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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모] [사진썰] 필붕이들의 등대, 롤라이코드

카프카프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18 01:15:32
조회 490 추천 17 댓글 7
														

#서론

여행을 좋아한다. 학부 때는 싼 티켓 (이땐 저가항공의 황금기라 할 정도로 티켓이 쌌다. 공항 버스가 티켓보다 비싼적도 많았다)이 알림으로 뜰 때마다, 친구건 여자친구건 꼬드겨 수업을 일주일 째는 건 일상이었다.


하지만 여행은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했고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혼자 밥을 먹기보단 차라리 굶는 걸 택할정도로 혼자 뭘 하는 걸 못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얼마나 갑갑하셨으면 자주 시키셨던 것이 식당에서 주문하는 연습과 카페에서 휴지 받아오기였다. 가까운 사람들과 움직였기에 화각은 언제나 40mm, 좀 더 사진에 신경쓴 이후부터는 50mm 그 이상 멀어지지 않았다. 화각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피사체에게 얼마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가"를 가장 잘 나타내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여자친구에게는 한 발자국 나아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대면대면 한 친구에게 들이밀면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을 최근 힘들게 배웠다. 친구와 같이 여행하면서 좋은 화각이 40mm라고 생각한다. 인물을 찍지만 그 컨텍스트, 여행지를 나타내주는 완벽한 화각이었기에, 왜곡도 신경쓸 필요도 없었고 나를 단렌즈맨으로 단련시켜 나갔다.


모종의 이유로 친구들을 모두 잃었다. 그러므로 여행도 같이 갈 사람이 없어졌고 정말 오랜 기간동안 카메라를 들 일이 없어졌다. 시련을 사람을 성장시킨다 했던가, 아이러니 하게도 그저 인물이 어디있었다는 기록의 성격에서 나의 소우주를 나타내는 예술의 형태로 사진이 바뀌어 가면서 사진에 대해 공부를 했고 장비 욕심도 났다. 맞다. 장인은 장비를 탓하지 않지만 나는 장인이 아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름 찍는 취미 사진가"라는 타이틀을 얻으려면 좋은 사진을 찍어야 했고, 장비가 좋으면 최소한 선예도가 좋으니 폰카와 다른 사진을 찍을 수 있었으니 점점 장비만 늘어갔다.


역병으로 발이 묶이고, 군대로 발이 묶이고, 미칠 것 같았다. 흔히 Itchy feet, 좀이 쑤시는 이 상태를 참을 수 없었고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이 아닌 그냥 나를 위한 사진여행을 가기로 했다. 행선지는 터키 그리스. 별 이유는 없다. 필자는 여행을 할 때 테마를 정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베리아 여행, 중부 유럽 여행, 북유럽 여행, 발틱 여행 등등 문화권을 전반적으로 둘러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에게해를 둘러싼 홍은영 만화가님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어릴 때 부터 나에게 신화의 나라로 각인시키기 충분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중제국을 벌써 둘러봤기에 필연적으로 자아 깊숙히 있던 신화들과 함께 오스만제국을 둘러 보기로 했다. (TMI. 필자의 장기는 1914년 기준 유럽 판도를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 역덕 중증이다)


#여행, 그리고 장비


롤라이코드를 갓 영입한 상태였기에 중형, 그리고 후지필름 XT-30에 자이스 32.8을 들고갔다. 혼자 카메라를 두대씩 메고다니며 이스탄불의 언덕들을 누비고 있다보니 마치 작가가 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본 이야기의 크리티컬한 포인트인 모든 사람들이 이 특이하게 생긴 눈알 두 개 달린 녀석을 사랑해 주었다. 이걸 소유하고 있던 나에 대한 친절은 같이 따라왔다. 수많은 도로정찰 작전을 했었지만 병장이 되며 비대해진 몸뚱아리는 움직이기 힘겨워 했고 자주 쉬어야 했다. 카페에서 이 녀석을 앞에 두고 있으면 카페 주인이 와서 자기 할아버지도 이걸 들고 다녔다느니 요새 필름값이 미쳐 날뛴다느니, 해외필붕들이 자동으로 찾아왔다. 공짜로 바클라바 같은 것을 얹어준 적도 있어 뭔가 몽글몽글한 보람참이 따라왔다.


혼자 할 것도 없으니 인스타 스토리나 웨이스트 레벨 파인더를 찍으며 (참고로 기본 스크린은 엄청 어둡다. 하지만 좋아요 누르는 사람들은 모르니 알 바가 아니다.) 돌아다녔다. 테러의 위협이 많은 이스탄불에서는 엑스레이를 지날 때마다 플래그 되어 "이게 뭐니?"에 대응 해야 했지만 나중에 유사 필름제조업체 후지의 크롭에 비해 -중형필름-의 압도적 판형 결과물을 보니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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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봐도 나 필붕이에요 하고다니니 사진찍어달라던 사람들도 있었다. 아래는 나에게 찍은 걸 인스타로 보내달라 하더니 식당추천을 해준 착한 청년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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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리스로 넘어갔다. 관광객도 더 많았으며 유럽사람들이 훨씬 많았기에 뭔가 말도 더 많이 걸고 그랬다. 힙한 관광지라던 메테오라를 갔다. 가는 길도 험난한 여정이었다. 그리스 기차는 1시간 반 정도 늦었으며 7월에 홍수로 철로가 문제가 생겨서 1월이었던 당시까지 일부분을 버스로 이동해야했다. 결국 에상하던 시간보다 3시간 늦게 도착했으며 투어 버스들은 다 끝났었다. 6개의 수도원들이 능선에 걸쳐 있는 곳이었는데 무작정 택시를 타고 가장 가까운 수도원으로 갔다. 돈은 없었지만 하루를 날리는 기회비용이 너무컸다. 그 이후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뭐 걸어가면 최소한 마을은 돌아갈 수 있겠지 라는 막연하고 순진한 생각에 수도원으로 향했다. 수도원은 작고 좁은 계단들이라 내부에 같이 있는 관광객들과 인사도 하고 사진도 찍고 했지만 그 이후는 대책이 없었다. 수도원을 나와 "아 어떡하지" 란 생각으로 터벅터벅 마을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아까 카메라를 보고 오 너 신기한거 들고 다닌다 라고 했던 이탈리아 노부부가 다가왔다. "마을로 데려다 줄까? 아니면 우리 지금 다른 수도원으로 갈건데 따라갈래?" 라는 말을 듣고 1유로나 내고 그 수도원에서 초를 피운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오 신이시여. 저를 살려주시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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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오링고를 해놓기 잘했다. 삐꼴로 이딸리아노를 할 줄 알던 필자는 해가 안되는 작은 동양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담당 진사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알고보니 할아버지는 사진에 굉장히 진심인 편이셨고 혼자 카메라 두대나 목에 메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태워줬다고 하셨다. 내가 생각해도 이 때 좀 꾀죄죄한 모습이긴 했다. 한번도 포즈를 디렉팅한 적이 없던 필자는 부부에게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었고 돌아가자 마자 보내주었다.


아래 두 개는 압도적인 판형과 아름다운 색감이 담긴 코닥의 최신 기술력이자 멸망해가는 필름전선의 최후의 희망 "E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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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로 돌아와 이드라 섬을 갔다. 혼자 돌아다니던 그 곳에서는 수 많은 신혼부부와 은퇴한 노부부가 많았다. 혼자 다니던 필자는 살짝 위축되어 한 가게에서 간단한 샐러드를 주문했다. 옆에 한 영국 노부부는 "이즈 뎃 어 롤리?" 그러면서 말을 걸었다. 롤리 아닌데.. 롤라인데... 어떤 여성 인물 작가를 얘기하며 옛날에는 이런 필름 작업들이 정말 많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영국에 이민자니 뭐니 하는 흔히들 어르신들 얘기하는 정치얘기로 흘러갔다. 필름작업의 한계점과 이민자들의 경제적 효과들을 동시에 얘기해야했다. 물론 필자의 반박들은 그 분들을 설득 하지 못했다. 식당은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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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여러 바디를 들고 여행하는 것은 할 짓이 못된다. 하루에도 목이 아파 몇 번씩 배낭에 넣어뒀다 찍고 싶었던 장면들을 놓친 적이 많았다. 판형의 한계도 많이 느끼게 해줬다. 크롭바디로 찍은 사진들은 뭔가 아쉬웠고 바로 돌아오자마자 기추들이 이어졌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그렇게 전쟁과 분쟁, 끊임없는 대립들에도 사람들은 서로에게 끌려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간다. 서로에 대한 믿음은 도움을 서로 오고가게 만들고 결국 연도 없던 경찰서도 갔다왔지만 필자와 비슷한 다체문제 (바디를 여러 개 들고다니면서 피곤함의 공전궤도는 불확정된다는 문제)고충을 이해해줄 사람들은 여기밖에 없다. 어차피 상업작업 할거면 디지털 바디로 할거니 예쁜거 사자. 만국의 필붕들이 와서 따스한 빛가락 하나를 쬐주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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