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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비가 오는 날

ㅇㅇ(121.167) 2020.05.15 14:57:45
조회 697 추천 12 댓글 5
														

꽤나 변덕스러운 날씨구나.


아침까지만 해도 쨍쨍한 햇살이 천방지축 날뛰며 사람들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었건만, 그 오누이 되는 구름에게 잔뜩 혼이 났는지 온데간데없이 모습을 감춰버렸다.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어 위를 바라보니 구름의 색깔이 시커멓다. 대체 동생 되는 놈에게 무슨 말을 들었고 무슨 말을 내뱉었기에 저리도 슬프게 울고 있는지.


슬쩍 창문 밖으로 손을 내뻗어 떨어지던 물방울을 잡아챘다. 서늘하게 느껴지는 한기는 동생에게 보내는 짜증과 분노일... 뭐라는 거야.


픽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물기를 털어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이게 문제다. 따지고 보면 물이랑 별 다를 바가 없는 것이 하늘에서 내린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홀리곤 하니까.


아직 가지 말아주오, 내 말을 들어주시오... 하늘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려온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정신이 나가버린 걸지도.


하, 가볍게 코웃음을 치면서 이쪽으로 길게 목을 빼고 탐욕스러운 눈길을 보내던 화분의 꽃을 창가로 밀어주자 게걸스레 빗물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가지 말라는 둥, 상담을 해달라는 둥 시끄러운 목소리가 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 뒤를 돌아보자,


황량하다.


작은 통나무 집에 놓인 의자 하나, 책상 하나, 침대 하나.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풍경임에도 새삼스레 그런 감상이 들었다. 


이래서 비가 오는 날은 싫다니까. 어울리지도 않게 감수성에 젖게 만들고.


터벅터벅 발을 옮겨 덩그러니 놓여 있던 나무 의자에 몸을 맡겼다. 허리에서 울려 퍼지는 뚜두둑 소리와 의자에서 흘러나온 삐이걱 소리가 기분 나쁜 합주곡을 연주했다.


옛날에는 비가 오건 말건 별로 신경도 안 썼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그랬었더라. 가만히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어 본다. 하루, 이틀... 나흘... 이레... 열흘... 연극에서 줄거리를 소개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기억의 단면들이 떠올랐다 사라지길 반복한 끝에,


아, 맞아.


맨 처음에 떠올랐지만 가장 마지막까지 남은 하나의 기억이 눈에 밟혔다. 거기서 비치는 광경은 너무나도 낯익은 것이었다.


그날이 계기였었지.


감았던 눈을 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황량했던 공간에 또 다른 풍경이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의자가 몇 개 더 생겨났다. 탁자는 지금 것을 두 개 붙인 것만큼 넓어졌다. 침대는 여전히 하나였지만, 그 크기만큼은 성인 남성 세 명이 누워도 될 만큼 커졌다.


집의 내부 구조도 바뀌기 시작했다.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오그라들었던 통나무가 새것처럼 빳빳해졌을 무렵,


[ ... ]


그다지 잘생기지도 않았고, 체격이 큰 것도 아닌, 지극히 평범하게 생긴 한 남자가 굳은 표정으로 거실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 ... ]


오들오들 떨고 있는 작은 소녀가 있었다. 몇 번째로 보는 광경일까. 몇 번째로 마주하는 광경일까.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소녀의 머리로 가져갔을 때,


[ ...주세요. ]


그녀는 그것을 거부하듯 도리질을 치면서 힘겹게 내뱉었다. 남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런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 돌려보내... 주세요. ]


입가에 웃음이 떠오른다. 쓴맛이 나는 웃음이. 손을 거두고 삐걱거리는 등받이에 더욱 깊숙이 몸을 파묻자,


[ 제발... 돌려보내... ]


[ 그건 안 돼. ]


남자의 얼굴에 기묘한 표정이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약간의 지루함과 어느 정도의 광기, 그리고 굉장한 자기혐오를 질료로 빚어낸, 담담함이라는 표정이.


[ 왜, 왜... 어째서...! ]


그런 남자의 표정을 본 소녀의 얼굴에도 표정이란 것이 떠올랐다. 약간의 슬픔, 어느 정도의 분노, 그리고 굉장한 양의 불안감을 뒤섞어 잘 구워낸 것 같은, 패닉이라는 말이 어울릴 표정이.


[ 나, 나는 아무런 잘못도... 잘못도 하지 않았어! 그냥 길을 걷고 있었을 뿐인데... 누가 갑자기 내 뒤, 뒤에서... ]


[ ... ]


소녀는 소리쳤다. 남자는 침묵했다. 소녀가 목이 쉬도록 고함을 질러댈 때, 남자는 목이 잠기도록 침묵을 지켰다. 그러길 한참.


[ 나느... 은... ]


소녀의 얼굴이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이 되었을 무렵에서야 남자는 손가락으로 소녀를 가리키더니,


[ 너는 노예다. ]


이런. 등받이에 기댔던 몸이 꼭두각시가 된 것처럼 제멋대로 비틀비틀 일어섰다. 이어 비척비척 걸어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서더니,


[ 나는 주인이다. ]


곧장 남자의 뺨을 향해 손바닥을 날렸다. 짜악 소리와 함께 멈춰 섰어야 할 손바닥은,


[ 그, 게... 대체 무슨 말... ]


부웅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르며 지나쳤다. 몸의 중심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탓에 몸이 반 바퀴 회전했고,


[ 꺄...! ]


목표를 잃은 손은 그대로 소녀의 뺨에 닿았다. 정확히는, 닿으려고 했다.


[ ...세 번 말 않는다. ]


그러나 그것보다 먼저 남자의 손이 소녀의 뺨을 후려쳤다. 소녀의 목이 팩 꺾이고, 소녀의 머리가 홱 돌아갔다.


[ 너는, 내 노예다. ]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런 고저 차도 없고, 아무런 온도도 느껴지지 않는 완벽할 정도로 무감정한 목소리가.


[ 나는, 네 주인이다. ]


소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그저 멍한 시선을 어딘가를 향해 보냈을 뿐.


[ 오늘은 이걸로 끝이다. ]


그런 소녀에게 남자의 무감정한 목소리가 얹어졌다. 그것을 기점으로 일그러졌던 풍경이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 ... ]


소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도 움직이지 않았다. 가장 먼저 집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이어서 주변 사물들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그다음으로 두 명의 몸이 사라졌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시야에 비친 것들은 완전히 원래대로 돌아왔고,


...쯧.


어느샌가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몇 번이나 봐도, 익숙해질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거지.


후들거리는 다리를 옮겨 창가로 다가섰다. 양껏 빗물을 받아마신 꽃잎에서 자르르 윤기가 흐르는 것을 바라보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가 그쳐 있었다. 


----------------------------------------


배경은 YM이고, 남자는 프로 조교사고, 소녀는 이름 없는 요정입니다.


아침부터 비가 오기 시작해서 문득 이런 설정으로 글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썼습니다. 그런데 결과물은 요 모양이네요.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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