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방지를 위한 END)
[오귀인의 샘물]에서
우리는 엘마와 레네트, 미라벨을 통해 이 모든 개판의 근원을 보았다.
시작부터 시비를 거는 정치인도, 또 어디론가 잡혀 간 지휘관도, 앞으로 총부리를 돌릴 것임을 예견하는 듯 포진해 있던 슈타지의 존재도 확인했다. 그렇지만 모든 이야기가 마침표를 찍었을 때 내가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도무지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데서
나오는 막막함과 착잡함이었다. 엘마는 이기적이었다. 자기
마음대로 선택했다. “나, 엘마 흄은 인간이 아니라 인형입니다”, 라고 선언했다. 그럼으로써 깡통 인형이 아닌 한 명의 영혼으로서
영면에 들었다.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많은 경우 부정적으로 표현되곤 한다.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함으로써 세상에 얼마나 많은 비극과 부패가 지금도 쉬지 않고 활개를 치고 있는지를 떠올리면
이상할 것도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인간다움’의 표상이기도 하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백 명에게 물으면 백 가지 다른 답이 나올 것이다. 그 중에서 공통분모가
될 만한 키워드를 몇 가지 추리면, 의지, 욕망, 감정, 꿈, 생각, 자아…… 이런 것들이 남을 것이다.
이것들은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영혼의 현상에 대한 표현들이다. 필자의 소견에 이런
말들로 표현 가능한 모든 현상은 결국 현실 세계에 단 하나의 실재를 야기하게 된다. [선택]이다. 이 역도 많은 경우 성립한다.
마음을 가지면 선택하게 된다. 선택하는 자는 스스로가 마음이 있는 존재임을 증명한다. 선택이란 단순히 오늘 점심으로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고르는 것보다 더 좁은 개념이다. 선택지 A와 B 중에서 A나 B를 고르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2024년에 개발되어 있는 아무 인공지능이라도 다 할 수 있다. 선택이란 A와 B가 주어졌을 때 A, B,
C, D, E, F…… 알파벳, 한글, 나아가
문자라는 경계를 넘어 고개를 드는 것이다. 눈앞의 온 세상을 바라보고 걸음을 떼는 행위다. 그 무한한 세계 중에서 A나 B를 ‘고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선택지가 적힌 리더보드에서 눈을 떼어 세계를 인식하는 것, 또 세계를 향해 한 발자국을 떼는 결단이다.
사람의 심장, 뇌, 척추를 뜯어낸들 그 안에 무슨 생각과 자아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인형인들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인형의 마인드맵 모듈을
뜯어서 분석한들 거기에 들어 있는 것은 기반명령, 소스 코드, 데이터로
저장된 기억, 뭐 그런 코드 쪼가리들뿐이다. 거기에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번에 드디어 깜짝
등장하신 미샤 영감 말마따나, 인형이 체스를 잘 하게 만들 수야 있겠지만 거기에 호승심이나 전율, 긴장감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어떻게 마음이 있는 인형을 만들
수 있을까 - 다른 말로, 어떻게 ‘인류’를 창조할 수 있을까? 이는
우중 유니버스의 오랜 질문이었다. 이 스토리아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인형공학자들은 다들 저마다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페르시카부터 리코리스, 서맨사
쇼, 아서 흄, 마사 마이트너, 그리고 한발 나아가서는 윌리엄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저마다 인형, 혹은 그와 유사한 존재를 통해 ‘인류’, 혹은 그 이상의 존재를 사람의 손으로 구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뇌를
직접 모사하기도 하고,
기반설정 없는 깡통
마인드맵을 구성하기도 하고,
뭐가 들어 있는지도
모를 ‘판도라의 상자’를 만들어내지를 않나,
조금 더 노골적으로 ‘인간의 기억과 신경 구조에 기반한 마인드맵’을 만들어내거나,
[GRCh38]라는 선향仙鄕에 도달키 위해 수십 년의 참람한 몸부림을 이어
온 것이다. 열거한 이들 중 마이트너와 흄은 결이 좀 다른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들이 닿고자 한 것은 어디까지나 [시온]이라는 미지의 도원향이었으니까.
이에 대해서 정리해
주는 것은 미라벨, 혹은 그를 통해 전언을 전하는 [국왕
폐하]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지 않은가, 우중 유니버스의 지구는 현실의 지구보다도 몇 배는 비참한 상태에 처해 있다.
2060년대의 인류가 필요로 한 것은 재난을 처리하고 황무지를 개척해 줄 대량의 노동력이지 인간을 대신할 미지의 존재가 아니었을 터다. 그러나 붕괴 복사라는 재앙, 더 근원적으로는 그러한 필연적 부주의를
야기한 인간의 추잡함에 누군가는 환멸을 느꼈을 수밖에 없다. 과학은 예로부터 철학의 연장선이었다. 철학은 곧 인간 실존에 대한 탐구이다. 추잡하고 비참한 시대의 과학이
이토록 전락한 인간을 ‘끌어올릴’ 길들에 대해 논하는 건
또한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하물며 어떠한 기적적
사건으로 인해 천국의 실재함이 알려졌다면 어떤가, 이 세계의 인형 산업은 이 두 가지 상반되고도 긴밀히
연결된 수요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 세상의 과학적 접근이 거의 그리스인들의
자연철학에 근원을 두고 있는 것처럼, 2003년의 선지자 ‘모리스
흄’이 예언하고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을 무던히 연구해 온 ‘천국’의 존재는 새로운 형태의 생명을 탐구하는 모든 천재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 천재들에게 비트킨 하벨 같은 사업가들이나 그리폰 라이언즈 등의 정치가와 장군들, 혹은 매기 폰지 같은 사기꾼들이 돈과 시간을 대 주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인형이니, 철혈이니, 니토니 하는 다양한 접근법들이다. 이것들은 전부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존재를 창조하기 위해 진행되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지 못하면 결국 열화된 인간의 복제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페르시카 박사는 그것을 위해 인간의 뇌를 스캔했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AR소대를 창조했고, 그것을 다시 개량하여 기반 설정 없는 인형인 R0635를 창조했다. 리코는 그 페르시카와 정보를 공유하고, 스피라에나 노드로부터 추출된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엘리사를 창조했다. 쇼는 극도로 속박된
인형들인 울프팩을 창조했고, 요술 상자나 다름없는 ‘판도라’를 창조했다. 마사 마이트너는 ‘사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기 위해 ‘성배’,
이후에 이름을 고쳐 ‘헬라’ 프로젝트라 명명된
계획을 진행시켰고, ‘의식의 호수’라는 거대한 공유의식 공간을
창조했다. 모리스 드 브로이, 혹은 아서 흄은 자신이 목격한
이상공간의 재현을 위해 이 모든 이들의 이론적 기반인 [인류 지성 연구]를 제공하였고, 자기 나름대로 거기에 닿을 목적으로 엘마, 레네트, 미라벨, 류드밀라…… 이외에 이름도 알 수 없는 그 수많은 인형들을 창조했다.
자아, 땅에 천국을 만들기 위한 인간들의 시도는 잠시 제쳐 두자. 나는
그 결과로 태어난 엘마, 끝까지 자기 마음대로 한 인형을 보며 ‘자기
마음대로’ 한 다른 한 명의 인형을 떠올렸다. 바로 판도라, RPK-16이었다. 마인드맵 속에 대체 뭐가 들어 있는지 아무도
열어 볼 수 없는 그 인형,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목적을 위해 안젤리아도 배신하고, 울프팩도 배신하고, 심지어 (정황상이지만) 그렇게 배신해서 들어간 패러데우스마저 배신하고, 끝끝내 안젤리아의
정신과 몸을 굴복시켜 자신이 고삐를 쥐고 만 그 존재 말이다. 그녀가 대체 뭘 하고 싶은 것일까? 모른다. 다시 만나게 되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모른다. 확실한 것은 그녀가 자신이 서 있는 말판을 전부 때려부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이것에서부터 나는 우리의 엘마와 판도라 사이의 묘한 공통점을 느꼈다.
국회의사당에 출석한
김X한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는 대사다. 판을 깨는 짓은
말판 밖의 세계를 인식하지 않으면 결코 할 수 없는 행동이다. 나는 분명히 말했다. 선택의 핵심은 인식이다. 엘마는 엄마의 충실한 인형이 되지도, [GRCh38]에 닿은 인간이 되지도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의식의
호수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영혼들을 바라보았다. 엄마가 준 숙제 대신 엄마 위에 있는 수많은 음모자들과
권력의 주구들을 인식하고, 그것을 영원히 닫아 버리기로 선택한 것이다.
엘마는 ‘판’을 깨부쉈다. 그것은 그 위에 있는 것들을 볼 수 있을 만큼 시선을 들어올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성장’이라고 부른다. 국왕 폐하에게 완전한 죽음을 줌으로써 엘마 흄은 자신의 이야기를 끝맺을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것이
오귀인의 샘물을 감상한 많은 이들이 엘마를 인간적이라고 평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그럼 판도라는 어떠한가?
아마 이것들이 그녀의
모든 말 중 가장 진심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한다. 그녀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복종과 배신이었다. 울프팩이 만들어진 목적대로 자신의 지휘관인 안젤리아에게 끝까지 충성하거나, 그게
싫다면 안젤리아를 배신해 그녀의 ‘적’이 되거나. RPK-16을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녀는
안젤리아의 ‘적’이면서도 어떤 의미로는 그녀를 위해 끔찍하게
몸서리쳐지는 ‘충성’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나 빅토로브나 최에게 안식을 권유하고 그녀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겠다고 맹세하면서 동시에 그녀의 투쟁하는
운명을 가장 사악한 방식으로 모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혼돈이다.
확정된 판을 깨부수고 아무도 그 끝을 모르는 변수 덩어리를 향해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선택’을 한 존재다. 그렇기에 나는 우리의 엘마와 이 무엇인지도 모를 존재에
공통점을 느꼈다. 그렇기에 판도라는 ‘인간적’이다. ‘인간적’이라는
말은 결코 선량함과 같지 않다. 인간이야말로 한 길 가슴 속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를 혼돈 덩어리가 아닌가. 철저하게 예측가능한 존재들, 가령 로봇이나 기계, 자연 현상에게 선악미추를 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들은
선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로또에 당첨되지 않았다고 해서 추첨 컴퓨터를 사악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존재의 선악을 판단하고자 마음먹는다면,
그것에게 선택의 권한이 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내면이 혼돈임을 인식하는 것, 그 내부에 마음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기억하고 있는가? 폴 마몬토프라는 깡통 인형이 로시타를 목격한 그 순간 예측 가능한 자가폐기의 운명에서 벗어나 장미꽃을 가진
어린 왕자가 되었다. 우리는 그 인형을 ‘인간적’이라고 판단했다. ‘미스 스푸키’와 ‘미스 포커’가 사기를 치든 무슨 수를 써서든 알아서 살아남기로 결심하였을
때 그녀들은 ‘매기 폰지’와 ‘캐서린 폰지’가 되었다. 아마
나뿐 아니라 뭇 지휘관들이 거기서 묘한 인간미를 느꼈으리라고 믿는다. ‘인간이, 바로 당신이 되고 싶다’라는 괴물의 고해, 자살이나 다름없는 구출 임무의 의의를 설파하는 매우 특별한 인형의 연설…… 나는
이것이 전부 “인간다움”을 논하는 은유들이라고 말하겠다. “인간다움”이란 내가 열거한 몇 안 되는 인형들에게만 있는 특정한
보물이 아니라, 이 개판이 난 세계에서 불똥을 튀기며 살아가는 인간,
그리고 인간을 닮은 존재인 인형들의 선택들의 연속임을, 작가는 넌지시 말하고 있는 것이다.
2051년의 ‘그레이 블랙웰’ 박사는 이와 같이 자조하였다.
가장 이기적이기를 선택하겠다고
선언한 인형은 가장 정의롭고 잔인한 글자 Ω를 들어올렸기에, 나는
감히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종극의 막을 걷어젖힌 이 길지 않은 이야기에서 나는 다른 자들의 ‘선택’을 기대하게 된다. 페르시카의
인형 기술의 정수인 R0635는 이 난리통의 끝에서 어떤 선택을 강요받게 될까? 쇼의 마지막 작품이자 충성스러운 모독자인 판도라는 자신의 모독을 얼마만큼이나 충실하게 관철할까? 모든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M4A1 - 지휘관 납치의 가장 유력한
실행자는 대관절 무슨 선택을 한 것일까? 또다시 어디론가 사라진
M16A1은 누구를 위해 일하기로 결심한 것일까? K, J, 모나, 지금까지 나름대로 믿을 만했던 슈타지의 동료들은 잔혹한 정치적 현실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우리에게는 동정적이지만 동시에 젤린스키를 거스를 수 없는 하벨 영감은 지팡이를 어떻게 짚을 것인가? 바로 그 젤린스키, 로미 국장, 울릭
주석, 슈바인슈타이거 장군, 루돌프 폰 오버슈타인, 미하일 세묘노비치 츠비군, 이외에 체스판 뒤에서 암약하는 높으신
양반들은 이 반항적인 나이트를 어떻게 처분하고자 할 것인가? 수많은 자들의 수많은 선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선택은 혼돈 속에서 이루어진다. 예측할 수 없는 혼돈은 인간의 영혼에 내재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것들은 ‘인간다움’이 아웅다웅 다투는 지옥의 고로高爐요, 현실을 담담히 은유하는 거울이다. 인간다운 자들이 뒤엉켜 아귀다툼하는
이 곳은, 현실은, 사탄이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공중을 배회하는 지옥이다.
이제 이벤트의 제목에
대해 말할 때가 되었다. ‘오귀인’이란 원인을 잘못 추론하는
현상을 말한다. 흄은 미샤 영감과 함께 재난에서 살아남은 그 순간부터 굉장한 도취 상태에 빠져 자신이
본 [GRCh38]에 도달하기 위해 온 삶을 다 내던졌다. 그
누구도, 자기 자신까지도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열렬했다. 그의 2003년 논문의 제목은 [샘물에서 태어나 - 포스트휴먼 시대의 도래], 인형의 개념에 대한 핵심 구상과 발전상을
담고 있었다. 인간과 유사한 ‘인형’이라는 존재의 구상, 그것도 결국
‘샘물’을 통해 [GRCh38]에 닿기 위한
시도였다. 그 연구를 완성시킨 것은 [성배] 프로젝트였고, 그 결과로 생성된 의식의 호수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지옥의 구렁텅이였다. 그러니 그것과 결과적으로 닿을 수 있는
[GRCh38]도 천국보다는 지옥에 훨씬 가까울 것이다. 그 연구로부터 가지를 뻗어나간 ‘인형’이라는 존재도, 너무나
인간적일 것이기 때문에 결코 천국을 구성할 수 없다. 그 수십 년의 착각을 통해 만들어진 ‘샘물’을, 작가가 ‘오귀인의 샘물’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자신의 연구의 필연적 귀결을 본 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엘마가
본 그는 속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패러데우스에게 아무것도 넘기지 않기 위해, 엘마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죽었다. 젊은 캐서린 폰지의 냉소와는
달리, 나는 그가 스스로의 ‘오귀인’을 깨달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최후가 속죄일지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반쯤 사람이 아니게 된 그의 최후의 선택은 돌고 돌아 ‘대공’으로, 지휘관을 구출할 ‘우물’이라는 패로, 엘마라는 ‘예술품’의 화룡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적어도 죽음의 순간에는 인간이었다.
두서없는 글의 끝을
맺고자 한다. 이 모든 이들의 선택이 너무도 ‘인간적’이기에, 나는 다만 모자를 벗고 허리를 숙인다. 그리고 앞으로의 뭇 군상들의 선택을 주목하고자 한다. 그리고 ‘자기추방’으로의 귀결을 담담히 지켜보고자 한다.
가장 예쁘고 귀여운
인형이여, 좋은 밤, 좋은 꿈, 행복한 잠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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