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시베리아 내전 당시 체코독립군 (https://i0.wp.com/militaryhistorynow.com/wp-content/uploads/2013/06/L3NCDJY.jpg?resize=560,383)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161564&page=1&exception_mode=recommend&search_pos=&s_type=search_all&s_keyword=적백
김홍일 장군이 적군을 위해 싸운 게 이상하다는 의견이 있어서 러시아 내전(그중 시베리아 내전)에 대한 제 허접쓰레기스러운 지식이라도 알려드림.
소비에트 문학에서 적군 진영 한인부대를 이렇게 설명한다.
「조선인부대는 규율과 성실과 그들의 대의에 대한 헌신에서 훌륭한 예를 보여주었다.…조선인들 중에서 추태는 말할 것도 없고 명령 불복종이나 과업미완수의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이 모든점에서 그들은 모법적 공산주의자의 전사들이다.」N.II'iukhov and M. Titov, Partizanskoe dvizhenie v Primor'e, 1918-1920 gg. (Lenungrad, 1928), 82, 84쪽. 하라 테루유키, 「러시아 연해주에서의 한인운동 1905~1922」, 『소비에트 한인 백년사』, 태암, 1989, 27쪽에서 재인용.
이 증언에선 조선인 부대를 공산주의 전사라고 한다. 그러나 러시아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소비에트 문학에서는 빨치산운동에 대한 공산주의의 영향이 과도하게 평가되었다. 빨치산운동은 무엇보다 일본이 선두에 선 간섭군에 반대하는 민중운동"이라고 분석한다. (엔.아. 부쩨닌 저, 엔.데. 부쩨닌 저, 알틴벡 쿠르만바예프 번역, 러시아 내전에서의 한인들의 참전, 역사문화연구 24, 2006, 96쪽)
그러니깐 공산당, 볼셰비키 뭐시기 라서 적군 진영에서 싸운 게 아니라 일본에게 저항하려는데 불가피하게 적군 진영이 된 것.
물론 당시 독립운동 진영에서도 백군 진영에 싸우려는 시도는 있었다. 페트로그라드에서 볼셰비키 새끼들이 내란을 일으켜서 ("10월 혁명"이라고 주장하시는) 러시아 내란이 일어난 뒤, 하얀군대들이 또 내란 일으켜서 러시아 내전이 일어나고 연해주가 하얀군대 영향력이 들어갔을 때, 제정러시아군대의 소위였던 미하일 원(元)은 체코군 사령관 가이다와 호르바트에게 후원받아서 1918년 9-10월에 조선국민대대(朝鮮國民大隊)라는 한인부대를 조직하는데 일제군은 아주 잠깐동안은 무시했는데 저거 무시하면 자기들이 좆 될 거라는 생각이 끼쳤지. 그래서 그래서 해산을 명령하고 강제로 탄환을 뺏어서 한인부대를 못 만들게 했지. (윤상원, 박사학위논문: 러시아지역 한인의 항일무장투쟁 연구 (1918-1922), 2009, 71-72쪽)
일제군이 한인부대를 못 만들게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조선인국민대대라는 명칭은 불령조선인의 민족적 독립심을 격성시킬것이다.
② 편성의 위치가 露鮮국경이기 때문에 폐해가 많다.
③ 조직의 인자로 인한 폐해가 많은데 귀화인들도 혁명적 사상으로 변화를 많이 했다.
④ 연해주 한인들이 조선인국민대대를 편성할 필요를 인식하게 된다.」
(朝憲機 第623號,朝鮮人國民大隊編成二關スル件 續報 ,1918.10.29, 在西比利亞部 7권,24항, 윤상원, 박사학위논문: 러시아지역 한인의 항일무장투쟁 연구 (1918-1922), 2009, 72-73쪽에서 재인용)
그러니깐 이들이 독립군 부대가 될 걸 느끼고 거부를 한거지.
그래도 당시 독립운동가 측은 이 조선국민대대를 이용해서 독립운동을 해보려 시도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조선국민대대의 지휘권이 있던 미하일 원이 그걸 반대했지. 예로 3명이 평안도에서 와가지고 조선독립을 위해 입대하기를 지원했는데, 이 때 미하일 원은 본 군대의 목적은 순러시아인으로서 조선인의 민족자결주의를 희망하고 있을 뿐이지 감히 구 한국의 독립을 염원하지 않는다면서 거절했지.(윤상원, 박사학위논문: 러시아지역 한인의 항일무장투쟁 연구 (1918-1922), 2009, 75쪽)
그래도 일부 독립운동가는 한인들로 독립군 부대를 만들려고 했고 그렇게 해서 나온 게 하얼빈 동남쪽에 있는 액하에 있는 부대인데 당시 사람은 "에호부대", "애호군대"라고 했다. (윤상원, 박사학위논문: 러시아지역 한인의 항일무장투쟁 연구 (1918-1922), 2009, 75쪽) 이 부대는 대한국민의회에서 만든 부대로 독립군으로 사용하려고 한인들을 모아서 만든 부대였다. 하그런데 이 부대도 결국 별로 하지 못 했는데 부대는 중동철도와 하얀군대의 군수물자를 수비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이 군수물자란 게 일본군이 제공한 것이고 그 임무도 러시아빨치산과 한인무장부대들의 습격을 상대로 도와 물자를 지키는 것이었다. 오히려 독립운동은 커녕 힘든 노역만 해서 많은 한인들이 "우리는 단지 한국독립을 위해 군사교육을 받을 목적으로 입대한 것이지 이러한 비속한 노동을 배우려고 한 것이 아니다"면서 빡쳐하면서 부대를 탈퇴했다. 결국 대한국민의회의 시도는 실패했고 오히려 기존에 있던 높은 명성만 무너졌지. 대한국민의회는 하얀군대 편에서 서서 독립운동을 하려했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그것은 불가능했다. (윤상원, 박사학위논문: 러시아지역 한인의 항일무장투쟁 연구 (1918-1922), 2009, 78-79쪽)
그러니깐 당시 독립군 부대가 적군 진영에 갔던 이유는, 당시 시베리아 에선 백군 측에선 도저히 독립운동을 하지 하지 못 했기 때문이지.
뱀발.
그리고 적군을 거부하고 백군 측에 가담했다고 실패했던 대한국민의회는 나중에 ‘전로한인공산당 중앙총회’와 합해서 조직을 이룬다. 그래서 나온 게'이르쿠츠크파'라 부르는 공산주의 파다. 예. 자유시 참변에서 진압 측에 섰던 그 진영이요. (윤상원, 박사학위논문: 러시아지역 한인의 항일무장투쟁 연구 (1918-1922), 2009, 189쪽)
자유시 참변을 '공산당이 독립군을 진압했다'는 인식이 있던 데, 그 프레임이 잘못 된 이유 중 하나지. 자유시 사변 에 대한 글은 나중에 또 쓰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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