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오랜만에 스토리 작가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솔직히 요즘 백묘 그닥 재미없었거든..

근데 이번엔 메인스토리와 연게해, 많은 떡밥들을 회수하면서

재밌게 잘 썼어.

이벤트 스토리 전개가 아주 새롭다거나 하진 않지만

기존 백묘유저들이 즐거워할만 포인트를 팍팍 집어주면서

이야기가 스피디하게 진행되니까 참 좋더라.

캐릭터들의 연기도 풍성하고.

볼륨이 좀 작은 감이 있긴하지만

오히려 그 덕에 곁가지 없이 컴팩트하게 진행된 거 같다.

닼라때 무슨 마물군 좆밥삼대장이랑 싸우는부분은 진짜 개씹10씹씹노잼이었거든..

여튼 스토리를 보면서 생각난 점을 점심밥 먹고 몇 자 적어보았읍니다..

피에고의 인간찬가

에누마가 다시 만든 문명은 너무나 평화롭다.

미개한 삶을 이어나가며 서로 반목하던 인간들에게

에누마는 새로운 기술과 안락한 삶 그리고 관념을 선물했다.

하지만 그 속에 사람의 의지는 없었다.

모든것은 일방적으로 선물 받았을 뿐이며,

에누마에게 의문을 품고 반기를 들면 배제당할뿐.

에누마의 문명을 재건하려는 의도는 선했을지라도,

인간 입장에서는 말그대로 사육이나 다름없지.

피에고는 이 부분을 파고들며 인간 중심의 사상을 전파한다.

대다수 인간들의 의식수준이 낮아 큰 호응을 얻지는 못하지만,

일부 인간들은 그를 따르게 된다.

레브나, 루치아노는 이런 피에고의 사상에 이끌려 신수토벌군에 들어온 사람들이고

에누마를 따르지만 일말의 불만을 품고 있는 유벨,니엘 역시 피에고에게 전향한다.

자신의 자식들,미래의 후손들에게 사육당하는 공포를 전해주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이런 피에고의 인간찬가는 허울좋은 거짓말일 뿐이었고

에누마를 쓰러트린 뒤 마각을 드러낸다.

피에고는 자신의 말을 믿은 유벨과 니엘을 조롱하면서, 에누마의 문명을 파괴하고, 모습을 감춰버린다.

하지만, 하드 스토리는 여기에서부터 다시 이야기가 시작된다.

진심으로, 피에고의 사상에 감화된 인간들이 있던거지

레브나 루치아노는 애초에 피에고의 사상으로 뭉친 신수토벌군의 일원이었고,

에누마에 대해 일말의 불안을 가지고 있는, 유벨과 니엘의 마지막 전향을 이끌어 낸것도 피에고의 사상이니까.

피에고가 거짓으로 퍼트린 인간찬가의 씨앗이 미개한 인류에게 싹트기 시작했다.

루치아노는 피에고가 자주했던 말인 '약자들의 유대'를 기억하며 인류를 계도하고 묶어낼 조직을 만들어냈고

레브,유벨,니엘은 미래의 인간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치게 된다.

.

인류에게 미래를 위해 대비하고, 결집하고, 대의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개념을 심어준거지

희생의 차이

나는 이번 유벨과 니엘이 이전 빛의왕과 어둠의 왕자보다 훨씬 매력적이더라고.

물론 성격이나 연기톤이 확 바뀐것도 영향이 있겠지만.

제로크로니클때 아이리스랑 비교가 되더라

아이리스의 시조의룬 폭발로 일으킨 대붕괴는

어둠의왕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아주 약간 불편한 구석이 있다.

거기에 동의 없이 말려든 다른 모든 생명들은?

외적을 막기 위해 국민 모두에게 강제로 폭탄조끼 두르고 돌격시킨다? 이건좀..

마치 신화를 볼때 느껴지는 비인간적인 불편함처럼

그들의 행동에는 인간적인 면이 없다.

피에고-에피타프가 자주 말하는 시마와 테오의 희생 역시 마찬가지다.

그건 자발적 희생도 아니고, 그냥 자살공격에 재수없게 휘말려서 뒤진거지...

어둠의왕에게 시조의룬이 먹히면 모든게 끝이고, 어쩔 수 없다는 설정은 잘 알겠지만

머리로는 이해되어도 글쎄..좀 그래

이런거에 딱 어울리는 지도자도 북쪽에 있고

핵 터트린 것도 비슷하고 해서 정은리스라고 장난스러운 멸칭이 붙은거지만ㅋㅋ

좋은 의미의 희생이란 정당한 목표를 가지고 헌신을 기초로 해서

오롯이 자신의 소중한걸 포기하는거지.

레브는 자신의 친구와 같은 정령과 이별하고, 미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한다

유벨과 니엘은 각자의 자식들을 더 보고 싶지만,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자신들이 잘못될 것을 직감하면서도 힘을 연구한다.

아이와 더 있고 싶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해 목숨을 희생하는 부모..

너무 슬픈 일이지만 이런게 정말 멋지고 눈물겨운 희생이지

그리고 이런 인간찬가의 서사에서 빠지면 아쉬운게 자기헌신적인 희생이고

PV에서부터 내세우는 피에고의 인간찬가와 캐릭터들의 희생이 맞물려서

새로운 캐릭터들이 원본인 제클 아이리스/어둠의 왕자보다 더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에피타프의 목적?

에피타프의 목적은 '아이리스에게 자신이 느낀 절망감을 맛보게 해주는 것'

그것을 위해 판을 짰고, 아이리스를 주연 / 자신을 광대 / 읍읍이를 관객으로 표현하지

GH에서 밝혀진 건, 주인공의 모험자체가 에피타프가 관여한 일이라는 점인데

그렇다면 현재 위대한 룬을 찾아서 약속의 땅으로 가는 행위 자체가 에피타프가 바라는 점 일 수 있다.

그렇게 주인공일행이 약속의 땅에 도착해 사명의 완수가 목전에 달하는 순간,

무언가를 어그러트려 절대 성공할 수 없게 만드는게 에피타프 입장에서는 가장 쾌감이 클 거 같거든.

원래 게임 PVP에서 썩은물들이 뉴비 농락할때도 ,뉴비들이 이길듯 말듯 아슬아슬한 상황까지 가서

뉴비들 발악하는거 보는게 개꿀잼이잖아.

에피타프도 같지 않을까?.

다만 에피타프의 경우에는 배신감이라는 요소가 추가로 필요한데

파이오스가 아이리스에게 버림받은 것처럼

아이리스도 약속의 땅에서 주인공에게 버림받아야만 하는 무언가를 계획해두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 구체적인 방법이야 지금 시점에서는 알 수 없지만..

게임이 끝나기전에는 결말이 나오겠지..?

남겨진 떡밥들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지만, 그건 글이 더 길어질까봐 나중에 쓰고.

총평은 묘틀딱으로써 이번 그래비티 호라이즌

너무나 재밌게 플레이 했던 이벤트였읍니다.

전개는 뻔했지만, 메인스토리과 관련되어 컴팩트하게 진행되는 스토리

에피타프가 관여한 모험의 시작

언제나 매력적인 악역 에피타프와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들의 연기

돋보이는 인간찬가와 헌신적인 희생

각종 떡밥 회수와 살포

과거 스토리에서 인용한 대사등..

스토리도 깔끔했지만

예전에 관련된 이벤트들을 즐겼던 올드비에게 마치 보물찾기 같은 이벤트였습니다.

이 떡밥은 어디에서 나왔고, 이 대사는 어디에서 나왔고를 기억하는 과정이 재미었습니다.

이렇게 재밌게 만들면 6주년 기대할수 밖에 없자너...이거슨 6주년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제발..

오즈마의 등장이나 에누마의 남겨진 힘등이 다른 스토리에서 다시 다루어지는 날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