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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풍경은 이제 막 코끝이 시리던 황망한 겨울의 태를 벗어내고
, 태곳적부터 품고 내어 온 싱그러운 신록의
정취를 입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나뭇가지 사이로 파고드는 여린 햇살의 가여운 손짓이 움츠려 있던
꽃봉오리를 깨워 봄날의 조용하고도 찬란한 무도회를 맞을 채비를 하고
, 어머니 대지의 품에서 긴 밤을
지새던 짐승들이 어느덧 졸린 기색 없이 그들의 벗과 어울려 보드라운 흙의 맥동을 반기며 뛰노는 계절이 바로
4월의
봄인 것입니다
. 저의 눈에 펼쳐지는 이 봄날은 해를 보내고 다시 맞아도 매양 그대로인 듯도 합니다만
, 가만히 돌이켜 보면 조금씩은 다른 형태로 찾아 온 것 같아 올해도 그저 감회가 새롭기만 합니다
. 그대에게 이 봄은 어떠한가요
. 그대의 눈가에 드리우는 햇살은 분명
제가 느끼는 따스함과는 다른 느낌이리라 생각합니다
. 우리가 같은 시간
,
같은 장소에서 쬐었던 그 때의 빛만은 똑같이 따스한 감각이었을까 문득 떠올렸습니다
. 저는
지금도
, 그 때 우리가 처음 만났던
, 무르기만 했던 제 열네
살 소녀 시절의 봄을 떠올리곤 합니다
.
여자의
일평생에 있어서 소녀 시절은 그저 철부지 아이이기만 했던 자신에게서 벗어나 점점 부닥치는 내면으로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어린 순처럼 잔 바람에도
넘어갈 듯한 불안함의 시기입니다. 하물며 열네 살이라고 다를까요. 자신을
올려다 보던 소년들은 점점 키가 맞먹기 시작하고, 점점 더 도드라져 가는 젖가슴과 엉덩이는 이전의 자신에게서
볼 수 없던 신체의 변화이며, 처음 맞는 달거리에 곤혹을 치르기도 합니다. 자기 내외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아직 여성으로서의 준비를 마치지 못한 어린아이들을 헤매게 합니다. 그 당시의 저 또한 그러했습니다. 길이 채 닦이지 않은 변두리의
마을에서 자란 시골뜨기 소녀는 마을 곳곳에서 아주 알아 주는 말괄량이였더랍니다. 남자아이들과 어울리며
그네들이라도 감히 하지 못할 일들을 척 맞서며 보란 듯이 뻐기곤 했습니다. 또래 여자아이들이 할 법한
계집스런 놀이는 성미에 차지 않았습니다. 흙바닥에 구르고 먼지를 마시며 옷을 더럽힌 채로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는 동네에서도 흔했으나, 그 중에 여자아이는 딱 한 명이었고 그 아이가 바로 저였습니다. 제 소학교 시절은 그런 그저 보통 여자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그래도
아직 꼬맹이 티를 벗지 못한 채로 지나갔습니다.
타향의
사립학교로의 입학이 결정된 것은 소학교를 졸업하기 바로 전 겨울이었습니다. 결코 부유하다고는 할 수
없었던 집안에서 자식들을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시키고자 하셨던 아버지의 독단이었지요. 저는 기를
쓰고 반대했습니다. 그 괄괄하던 성격이 어디 갔을까요. 무엇보다
딸내미에게 상의 한 마디 없이 앞길을 떠미는 꼴이 기껍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기싸움을 벌이며
겨울을 나는 동안 가족들의 선택은 아버지 편으로 기울어졌습니다. 끝까지 결정을 반대하며 악을 쓰다 오빠에게
처음으로 뺨을 맞은 후에야 저는 체념했습니다. 터져 나가던 울분이 순식간에 무너져 나가며 나의 편이
없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고독한 투쟁은 결국 저의 패배로 끝났습니다.
그 해 졸업식엔 겨울의 끝자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추위가 쉬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열네 살의 나이로 돌아본 교정은 많은 것이 변해 있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신장이 비등비등해지기 시작한 남자아이들은 어느 새 나를 넘길 정도로 훌쩍 자라 있었고, 두런두런 모여
지네들끼리 장래의 이야기를 하는 여자아이들의 모습은 아이라고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성숙한 기운이 물씬 풍겨 나왔습니다. 어느 쪽과도 무리 짓지 않은 채 졸업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갓 지어진 교복이 집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한동안 옷을 들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나를 언니가 등 떠밀며 방으로 데려가 입혀 주었습니다. 어쩐지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장식. 내 몸에는 너무나도 어색하고
낯설게만 느껴지는 의복.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는 언니의 손길엔 동생을 위한 정성이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손길에서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을 대하는 듯한 냉담함을 느끼고 말았습니다. 여자임에도 여자답지 않아 어느 쪽에도 어울릴 수 없는 나의 위치. 가족들의
뜻에 굴복하고 말았을 때 스스로 장벽을 쌓아 버림으로써 만들어진 고독감. 이제 더는 응석받이 막내딸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을 때, 그 때부터 저의 자아의 정체성은 의지할 곳조차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고 말았습니다. 나 자신을 잃어버린
기분에서 피어나온 비참함은 끝내 새 학교로 향하는 길에 오를 때에서조차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봄부터
시작된 학교 생활은 저에겐 적응할 수 없는 것 투성이였습니다. 그저 비싼 학비를 내고 입학했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 출신도 사회적 지위도 다른 그들과 저는 도무지 어울릴 수가 없었습니다. 공부 또한 마찬가지여서, 언어니 역사니 교양이니 하는 것들은 제가
이제껏 살아 오면서 배운 것들과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송사리가 바닷물에서 노니는 격이었지요. 저는 자연히 학급에서 도태되었습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몰래
교실에서 나가, 그저 퇴학만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교정을 거닐었습니다.
토지 안에 조성된 호수와 그 근처에 가꾸어진 정원, 본관과 기숙사 이곳저곳을 드나들며 무료한
시간을 때우곤 했습니다. 가족들이 어떻게 나를 몰아세우며 꾸짖건 상관 없이, 학교를 나가고 말겠다는 집념뿐이었습니다. 아아, 생각해 보면 그 날도 그런 하찮은 나날이 계속되던 하루였지요. 정원
안을 헤집다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져서 치맛단이 찢어지고 무릎에 생채기가 나 어쩔 줄 모르고 있던 저를 발견하곤 한달음에 달려와 주셨죠.
그
때가 우리의 첫 만남이었음을 당신은 기억하고 계실까요.
당신은
흙먼지가 묻은 제 모습을 보시고도 거리낌 없이 손을 내밀어 저를 부축해 주셨습니다. 교원의 숙직실에
마련된 의자에 저를 앉히시고는 치마를 무릎께까지 들추고 상처를 씻기시고는 당신이 늘 가지고 계시던 손수건을 제 무릎에 덧대어 주셨고, 반짇고리를 가져오셔서 치마의 찢어진 결을 그 자리에서 꿰매어 주셨습니다. 피가
멎는 것을 확인하신 후에 어찌 된 일이냐고 당신은 그 자상한 목소리로 물어 오셔서 그만 얼굴이 벌개져 버렸습니다.
학교가 싫어서 수업에서 나와 돌아다니다 넘어졌다는 말을 공공연히 떠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요. 결국
그 자리를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듯이 뿌리쳐 나왔습니다. 그저 수업을 멋대로 나왔다가 누군가에게 들킨
것이 부끄러울 뿐이었습니다. 자기 걸상으로 돌아와선 화끈거리는 얼굴을 진정시키려 책상 위에 몸을 묻었습니다.
그
뒤로 당신을 만나기 위해 제 자신에게 갖가지 핑계를 대며 온 길을 찾아 다녔습니다. 손수건을 돌려 주기
위해, 옷을 꿰매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 하니까, 이도저도
안 된다면 무작정 찾아 놓곤 우연을 가장하자는 식으로. 학교에서 보내는 의미 없던 하루하루가 선생님을
만나는 일로 이어져 갔습니다. 별의별 이유를 대고는 내키지 않는 척을 하며 새침한 표정을 짓는 저를
보시고는 선생님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당신도 이미 눈치채셨겠지요. 그런 날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당신을 만나는 것이 어느 새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은 당신과 나란히 정원을 거닐고 있을 때 당신께서 손을 잡아 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마주잡은 손 너머로 맥박이 느껴져서 가슴이 제멋대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당신과
헤어지고도 한동안 두근거림이 가라앉지 않아 내내 당황스럽던 날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때의 당신에게선 은은한 꽃 향기가 감돌았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당신은 언제나 호숫가의 나무 아래서 저를 기다렸습니다. 따스해지는 햇살에 드리우는 나뭇잎의
그림자와 봄바람은 당신과 퍽 잘 어울렸습니다. 가끔 당신은 나무 그늘 아래에서 몸을 뉘이고 오수에 빠지기도
하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바람결에 흐트러지는 당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곤 했습니다. 당신의 머릿결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다 끝이 턱과 목에 닿으면 괜히 가슴이 두근거려서 손을 뺐었습니다. 그럼에도 어쩐지 계속 만지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하여서, 어느 딴엔
이유도 없이 대담해져서는 귓불과 뺨을 어루만지고, 더 나아가 그대 곁에서 나란히 마주 앉아 얼굴을 가까이
하며 거리를 좁혔습니다. 그런 장난에 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선생님이 깨어나신 것도 모른 채 계속 옆에
붙어 얼굴에 손을 갖다 대었고, 아아,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른 채로.
당신은
제 머리를 끌어당겨서 제 입에 입맞춤을 해 주셨습니다. 긴 침묵 속,
선생님은 제 입에서 입술을 떼시고는 귓가에 대고 속삭이셨습니다. 나도 너처럼 널 사랑한단다.
그
때서야 저는 알아차렸습니다. 사실은 선생님을 연모하고 있었구나. 그것을
다시 되뇌이는 순간 어지러이 헤매고 있던 제 마음 속에 당신이 들어왔습니다. 의지할 곳 없어 비틀거리는
심정을 다시 일으켜 주신 건 당신이었습니다. 그대를 만나며 채워지던 텅 빈 하루하루가 순식간에 너무나도
특별한 나날로 변모하고 있었습니다. 부정받아 왔던 나라는 존재가 다시 한 번 그대에 의해 새로워졌습니다. 너무나도 가슴이 벅차 눈물이 흘렀습니다. 상기된 얼굴로 하염없이
눈물을 쏟던 저를 선생님은 말없이 품 안에 안으셨습니다. 선생님의 머릿결에서, 목덜미에서, 옷에서, 너무나도
포근한 향기가 배어 나왔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고백한 이후 저는 그 이전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신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에게 취해 있었습니다. 그저 제 손끝이 당신에게
닿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아무도 없는 방 안 그대는 제 옷의 앞섶을 들추어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게 했습니다. 이 때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보인 적 없던 알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무지로 일관했던 성 관념이 뜨이는 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어찌 해야 할 줄 몰라 그저 얼굴만 붉히고 있는 저를 보시고 가볍게 웃으시고는 제 가슴을 애무하셨습니다.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던 간지럽고도 이상야릇한 감각. 입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조차 삼켜버리듯 온 몸 곳곳으로
퍼지는 선생님의 손길에 급기야는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대와 함께 맞은 제 첫 번째 성관계는 이 세상에서
겪은 어느 무엇보다 달콤하면서도 아찔했습니다.
우리의 밀회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탐하는 현장이 누군가에게 들켜 학교장에게 밀고되었기 때문입니다.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은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교직에서 물러난 이유는
그저 일신상의 사유라고 두루뭉실하게 밝혀진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교내에서는 저와 선생님이 교제했다는
소문이 은연중에 떠돌았고 저는 학우들에게 환멸의 시선을 받았습니다. 당신이 떠난 후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기댈 곳 없이 혼자 남겨진 고독과 주위의 경멸에 찬 시선이 저를
숨막히게 했습니다. 결국 참을 수 없는 나날에서 벗어나기 위해 학교를 벗어나 그대를 찾아갔습니다. 그대가 학교를 떠나 다시 머무르던 집, 허나 그 곳은 마치 아무도
다녀가지 않은 듯 공허하고 정적에 싸였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를 저버리듯, 그대는 이미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는 머나먼 곳으로 향하는 여행을 떠나 버렸습니다.
그
날부터 저는 그대를 다시 맞기 위해 그대의 흔적이 남은 그 집에서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그대의
얼굴을 보리라는 바람 하나로 그대가 잠시 몸을 누이고 떠난 이 자리를 쓸고 닦으며 그대를 회상했습니다. 어떤
날엔 한가하고, 또 어떤 날엔 바쁘더라도 그대와 함께 그렸던 추억만큼은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풀벌레가 울어대던 정경은 어느 새 낙엽이 지고, 그 위에 다시 눈이
쌓이고 그 눈이 녹아 푸른 영혼을 머금은 새 생명을 다시 틔우고 햇살의 축복이 다시 이 땅 위에 온기를 내리며 바뀌었습니다. 그 계절의 변화가 다시 한 번, 그리고 열 번, 다시 스무 번, 이윽고 쉰 번째를 맞이한 즈음엔 주변 풍경이 몰라
보듯 바뀌고 이 집이 낡을 만큼 낡아 버렸고, 저 또한 생기가 날아간 듯 힘없는 몰골이 되어 버린 듯합니다.
요즈음엔
오수에 지친 몸을 누이고 눈을 감으면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던 언덕이 보입니다. 그 곳은 햇빛이 들지
않는 곳이 없이 신록이 넘실거리고 꽃이 만개합니다. 발걸음을 조금씩 옮기다 보면 어느새 주위가 민들레로
가득한 화원에 닿곤 합니다. 아아, 그러고 보니 그대는 꼭
민들레를 닮았었습니다. 세상 그 어느 무엇보다 노란빛에 흠뻑 물든 그 꽃의 자태는 보는 이로 하여금
행복한 마음이 들게 합니다. 여름이 지나고 꽃이 있던 자리에는 솜털이 인 씨가 돋아나 바람을 타고 끝없는
여행길에 오릅니다. 홀씨가 앉는 자리는 질척거리는 늪이 될 수도, 아니면
뿌리내리지 못하는 굳은 토지일 수도 있어 한 줌 가루로 스러져만 갈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만약 그대가
민들레 홀씨 되어 고단한 여행길 끝에 어떤 땅 위에 머무른다면 그 곳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생명으로 가득 찬 축복의 대지일 것이리라고 확신합니다. 마치 저의 눈꺼풀 뒤에 자리잡은 황금빛으로 물드는 언덕처럼 말입니다.
어느
샌가 그대와 만날 날이 가까워짐이 점점 느껴집니다. 당신은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서 날개를 벗고 발을
딛고, 찬란한 황금빛의 자태로 단장하고 있습니다. 그 언덕에서
피어나고 있을 당신을 향하여, 저 또한 무거운 육신을 벗고 여행을 떠날 채비를 마련하겠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 행복한 나날을 노래할 때까지 안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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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할머니의
장례를 끝내고 난 후, 그 분이 기거하시던 낡은 방 한 켠의 서랍에서는 유언장과 함께 비교적 가까운
날에 쓰여진 편지가 한 장 들어 있었다. 그 편지를 할머니께 보내는 전별로 하여, 그녀가 묻힌 얕은 묘 위에 상자에 봉하여 묻었다. 지금 그녀는 어디쯤에
도달하셨을까. 꿈에 그리던 연인을 만나, 손을 맞잡고 기쁨의
재회를 맞고 있지는 않으실까, 나지막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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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배경은 처음 글을 쓸 당시에는 19세기말 ~ 20세기초의 서양을 배경으로 잡았는데, 글을 쓰다 보니 그 당시 배경을 묘사하기 어려워져서 그냥 손 가는 대로 분위기만 나게 끄적였습니다.
글이 어딘가 어설퍼 보인다면 제 필력을 탓해야지요 뭐.
시간 내서 이 졸작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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