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조금 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 대목
사실 (미온이었어야 할)시온은 처음부터 힌트를 준 정도가 아니라, 답을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었음
내 이름에도, 몸에도, 마음에도 들어찬 “오니“
오니란 아마도, 여러 챕터에서 언급되는 모종의 -발자국 소리-를 트리거로 해서 발현되는 어떤 착란 현상이며
그게 시온의 마음에 오래 들어차 있던 가문에 대한 원망, 그리고 사토시를 향한 맹목적인 그리움과 결합해 낳은 끔찍한 악령과도 같은 심리상태
그 오니를 인정하면 풀리는 문제였고, 케이이치는 풀이 과정은 날림이었겠지만 (내 친구 미온은 이렇지 않아!) 결과적으로 답을 맞췄다
그럼으로써 케이이치 시점에선 미온을, 시온 시점에선 시온을 살인행각의 주체로부터 분리시켜 정화해준 셈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기에 다른 희생자들과 미온, 시온, 종내는 케이이치조차도 참극을 피하지 못했지만 저 부분만큼은 완전히 잡아먹히기 직전이었던 시온의 인간성을 잠시나마 되살릴 수 있게 됨
엔딩씬이 이 감정선과 그대로 이어졌다면 참 먹먹한 엔딩이었을 거라 생각하지만...결국 살인행각이 멈추지 않고 이어진 뒤 실족하는 전개가 되어버리니 시온에 대해 좋은 감정이 남기 어려울 수밖에
2. 손톱 3개의 의미와 사토시의 행방
메아카시를 통해 소노자키 일가의 위명은 표면적으론 마을 전체를 진동시키지만 실제의 영향력은 가문 내에 한정돼 있다는 건 확인함
그걸 통해 손톱 뽑기를 재구성해 보면 어떨까
시온이 뽑은 손톱 세 개의 몫은 카사이, 요시로 삼촌, 그리고 시온 자신
룰 어기고 학원에서 빠져나온 장본인과 그걸 묵인해준 두명으로 보면 깔끔하게 맞아떨어짐
그런데 시온은 마을로 와서 사토시와 만나며 겪어온 일련의 과정을 모두 엮어서 생각하니 손톱 하나를 자기 몫이 아닌 사토시의 몫으로 착각했고
이 점 때문에 사토시가 실종된 후 일가가 자신과의 약속을 어긴 것으로 간주해 가문에 영영 씻을 수 없는 원한을 품고 살게 된다
거기에 훗날 키미요시 할배도 거기 사토시가 포함되지 않는 이유를 “사토시는 용서받을 대상이 아니니까“라고 시온에게 선고한 모양새가 되니 증오의 불씨에 기름 들이부은 격
(그래도 할배는 점잖게 목매달기로 보낸 거 보면 어렸을 적 보살핌에 대한 애착이 조금은 남아있었나 봄)
와타나가시 후반부에 언급되는 소노자키의 내력은 실제를 살짝 버무린 허구라는 것이 메아카시에서 확인되는데 이건 결국 화자인 시온의 가문에 대한 왜곡이 다분히 첨가된 거라 봐야겠지
하지만 손톱 뽑기 자체는 집안 전통이라 삼대가 똑같이 당했고, 특히 어머니인 아카네의 일화를 보아 실제로 오료가 사토시까지 건들 생각은 없었던 걸로 보임
애초에 오료 본인의 행적부터 어느 정도 가문의 위세를 과장하고자 흑막 행세만 한 것이니 실제로 사토시를 해코지하고 자시고 할 위치도 아니었겠지
다만 사토시의 행방이 묘연해진 건 사실이고 수사망-특히 소노자키를 겨냥하는 오오이시-도 피해야겠으니 마을 사람들이 적당히 누군가 진범이라고 꾸며서 대신 집어넣고 일단락
그럼 사토시의 행방을 가늠할 수 있는 단서는 뭐가 남았을까
메아카시 초반 레나가 말해줬었다
사토시가 레나 자신이 겪었던 것과 똑같은 ”오야시로의 저주“의 증상, 즉 -발소리-를 듣고 있다고
정작 사토시가 실종된 이후엔 스토리의 포커스가 전부 소노자키 일가로 향하기 때문에 상기하지 못하고 넘어갈 법한 정보임
매 챕터마다 이 발소리를 들은 사람의 행적을 상기하면 그날 사토시에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거라는 가설이 세워짐
그럼 사토시는 죽었을까? 죽었을 확률이 높아보이긴 함
다만 사토코가 그랬듯, 살아있을 거란 기대 정도는 품어서 나쁠 건 없겠지?
3.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지 않는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 라는 최후의 변은 결국 존재해선 안될 쌍둥이로 태어난 것부터 운명이 꼬였다는 의미
세상에 난 직후 사살당하든, 마을 밖으로 보내져 없었던 사람으로 취급받든, 어느 쪽이건 함께 태어난 이상 시온이나 미온 중 누군가는 걸머져야 할 책임이 되어 있다
도미회는 그 운명의 주인을 (미온이었어야 할) 시온으로 확정하는 요소일 뿐
그렇게 가문에서 암묵적으로 배제되던 시온이 딱 한번 가문의 일원으로 제대로 대우받는 순간이 아이러니하게도 손톱을 뽑는 시점
냉혹하지만 일가의 대부분은 똑같이 겪었을 일종의 관례고 이걸 치름으로써 오료와 소노자키 일가도 시온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있게 됨
그럼 미온이 시온과 마찬가지로 손톱을 뽑게 된 건 왜였을까
미온 스스로 사토시의 처우에 관해 자신도 오료에게 따졌다 말했지만 위에서 정리했듯 이쪽은 애초에 징벌 대상이 아니니 손톱을, 똑같이 세개씩이나 뽑을 이유는 못 될거라고 봄
그럼 시온에 대한 단순한 동정심? 도미회로 운명이 바뀐 것에 대한 근본적인 부채의식? 그래서 스스로 자처한 연대책임?
동기는 쉬이 이해할 수 없지만 이걸 통해서 한가지 떠오르는 바는 있음
”똑같이 손톱을 뽑았기 때문에 이 사건 이후로도 시온과 미온은 그전처럼 서로의 인격을 흉내낼 수 있다“
아카네가 말했듯 손톱을 뽑았던 자리에 새로 돋은 손톱은 예전의 것과 미묘하게라도 다른 형태로 자라나고
이 경험이 공통된 상태가 아니라면, 어쩌면 본편에서 미온과 시온을 구분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로 활용되었을지 모르지
결국 캐릭터의 본심이 어땠든, 작가 입장에선 스토리의 진행을 위해서 꼭 필요한 요소라고 판단했을 거라고 생각함 그 안에서 우리는 미온의 본심을 자유롭게 상상해볼 뿐
그렇다면 난 이렇게 상상해보고 싶다
“결국 미온도 시온과 다를 바 없이, 가문에 의해 자신의 의지가 아닌 책임을 걸머진 존재“라고
4. 시온이자, 미온
시나리오 후반 시온은 도미회로 뒤바뀐 미온으로서의 지위를 되찾아옴
그렇게 시온에서, 미온이었어야 할 시온에서, 미온이 된다
물론 아무리 미온의 말투와 행동을 흉내내고 미온이 가문에서 갖는 지위를 행사해본들 그건 미온, 시온이었어야 할 미온, 시온과 똑같아질 순 없는 연극일 뿐
요는 그 미온과 시온으로서 각자 걸어갈 운명이 도미회로 인해 꼬이지 않았다면, 과연 이들이 본편과 다른 결말로 향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겠냐는 거임
더이상 서로 역할을 바꿀 필요 없이 진실로 행동할 수 있는 세계선에선 “미온”이 사토시를 좋아하고, “시온”이 케이이치를 좋아하는 그림이 되었을까
그랬으면 와타나가시, 메아카시와 같은 참극은 피할 수 있었을까
혹은 그런 연심조차도 엇갈려 사라져버리고 말았을까
시온이자 미온에게, 미온이자 시온에게, 소노자키 가의 쌍둥이로 태어난 시점에서 서로 다치지 않는 세계는 존재할 수 있었을까
답은 그들의 의지를 벗어난 지점에 있는 것은 아닐까
5. 잡설
You 엔딩으로 깔릴 때 자막으로 가사가 있었으면 싶었는데 크레딧이 빼곡히 올라오는 거 보고 익스큐즈함
지금까지 본 모든 챕터 중에 가장 괜찮게 읽었고, 아직 해소되지 않은 다른 의문점들은 어떻게 풀어나갔을까 기대된다
시온이란 캐릭터에 관해선 글쎄 - 자신이 누렸어야 할 모든 것을 뺏기고 세상과 격리돼 살아온 사람의 감정선이라 이해 못할 건 없지만 그 이상 공감하고 받아들이긴 역시 어려울 듯
어쩌면 다소 맹목적으로 포용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할지 모를 타입이고, 그런 성향을 갖고 있는 케이이치가 있었기에 성립하는 이야기였을지도
리카의 이면을 보아하니 세계선이 여러번 루프되는 듯하고, 아마 시온은 수도 없이 다음번의 기회를 갈구하며 베란다에서 떨어져 내렸겠지
언제쯤 이 예정조화를 벗어날 수 있을까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진 않았어도 자신의 의지로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달았을 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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