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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폭설과 탄피 - 11

카이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24 22:5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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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버밍엄 바윅 스트리트.


웨더비가 오래 된 펍의 참나무 문을 열었을 때는 길거리를 내려다보던 해가 진 이후였다. 황동 손잡이를 열자마자 천박한 펍이나 바에서 흔히 손님을 먼저 반기는 담배 연기나 느끼한 음악 같은 것도 없이 조용한 분위기다.


조촐한 테이블 사이를 헤쳐나가며 그 사이에 앉은 사람들에게서 익숙한 얼굴들을 추려내고 있을 때, 맞은편 테이블 쪽에 둘러 앉아 머리를 숙이고 있던 이들을 보고 곧장 다가갔다. 때마침 그쪽에 앉아 있던 CCO 마크 화이트가 입술을 살짝 씰룩이며 손을 흔들었다. 주위에는 P.S.S의 테일러 브라더스(콘래드 테일러, 제임스 테일러)가 있었다.


“늙어서 그런가, 요즘 눈도 안좋아졌나?”


마크가 미리 준비 된 위스키 잔을 슬쩍 건네며 물어왔다. 내뱉은 말에 비해 비꼬는 의도는 없어 보였다.


“쉬는 날을 앞둔 밤에 위스키를 한 잔 더 음미 할 수 있다면 눈 한쪽을 주지.”


마치 시라도 읊는듯한 어조로 응수한 웨더비 록우드는 사방에서 셋이 들이대는 잔을 향해 자신의 잔을 맞부딪쳤다. 얼음을 감싼 호박색의 액체가 잔 사이에서 출렁였다. 가뜩이나 조용한 펍의 분위기에 맞추어 이번 프로젝트의 운송 업체 입찰에 대한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엘리노어는 자신의 휴대폰이 살짝 진동하는 것을 느끼곤 바로 꺼내들었다.


지금 일본에 가있던 엘리노어가 찍은 사진들이 ‘W’앱 메신저로 날라와 있었다. 잠시 대화가 마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걸 살핀 웨더비는 그들과 함께 걸려 있던 대화의 그물에서 잠시 빠져나와 딸이 보내준 사진들을 하나 하나 살펴봤다.


“따님이시군요?”


그림자에 덮혀진 듯 어두운 인상으로 그를 주시하던 콘래드가 다시 그물로 끌어오는 손길을 뻗듯 물어왔다. 웨더비는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휴대폰을 집어 넣고 위스키를 한모금 더 목에 넣고는 말했다.


“이젠 애가 야외에서 르마네 콩티도 당당하게 마시는데 어쩌냐? 아주 정말 화가 나는군.”


정말 화가 났다는 뜻도 아니고 웃음과 걱정이 섞여 있는 그 눈빛에 호응하던 마크가 위스키로 타버린 듯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작년에 있던 일도 거의 다 잊은거겠지.”


그러자 묵언 수행자처럼 입을 꾹 닫고 있던 콘래드에 비해 촐랑이는 것 같던 제임스도 실실 거리며 끼어들었다.


“귀여운 아가씨의 마음의 병도 르마네 콩티에는 어쩔 수 없나 보죠.”


살짝 피식거린 웨더비는 지나가던 바텐더에게 위스키를 더 달라는 듯 손짓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아무튼 자네들, 정말 감사했네. 작년에 딸 병문안하러 호주까지 가줬던거.”


마크는 서로의 우정으로 다져진 시선을 앞세우면서 뭘 새삼스럽냐는 듯이 새로 따라진 웨더비의 잔과 자신의 잔을 부딪히면서 미소를 유지했고, 이에 대해 떠들던 것은 제임스 뿐이였다.


“다른 엘리트들이 미중 전쟁 났을 때 전시 국채 투자 얘기나 하는 동안, 록우드 경께서 수많은 영연방의 퇴역 군인들을 위해 기부하신 돈을 생각하면 당연한거 아니겠습니까? 덕분에 제 동기도 의족 수술 받을 수 있었구요.”


“넌 귀여운 록우드 양 보고 싶다고 따라간거 아니야, 병신아.”


옆에서 냉담한 시선을 유지하던 콘래드가 내민 얼굴과는 상반 되게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끼어들자, 웨더비도 겸손히 웃으며 다시 한 번 서로의 잔을 부딪혔다.


“그래도, 간만에 해외 나가는 거라 걱정은 되지...”


그러자 콘래드는 어두운 조명 사이로 날카로운 시선을 내던졌다.


“걱정하시는게 당연히 이해가 안가는건 아니죠, 웨더비 실장.”


그는 초임 시절 스커드 발사대에서 끌어낸 이라크군 운용병의 뒷통수에 총탄을 박아 버렸을 때처럼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말을 이었다.


“록우드 양 곁에 있는 칼리스 그 자식처럼요.”


새로 따른 잔을 순식간에 비운 제임스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가를 험악하게 굳혔다.


“그 암사슴(Does) 새끼는 평판이 참 좋아요(Bloke's got a reputation), 록우드.”


마크는 갑작스럽게 숨을 조이는 듯한 분위기에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웨더비는 최대한 흘려 넘기려는 눈치였다.


“둘을 이해 못하는건 아니지만, 난 칼리스를 나름 믿고 있어. 그래도 뭔 일 있으면 너희가 손 쓸 수 있게끔 행선지는 알려줬잖아.”


“뭐 그건 잘하신 겁니다만...”


콘래드는 어깨를 으쓱이며 지나가던 바텐더에게 다음 한 잔을 달라며 신호하며 말을 이었다.


“뒷통수 조심해요 웨더비. 그리고 하나만 기억하세요. 그 녀석은 록우드 양에게 불 부터 내밀고 물 뿌린 놈이라는 걸.”


그 말을 옆에서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앉아 있던 마크 화이트는 말 없이 버번을 들이키고 있었다.


----


둘째 날.


17:00 PM.


일본 삿포로 국제 스키장.


폐장 방송을 뒤로하고 모두가 락커룸으로 돌아 왔을 때 해는 벌써 금빛 같은 노을을 품고 저물고 있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하고 장비와 락커가 부딪히는 소리 사이에 기합을 더하듯 칼리스는 묵직한 스노우보드를 요란스럽게 밀어 넣었다.


“간만에 놀았다는 생각을 가져본게 몇 년 만이지.”


그리고 자신의 VIP인 아가씨를 스키 교육 계속 시켜달라며 떠넘겨버리고 실컷 보드 타게 해준 것에 감사하다는 듯 스즈카에게 능청스러운 시선과 미소를 보냈다. 그 의도와 시선을 느끼고도 감흥도 없이 토모에의 스키 장비를 받아 대신 넣어주고, 옆에 있던 엘리노어의 장비 정리를 도와주려던 찰나 엘리노어가 허리를 굽혀 락커에서 무언가를 꺼내는걸 보았다.


사면을 화려한 문양으로 이어낸 금줄 장식과 중간중간마다 박혀 있는 보석들이 조화를 이룬 작은 상자, 그것이 펜던트 케이스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은 엘리노어가 그 안에 있던 내용물을 꺼냈을 때 부터였다.


“아 잠시만요! 장비들도 제가 넣을게요.”


그 펜던트를 허겁지겁 목에 두르고 자신의 스키들과 폴들을 집어 넣자, 스즈카는 조용한 발걸음으로 벤치에 다가가 그 위에 올려져 있던 나머지 고글과 스키화를 넣어주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 목걸이 어제는 못 봤던 것 같군요.”

엘리노어는 살짝 눈을 크게 뜨고 조심스럽게 고딕 양식의 금장식 사이로 빛나는 자수정이 박힌 목걸이를 두 손가락으로 붙잡아 올려서 보여주었다.


“아! 이거 어제 캐리어에 넣어둬서 안가져왔어요. 오늘도 어제 구른 것 때문에 잃어버릴지도 몰라서 락커룸에 넣어뒀네요.”


어제 짧은 스키 강습을 받으며 말 안듣고 앞서나가다가 경사로를 굴렀던걸 떠올렸는지 엘리노어는 어색하게 웃음을 새겼다.


“그리고 이거 저희 아빠가 친구분들이랑 같이 상의해서 사주신거라 잃어버리고 싶지 않거든요.”


이내 그녀는 백옥 같은 손가락을 움직이며 펜던트를 열어 젖히더니 안에 끼여진 사진을 보여주었다. 측면에 조그마한 경첩이 달려 있어 사진 펜던트라는건 충분히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안에 있던 사진을 보니 이 아가씨가 품는 목걸이의 가치는 화려한 보석과 무광택 순금장식으로 인한 비싼 가격이 아니라는걸 알아차렸다.


사진 속에는 털이 두꺼운 리트리버 한마리를 사이에두고 그 개를 방긋 웃으며 끌어 안고 있는 어린 금발의 소녀와, 소녀의 부모님으로 보이는 남녀가 곁에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사진속의 소녀는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린 시절의 엘리노어라는걸 단숨에 알아차리게 되었다.


스즈카는 우측에서 엘리노어의 어깨를 잡고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던 여성에 시선을 맞췄다.


“어머님이신가요?”


“네... 지금은 안계셔요... 몸이 좀 안좋으셨거든요...”


그동안 대화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언급도 없었던지라 예상했던 부분이였지만 스즈카는 그대로 말도 없이 침묵하기만 했다. 짧은 침묵 사이에서 그 목걸이를 응시하고 있을 때, 토모에가 뒤에서 끼어들며 침묵을 깨뜨렸다.


“근데 둘이 많이 친해졌나보네?”


부드럽게 다가오는 토모에에게 고개를 돌린 엘리노어는 명량하게 웃으며 스즈카의 팔뚝을 끌어안을 듯이 붙잡았다.


“이분이 스키 진짜 잘 가르쳐줘, 원래 제포씨가 알려주기로 했는데.”


이내 살짝 양쪽 볼을 부풀리며 얼굴을 찌뿌리는 엘리노어의 시선이 칼리스를 정확히 겨냥하자, 저만치에 서있던 칼리스는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더니 허둥지둥 자리를 피했다.


“확실히 어제 둘끼리 붙여두길 잘했다.”


“토모는 제포씨랑 어땠어?”


“정말 좋은 영어 공부 시간? 하하...”


말 끝을 흐리며 어색하게 웃는 토모에는 어제 칼리스 씨와 했던 얘기를 떠올리며 스즈카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때마침 이쪽을 바라보던 스즈카와 눈을 마주쳤지만 그녀는 곧 바로 고개를 돌리며 아직도 열려 있던 엘리노어의 락커를 대신 닫았다.


----


료칸으로 돌아온 직후 노천탕에 몸을 담근 토모에와 엘리노어와 함께 입욕한 스즈카는 그 아가씨들보다 떨어진 위치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얘기하는 모습을 말 없이 지켜봤다. 화장품이나 패션, 그리고 순정 영화에 출연한 배우에 관한 얘기가 주요 주제여서 따라가지 못한것도 있지만, 어제 아침에 있었던 일 때문인지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진 것이다.


그리고 다 같이 목욕을 끝마친 이후로도 말 한마디도 없었던 스즈카였지만 중간에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는 엘리노어의 말을 새겨 듣고는 료칸 바깥으로 빠져 나왔다. VIP로 여기고 있던 둘을 방에 남겨두고 나온 것은 자기답지 않은 행동이였지만 칼리스가 방 안에 남아 있었기에 믿고 나온 것이였지만 발이 무겁게 느껴졌다.


때마침 인근에 먹거리 야시장도 있다고 해서 정찰 삼아 잠시 둘러보고 올 심산이였음에도 그녀의 발걸음은 어제 식사를 했던 외부 바비큐장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공허한 시선만을 똑바로 앞세우며 정원과 조잔케이의 전경이 보이는 난간을 붙잡고 선 스즈카는 어제 아침에 있었던 일의 근원부터, 아까 전 보았던 엘리노어의 목걸이 사진으로 인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고뇌를 떨쳐내길 바랬지만 하늘에 낮게 걸린 달이 빚추던 눈과 정원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저 건너편의 야시장에서부터 파도처럼 떠밀려오는 소란과 더 명량한 불빛도 살풍경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죄책감이 그녀의 목을 휘감자 그녀는 난간을 더욱 세게 붙잡았다. 이런 고통도 속죄하지도 못할 자신이 반드시 품고 다녀야 하던 탓에 이를 잠시나마 떨쳐내길 바랬던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하게 된다.


짧은 고뇌에 잠기며 시골의 번화가 같은 동네를 살피다 그제서야 난간에서 손을 뗀 스즈카는 뒤쪽에서 자신을 노리고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다. 그리고 그 기척은 확신이 되어 자갈을 짓밟는 전술화의 묵직한 발걸음으로 이어진다.


“아이스크림 사러 간다더니, 여기서 뭐하시나?”


익숙한 목소리가 밤의 고요함을 깨고 나서야 그녀는 돌아섰고, 스즈카는 칼리스의 우직한 자태를 알아보고 표정 변화 없이 한숨을 쉬며 물었다. 더 뒷목 잡을 부분은 료칸 객실 창가 쪽에서 자신이 이러고 있는 꼴을 보고 온건지, 어제 엘리노어가 가지고 왔던 르마네 콩티와, 와인잔들을 가슴에 끌어안 듯 챙겨왔다.


“VIP들에게 눈을 떼다니 재정신입니까?”


사실 이 남자를 믿고 혼자 나온 것이였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갑작스럽게 친밀하게 다가오는 그에 대한 반사적인 방어에 가까웠다. 그러나 칼리스는 능청스러우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으로 웃으며 바비큐용 벤치에 걸터 앉더니 가져온 유리잔에 와인을 차례대로 따랐다. 어제 저녁 식사를 하면서 각각 한 잔 씩만 마시고 반 병만 남은걸 챙겨둔거였다.


“그 공주님들 고상한척 하지만 다 큰 어른이잖아? 그리고 우리 객실 5층이고, 사람도 엄청 돌아다니고 있어. 이런 환경에 남들이 걔네들한테 허튼짓할 확률을 계산해보면 얼마나 될까?”


매우 현실적인 일침과 더불어 칼리스는 방금 따른 와인잔을 스즈카에게 건네었다. 그녀는 난간에서 힘 없이 떨어져나와 출렁이는 잔을 받아 들고는 그의 옆에 앉았다. 그렇게 한모금을 들이키자 빈티지 특유의 따듯함과, 복잡하게 뒤엉킨 달콤함이 목을 적셨다.


“그런데 귀공자(Childe)께선 왜 혼자 심부름 땡땡이치고 여기 고독하게 있으신가?”


괌에서 두 번째로 만났을 때 불러대던 별명을 시작으로 한잔을 들이킨 칼리스와 가까이 있으니 설명 할 수 없었던 감정이 치솟아 턱을 못열게 붙잡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스즈카는 준비 운동이라도 하듯이 다른 얘기부터 시작했다.


“어제 카미조 아가씨가 제 얘기 했었습니까?”


차분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차 침울한 빛을 띄우자, 칼리스는 고급 와인을 음미하기보단 그녀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에 신경을 기울이고는 바로 찌르듯이 물어왔다.


“너... 그 아가씨에게 숨기는거 있지?”


그 한마디만으로 토모에가 이 고릴라 몸뚱이에 사자 같은 인상을 갖춘 남자랑 어떤 대화를 했는지 눈치챈 스즈카는 잠시 침묵하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없는건 아니죠.”


그리고 토모에도 그걸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말을 이어 나갔다.


“카미조 선생님의 요청으로 그분 집에 들어왔을 때, 딱히 별 감흥은 없었어요. 그런데 같이 지내다 보니 저도 아가씨랑 계속 잘 지내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가씨는 저를 친언니보다 더 언니처럼 여기고 계셨고, 저도 그분을 위해 뭐든 해드리고 싶었습니다만...”


스즈카는 겨울 바람을 맞아가며 문득 료칸 건물 쪽을 올려다 보았다.


“그분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처음 왔을 때 느꼈던 어색한 벽을 깼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토모에의 어머님 사진을 보고 알게 된 게 있어요... 그것 때문에 또 다른 벽이 생겨버렸죠.”


칼리스는 그녀의 잔이 비어진걸 깨닫고 새로운 잔을 따라주었지만 그녀의 손이 점점 떨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결국 말을 잇지 못하겠다고 느낀건지 한잔을 더 들이키고 다른 주제를 꺼내들었다.


“록우드 양의 어머님은... 어떻게 되셨던 겁니까...”


“아... 나도 뵌 적은 없어. 엘리 아가씨가 딱 10살이였을 때 돌아가셨대. 암이였다더군.”


스즈카는 어느새 3잔 째 들이키고 텅 비어진 유리잔 사이, 달 빛을 받아 희미하게 반사 되는 자신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당신은... 저처럼 단추를 잘못 맞추진 않았네요...”


이미 텅 비어진 르마네 콩티의 병 옆으로 와인잔을 천천히 내려 놓았을 때, 멀리서 둘을 부르는 외침이 귀에 박혔다.


“두 분! 거기서 뭐하세요?!”


토모에의 목소리. 반사적으로 고개를 올려다보니, 토모에가 객실 창가 쪽에서 이곳을 응시한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칼리스는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며 응답했다.


“아! 그냥 같이 다녀오자고 얘기하고 있었어! 같이 다녀올게!”


곧 이어 토모에 쪽을 올려보다가 복잡한 시선으로 고개를 떨구던 스즈카를 힐끗 바라본 칼리스는 그녀에게 어깨 동무를 하듯 끌어 당기며 속삭이듯 말했다.


“일단 좀 걷자.”


--


거리로 나와 눈 덮힌 길을 짓밟으며 편의점이 있는 조잔케이 신사 주변으로 향하던 둘은 와인으로 인한 취기를 억누르며 움직였다. 칼리스는 이렇게 나와 버린 이상 더 진중한 확답을 듣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긴지라 그녀가 하다 말은 말을 계속 들을 수 있으리라 믿지도 않았다.


하지만 단추를 잘못 맞추진 않았다고 한 얘기에서부터 그 뜻을 어느정도 짐작하게 되었다. 만약 칼리스 본인의 해석이 맞다면 이 스즈카와 토모에 둘은 끔찍한 관계의 저울에 올려진 셈이였다.


“그런데 제포...”


방금 전, 걷고 있는 인도 너머 차선에서 지나친 승합차의 바퀴 끄는 소리와 함께 오랜 침묵을 깬 건 그녀였지만, 자신의 끔찍한 추론에 떠밀리듯 약간 긴장한채로 반응한 칼리스는 신중한 눈치였다.


“록우드 양의 펜던트 말입니다... 그거 가족 사진 말고 또 뭐가 들어 있는 거죠?”


뜬금 없는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린 칼리스는 얼버무리다 대답했다.


“아 그거... 아버님이랑 꼰대 콘래드.대령... 그리고 마크 이사가 머리 싸매서 선물한 물건이지... 나도 가족 사진 밖에 못봤는데 갑자기 왜...?”


스즈카는 아까 전 침울했던 기색을 조금씩 걷어 내면서도 위화감 가득하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아뇨... 처음 봤을 때 자수정 때문인줄 알았지만, 사진 한 장만 넣기에는 좀 두꺼워 보였거든요.”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곰곰이 생각하는 듯 했던 칼리스는 갑작스럽게 입 사이로 내뱉으려던 말을 집어 넣고 예리하게 눈썹을 찌뿌렸다. 이내 옆에 있던 스즈카가 편의점이 있는 방향을 향해 손을 뻗으면서도 고개를 힐끗 돌렸다. 칼리스는 그녀가 왜 그렇게 태연한 척 행동했는지 눈치채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묻겠습니다... 뒤에 따라오고 있는 사람은 뭘까요?”


뒤쪽에서 다가오는 기척을 감지한채 저쪽에 편의점이 있다는 식으로 손을 뻗는 척 잠시 뒤쪽을 확인한 스즈카의 말에, 칼리스는 지금까지 받아 온 훈련 내용 중 하나를 머릿속에서 끄집어내며 물었다.


“어땠어?”


“인원은 둘, 한 명은 당신 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체구고, 걸을 때마다 왼발과 오른발의 박자 차이가 있어요. 그리고 오른팔 팔꿈치를 살짝 뒤로 빼고 있군요.”


“나도 조금 봤어, 오른발을 짚을 때마다 조심스러운 것 같군.”


그리고 칼리스와 스즈카가 내린 결론은 뒤에 따라 붙은 사람들 중 하나가 권총을 허리춤에 낀채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였다. 이내 스즈카는 방금 전 자신들을 앞질러 건너편으로 주행한 승합차 ‘도요타 하이에이스’의 검은 차체 뒷면을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차 번호표가 삿포로도 아니고, 아사히카와네요.”


“그래... 그러고 보니 아까 스키장 갈 때나, 아까 나올 때나 우리 료칸 건너편에 있던 호텔에 서있었지.”


칼리스와 스즈카는 자연스럽고 이 고요함 속에서도 들리지 않게 말을 이어나가며 일부로 행인들이 오고갈 편의점을 지나쳐 더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들은 인적이 끊긴 조잔케이 신사와 서서히 가까워졌고, 칼리스가 다시 입을 떼었다.


“저 차로 지나가면... 시드니처럼 대입해보면 총잡이들이 내릴 거야.”


“저희처럼 따진다면 둔기를 들고 다가와서 저희를 치거나, 승합차로 끌고가려 하겠죠.”


그렇게 둘은 공통 된 결론을 내렸다.


“좋은 방법은 저 차를 지나가지 않는 방법이죠.”


스즈카와 칼리스는 신사로부터 한 블록을 더 지나치자 바로 인도 옆으로 조밀하게 이어진 원시 우림의 숲을 힐끗 바라보았다.


“바로 뛰어!”


칼리스의 외침에 둘은 자연스러운 발걸음을 순식간에 바꾸며 숲 너머로 뛰어 들었다. 그러자 뒤쪽에 따라 붙은 두 남자는 잠시 당황한채 소리를 내지르며 둘을 쫒아 숲 방향으로 꺾었고, 건너편에 있던 하이에이스에서도 일련의 무리들이 뛰쳐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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