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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켄 로치, <나, 다니엘 블레이크>

누붕이(222.234) 2024.05.01 00:26:32
조회 731 추천 21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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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엔딩은 조금 이상하다. <, 다니엘 블레이크>는 국가, 혹은 복지라는 이름의 시스템이 한 개인의 인간성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발한 작품이다. 그리고 한 인간이 지금 죽음의 길로 떠나버렸다. 그리고 그가 남겨준 사랑을, 그가 보여준 투쟁을 기억하는 이들이 모여 그를 애도하고 있다. 다니엘 블레이크가 도와주었고 다니엘 블레이크를 도와주기도 했던 케이티가 대표로 그가 남긴 메시지를 읽는다. 메시지는 절절하고 그만큼이나 저릿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그런데 메시지를 읽고 있는 케이티는 비록 눈시울이 붉어지긴 했지만 끝내 울지 않는다. 메시지를 낭독한 뒤, 카메라가 케이티의 슬픈 표정을 클로즈업 하지도 않는다. 케이티가 낭독을 마치면 바로 암전 되어 버린다. 그래서 우린 케이티의 표정을 보며 슬픔에 빠질 시간을 부여 받지 못 한다. 이건 무슨 의미 일까. 어쩌면, 이건 감독 켄 로치의 단호한 선언은 아니었을까.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당당한 한 명의 시민이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버렸지만, 그렇다고 그를 잃은 슬픔에만 빠져있지는 않겠다. 다니엘 블레이크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처럼 우린 그를 기억하며 우리 역시도 당당하게 싸워 나가겠다는 투쟁의 선언은 아니었을까.

 

투쟁이라는 단어로 다니엘 블레이크의 삶을 삶에 들어가보면, 오프닝이 조금 달리 보인다. <, 다니엘 블레이크>의 오프닝은 무려 220초동안 화면없이 소리만 들려온다. 정확하게는 암전 된 화면에 크레딧이 짧게 올라가고 동시에 한 명의 여성과 한 명의 남성이 나누는 대화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아니, ‘대화라고 하기 보다는 추궁에 더 가깝다고 해야할 것 같다. 다니엘 블레이크에게 자신을 의료전문가라고 밝힌 아만다는 자신이 질병 수당 지급자격을 확인하기 위해 질문 할 것이라 밝힌 뒤 다니엘 블레이크에게 각종 질문들을 던진다.

 

혼자서 50미터 이상 걸으실 수 있나요?”

윗주머니까지 양팔을 올리실 수 있나요?”

배변 장애가 생길 정도로 통제력을 상실하신 적이 있나요?”


다행히도 오프닝에서 다니엘 블레이크의 정신은 팽팽하게 조여져 있다.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으신 적이 있느냐?’라는 아만다의 질문에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 얘기를 하자는 데 안 통하는 지금이 그렇소라고 일갈 해 버린다. 한 인간이 가진 존엄성과 자존감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복지라는 이름의 시스템은 한 인간을 끊임없이 서류상의 존재로 만들고 싶어한다. 수치화 하고, 계량화 하고, 실제로 이상이 있는지를 체크하려는 관료주의는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이 세상에 기여해 왔는지 알지 못한다. 아니, 알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개입될수록 복지라는 깔때기의 입구를 더 넓혀야 하니까. 그래서 영화 속에도 등장 하듯 복지를 원하는 이들이 지레 포기하도록’ 한. 철저하게 지원을 받는 이의 입장은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컴퓨터와는 관계없이도 이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왔던 다니엘 블레이크에게 마우스를 올리고 클릭하라 하자 다니엘 블레이크가 마우스를 정말 하늘을 향해 들어올리는장면은 그래서 마냥 웃기에는 뒷맛이 쓰다. 다니엘 블레이크에게는 마우스와 키보드를 조작해 서류를 내는 것 조차 투쟁이 되어버린 셈이니까.

 

케이티가 에스코트 서비스의 운영자를 소개받는 장면에서 나는 켄 로치 감독이 소개해준 사람과 에스코트 서비스의 운영자를 그렇게 비호감적인 인물로 그리지 않으려 신경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니엘 블레이크가 에스코트 서비스를 하고 있는 케이티를 만나는 장면에서도 다니엘 블레이크는 이것이 비도덕적인 일이라거나 너는 엄마다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왜 왔냐는 질문에 다니엘 블레이크는 미안하다고 힘없이 답할 뿐이다. 케이티가 이렇게 된 것이 다니엘 블레이크의 잘못인가. 하지만 다니엘 블레이크는 에스코트 서비스를 하고 있는 케이티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할 뿐이다. <, 다니엘 블레이크>는 이렇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의 슬픔을 먹먹하게 보여준다. 미안해하지 않아야 할 선량하고 올곧은 사람들은 이 세상이 망가져버린 것을 미안해하고, 정작 이 세상을 망가뜨려 버린 부도덕한 이들은 고개 쳐들고 다니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혹해져 버렸던 것이라고.

 

하지만, 켄 로치는 포기하지 않는다. 엄혹한 세상속에서 결국 우린 인간이고 인간이기에 맞서 싸울 것이라는 다니엘 블레이크 만큼이나 강건한 이 노장 감독은 연대를 보여준다. 병색이 완연해진 다니엘 블레이크에게 케이티의 딸인 데이지가 찾아와 저도 돕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뭉클할 정도로 저릿하다. 데이지가 다니엘 블레이크를 돕는 이유는 단순하다. 나를 도와주었음으로. 그 어떤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단지 당신의 도움이 우리를 살아가게 했고 이젠 내가 당신을 돕고 싶으므로. 그들은 연대한다.

 

 2013년, 영국의 전 총리 마가렛 대처가 사망했다. 그리고 켄 로치는 마가렛 대처가 사망한 후 이런 말을 남겼다.  "그녀를 기리는 방법은 그녀의 장례식을 민영화하는 것이다. 경쟁 입찰에 맡겨 가장 싼 업체를 선정하자. 그녀는 분명히 그것을 원했을 것이다."


뒤통수가 얼얼할 정도로 신랄한 독설이다. 대처의 시대 영국은 수많은 실업자들을 양산했다. 그야말로 ‘신자유주의’의 시대. 스티븐 달드리의 <빌리 엘리어트>는 바로 이 시대를 그리고 있다. 어렸을 적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빌리라는 소년의 성장담만이 보였으나, 나이를 먹은 지금의 나는 아버지가 겪어야 했던 시대의 풍경들을 본다. 지금 우리의 시대는 빌리가 살았던 시대에서 얼마나 나아 갔을까. 켄 로치는 전혀 그렇지 않으며 오히려 더욱 교묘하고 야비하게 나빠졌음을 폭로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켄 로치는 사람에게서 희망을 본다. 비록 다니엘 블레이크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들을 떠났지만, 남은 이들은 다니엘 블레이크가 그들에게 보여주었던 인간으로서의 높은 자긍심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다니엘 블레이크 처럼 강건하게 살아갈 것이다. 나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켄 로치는 어쩌면 우리시대의 선동가가 아니라, 가장 나이먹은 응원단장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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