아이는 앙겔라의 손을 붙잡은 채로 한참 이야기를 하다 수업을 들으러 갔다. 앙겔라는 텅 비어버린 듯한 교수실을 둘러보다 책상 앞에 앉았다. 아이가 떠난 것만으로 모든 의욕이 절반으로 줄어든 듯한 느낌이었다.

*

드디어 2박 3일 MT를 시작하는 목요일 아침이 되었다.
앙겔라는 현관 앞에서 한참 동안 저를 끌어안는 아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사귄 이후 처음으로 떨어져 있게 됐다고 생각하자 앙겔라의 속도 편치 않았다.

“박사님, 연락 자주 할게요.”
“그래요,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요.”
“네-. 밤에 전화할게요.”

아이가 대답하며 앙겔라에게 입을 맞췄다. 앙겔라는 그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이를 먼저 보내고 병원으로 출근하며 앙겔라는 자꾸만 가라앉는 마음을 추스르려 애썼다. 아이는 그저 학과 행사에 참여한 것뿐이었다. 아이와의 사이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작년 6월 이후 사이가 깊어졌으면 깊어졌지, 꼬이거나 틀어진 적도 없었다. 하지만 자꾸 걱정이 됐다. 아이의 수많은 장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지는 걸 반복하는 사이에 병원에 도착했다. 정신을 차릴 시간이었다.


오전부터 수술이 잡혀 있었다. 점심이 조금 넘은 시간에 수술을 끝내고 앙겔라는 병원 앞 샌드위치 가게로 향했다. 별 맛 없는 샌드위치를 기계적으로 씹으며 아이에게서 온 연락을 살폈다. 강원도로 2박 3일 MT를 떠난지라 차로 이동하고 했다는 것 외엔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잠시 있자 아이는 펜션을 배경삼아 예쁘게 웃으며 이제 막 도착했다는 셀카를 남겼다. 앙겔라는 사진을 저장했다.

오후에는 진료를 했다. 사이사이 앙겔라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살면서 이렇게나 자주 휴대폰을 들여다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아이는 계속 연락을 해왔다. 짐을 풀고 점심 식사-가위 바위 보를 해서 아이는 내일 아침을 담당하게 됐다고 했다-를 한 뒤 4륜 오토바이를 타러 간다고 했다. 앙겔라는 꼭 안전장비를 잘 착용하라고 답을 보냈다.

하루가 몹시 길었다. 앙겔라는 퇴근하는 길에 대학에 들러서 집에서 읽을 논문을 챙겨왔다. 차를 몰아 아파트에 도착해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에 들어서자 썰렁한 공기가 앙겔라를 맞았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이가 MT를 가기 전에 해놓은 반찬으로 저녁을 먹으니 그나마 기분이 나아져, 아이와 함께 앉곤 했던 소파로 가서 논문을 읽기 시작했다. 9시를 넘어가는 시점에서 휴대폰 알람이 떴다. 얼른 확인해보니 내일 수술에 대한 문자여서 앙겔라는 대충 읽고 휴대폰을 던져놓았다. 또다시 알람이 울렸다. 이번에는 아이에게서였다.

[박사님 저녁은 잘 드셨어요?]
[지금부터 술 마신대요.]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된다는데 분위기는 전혀 아닌 것 같아요 ㅠㅠ]

앙겔라는 내일 잡힌 수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같이 갔으면 아이에게 술을 억지로 마시지 못하도록 감시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서울에 있는 앙겔라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저녁 잘 먹었다는 말과 술은 되도록 적게 마시라는 말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그 뒤로는 논문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에게 술을 먹이려고 혈안이 되었을 상황만 눈에 떠올랐다. 1분에 한 번씩 휴대폰을 쳐다보다가 앙겔라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곤 헛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아이가 저를 아이에게 길들인 게 맞는 모양이었다.

어려서부터 요리를 하며 술을 접한 아이는 술에 약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세지도 않았다. 소주 1병 정도가 아이의 주량이었다. MT에 대해 잘은 몰라도 그보다는 많이 마시게 할 것 같았다. 앙겔라는 MT 술문화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온갖 사건 사고에 대한 뉴스만 주르륵 떴다. 앙겔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전화 해볼까? 아니, 아이가 전화한다고 했으니 기다리는 게 맞는 것 같은데. 게다가 아무 일도 없으면 괜히 술자리 분위기 깨는 것 같고…….
결국 휴대폰을 손에 꼭 쥔 채 논문을 읽기로 했다. 당연히 눈에 글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앙겔라는 내일 수술이 밤 12시에 끝나더라도 반드시 강원도로 달려가리라 결심했다.

속이 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기다리기를 한참, 12시가 다 된 시간에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앙겔라는 1콜이 다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하나?”
- 네~ 박사님. 아직 주무시는 거 아니죠?”

보통 때도 12시에 잠을 청했으니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아이의 혀는 조금 꼬여있었으나 정신은 또렷한 것 같았다. 앙겔라는 9시부터 계속 아이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고는 할 수 없어 그냥 그렇다고만 대답했다.

“술 많이 마셨어요?”
- 음~ 조금 많이 마신 것 같아요. 사실 좀 어지러워요.
“어디 앉아서 전화하는 거 맞죠?”
- 아뇨, 술 좀 깰 겸 밖에 나왔어요.
“지금 바람이 찰 텐데……. 들어가 있어요.”
- 싫어요. 박사님하고 이야기 할래요. 오늘 낮부터 계속 박사님 얼굴도 못 보고 목소리도 못 듣고…….

아이는 한참이나 종알종알 대며 앙겔라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앙겔라는 틈틈이 벽시계를 확인하며 아이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초조했던 마음이 아이와의 통화에 스르륵 풀리는 걸 느끼고 있는데, 갑자기 굵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 송하나, 누구랑 전화해?
- 아, 선배님.
- 응? 전화 오래 하는 것 같은데. 누구야?

앙겔라의 눈에서 불꽃이 튀겼다. 누구랑 통화하든 무슨 상관인데? 욕지기가 새어나왔으나 아이가 듣고있을까봐 꾹 참았다. 아이가 대답했다.

- 애인이요.
- ……애인?
- 네. 엄청 엄청 사랑하는 애인이랑 통화중인데요.
- 아… 그래…….

아이가 힘을 주어 대답하자 곧 문소리가 들리더니 주위가 조용해졌다. 아이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 박사님, 왜들 그렇게 남의 연애사에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어요.

앙겔라는 그 한 문장에서 여러 뜻을 읽어냈다. 아이는 술을 마시면서 계속해서 애인에 대해 추궁당한 모양이었다. 평소에도 커플링을 끼고 다니며 누가 애인 있냐고 물으면 있다고 꼬박꼬박 대답하는 아이였기에 학과에 아이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소문은 진작에 퍼져 있었다. 그런데 도통 그 애인이 모습을 드러내질 않으니 거짓말 아니냐는 말도 나오는 중이었다. 모든 정보를 말 많은 조교에게서 전해듣던 앙겔라는 심사가 불편해졌지만 달리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 그냥 예쁘게 잘 사귀고 있는데……. 그쵸? 박사님도 나 좋아하죠?
“그럼요.”
- 많이 좋아하는 거 맞죠?
“네.”

아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간지러운 말은 입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아이는 그 짧은 말로도 기분이 상당히 좋아진 것 같았다.

- 사실 동기랑 친해져서 좋기는 한데 MT에 꼭 와야했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왜요, 누가 귀찮게 해요?”
- 음…….

아이가 말을 고르는 기색이 전해졌다. 누가 많이 귀찮게 하는 모양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니 앙겔라가 걱정할 것 같고, 거짓말을 하는 건 싫으니 망설이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앙겔라가 말했다.

“내일 강원도로 갈게요.”
- 어? 진짜요? 진짜로요?
“네, 그러니까 전화 어서 끊고 자러 가요.”
- 진짜 진짜죠?
“수술 끝나면 바로 출발할게요.

아이가 전화 너머에서 몹시 좋아하는 소리가 들렸다. 앙겔라는 기분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아이를 달래 전화를 끊었다. 12시 30분, 아이도 앙겔라도 자야 할 시간이었다.

침대로 가서 누웠다. 요즘은 거의 매일같이 아이와 같이 잠이 들었기 때문에 한쪽이 빈 침대가 몹시 낯설었다.
앙겔라는 기다란 한숨을 내쉬며 몸을 뒤척였다. 잠이 쉬이 올 것 같지 않았다.

*

목요일보다 더 시간이 느리게 가는 금요일이었다.
병원으로 출근해 수술 준비를 하는데 아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콩나물 해장국 사진이 찍혀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음식을 한 모양이었다.

[한다고 했는데 재료가 별로 없어서 맛은 그저 그래요 ㅠㅠ]

앙겔라는 그래도 맛있어 보인다고 답장한 뒤 다시 수술 준비를 했다. 아이의 요리 실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안 그래도 인기가 많은데 여기에 끝내주는 요리 실력까지 더해지면 제 마음고생이 더 심해질 것 같았다.


일찍 수술을 끝내려 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늦어졌다. 오후 5시가 다 되어 수술을 끝낸 앙겔라는 다음 일정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곧바로 차를 타고 강원도로 향했다. 조교에게 연락해서 주소를 물었다. 아이에게 물어봤어도 될 일이었지만, 뜬금없이 찾아가는 것보다 조교를 통해 알리는 게 나아보였기 때문이다.

마음은 급했지만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차가 많이 막혔다. 앙겔라는 초조하게 운전대를 두드려댔다. 차는 느릿느릿 서울을 빠져나갔다. 결국 펜션에 도착한 것은 9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치글러 교수님 오셨어요?”

마침 펜션 마당에 나와 있던 다른 조교가 알은체를 했다. 앙겔라는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아준 뒤 조교를 따라 아이가 있을 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도착한 곳은 교수들이 모여 있는 방이었다.

“치글러 교수잖아? 이거 웬 일이야. 못 온다지 않았나? 자자,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앉게, 앉아.”

나이 많은 노교수가 앙겔라를 반기며 술을 권했다. 앙겔라는 속으로 조교를 욕하며 자리에 앉았다. 평소라면 괜찮습니다, 한 마디로 거절했을 텐데 밤늦게 MT에 왔으면서 술도 안 마신다고 하면 이상해보일까봐 한 잔 받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면서 맛없는 샌드위치라도 먹어서 빈 속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교수들은 앙겔라의 참전에 신이 난 것 같았다. 술잔이 어지러이 오가는 가운데 앙겔라는 최대한 덜 마시려고 애를 썼다. 뭐가 예쁘다고 교수들의 술친구를 해줘야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앙겔라는 제 젊은 시절 이야기를 늘어놓는 노교수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날 타이밍을 찾았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즈음에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빠져나온 앙겔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 얼굴 한 번 보자고 강원도까지 와, 쓸데없는 술자리에 끼어서 술도 마셔, 밤 10시가 다 됐는데 아직까지 아이 털끝도 못 봐, 아무튼 일진이 좋지 않았다.

복도를 걷는데 문이 열리더니 평소 얼굴 보고 지내는 말 많은 조교가 앙겔라를 발견하고 호들갑스럽게 목소리를 높였다.

“어! 치글러 교수님! 웬 일이세요! 와, 못 오신다더니 오셨네. 들어오세요, 들어오세요.”

앙겔라가 엉거주춤 방으로 들어서자 여기저기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의대생들에게 있어 앙겔라는 거의 전설적인 인물로 보이는 게 틀림없었다. 앙겔라는 조교의 안내를 받아 걸음을 옮기며 방을 둘러보았다. 방 구석구석에 빈 술병이 가득인 것을 보아 술을 어지간히들 퍼마신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정신없는 와중에 앙겔라는 자신을 보고 싱긋 웃는 아이를 발견했다. 앙겔라의 마음이 그제서야 한결 놓였다.

“자자, 주목! 무려 서른 살에 외과 과장 자리에 오르신 앙겔라 치글러 교수님을 모시겠습니다! 박수!”

다시 한 번 환호성이 울렸다. 앙겔라는 난감했다. 그저 아이의 얼굴을 확인하려고 했을 뿐인데 어느새 또 술자리에 끼인 모양새가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의 상태가 생각보다 멀쩡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앙겔라의 참전으로 술자리는 두 패로 나뉘었다. 아직 뭐가 뭔지 몰라 그저 앙겔라가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는 예과 1학년들과 본과에 접어들어 실습에 나가는 학생들로 갈라졌다. 앙겔라는 이것저것 물어오는 학생들이 귀찮았지만, 제가 조금 귀찮음으로 인해서 아이가 제 동기들끼리만 편히 앉아 있을 수 있다면 이 정도는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습에 관해서 물어오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있는데 아이와 자꾸만 시선이 마주쳤다. 아이는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앙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묘한 분위기였지만 왜 그러냐고 물을 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살짝 눈웃음만 지어줬는데, 아이의 표정이 별로 좋지가 않았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건가? 걱정이 되는데 자리를 마음대로 이동할 수가 없어 속만 탔다.

본과 학생들은 앙겔라를 거의 우러러볼 수도 없는 존재 취급을 했다. 사실 인턴도 아닌 학생들에게 앙겔라는 구름 위에 있는 존재가 맞았다. 어떻게든 말을 붙여 한마디라도 더 조언을 듣기 위해 애를 쓰는 학생들을 상대해주느라 피곤했지만 앙겔라는 아이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꾹꾹 참았다. 결국 자리가 파한 것은 12시가 다 되어서였다.

아이가 멀쩡한 것을 확인한 후, 앙겔라는 조교의 안내를 받아 빈 방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운전을 한 데다가 잘 안 마시는 술까지 마셨으니 솔직히 피곤했다. 아이의 얼굴을 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잠자리가 익숙지 않아 곧바로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을 뒤척이는데 작게 노크 소리가 났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곧바로 문이 열리고 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박사님-.”

아이는 문을 닫고 들어와서 앙겔라에게 안겼다. 목요일 아침 이후로 약 37시간만의 포옹이었다. 따뜻하게 감겨드는 아이의 감촉이 정말 좋아서 앙겔라는 설핏 웃음 지었다.

“하나, 잘 지냈어요?”
“아뇨.”

당연히 잘 지냈다고 대답할 줄 알았던 앙겔라는 당황해서 불을 켜고 아이의 얼굴을 살피려 했다. 하지만 아이는 앙겔라의 품을 파고들 뿐 얼굴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무슨 일 있었어요?”
“네.”
“무슨 일인데요? 말해봐요.”

하지만 아이는 대답하지 않고 앙겔라를 안은 팔에 힘을 더할 뿐이었다. 앙겔라는 걱정스런 마음으로 아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한참 그러고 있는데 아이가 툭 말했다.

“박사님 아까 왜 그랬어요?”
“왜 그랬다뇨? 제가 뭐 잘못한 거 있나요?”
“선배들한테 친절하게 대한 거요.”
“……? 그게 왜요?”

그럼 거기에서 귀찮은 기색 다 내며 무시해야 했을까? 앙겔라는 의아한 마음으로 아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나한테는 처음부터 완전 무시했잖아요. 내가 인사해도 무시하고, 사탕 줘도 무시하고, 내가 요리해준다고 해도 무시하고.”
“그건…….”
“그리고 왜 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예쁘게 웃어줘요? 나는 박사님 웃는 얼굴 한번 보려고 그렇게 매달리고 매달려서 어쩌다 한 번씩 볼 수 있었는데.”
“하나…….”
“내가 그렇게 어렵게 박사님 마음 열었는데 왜 다른 사람한테는 그렇게 쉽게 웃어주고 친절하게 대해줘요? 박사님은 내 건데. 나만 봐줘야 하는데 다른 사람만 보고 있고. 나 진짜 박사님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는데 박사님은 별로 그런 것 같지도 않고, 나한테 먼저 문자도 안 보내고 전화도 안 하고 내가…….”

마지막 말은 거의 울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앙겔라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아이와 선을 긋고 지내던 때에 대해서 그 동안 언급을 안 하기에 별로 신경을 안 쓰는 줄 알았는데 마음속에 묻어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왜 그렇게 아이에게 무심하게 굴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이는 앙겔라가 돌아보지 않아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웃으며 다가왔었다. 그리고 마침내 37년간 열린 적 없던 앙겔라의 마음속 문을 열었다. 앙겔라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아이 외엔 마음속에 그 누구도 들여놓은 적이 없었다.

아이는 앙겔라의 품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소리죽여 울었지만 흐느끼는 울음이 고스란히 앙겔라의 심장에 전해져서 앙겔라도 살짝 눈물이 고일 정도였다. 뭐라고 말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목이 메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앙겔라는 품속의 아이를 그저 다독이기만 했다. 한참을 울던 아이의 울음이 좀 잦아들었을 때에야 겨우 목소리가 나왔다.

“하나, 내가 하나 말고 보긴 누굴 봐요. 네?”
“하지만… 아까…….”

아이가 울먹거리며 띄엄띄엄 말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앙겔라는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건 하나가 마음 편히 동기들이랑 술 마시라고 그런 거예요. 안 그러면 선배들이랑 불편하게 술 마셔야 하잖아요.”
“별로 안 불편했어요. 박사님이… 박사님이 막 그 사람들한테 웃어주고…….”
“웃은 건 하나 보고 웃은 거죠. 저 지금 하나 얼굴 한 번 보자고 수술 끝나고 바로 차 몰아서 여기 온 건데, 웃기는 누굴 보고 웃겠어요. 안 그래요?”
“막… 막 친절하게 대답해주고…….”
“그래야 그 사람들이 하나를 귀찮게 안 하죠. 하나, 선배들이 술 먹이려고 귀찮게 굴지 않았어요?”

아이는 말이 없었다. 그저 앙겔라의 품속에 얼굴을 비빌 뿐이었다. 앙겔라는 아이의 이마를 쓸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처음에… 하나한테 그렇게 대했던 거 정말 미안해요. 진작 사과했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을 못 했어요. 오랫동안 다른 사람들과 선을 긋고 지냈고, 누군가가 그 선에 닿는 것이 정말 싫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하나한테 그렇게 못되게 굴었어요. 진심으로 미안해요.”
“……괜찮아요.”

아이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분명 상처 많이 받았을 텐데도, 아이는 제게 유달리 약했다. 앙겔라도 그걸 알았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정말 미안해요.”
“괜찮아요… 술 취했나봐요. 박사님이 일부러 그런 거 아닌 거 아는데…….”
“또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없어요.”
“정말로요? 이번 기회에 다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없는 것 같아요.”

아이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앙겔라는 아이에게 팔베개를 해주며 자리에 누웠다. 아이가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박사님한테서 좋은 냄새 나요.”
“술 냄새 날 텐데…….”
“아니에요. 좋은 냄새 나는걸요.”

앙겔라는 아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속 깊고 어른스러운 줄 알았던 아이의 여린 모습이 눈에 선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천천히 마음을 적셔갔다. 아이가 품 속에서 웅얼거렸다.

“박사님 나 좋아하죠?”
“그럼요.”
“나랑 앞으로도 계속 같이 있을 거죠?”
“…그래요, 그럴 거예요.”

아이의 앞길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잠시 말이 막히긴 했지만 앙겔라는 똑바로 소리 내어 대답했다. 적어도 아이가 제 손을 잡고 있는 동안은, 결코 제가 손을 놓을 일은 없을 터였다.

“나도 박사님이 정말정말 좋아요. 나랑 오래오래 같이 있어줘요.”
“그럴게요.”

그제야 아이가 만족스러운 듯한 소리를 내고 몸에 힘을 뺐다. 앙겔라는 그런 아이의 등을 잠에 들 때까지 계속 쓰다듬었다. 계속, 계속.

*

이튿날 일어나보니 아이가 누워있던 자리가 비어있었다. 어느새 동기들이랑 자는 방으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앙겔라는 샤워를 한 뒤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 저 멀리에서 아이가 상을 차리는 것이 보였다. 아이는 앙겔라를 발견하고는 찡긋 윙크하며 웃어보였다. 앙겔라도 같이 웃었다.

“어, 교수님, 일어나셨어요?”
“네.”

어제 질문했던 학생들 중 한 명이 앙겔라에게 인사를 했다. 앙겔라는 어제와 달리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고 입을 다물었다. 강의 때도 원래 태도가 그랬기 때문에 본과 학생들은 그러려니 하는 모양이었지만, 예과 학생들은 어쩐지 앙겔라를 더욱 어렵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러든지 말든지 앙겔라는 자리에 앉아 식사를 했다. 아이가 요리한 것인지, 부대찌개일 뿐인데도 맛이 묘하게 깊었다.

“교수님, 진짜 맛있죠? 저기, 송하나라고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생이 끓인 건데 요리 솜씨가 장난 아니더라고요.”
“그러네요.”
“와, 진짜 누가 데려갈지 몰라도 복 받았다, 정말.”

누군가 한 말에 아이가 고개를 들어 앙겔라를 보았다. 앙겔라는 그 복 받은 사람이 저라는 걸 알아서 그냥 웃기만 했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오전에 펜션 근처를 한 바퀴 산책한 뒤 짐을 싸기로 했다.

앙겔라는 무리의 뒤에서 천천히 걸으며 앞서가는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동기들과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는데 제법 잘 녹아든 모양이었다. 한시름 놓였다. 앙겔라의 귀에 아이들이 대화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야, 남친 사진 있어? 좀 보여주라.”
“안 돼. 나만 볼 거야.”
“와- 아침부터 닭살 돋네. 얼마나 잘났기에 그렇게 숨겨만 놓냐?”
“어어엄청 잘났거든? 너네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아이의 말에 동기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아무튼 상상도 못할 상대긴 했다. 앙겔라는 뒤따라가며 슬쩍 웃음을 흘렸다.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그러나 곧 앙겔라의 귀는 쫑긋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야, 근데 너 조심해야겠더라. 동철 선배 알지? 그 선배가 너 남친 없는데 있는 척 하는 거라고 말하고 다니더라고.”
“애인 있다는데 웬 헛소리래?”
“네가 그렇게 꽁꽁 싸매고 안 보여주니까 그렇지. 아무튼 귀찮게 됐더라. 엄청 끈질긴 선배래.”
“아… 진짜.”

아이가 짜증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앙겔라는 동철이라는 이름을 곱씹었다. 출석을 부르는 중에 그런 이름이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이게 감히 누굴 넘봐? 앙겔라는 속으로 이를 갈며 그 학생에게 집중적으로 과제를 내어주기로 결심했다.


각자 짐을 챙기고 대절 버스에 올라탔다. 아이가 애타는 눈빛으로 앙겔라를 보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MT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 같이 돌아가는 게 맞았다. 앙겔라는 교수들과 그 자리에서 바로 헤어지고 혼자 서울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은 비교적 한산했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해서, 앙겔라는 학교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아이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핸드폰으로 메일을 체크하며 한참 일정을 짜고 있는데 보조석이 노크되었다. 아이가 창문 밖에서 웃고 있었다.

“어서 와요, 하나.”

아이는 말없이 차에 타더니 곧장 앙겔라의 얼굴을 붙잡고 키스를 퍼부었다. 앙겔라는 놀랐지만 곧 아이의 뒷머리를 살살 만져주며 보조를 맞췄다. 키스는 한참동안 이어졌다. 이윽고 아이가 만족했다는 듯 가르릉 소리를 내기에 앙겔라는 웃으며 얼굴을 떼어냈다.

“와! 박사님하고 키스하고 싶어서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저도 그래요.”
“진짜죠? 아, 기분 좋다. 그런데 MT가 이렇게 피곤한 건 줄 몰랐어요. 맨날 하는 거 없이 술만 마시게 하고.”

앙겔라는 차 시동을 켜며 미소 지었다.

“원래 MT는 술 마시는 자리래요.”
“동기들이랑 친해져서 좋긴 한데 다음부턴 안 가고 싶어요.”
“글쎄요, 의예과는 과모임에 빠지기 힘들 텐데.”
“아, 그런 건 싫은데. 박사님이랑 떨어져서 어떻게 보내요.”
“어쩔 수 없죠. 보고 싶으면 말해요. 이번처럼 갈 테니까.”

평소의 앙겔라답지 않게 달달한 말을 하자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재차 앙겔라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저도 이제 마음 표현 좀 해보려고요.”
“와, 진짜요? 진짜죠? 그럼 더 말해봐요. 저 좋아하죠? 그쵸?”
“그럼요, 아주 많이 사랑하죠.”

아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앙겔라는 귓가에 울리는 기분 좋은 소리에 미소 지었다. 아이와 함께 한 이후로 웃는 일이 아주 많이 늘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자각했다.

“오늘 기분도 좋은데 점심으로 뭐 먹을까요?”
“간단한 걸로 해요. 하나 피곤하잖아요.”
“그래도요.”
“간단히 먹고 가서 잠이나 자게요. 전 조금 피곤하거든요. 하나도 아직 피곤하죠?”
“네, 조금. 그럼 잔치국수 해먹고 낮잠 자요.”
“그래요. 그런데 왜 잔치국수예요?”
“잔치라도 벌이고 싶을 정도로 기분 좋으니까?”

아이가 또다시 웃는다. 앙겔라도 따라 웃었다.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끝.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내일부터 바빠져서 한동안 접속을 못 할 것 같습니다.
7월 22일에 우연히 하나메르 짤방을 보고 덕통사고가 나서 처음으로 글을 써봤는데, 생각보다 많이 좋아해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번외편에서는 메르시가 안달복달난 상황을 그리고 싶었는데 어째 하나가 더 초조해하는 상황이 되었네요.
다음 질투 이야기도 쓰고 싶은데 시간이 정말 없어서...ㅜㅜ
쓰고 싶은 이야기가 아직 많은데 아쉽습니다.
다시 한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 여름 시원하고 무탈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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