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가 내 초등학생 3 ~ 4학년이었나, 아님 그 보다 더 어린 코흘리개였는데 XX연대 XX지역에서 싸웠다는 구체적인 내용보다 단편적인 성향이 많음.
그때 당시에 할아버지하고 작은 할아버지 두분이 형제였는데, 능력은 겁나 있으셨는지 할배는 포병장교로 임관하고 다른 두 할아버지는 통역장교로 임관함(군사영어학교에서 나온 건지, 아님 전쟁 직전에 한국군에서 마련한 교육으로 통역장교가 된 건지는 모르겠음)
전쟁 직전에 월급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니었지만서도 나름 장교 되고 하니까, 집안에서도 덩실덩실 했나봄. 그래서인지 돈도 어느정도 모이고 하길래 대구 방면으로 이사를 갔는데, 얼마 있지 않아서 전쟁이 똽 하고 터진거임. 할아버지는 여유롭게 근무 마치고 막걸리 한사발 하고 있었는데 뜬금포로 터지니까 넘기지도 못하고 부대 복귀를 함.
사실 남쪽에 주둔하고 있는 포병대라고 해봐야 실사 투사 가능한 포는 대부분 다 위에 있었고, 남쪽에 있는거라 해봐야 얼마 있지도 않았는데 그 대부분의 상태가 메롱이었음. 105mm 견인포도 한 두개 있을까 말까한데다 대부분 일제 감정기 시기 무기를 불하받고 그걸로 훈련 받고 있었던지라 전투력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었겠냐만은.
할아버지 생전에 말씀하시길, 내 살아 생전에 그토록 많은 욕을 한 때가 딱 두번이었는데 하나가 바로 이 때였다고 하시더라.
그런데 상부는 어떻게든 전선 사수를 외치면서 독려하고 윽박지르니, 결국은 간부들이 있는 없는 수단 다 동원해서 부대 무장 점검을 하기 시작했음. 전쟁 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패잔병들은 계속해서 몰려오는데, 겁에 질려서 떠는 병사부터 해서 눈 허옇게 뜨고 미쳐버린 사람까지 다색다양하다보니 재편도 늦어지고 가져온 무기 있냐고 달달 볶아대도
'저희도 전선 아작나고 도망치는 상황에서 그걸 어떻게 가져온대유? 다 버리고 왔쥬.'
이렇게 말하니까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맥이 탁 하고 놓이는 거임. 정말로 총체적 난국인 상황인데다가, 파견된 미군마저 패했다는 소식까지 연달아 오니까 남하한 지휘부부터 싸울 예정인 실무 간부부터 병사까지 어벙벙하는 분위기가 싹 퍼져나갔더다라.(아마 스미스 특수부대 소규모로 패했다는 일이지 싶음)
속은 점차 답답해지는데 일단 싸우긴 싸워야했고, 일부 남하해온 국군이랑 여기서 주둔하는 인원 편제 작업이 끝나자마자 낙동강 전선 방어하러 올라감. 그리고 여기서 미군이 대규모로 증파될때까지 피 터지는 방어전이 시작됐음.
조금 과장 보태서 이야기하자면, 인원 보충 한다고 10 ~ 20명 정도 계속 투입되는데 반 시절 지나서 그 반이라도 있음 다행이었고, 반의 반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함. 사람이 그야말로 갈려서 죽어나가다보니 관측반 이끌고 포격 제원 계산해야 하는 장교들마저도 인원 부족으로 탄약 나르고 정찰 찍고 -
할아버지도 지휘부 왔다 갔다 거리면서 지프 되면 지프 짐칸에 탄약이란 탄약은 다 끌어오거나 병사들 추려내서 지게 진 다음에 포탄 가져오라 하고...... 그나마 할아버지가 속한 부대는 어찌저찌 쓸 수 있는 포는 있어서 지원 사격이라도 했는데, 그마저도 없음 보병 부대랑 똑같이 투입되서 전선 사수하러 갔다고 함.
계속 사람이 작살나다보니, 나중에 인사과를 찾아갔는데 - 그 담당 장교가 책상 다 뒤집어 엎어버리면서 '야이, 있는 사람도 다 뒤져가는 판국에 뭔 신병은 신병이야 씨발!' 하면서 울분 이기지 못하고 광광 울었었던 상황까지 목격하고 병력 인계 받으러온 할아버지나 거기 주위에 있던 대원들이나 다 울었다 하는 썰까지 있었음.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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