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976년, 엄혹했던 프랑코 군부 독재가 프랑코 본인의 사망으로 끝나고 스페인의 정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세계인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프랑코는 원래 친한 해군 제독 루이스 블랑코 대장을 후계자로 염두에 두었으나, 그가 바스크 분리독립 단체인 ETA의 테러로 날아가자 형식적인 군주로 두려 했던 후안 카를로스 1세가 공식 후계자가 된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프랑코 사망 이후 프랑코 정권에서 근무하면서도 은밀하게 민주화를 부르짖던 온건 우익 관료 아돌포 수아레스를 수상으로 임명하고 민주화 개헌에 착수한다.
프랑코 체제에선 상상도 하지 못하던 공산당 합법화부터 시작해 사회 많은 부분이 급격히 자유화되자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한편 다른 의미로 경악한 세력도 있었으니, 바로 군부였다.
군부는 프랑코가 후계자로 내세웠던 후안 카를로스 1세가 민주화를 하는 것도 모자라 ‘좌빨’ 공산당까지 합법화하자 분노했다.
처음에 후안 카를로스와 아돌포 수아레스는 강성한 군부의 눈치를 봐서 ‘군부를 탄압할 생각이 없다’는 메시지를 계속 전달했으나, 군부는 믿지 않았다.
1981년 2월 23일, 총선거 이후 신임 수상 선출을 위한 표결이 진행되고 있을 때, 헌병군 중령 안토니오 테헤로 중령이 헌병대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휘하 부대를 불법적으로 움직여 의회를 점령하고 국회의원들을 인질로 잡았다. 그는 이미 1978년 쿠테타 미수 사건 때 주역으로 징역 11개월을 선고받은 경력이 있었다.
모든 의원들이 반란군의 난입과 사격에 놀라 엎드릴 때, 수상 아돌포 수아레스는 공산당 당수 산티아고 카리요와 함께 반란군에게 저항했다. 그는 반란군의 ‘엎드리라’는 지시에 불복종하며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서있었다.
당시 부수상을 맡고 있던 현역 육군 중장이자 내전기 국민파에 가담했던 구티에레스 메야도도 반란군에게 호통을 치며 반란 행위를 꾸짖었다.
극좌파와 중도 우파, 심지어 스페인 내전 참전한 군부 핵심 인물마저 쿠테타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취한 것이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쿠테타가 발생해 국회가 점령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즉시 군복을 입고 특별방송을 진행, 쿠테타를 전혀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방송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그는 프랑코 시절 육군사관학교에서 친분을 쌓았던 당시 육군 주요 장성에게 전화를 돌려 병력 동원을 엄금하고, 확실히 병력을 장악할 것을 지시했다.
우왕좌왕하던 주요 장성들이 후안 카를로스에게 하나둘씩 복종하면서 반란군은 궁지에 몰렸다.
결국 테헤로 중령은 경찰에게 항복하여 체포되었고, 스페인 역사상 최후의 쿠테타 시도는 무산되었다.
현재도 스페인 국회 천장에는 반란 당시 총격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와 같은 사건 또한 역사의 일부이기에 보존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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