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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ㄱㅇㄷ/군밤xㄴㄷㅆ) 율(栗)로써 율(律)을 논하니앱에서 작성

모두먼지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19 15:5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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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패러디임

“아니야...”

아무리 부정해 보아도 찰리의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영상은 배기가, 그녀가 사랑하는 여인이 그녀의 백성들을 무참히 도륙하는 모습이었다. 모두가 그녀의 계획을 비웃고,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계집애의 망발로 치부할 때마다 그녀의 곁에 서서 말 없이 그녀의 손을 잡아주던 여인이 살기가 형형한 눈빛을 하고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는 백성들을 참살하고 있었다.

“아담!”

분노한 배기가 채 막을 새도 없이 아담의 멱살을 붙잡고 회담장 바닥을 뒹굴었다.

“배기...”

찰리가 속삭였지만, 배기는 듣지 못했다. 아니, 듣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더 옳았으리라, 배기는 살기가 형형한 눈을 띄고 땅바닥에 널부러진 아담의 가슴팍에 그녀의 창날을 찍어 누르고 있었다. 방금까지 찰리의 눈앞에서 어른거리던 야차의 모습, 바로 그 자체였다.

“배기, 그만해”

찰리가 말했다. 비록 언성을 높이거나 그녀의 권능을 싣진 않았지만 전에 없이 찰리의 목소리에 실린 한기는 애인의 눈 앞에서 화려한 전적이 들통난 탓에 눈이 뒤집혀 버린 전직 천사도 멈칫하게 만들었다.

“찰리...난..”

배기가 뭐라 변명의 말을 주워 섬겼지만, 찰리는 이미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회의장 밖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 제 가슴팍을 노리고 찔러오는 창촉을 쳐낸 아담이 소리쳤다.

“내가 뭐랬냐 꼬맹아,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지!”

아담의 조소가 회담장에 울려 퍼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왕실 무도회 때보다도 공들여 칠한 화장이 얼룩덜룩 엉망이 될 때까지 눈물을 쏟아낸 찰리는 그녀가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긴 어디지?“

찰리는 성 베드로의 안내를 받으며 회담장으로 올 때 보았던 화사한 거리와는 사뭇 다른, 호젓한 공터에 서 있었다. 그리고 공터에는 드럼통에 무언가를 굽고 있는 노인과 양 손엔 붕대를 감고 갈색 종이봉투를 한 아름 안고 있는 사내 외엔 아무도 없었다. 군데 군데 칠이 벗겨진 드럼통 안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향기에 이끌려 비척비척 노인에게 다가간 찰리는 애써 꾸며낸 밝은 목소리로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혹시 천국 문으로 가려면 어디로-“

”꼬르륵“

천국과의 회담을 앞두고 긴장한 탓에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찰리의 배가 울렸다.

”죄... 죄송해요“

”죄송할 게 무에 있겠니, 배가 고프면 먹어야지.“

드럼통에서 눈을 떼지 않던 노인이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식은 군밤이 좀 있는데, 일단 이거라도 먹고 있거라 내 이분 것만 마저 굽고 바로 한 봉지 구워 주마.“

뭘 먹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친절한 노인의 호의를 거절하고 싶진 않았기에 찰리는 두 손을 내밀어 노인이 건네는 밤을 받았다. 아직 잔불의 온기가 남아 따뜻했다. 군밤에서 퍼져나오는 온기는 찰리의 손끝에서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오늘 내내 시달리느라 지친 심신이 조금이나마 위로받는 듯 했다. 가슴이 먹먹해진 찰 리가 손 위에 올려진 군밤을 오도카니 바라만 보고 있자 다 구운 밤을 봉지에 옮겨 담던 노인은 찰리의 안색을 살피고는 혀를 쯧쯧 찼다.

”쯧쯔, 아직 어린 것이, 그동안 많이 힘들었나 보구나.“

비록 그녀 앞에 선 노인이 환생이라도 두어 번 한 게 아닌 이상은 지옥의 공주인 자신이 나이가 훨씬 더 많을 터였지만 찰리는 그런 것 따윈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노인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 한 마디가 세상 그 무엇보다도 반가웠다.

힘들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껏 그녀에게 거짓말을 해 왔다는 사실이 분했고, 밈살맞은 아담에게 제대로 대꾸 한마디 해주지 못한 것이 억울했고, 그녀가 지금까지 해 온 일들이 전부 허사로 돌아갈까 봐 두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넓은 세상에 온전히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이 하나 없는 것이 서러웠다. 그런데 이 친절한 노인은 생면부지인 그녀를 위로해 주는 것이 아닌가, 찰리는 다시 한번 울음을 터뜨렸고 노인은 작은 어깨에 너무 많은 짐을 지느라 지치고 허기질 소녀를 위해 불 속에 밤 한 줌을 더 집어넣었다.

찰 리가 흉중에 삭혀둔 말들을 전부 노인에게 털어놓았을 무렵, 아늑한 드럼통에서 군불을 쬐던 밤톨들은 딱딱한 껍질을 깨고 노란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가 틀렸던 걸까요? 사람은 바뀔 수 없다는 게 세상의 이치인 걸까요?“

”세상의 이치라, 나 같은 사람에겐 너무 어려운 말이구나.“

묵묵히 찰리의 말을 경청하며 이따금 부지깽이로 불 속을 뒤적이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러나, 밤을 굽는 이치라면 내 조금 알고 있으니 한번 들어보지 않겠느냐?“

노인은 드럼통에서 밤을 한 줌 꺼내며 말했다.

”이걸 보거라, 이 밤톨들 중 그 모습이 같은 것이 하나라도 있느냐?“

큰 것, 작은 것, 뚱뚱한 것, 납작한 것, 분명 같은 자루에서 나온 밤이었지만 그 모습은 제각각 달랐다. 그러나, 모두 알맞게 익어 달고 구수한 냄새를 풍겼다.

”밤톨이란 것은 본디 제멋대로 영글어 제각각의 형상을 띄는 법이지만 굽는 이가 정성을 다 한다면 모두 달고 맛있는 군밤이 되는 법이란다.“

”하지만....“

이 노인이 자기와 밤 굽는 이야기나 하자는 것이 아님을 깨달은 찰리가 말했다.

”만약 사람의 본성이 바뀌지 않는다면, 제가 아무리 노력해 봤자 무슨 의미가 있죠?“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드럼통 속에서 아직 덜 익은 밤 한 톨을 꺼내 반으로 자른 뒤, 한쪽을 찰리에게 내밀었다.

”먹어 보거라“

이게 그녀의 질문과 대관절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지 미심쩍어하며 밤톨을 씹은 찰리는 입안에 퍼지는 아릿한 쓴 맛에 씹던 밤을 뱉으며 몸부림을 쳤다.

”이게 뭐에요! 너무 쓴걸요!“

노인은 드럼통 안에 나머지 절반을 넣고 익혔다. 잠시 후, 밤이 마저 익자 노인은 아무 말 없이 찰리에게 밤을 내밀었고 아까의 쓴맛이 아직도 입 안에 남아있던 찰리는 손톱만한 조각을 떼어 조심조심 씹어 삼켰다. 그런데 이게 웬걸, 너무나 달고 구수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는 것이 아닌가. 별다른 재료도 없이 조잡한 화로와 밤톨 몇 개로 이런 맛을 내는 노인의 재주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노인과 대화를 나누던 것 마저도 잊고 콧잔등이 까만 검댕 투성이가 되도록 정신없이 군밤을 까 먹던 찰리는 큼큼 하는 헛기침 소리에 고개를 들어 노인을 보았다.

”자, 쓴 맛과 단 맛중 어느 것이 그 밤의 본디 맛 같으냐?“

찰리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얼핏 보면 쉬운 질문 같았다. 당연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씁쓸한 맛이 밤의 천성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쉽게 단정 지어도 되는 것일까? 군불의 온기와 노인의 숙련된 기술로 씁쓸함에 감춰져 있던 달콤함이 드러난 것은 아니었을까? 찰리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자 노인은 빙그레 웃었다.

” 겨우 한 해동안 영근 밤의 천성을 말하는 것도 이리 어려운데, 어찌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수십년을 영글어가는 사람의 천성을 칼로 베듯 흑과 백으로 나눌 수 있겠느냐?“

찰리의 얼굴이 한 순간 밝아졌다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진 알겠어요, 하지만 모두들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고 말하는걸요, 저 혼자 그렇지 않다고 말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죠?“

노인은 찰리의 말을 들으며 그가 살아왔던 시대를 떠올렸다. 약한 이가 존재하는 까닭은 강한 이의 배를 채우는 어육이 되는 것에 있으며 남을 괴롭히더라도 위세를 얻어 앞서나가는 이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 하던 시절이었다. 비록 미욱한 그가 옛 성인의 지극한 도리를 다 알 수는 없겠지만, 그녀가 말하는 세상의 이치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남기고 승천하였다는 야소의 도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렇다면, 하늘의 순리를 다시 한번 거슬러 보는 것이 죄 받을 일은 아니니라.

”아이야, 네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여긴 지극한 천주의 도로 어떠한 분란도 없어야 하는 곳이건만, 이 곳에서마저도 피를 뿌리고 싶은 자와 그 피를 거름삼아 이득을 보고 싶어하는 어른들이 있더구나.

아담과 세라라 하였던가, 피를 뿌리는 것을 즐기는 자와 평화라는 허상을 지키기 위해 천당의 양민들의 눈 귀를 가리는 처자, 어찌하여 그런 이들은 어디에나 있는가, 노인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러한 어른들이 모여 사람을 흑과 백으로 나누고, 그 나뉘어진 이들이 서로 물고 뜯는 것이 하늘의 순리라는 지금의 이 세계를 만들었더구나.”

부스럭

“하늘의 순리를 거스르는 것을 역천이라고 한단다. 그런데 지금 하늘의 순리가 서로 물고 뜯는 데 있다면, 그 반대로 다 함께, 남을 해치지 않는 이상 저 하고 싶은대로 살게 두며 스스로 영글어 갈 수 있도록 이까짓 하늘, 한번 망할 각오로 뒤집어 엎는편이 그윽한 천주의 도에 맞는 길이 아니겠더냐."

노인은 화로에서 갓 구운 군밤을 담은 봉투를 찰리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하늘을 뒤집는 첫 번째 단계는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에 있단다. 그래, 찰리야, 넌 지금 무엇이 하고 싶으냐?”

“...”

찰리는 입안 가득 군밤을 아귀아귀 밀어 넣느라 노인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허허, 아직 많이 있으니 체하지 말고 꼭꼭 씹어 먹거라. 일단 하고 싶은 것을 실컷 하고 나면, 그 다음 단계는 왜 하늘을 바꿔야만 하는지를 아는 것이지.”

입안에 가득 찬 군밤을 씹어 삼킨 찰 리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요.”

“좋은 이유로구나, 그렇게 하나 둘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이 피 비린내나는 하늘이 물러가고 청명한 하늘이 찾아오지 않겠느냐.”

찰리는 노인이 건넨 군밤 봉투를 그러쥐고 한참을 서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자신이 그런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을 리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친구들의 시체 사이에 홀로 서 있지 않으려면, 그날이 왔을 때 하늘의 이치가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말하지 않으려면, 할 수 있는 건 힘 닫는 데 까지 해 보야야 하는 것이 아닐까.

찰리가 입을 뗄려는 찰나,

“모닝스타 양! 거기 계셨군요!”

성 베드로가 나타나 외쳤다.

“세라핌께서 모닝스타양을 지옥으로 모시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리고... 회담장에서 있었던 일은 정말...”

찰리의 시선을 피하던 베드로의 눈이 노인에게 군밤 봉지를 건네받던 사내에게 가 멈췄다. 눈이 휘둥그레진 베드로가 입술을 달싹거렸고 사내는 재빨리 베드로의 입 안에 잘 구운 군밤을 쑤셔 박았다.

“아이고 시몬, 아무리 군밤이 맛있다고 해도 이리 급히 먹으면 어떡하나.”

사내는 목이 막혀 캑캑대는 베드로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한참이나 푸닥거리를 한 뒤, 겨우겨우 입안에 가득한 밤을 씹어 삼킨 베드로의 시선이 찰리와 사내 사이를 오갔으나, 사내는 찰리에겐 보이지 않게 맑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제야 사내의 존재를 눈치 챈 찰 리가 지옥으로 향하는 포탈을 여는 베드로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 혹시 저 분을 아세요?”

“모릅니다.”

“하지만 아저씨 이름을 부르시던데...”

“모릅니다.”

‘정말 모르시는 거 맞죠?“

”정말 모릅니다. 모닝스타 양!“

아직 해가 중천에 떴건만 어디선가 새벽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필시 기분 탓이리라.


지난 주 군밤으로 대역물에 입문한 대붕이임, 옛날에 한번 본 군밤 아카이브 패러디 소설이 너무 인상 깊어서 나도 비슷하게 써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한번 끄적여 봤는데 역시 어렵네...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닌가벼

원래는 대원위합하의 지옥병탄기까지 쓸려고 했는데 내가 생각해도 뇌절이더라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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