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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갤러x백갤러 쪄왔어

슈생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6.09.11 20:01:29
조회 817 추천 11 댓글 9
														



약속시간으로부터 약 13분 전, 그는 느긋하게 핸드폰의 스크롤을 내리며 손목에 찬 시계를 쳐다본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약속이 잡혀버려 일찍 나올 수 있었다. 남은 것은 누가 나올지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단순했다. 여느 때와 같이 백갤에서 싸움이 붙었고, 그 싸움은 언제나와 같은 시답잖은 주제기 때문에 그도 끼어들어 신나게 입을 털었다. 그러나 그날은 어쩐지 입으로만 싸우던 백갤 찐따답지 않게 부모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해서 온갖 패드립이 날아다니기 시작했고 급기야 답답함이 머리끝까지 치솟은 그는 현피를 뜨자며 상대방을 불러낸 것이다.

그 일을 회상하며 백갤을 새로고침하던 그가 깡마른 손목에 걸린 시계를 본다. 10분 전. 슬슬 상대가 올 때도 됐을 것이다. 그가 상대방에게 싸움을 건 것에는 한 가지 확신이 있어서였다. 상대방이 여자라는 것이다. 가끔씩 나오는 얼토당토 않은 여아쟝이니 하는 말은 빼고서라도 대부분의 백갤러들은 자신을 여고생, 혹은 여대생. 그것도 아니면 여중생이라고 소개했다. 물론 그도 그러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도 그런 식으로 소개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종종 진짜로 자신을 남자라고 소개하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러 해 인터넷을 해오면서 그는 유명한 관종으로 이름을 날렸고, 이번에야말로 여고생이라는 미명하에 오랜 인터넷 생활의 정점을 찍을만한 관심을 끄는 관종으로 손꼽히고 있었다. 그리고 자칭 여고생이라는 자신이 현피를 신청하는데, 상대방이 남자라면 받아들이지는 않겠지, 상식적으로. 게다가 백합이라는 장르는 애초부터 여자가 파는 비율이 훨씬 더 높지 않은가. 그러니 상대방은 절대로 여자다. 아무리 자신이 172cm의 키에 55kg이라는, 어떤 여자라도 부러워할만한 BMI의 소유자라고는 해도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지, 그가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을 정리하며 그는 거의 한바퀴를 더 둘러 채워진 우레탄 재질의 손목시계를 본다. 4분 전. 늦는 이유는 역시 여자라서 준비가 늦는 것이라며 자신의 판단에 근거를 더한 그는 느긋하게 카페 문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는 곧 나타날 여고생--어쩌면 여대생을 상상한다. 키가 크고 청순한 타입일까? 키가 작고 귀여운 인상? 날카롭고 사나운 느낌? 어쩌면 엄청난 글래머일지도 몰라--라며 제멋대로 상대방을 떠올린다. 그리고 어떻게 상대를 구슬려, 어떻게 계속 해나갈지. 그러나 4분의 시간동안 상대는 오지 않았다. 몇 번이고 여러 사람이 드나들었지만 들어온 것은 남자거나, 혹은 여자더라도 그에게 향하지는 않았다.

그의 망상이 벌써 신혼여행 어딘가 쯤으로 치달았을 무렵, 그의 손목에는 너무 큰 시계가 정각을 가리킨다. 그와 동시에 문간에 매달린 풍경이 울리고, 그의 시선은 즉시 문으로 향한다. 방금전 생각했던 상대방의 타입들--청순한 미인, 귀여운 로리, 센 언니, 글래머 누나등등등--을 머릿속으로 빠르게 훑어갔지만 문간에 서서 두리번거리는 것과는 상응하는 것이 하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남자였다. 그것도 키가 190cm에 가깝고 몸무게는 자신의 두배는 가뿐히 나갈 것 같은 우람한 체구. 누군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찾는 것이 자신은 아닐 거라며 시계를 보며 핸드폰을 꺼내든다. 핸드폰에 몰두한 그는 남자가 자신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는 것을 놓친다. 체구가 너무 큰 나머지 남자의 팔은 옆구리에 딱 붙지 못해 조금 떨어져 있었으며 어깨도 구부정해보이는 착시를 일으켰다.

그는 백갤에 현피에 나오겠다는 상대방이 아무런 말도 없는 것을 보며 역시 거짓말이었나, 무언가 께름칙한 것을 느꼈나 생각한다. 다시 문을 보면, 그곳에는 아무도 없어 그의 판단이 맞았나 하고 생각하며 다시 백갤이 켜져 있는 액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막 현피에 대해 상대방을 도발하는 글을 작성하려는 찰나


백하. 래즈색스.”


낮고 울림이 좋은 목소리가 귀에 속삭인다.







솔직히 너네 다 남..읍읍

근데 어째 타이밍이 안좋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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