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진하는 특별경비대
특별 경비대는 내무부 경시청에 설치되어 있던 경찰부대이자 집단 경비 병력으로 1933년(쇼와 8년)에 설치되어서, 1944년(쇼와 19년)에 경비대로 개편되고 해체됐다. 제2차 대전 후의 경시청 예비대, 후의 기동대의 원류로 알려져 있다.
쇼와 시기에 들어 혈맹단 사건(1932년), 5·15 사건(1932년), 신병대 사건(1933년)등 큰 사회 불안을 일으키는 테러리즘이 연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태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집단 경비 조직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점에서 1933년 10월 1일, 훈령 갑 제85호에 의거해서, 경시청 경무부에 설치된 것이 본 부대이다.
대원은 근무 성적이 좋은 유도, 검도 유단자에서 선발됐고 특히 육체적-심리적 고통에도 견딜 수 있는 것이 요구되었다. 인원은 307명(경찰(대장)1명, 경감 6명, 경위 14명, 경사 26명, 순경 260명)이며 본부 및 4개 중대(각 70명)로 편제되었다. 초기는 본부 및 각 경찰서에 분산배치됐지만 1934년 3월 25일, 경시청 본부 구내에 철근 콘크리트 구조, 2층, 1,155평방미터의 청사가 완성되어 이후는 이곳에 주둔했다.
장비는 일반 경찰관이 칼을 패용했던 것에 비해, 특별 경비대는 권총 및 단검을 사용했다.또 복제 면에서도 상시 가죽 게트르를 패용하고 경우에 따라서 방탄복을 착용하는 등의 차이가 있었다.
개인 장비
단검:소방관이나 수상 경찰 근무 경찰관이 사용하는 것.
경장(긴 곤봉)
자동권총
포승줄
요부코후에(呼子笛, 울림통에 코르크와 빨대로 된 구슬을 넣은 피리)
가죽 각반
부대 장비
철모
방탄복
투척식 최루탄
자동차
대장용 자동차 1대
대원 수송차(보통 차)2대
특수 운반 차량(정원 40명)1대
화물 자동차 1대
경시청 특별 경비대 무장 점검 상황
장비는 '칼'·'경장'·'권총(브라우닝 소형 권총)'이다.승마 요원 이외는 '걸터' 스트레이트 타입이지만'경시청 특별 경비대'에서는 위압적인 목적으로 승마 스타일의 '짧은 걸터'에 검은 '가죽 각반'을 사용했다.
경시청 특별 경비대 수양회의 점호 상황
'수양회'는 경찰관의 정신 단련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월 1회 새벽 4시 발도 점호 후에 메이지 신궁 참배 행군을 벌인다.
경시청 특별 경비대 출동 상황
출동 명령을 받으면 3분 이내에 장비를 갖추어 '대기실'에서 '수송트럭'으로 갈아탄다.
경관 돌격대
'경관 돌격대'는 현재의 'SAT'에 해당하며'철모'·'방탄복'·'권총'으로 무장하고 총기를 소지한 흉악범에게 대응한다.
짧은 부대사
행차의 경위, 국장, 대중 운동의 경비, 재해 시의 구조 활동 등에 종사하고 집단 경비 병력으로서 활약해, '쇼와의 신선조''경찰의 꽃' 등으로 널리 시민들이 불렀다. 그러나 1936년의 2·26 사건에서는 육군 반란 부대가 소총이나 기관총 등 압도적인 화력을 가지고 있던 것에서 저항하지 못했다. 총리 공관 습격 소식을 받은 1개 소대가 긴급 출동했지만 관저 부근에서 반란 부대에 저지되고 무장 해제되어, 본부도 경시청 본청과 함께 노나카 시로 육군 대위가 지휘하는 약 500명의 반란 부대의 급습을 받고 점거되고 말았다.
1936년 7월 25일에 우에노 동물원에서 검은 표범이 탈주한 사건에서는 2개 중대가 출동해, 아사히 신문에 '신선조 2개 중대 출동'으로 알려졌다. 또 2차 세계 대전이 격화되면서 일본 본토 공습이 시작되자 특별 경비대는 공습할 때마다 피해 지역에 출동하고, 경비 및 구호에 나섰다.그 뒤 1944년 4월 12일 칙령 제243호에 따라, 주요한 부현에 경비대가 설치되어, 동년 4월 21일 경시청 경비대가 출범하면서 특별 경비대는 이에 차츰 해소하여 폐지됐다.
참고자료
https://ja.m.wikipedia.org/wiki/特別警備隊_(警視庁)
http://www.horae.dti.ne.jp/~fuwe1a/newpage4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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