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끼 이딴 소리 싸질러서 설명해봐라고 했더니 이틀이 지난 지금까지 대답을 못하고있어서 내가 대신 쓰는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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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이라고 뭉뚱그려 부르는건 크게 제철과 제강으로 나뉜다. 제철이란 철 산화물의 형태로 자연 속에 존재하는 철광석에서 산소를 제거하고 금속 철을 만들어내는 과정이고, 제강이란 앞서 제철과정에서 만들어진 중간결과물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강으로 만드는것이다. 일반적으로 제철과정에서 생성된 철은 너무 무르거나 너무 깨지기 쉬운 상태이고 불순물이 많으며 매우 불균일한 상태이기 때문에 탄소의 함량을 조절하고 외부물질을 제거하며 불균일한 구성을 균일하게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제련은 철광석과 목탄을 섞어 불을 지피고 풀무를 이용해서 공기를 불어넣어 온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렇게 해서 생산되는 철은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괴련철은 제련로의 일부 혹은 전체를 허물고 나면 밑바닥에서 발견되는 철덩어리로 스펀지처럼 빈 공간이 많은 성긴 구조를 가지는데, 대개 이 빈 공간 안에는 철광석의 다른 성분들이나 노 내벽에서 나온 성분들이 고온에 액체상태로 녹아서 만들어진 슬래그가 들어가있다. 따라서 이러한 물질들을 제거하고 구멍을 메우기 위해 괴련철을 가열해 불순물을 액체 상태로 녹이고, 이를 망치로 두들겨 슬래그가 빠져나오도록 하고 조직을 치밀하게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괴련강은 이제 다시 망치로 두들기는 단조 과정을 거쳐 원하는 모양을 가공해 철제 물건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한때는 괴련강이 탄소가 거의 없는 연철이라는것이 정설이었지만, 연구 결과 그렇지 않다는것이 밝혀졌다. 실제 제련로를 복원해 실험한 결과나 과거 철제유물의 조성을 분석한 결과 제련로에서 산출되던 괴련강은 탄소가 거의 없는 연철에서부터 탄소가 적당량 함유된 중저탄소강, 탄소가 많이 함유된 고탄소강 등등 거의 모든 종류의 철이 나오는것이 확인되었다.
한편, 두 번째 종류의 철은 액체 상태로 나오는 선철이다. 본래 철은 녹는점이 높아 과거의 기술로는 액체 상태의 철을 생산할 수 없지만, 철에 탄소가 함유되면 녹는점이 낮아져 고대의 기술로도 액체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탄소는 제련로 내에 충분하게 있기 때문에 경험과 기술이 있다면 쉽게 철을 녹일 수 있다. 이렇게 녹아서 제련로 바닥의 구멍으로 흘러나오는 선철은 불순물을 제거한 뒤 주형에 부어 굳혀 주조하면 철물을 만들 수 있다.
탄소가 어째서 중요한가? 철에 탄소가 많이 함유될수록 강도는 강해지지만, 대신 탄소가 너무 많이 함유된 철은 충격에 너무 쉽게 깨져버리기 때문이다. 솥과 같은 철물은 굳이 충격에 강할 필요가 없어 주조로 만들어도 큰 문제가 없지만, 이런 철로 칼을 만든다면 적의 갑옷에 내리치자마자 두동강나버리고 말 것이다. 따라서 충격에 강할 필요가 없는 물건은 탄소가 많은 선철으로 주조하여 생산하고, 충격에 강해야 하는 물건은 탄소가 비교적 적게 함유된 강철 혹은 연철로 생산하는게 기본적인 법칙이다.
이제 이를 염두에 두고 조선의 철을 살펴보자. 『금위영사례』(禁衛營事例)를 보면 아래와 같은 철의 분류가 나온다.
薪鐵打造斫鐵[每斤劣六兩六戔六分六里炭三升]
斫鐵打造正鐵[每斤劣四兩一戔一分五里炭九升六合四夕]
正鐵打造麁造[每斤劣四兩炭一斗]
麁造打造精造[每斤劣四兩八戔炭一斗五合]
精造打造精精造[每斤劣一雨炭一斗二升]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철의 종류는 다음과 같이 6가지이다.
- 신철(薪鐵)
- 작철(斫鐵)
- 정철(正鐵)
- 추조(麁造)
- 정조(精造)
- 정정조(精精造)
각각의 철은 앞선 철을 두들겨 쳐서 만들며, 각각의 과정에서 1근을 투입하면 얼마가 손실되는지와 거기에 필요한 숯의 양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건 1) 가장 처음 시작하는 철은 신철이다 2) 다른 철을 만드는데는 두들기는 작업이 필요하다 3) 각각의 작업에는 숯이 사용되며 철은 손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정철의 경우 문헌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공납으로 정철을 받았다는 기록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탁지준절』(度支準折)에 기록된 대부분의 철물이 정철 혹은 수철(水鐵, 선철과 같음)으로 만들어진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신철과 작철이 아닌 정철부터가 실제 철물을 만들 수 있는 철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추조, 정조, 정정조 등은 정철의 세부 분류였을수도 있고, 아니면 별개의 철이지만 정철으로 뭉뚱그려 부르기도 했던것으로 보인다. 신철의 경우엔 그 정체가 불확실한데, 이는 나중에 이야기하겠다.
주목해야 할 점은 두들겨 쳐서 만든다는 것이다. 보통 철을 달궈 두들기는 과정에서는 탄소가 산화되어 빠져나오게 된다. 다시말해 신철로부터 시작되어 작철, 정철 등으로 이어지는 이 공정은 철에 함유된 탄소가 제거되는 공정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곧 처음에 탄소함유량이 높은 철을 생산한 다음 여기서 탄소를 제거해 정철을 만든다는 의미이다.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해 일제시기 쇠부리업을 직접 경영한 이백주옹의 증언을 보자.
또한 현대에 조선 전통방식을 재현하고있는 이은철 도검장은 전통 야철기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를 미루어볼때 잡쇠란 쇠부리가마에서 철광석을 제련하여 나오는 첫 산출물으로, 생철(=선철)이 굳어진 것 또는 탄소함유량이 많은 괴련철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강엿쇠둑에 투입해 과다한 탄소를 제거하고, 판장쇠둑에서 다시 한번 가공해 정철을 생산하는것이다. 판장쇠에 대한 두 증언이 엇갈리는데, 이는 아마도 판장쇠가 그 성분과는 상관없이 최종 철물을 생산하기 위해 특정 크기와 모양으로 만든 중간재료를 의미하기 때문일것이다.
다시 정리해보자. 조선의 제철과정은 기본적으로 제련로에서 탄소함유량이 많은 철을 생산해낸 뒤, 여기서 탄소를 제거하는 공정을 거쳐 실제 사용 가능한 정철을 만든다는것을 확인했다. 이는 유럽에서 대략 15세기쯤에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finery forge와 비슷한 방식이다. 이 방식에서는 먼저 용광로에서 생산된 선철을 굳혀 pig iron을 만들고, 이를 분쇄해 목탄과 함께 finery forge에 넣고 불을 때워 탄소를 제거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하면 반죽같은 형태의 뜨거운 철덩어리가 생성되는데, 이는 강엿쇠둑에서 만들어지는 '눅진눅진'한 강엿쇠와 유사하다.
이렇게해서 과다하게 들어있던 탄소가 제거되어 연철 혹은 강철 상태가 된 강엿쇠를 생산하여도, 여전히 이를 바로 사용할수는 없다. 아직 외부물질이 들어있고 불순물의 함량이 불균일한 상태기 때문에, 이를 다시 망치로 수없이 두드려 펼쳐 슬래그를 제거하고 조성이 섞여 균질해지도록 가공해야한다.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이 판장쇠로이다.
불행히도 잡쇠-강엿쇠-판장쇠로 이어지는 공정 서술과 신철-작철-정철로 이어지는 공정 설명이 각각 어떻게 대응되는지는 불확실하다. 19세기 중반 『연철변증설』(鍊鐵辨證說)에서는 신철이 숙철(熟鐵)의 초출품(初出品)이라고 하고 있으며 숙철은 불에 구운 쇠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잡쇠가 곧 신철인 것으로 보이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제 정철에서 추가 공정을 통해 생산되는 추추조, 추조, 정조, 정정조가 어떤것인지 살펴보자. 조선 후기 사료로 추정되는 『철식』(鐵式)에는 추조, 정조, 정정조, 극정조(極精造)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각 분류별로 어떤 철물을 만드는데 사용되는지 기록되어있다. 추조는 물몽둥이, 큰 못 등에 사용되며, 정조는 도끼나 중간 정도의 못을 만드는데 사용되고, 정정조는 작은 못이나 기둥띠철, 지네띠철, 국화쇠 같은 각종 건축용 철물, 각종 연장 등을 생산하는데 사용된다. 극정조의 경우엔 조총이나 불랑기포와 같은 총포류, 환도나 창에 사용되는 날붙이 등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앞서 말했듯 단조 가공을 할수록 탄소가 제거되기 때문에, 정정조나 극정조는 탄소가 상당히 적게 함유된 상태일 것이다. 이런 철을 총포용 철과 도검용 철으로 동시에 사용한건 특이한 일인데, 보통 총포에는 탄소가 적어 충격에 강한 연철을 사용하고 도검에는 탄소가 어느 정도 함유되어 강도와 경도가 높은 탄소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똑같이 정정조로 분류되는 철이라도 탄소함유량이 제각각이라 도검용에 적합한것과 총포용에 적합한것이 섞여있던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전근대 기술로는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철 제품을 생산해도 그 성분과 성능이 제각각이었던 경우가 흔했기 때문.
그렇다면 아마도 추추조, 추조, 정조, 정정조, 극정조와 같은 구분은 그 조성이나 성능에 따른 구분이 아니라 가공에 필요한 자재와 노동을 기준으로 한 구분일 것이다. 조선왕조의궤를 보면 추추조, 추조, 정조, 정정조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철과 숯의 양을 규정지어놓은 부분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아마 작업에 사용되는 각종 철물의 분류에 따라 생산에 필요한 자재의 양을 정하는 기준으로서 작용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개당 몇근짜리 추조 못 몇개와 개당 몇근짜리 정조 못 몇개를 노야소(爐冶所)에서 생산하려면 신철과 숯을 얼마나 내어줘야 하는지 등을 결정하는데 사용되었을 것이다. 혹은 화성성역의궤에서 볼 수 있듯이 철물을 조달하는데 있어 추조, 정조 등의 분류에 따라 서로 다른 단가를 적용하여 값을 치르는 기준이 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추추조, 추조, 정조, 정정조의 구분이 고도화된 규범으로서 존재했다는 점은 행정적으로는 높이 살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선이 철의 성능이나 품질에 대한 규격화를 이뤘다고 보기는 힘들다. 애초에 19세기 유럽에서 철강기술이 급격히 발달하기 전까지 인류는 200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경험과 감에 의지하여 철을 다뤄왔고, 따라서 조선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이유도 없다. 조선과 일본에서 각각 만든 철제 제품의 평균적인 차이보다 조선(아니면 일본)의 대장간 한 곳에서 생산된 똑같은 종류의 철 제품 두개의 차이가 더 클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러니깐 기술적으로 환도가 낫네 일본도가 낫네 할 시간에 유럽제 대포를 빠는게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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