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측은 연합군 잠수함 격침보고를 총 468회 보고했음.
물론 실제로는 미국 잠수함은 총 52척이 상실되었고 그나마도 좌초, 사고, 오인공격 등으로 손실한 것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는 일본 측에게 의해 손실된건 총 41척으로 판단해볼 수 있음.
미국 잠수함뿐만 아니라 영국 해군 잠수함 3척, 네덜란드 해군 잠수함 4척 역시도 마찬가지이고. 즉, 이 말은 일본군은 연합국 잠수함을 어뢰, 폭뢰, 항공폭탄, 기뢰, 함포사격 등으로 총 48척을 가라앉힌 셈이 된다는 것임.
문제는, 본인이 직접 해당 자료들을 열람하고 보니까 일부 자료에서 '이것들이 진짜 잠수함을 찾아낸거긴 할까? 도대체 뭘 어쩌라고?'라고 생각될 정도로 일본 측의 보고들은 완전 말도안되는 기록들이 많았다는 점임.
실제 교전일자와 연합군 잠수함들의 당일자 전투보고서 내용을 다 판독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 잠수함들 기준으로 보고서를 검토해 본 결과 일본 측이 잠수함 격침보고를 올릴 당시 가장 많이 보이는 사례를 설명하겠음.(영국애들이랑 네덜란드 애들 전투 보고서를 못찾았음. 특히 네덜란드는 찾았다 하더라도 네덜란드어의 압박으로 번역 못했을 거고.)
일단 기본적으로 실제 연합국 측 잠수함의 상실 일자와 일본 측의 격침보고 일자가 매칭이 안 되는 경우가 수두룩하고 전반적으로 일본 측은 연합국 잠수함이 침몰했다는 아주 사소한 증거(예를 들어 기름띠와 파편, 공기방울 포착)를 가지고 격침시켰다 라고 보고하는 것이 절대다수였는데...
A. 잠수함이 아니라 영 엉뚱한 물표를 잡고 공격함. 이게 제일 비율이 높은듯함. 이건 일본뿐만 아니라 U보트 상대하던 영국해군과 미 해군의 상황과도 정말 똑같거든. 잠수함이라는게 본래 잡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
B. 기만전술에 낚였음. 이 사례도 정말 많음. 예로들어 연료를 약간 배출하거나, 어뢰발사관을 통해 부력이 있는 쓰레기들을 발사하거나 자항식 디코이, 버블러, 노이즈메이커 등의 디코이들에 낚여 잠수함의 접촉을 놓치게 되는 것.
웃기는게 뭐냐면 엉뚱한 걸 물고늘어지면서 기포나 기름띠가 발견됐다는 보고가 정말 많은데... 기포까지는 이해가 갈순 있는데 기름띠나 파편 같은건 도저히 이해가 안됨. 허위보고가 몇번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음.
다른 점에서 이해가 안되는 것은 엄연히 일본 해군 잠수함대도 연료 배출이나 쓰레기 발사 등으로 상대를 착각하게 하는 전술을 알고 있었고 같은 해군으로서 상호간 정보 교환이 없던건지 뭔지 너무나도 쉽게 이런 것들을 믿어버리는 경향이 강함.
C. 시간없어서 '이쯤 조졌으면 침몰했을거고 살았어도 함부로 못덤비겠지' 해놓고 자기 본래 임무하러 쌩 가버리는 경우. 아닌게 아니라 호위함들이 잠수함 1척에게 어그로 끌렸다가 무주공산이 된 선단이 다른 잠수함에게 걸려 피해가 발생하는 사례가 매우 많았고 이를 최소화하려면 최대한 선단 근처에 붙어서 호위를 하는 방식이 가장 나았다 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임.
근데 이러다보니 미국 잠수함을 추적하는데에 걸리는 시간은 평균 3시간에서 7시간 내외 정도로, 굉장히 짧게 추적하는 데에만 그치는 경우가 많았음.
미국 잠수함대의 보고로는, 함내 산소량 및 이산화탄소 수치가 각각 17%미만, 2%이상에 도달해 대기환경조절이 불가피해질 정도로 길게 잠항해 본 기록은 총 89회만 기록되어 있음. 미국 잠수함대 입장에서 볼 경우, 일본 호위함들은 근성이 부족한것 같다 라고 평하는 것이 괜히 나오는 말은 아니었음.
D. 정보부족, 미숙함과 열악함에서 나오는 문제.
전쟁 전에는 정말 이렇다 할 만한 대잠작전에 대한 구상이 제대로 되어있지 못했고 미국 잠수함들에 대한 정확한 성능도 잘 모르는데다 수온약층을 확인할 수 있는 반심도 수온측정계가 없느니(이게 호위함만 없으면 모를까 잠수함조차도 없어서 전후 미국 조사관들을 당혹케 했음.), 450피트 이상의 수심에서 잠수중인 잠수함에 대한 공격 전술이 뭐하나 제대로 개발된게 없느니 하는 골때리는 문제들은 물론이고, 여러 부분에서 경험 부족, 정보 부족으로 인한 삽질도 자주 보임.
소나 성능 자체로는 3식 소나의 경우 미국제 QB소나와 얼추 비슷한 성능을 내는 꽤 괜찮은 물건이었지만 문제는 정작 미국 잠수함들의 항주 수심을 제대로 몰라서 다소 얕은 수심에 기폭을 시키는 경우가 많았고 폭뢰 투하 패턴 역시도 치밀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임.
평균적으로 미국 잠수함들은 폭뢰공격을 피하기 위해 200피트에서 450피트 사이에서 심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던 걸 생각해보면 정보부족과 경험 부족을 충분히 고려해 볼 가치가 있음. 물론 전쟁 후반기에는 쬐끔이나마 나아졌지만. 이 미숙함과 열악함은 부분적으로 오인격침 보고에 영향을 끼쳤다 평할 수 있음.
E. 손상 입혔음에도 끝장 못보고 격침시킨 것으로 착각함.
미국 측의 자료를 보자.
전쟁 조사 보고서 및 함선국이 보고받은 정보들을 종합해 본 결과, 손실을 제외하고 110개의 개별 사례가 있었으며 미국 잠수함은 다양한 방법과 과정으로 일본군 또는 자군에 의한 공격으로 인해 손상을 입었음. 다만 이 기록들은 손상 자체가 이후 잠수함 성능 개선 등에 충분히 참고 가능한 것을 간주하는 경우에만 한해 보고된 것이며 실제로는 이보다 피해를 입은 건수는 훨씬 더 많음. 110건의 피해 사례는 다음과 같이 원인별로 분류할 수 있음.
폭뢰 - 58
항공폭탄 - 25
항공폭탄 및 폭뢰 합동 - 8
항공기 기총사격 및 소구경 총격 - 6
중구경 함포 피격 - 4
꼬라박 - 4
침몰하는 적함의 유폭으로 인한 손상 - 2
기뢰 - 1
카미카제 - 1
지가 쏜 어뢰 - 1
이 110건 중 약 15건은 심각한 피해를 초래했으며 약 50건은 중파, 나머지 45건은 사소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분류 할 수 있음.
여튼 이 손상기록들 중, 일본 측의 교전 자료와 비교분석을 완전히 끝내지는 못했으나 한 건의 예를 들자면 1943년 10월 9일, 가토급 퍼퍼는 38시간을 넘게 공격을 받으며 시험잠항심도 이상의 심도에서 견디다가 겨우 살아남아 생환한 기록이 존재함. 당시 퍼퍼는 꽤 심각한 수준의 손상을 입었고 당시 일본 측은 퍼퍼를 격침시킨 것으로 판단했음.
이 건 외에도 터니, 스캠프 등의 잠수함들의 손상 사례처럼 폭뢰, 항공폭탄 공격을 당했을 경우 고압공기 뱅크에서 고압공기가 누출되어 수면으로 올라오거나, 연료 밸러스트 탱크 손상으로 연료가 새어나와 수면으로 올라오는 일들이 있었고 이 손상이 심할 경우, 충분히 격침시켰다 라고 착각하거나 좀 있으면 알아서 침몰하겠구나 라고 착각할 법한 것은 극히 당연했음.
F. 대잠무기체계 자체의 문제.
일찍이 말했듯이, 일본애들은 생각보다는 소나 성능이 나름 괜찮았음.
문제라면 폭뢰 자체의 문제가 존재하는데...
1. 폭뢰 신관의 심도조절 다이얼에 나와있는 폭발 심도와 실제 폭뢰 기폭 심도 사이에 얼마나 많은 편차가 발생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음.
편차는 폭뢰 투하방식, 즉 프로젝터를 이용해 발사하거나 폭뢰투하랙을 통해 투하되는 것에 따른 침강속도의 차이와 해상 기상상태 등등의 요소에 따라 갈림. 영국 해군에서 전쟁 초반기에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250피트에서 기폭시키도록 기폭 다이얼을 조정해놓을 경우 약 60피트정도의 편차가 발생했던 것으로 알려져있음.(참고로 일본 폭뢰들은 영국의 폭뢰들과 기폭심도 조절 시스템이 동일함.)
이 기준대로라면 영국 측과 비슷한 상황을 겪었을 것이라 판단되는데, 실제로 일본 측이 이런 실험을 해봤다는 기록을 못찾았음.
2. 애매한 폭뢰들. 주력으로 사용되던 두 종류의 폭뢰인 95식 폭뢰와 2식 폭뢰의 최고 기폭심도는 각각 292피트, 390피트 가량임.
이 기폭심도는 정말 애매함. 특히나 초기 폭뢰들은 더했음. 개량됐다는게 이정도니 말 다한거지. 당장 가토급은 각잡고 450피트 잠항 시에 어느정도 회피가 가능한데다 발라오급 즈음 되면 건드려보지도 못함.
또한 전쟁 중 개발된 3식 폭뢰는 131피트, 262피트, 393피트, 524피트, 656피트 수심에서 격발되도록 설계되었음. 기폭장치 구조 자체는 95식과 2식 폭뢰와 유사하나 기폭 지연을 위해서 추가로 공이를 더 추가하였음. 하지만 전쟁이 끝나기 전에 이들이 적절한 수량이 배치되지 못하였고 심지어 3식 폭뢰의 깊어진 기폭 심도를 사용 가능케 할만한 구체적인 전술교리가 전혀 개발되지 않았음.
그것도, 1943년경에 병신같은 하원의원 하나가 '우리 잠수함은 일본애들이 하도 폭뢰심도를 얕게 맞춰 터트려서 대부분 살아 돌아오고 있다'라고 대놓고 발언을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폭뢰기폭 심도만 깊어졌지 구체적인 전술은 상당히 미비한 상태였으니...
근접신관 기폭 방식의 폭뢰 개발에 대한 필요성은 인식되었으나 전쟁 중 사용을 위해 제 시간동안 개발된 것은 없음.
자기감응 기폭방식의 4식 폭뢰가 개발중었지만 종전 당시에는 시험이 진행 중인 상황이었음. 음향감응식의 폭뢰도 개발 예정이었으나 이에 대한 작업은 초기 설계 단계에조차도 근접 못했으며 당연히 프로토타입 제작조차도 되지 않았음.
무엇보다도 헷지호그와 유사한 체계의 병기를 개발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것으로 보임. 일부 개발 프로젝트로 로켓포에서 5발의 대잠폭뢰를 발사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개발 중이었으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 계획은 철회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음.
소형선박에서 사용할 폭뢰들도 개발이 되었는데, 속칭 요코스카 폭뢰라 불리는 견인식 폭뢰와 2식 대잠 갈고리폭뢰 등이 개발되어 실전에 투입됐으나 일본 측 기록과 미국 측 기록을 대조해봐도, 이 폭뢰에 걸려본 기록은 4회가량 존재하나 손상을 입거나 이에 의해서 잠수함 손실이 발생한 기록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음.
위협 목적으로 자군에서 훈련용으로 사용하던 기폭식의 폭뢰 폭발 시뮬레이터까지 동원해 미국 잠수함들의 접근거부 목적으로 운영했는데, 문제라면 미국측에서도 하도 이런걸 많이 겪어봐서 그런지 이거 터진다고 쫄아붙어서 공격 포기하는 잠수함들도 거의 없었다는게 흠이지만.(애당초 접근거부를 한다는건 잠수함 위치를 정확히 잘 모르고있다는걸 광고하는 셈이나 마찬가지라서 미국 잠수함들이 겁을 낼 이유가 없기도 했지만.)
이외에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전반적으로, 일본의 대잠작전은 처참한 실패로 돌아갔음.
1943년 9월, 절대방어권 선포 이후로 함대결전에 대한 중요성은 더 올라갔고 이에 따라 선단에 호위함들을 배치해 줄 여력이 부족했던 점이 정말 큼. 그 상황에 일선에서는 그나마 뭐라도 해보려고 바둥바둥 댄 셈이니... 그나마 레이테 해전에서의 패배 이후로 관심이 상선대에게 좀 돌아가긴 했지만 주력함대 박살나서 제해권 장악당한 마당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쳤겠느냐마는...
애당초 대잠작전이란 것이 잠수함 한척 잡겠다고 구축함급 군함 수 척, 항공기 수십대가 기본적으로 동원되는 상황임을 생각해본다면 일본은 애시당초 대잠작전을 원할히 수행할 국가적 역량 자체가 부족했다고 밖에 할말 없음. 뭐 그러니 함대결전에 목을 멘 거겠지만.
미 해군 보고서에 남긴 평으로 '우리 잠수함은 일본 측의 부족함에 탈출구를 빚지고 있었음' 이라는 글귀로 사실상 많은 것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음.
참고자료 -
Submarine Report - Depth Charge, Bomb, Mine, Torpedo and Gunfire Damage Including Losses in Action 7 December 1941 to 15 August 1945 (Bureau of Ships)
Lists of Attacks On U.S Submarines And Possible Sinkings (U.S Naval Technical Mission to Japan)
United States and Allied Submarine Successes in the Pacific and Far East During World War II (John D. Alden, Craig R. McDonald)
Imperial Japanese Navy Anti-Submarine Escorts 1941-45(Mark St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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