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큼한 년... 소리 없이 달싹이며, 나는 좁은 방 안을 훑었다.
볼록하게 솟아오른 이불. 다섯 보 떨어진 오른편엔 벽장이, 그 뒤로는 사군자와 시문이 어우러진 병풍이 펼쳐져있았다.
숨을 곳이라곤 딱 그 세 곳 뿐이다. 나는 문지방을 넘어 들어갔다.
원양이 화려하게 양각된 벽장은 사람이 간신히 구겨 들어갈 크기였다. 칼등으로 벽장을 툭툭 두드렸다. 답은 없었다.
벽장의 여닫이문 사이로 난 틈에 단검 끝을 집어넣었다.
천한 칼에 귀한 몸 상하지 않도록 느릿...느릿... 칼날이 시커먼 틈을 가르고 내려갔다. 틈새 끝에 손잡이가 걸릴 때까지도 반응은 없었다. 벽장은 아닌 모양이었다.
비단이불을 쳐다봤다. 걸음은 여전히 느긋하기만 했다. 애가 타들어가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어디있어, 임자?"

대답도, 미동도 없었다. 나는 칼끝으로 이불을 들췄다. 안에 있는 건 커다란 목침 두 개였다. 이제 남은 곳은 병풍 너머 뿐이다. 손대신, 횡으로 비껴든 칼날로 병풍을 천천히 걷었다. 병풍이 반쯤 접혔을 즈음,

"서방 기다려?"

여상하게 말하자, 그 때.

까강!

병풍 너머에서 날붙이가 튀어나왔다. 비녀나 은장도 따위가 아니라 어린아이 키만 한 장검이. 야무지게 손잡이를 움켜쥔 건 무녀였다. 시퍼런 눈에선 눈물이 글썽였다.

"이, 이러고도 살길 바라느냐? 나으리께서 아시면...!"
"그놈은 이미 황천길 건넜어, 이년아."

뱀처럼 웃으며, 그녀의 검 끝을 툭 건드렸다. 이를 아득 문 하나히네가 검을 내리쳤다. 위에서 아래로, 종으로, 횡으로, 찔렀다가 베었다가... 아낙네의 손에서 펼쳐지는 검술이란 마치 발정난 암고양이 꼬리짓 같았다. '얼씨구', '아이쿠', '어허!'  검을 피하는 몸보다 추임새 넣는 주둥이가 더 바빴다. 조롱당한 무녀가 결국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는 아랫입술을 날름 핥았다. 슬금슬금 아랫도리가 뻐근해져 왔다. 나는 어깻죽지를 휘둘러 도끼질 하듯 장검을 내리쳤다. 깡! 깡! 날붙이 부딪치는 소리가 커질 수록, 분에 겨운 울음도 커졌다.

"아!"

결국 검이 떨어졌다. 나는 얼른 달러들어 그녀의 머리채를 와락 끌어당겼다. 비명을 울리며 무녀가 뒹굴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냉큼 그녀의 위에 올라탔다. 허벅지 안으로 잘록한 허리가 펄떡거렸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킬킬거렸다. 귀한 계집을 타고 앉아보니, 말캉말캉하고 뜨끈한 게 진땀 뺀 값은 했다. 무녀 낯 반쪽을 이불에 처 박았다.
턱과 관자놀이를 짓누르는 손가락에 힘이 꾹 들어갔다. 미약한 저항이 느껴져, 그녀의 얼굴 옆에다 단검을 확 꽂았다. 날붙이를 코앞에서 본 무녀가 우뚝 멈췄다. 즈즈즉, 검 손잡이를 당기자 비단보를 쩍 가르고 내려온 칼날이 그녀의 콧등 위에서 멈췄다. 부릅 뜬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나는 그녀의 옷고름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