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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대한 단상 (스포)

전통고닉성일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24 10:49:25
조회 1181 추천 8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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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홀로코스트와 아우슈비츠를 다루는 영화에서 '어떻게(HOW)'가 중요한 이유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빼어난 완성도를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자로 잰 듯한 정밀한 편집, 거의 고정적이지만 때때로 '적절하게' 이동하는 카메라, 이질적인 소리들의 조합으로 역설적으로 보편성을 획득하는 사운드 엔지니어링, 지나치게 아름다워서 숨이 멎을 듯한 프로덕션 디자인까지.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히 올해의 걸작, 조나던 글레이저 필생의 역작이라 불리울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영화를 '덮어두고' 상찬하는 것에 주저하고 있는가?

그것은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소재의 필연적인 무게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홀로코스트는 서구 근현대사회의 집단적 죄의식, 죄책감을 대변하는 사건이다. 한국인인 우리와도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사건이지만, 그네들에게 끼친 파급력과 영향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을 아득히 초월한다. 그래서인지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들은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윤리적인 자기 검열에 갇히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나쁘다는 건 당연히 아니다. 다만 관련 영화들에게 어느 정도의 경로의존성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울의 아들>이 그러했고 과거 <쉰들러 리스트>도 마찬가지였다. 뺴어난 영화들이지만 내 영혼까지 사로잡지는 못했다. 영화가 나이브한 프로파간다는 아닐 것이라 믿고, 좀 더 깊은 곳에 메스를 들이대서 좀 다면적인 영화를 접할 수 있길 원한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은 그만큼 복잡하고 섬세하게 유동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충분히 비극적인 실제 역사를 영화적으로 극적이게 다루는게 뭐가 문제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본인은 관객이 쉽게 가닿을 수 있는 보편적인 슬픔, 분노가 아닌, 차가움 뒤에 가려져 있는 이성적인 뜨거움을 원한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더 복잡하고 입체적인, 그리고 영화적인 시선을 원한다. 결국 모든 것은 우리와 같이 밥먹고 자고 배설하는 인간들이 행한 짓이지 않은가.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게 아니라, 쉽게 휘발되어 버리는 뜨거움으로 편의적으로 접근하지 말자는 애기다.

그렇게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나에게 상당한 만족감을 주었지만, 약간의 아쉬움도 함께 남겼다.



2. '악의 평범함'을 다루는 지극히 계산적인 방식


전술한 바와 같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사실상' 움직이지 않고 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여러 대의 카메라를 다양한 구도에 설치하여 일상적인 장면에서조차 상당한 수의 쇼트로 씬을 분할하고 있다. 이러한 영화적 환경 속에서 관객들이 마주하게 되는 감정은 결국 '인공성'이다. 루돌프 소장과 그의 가족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운드와 배경(원경)을 통해 간접적으로 아우슈비츠의 비인간성을 제시하는 방식. 의도된 배제와 간접적 체험이라는 점에서 분명 흥미롭고 영화적인 방식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아유슈비츠가 가지는 필연적인 무게감은 이러한 야심조차 결국 기능적인 방법론으로 수렴시킬 뿐이었다. '악의 평범함', '악의 보편성'은 적어도 나에겐 새로운 탐구가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어떻게 (HOW)가 중요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시도들은 분명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았으나, 결국 인간을 탐구하는 이 영화의 주요 인물들이 끝끝내 무게감에 짓눌린 채 일견 마리오네트처럼 성실하게 복무하는데 그침으로써 그 여운이 상당부분 퇴색되었다. 난 오히려 이 영화가 단편이었다면 더 집약적이고 강렬했을 거라고 믿는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분명 세련된 영화이지만, 지나치게 좁은 범위를 타격하고 있다. 영화의 입체적인 layer(특히 인간의)를 선호하는 본인에겐 다소 아쉬운 부분이 이 지점이었다. 소위 '기믹' 이상으로 인간을 탐구하고 다채롭게 조명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이다. 이 또한 소재의 제약 때문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3. 그럼에도 비범했던 엔딩 시퀀스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영화적으로 대담한 시도라고 부를 만한 시퀀스는 2개이다.

첫째, 열감지 카메라로 촬영한 폴란드 소녀 시퀀스. 이질적인 사운드(루돌프가 딸래미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는)가 덧입혀진 이 시퀀스는 영화가 관객들에게 동화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관객을 의도적으로 '오인'시킨다. 하지만 폴란드 소녀의 행동은 영화적 현실 속 명백한 '실제'이다. 관객들에게 이러한 '오인'을 안겨주는 것은 역설적으로 실날같은 희망의 소중함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작품 내적으로도 이 무겁고 건조한 화면의 연속에서 영화적인 환기를 부여한다.


두번째는 역시 엔딩 시퀀스이다. 아우슈비츠로 귀환명령을 받은 루돌프가 파티에서 대규모 인원을 살상할 방법을 고안하고 밤 늦게 아내와 통화한다. 그는 일견 화려한 귀환에 들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음날 제복을 차려입고 어둠 속에서 건물을 나오려는 찰라, 루돌프는 갑자기 헛구역질을 시작한다. 이윽고 갑자기 제시되는 현재 시점의 장면들. 아우슈비츠 박물관을 청소하는 노동자들과 아우슈비츠 희생자들의 유품들이 인서트처럼 나열된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영화는 다시 영화적 현재로 돌아온다. 마침내 루돌프는 나치 기호처럼 보이는 계단을 따라 어둠속으로 서서히 사라진다.


조너던글레이저가 현재 장면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불쑥 삽입한 의도는 결국 영화가 과거의 사건을 특정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비극들이 2024년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를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다소 직접적인 '개입'이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유슈비츠 영화의 정형화된 틀 안에서 작가가 영화적으로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계단에서의 이 엔딩 시퀀스가 없었다면 이 영화를 좀 더 낮게 평가했을 것 같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세련되게 영화적으로 잘 그려낸 아우슈비츠 영화 요 정도였겠지. 하지만 이 느닷없는 침입을 통해 영화는 보편성과 확장성, 작가적 인장을 획득했다. 그리고 영화가 만약 이러한 현재 장면에서 끝났다면 그것도 너무 시시했을 것 같다. 영화가 다시 루돌프의 공간으로 돌아온 선택이 좋았다. 이것은 영화입니다 라는 환기. 그리고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주인공을 응시하는 카메라의 역할까지.



<존 오브 인터레스트>(존오인)는 기대했던 것만큼의 논쟁적인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고도의 계산 하에서 관객을 매우 정교하고 정확하게 타격하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가 개봉하고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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