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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독회]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 - 복수야말로 모든 것

루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19 19:25:21
조회 1078 추천 15 댓글 6
														



어린 시절, 즉 자극에 목마른 시기에, 나는 공포물을 좋아했다. 잔인한 사진, 섬뜩한 이야기를 인터넷으로 열심히 찾아다녔다. 어느 날은 기묘한 이야기를 접하게 됐다.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가 갑자기 정치 테러를 감행했다가 실패하자 할복했다는 이야기였다. 워낙 기이한 일이 많이 벌어지는 나라인 만큼 있을 법한 이야기였지만 믿기지 않았다. 소설가라고 하면 '방에 차분히 앉아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곧 나는 그의 잘린 머리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이마에는 한자가 그려진 띠를 묶고, 눈은 지긋이 감겨 있고, 입은 약간 비뚤어진 채 벌어져 있었다. 그 비틀린 채로 벌어진 입이 마치 뭔가 말해보려다 이루지 못하고 죽은 사람의 인상을 만들어냈다. 나는 그 소설가의 이름을 기억해두기로 했다. 그 이름은 미시마 유키오였다. 시간이 많이 지나 독서에 취미를 붙이고 나도 미시마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됐지만, 읽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다. 미시마의 소설을 읽으면서 미시마의 추한 주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독서 갤러리에서 '복수'를 소재로 독후감 대회를 연다는 글을 접했다. 다른 작품들도 많았지만 어째서인지 '복수'라고 하니 미시마의 주검이 강하게 떠올랐다. 심지어 미시마의 소설이 복수와 관련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던 상황이었는데도 그랬다. 마치 「금각사」의 주인공 미조구치가 금각을 떠올리던 것처럼. 그것이 내가 지금 「금각사」를 읽고 글을 쓰는 유일한 이유이다.


글은 서론이 길어서 좋을 것이 없다. 하지만 「금각사」와 엮인 기억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나는 이전에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다. 금각사도 물론 찾아가 보았다. 가이드북을 잘못 읽은 탓에 나는 금각사가 '금박으로 장식된 절'이 아니라 '금으로 만든 절'로 알고 있었다. 실제로 본 금각사는 확실히 별난 곳이었다. 연못 너머로 보이는 탑이 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고귀한 성분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자태를 자랑스레 뽐내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감흥은 없었다. 오히려 금이라는 성분 때문에 사치와 탐욕의 상징으로 보이기도 했다. 아름답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지만 어딘가 공허한 면이 있었다. 오히려 그다음 날에 견학한 오사카 성이 더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이 찝찝한 아름다움, 다른 건축물보다도 유난히 '인위적으로' 부각되는 면이 기억에 남았다. 그 기억을 가지고 「금각사」를 읽었다.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미조구치는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천성을 지니고 태어났다. 말더듬이에, 불교의 세계에 속해 자란 데다, 결정적으로 그런 악조건들을 곱씹으며 더 악화시키는 성찰력을 타고났다. 말하자면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화자를 보는 기분이었다. 미조구치는 자신의 악조건 때문에 사회와 정상적으로 섞일 수 없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래서 '남에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이 유일한 긍지이다'라는 말을 모토로 여기며 산다. 하지만 그가 세상과의 완전한 격리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미조구치는 자신이 아름다움을 지니지 못했다고 생각해 아름다움을 취하려 노력한다. 물론 상상 속에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취해 보려 노력하는 것이다. 이 아름다움의 이미지는 사람으로서는 우이코로, 사물로서는 금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미조구치의 시도는 매번 좌절한다. 그것도 매번 미조구치 본인의 심사에 의해 좌절한다. 그에게 아름다움은 늘 '초월적'인 것이어야 했다. 아름다움이 막상 눈앞에 들어와 자기 것이 되려고 하면, 아름다움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 현실에 내려온 것은 아름다움이라 부를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초월적인 아름다움의 상징인 금각을 떠올리고, 지금의 시도가 추하다고 생각해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실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초월이라는 말과 실현이라는 말 자체에 거리가 있는데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미조구치는 하나 위험한 발상을 2장에서부터 간직한다. 미조구치 자신을 비롯한 삶들은 아름답지도 않으며 영원하지도 않지만, 금각은 영원히 자리를 지키며 아름다움을 발산할 것이다. 그러므로 금각이 없어지면, 즉 자신이 금각에 가는 것이 아니라 금각을 자신의 차원에 끌어들이면, 자신의 세계와 아름다움의 세계가 동일하게 전락하게 된다. 이 파괴적인 욕망을 미조구치는 이렇게 요약한다. "미라는 것만을 골똘히 생각하면, 인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암흑적인 사상에 자기도 모르게 직면하게 된다. 인간은 아마도 그렇게 만들어진 모양이다."


하지만 미조구치가 처음부터 그 파괴를 스스로 저지를 사람은 아니었다. 일단은 절을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고, 주변에도 고삐들이 있었다. 특히 쓰루카와는 미조구치의 말더듬 증세를 의식하지 않는 친구로서, 어둠으로 빠져들기를 반복하는 미조구치에게 빛의 세계를 보여주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미조구치는 그럴 위험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그는 '악의 맛'을 알 수 없는 조건을 타고났다. 말더듬이는 소외당한 존재여서 악을 저지를 힘도 없었다. 하지만 미조구치가 종종 기회를 얻어 여자의 배를 밟아 유산시키는 등의 체험을 하면, 자신이 힘이 없어 닿지 못하던 세계를 접하게 됨으로써 악의 광채를 본다. 자신이 발산할 수 없는 그 광채, 자신과는 별세계에 있는 그 광채는 악의 광채지만 선악과 관계없이 자신의 세계 밖에 있기 때문에 미조구치에게는 동경의 대상이 됐다. 결국 쓰루카와가 죽고 나서 미조구치도 고삐가 풀리기 시작한다.


가시와기를 멘토로 삼은 것이 가장 큰 사건이었다. 절름발이 가시와기는 미조구치에게 악조건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준다. 자신의 장애를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서 자신이 일으키는 혐오감을 솔직하게 휘둘러 무기로 삼는 방식이었다. "자신은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는가? 이러한 점에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고, 자살하기도 하지.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야. 안짱다리가 내 삶의 조건이고, 이유이며, 목적이자, 이상이고... 삶 그 자체이니까.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충분하니까. 원래 존재의 불안이란, 자신이 충분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치스러운 불만에서 생겨나는 게 아닐까?" 미조구치는 가시와기의 태도를 그대로 배우지는 못한다. 여전히 그는 이상을 동경하고, 이상이 현실에 내려오려 할 때마다 현실을 경멸하여 그것을 물리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조건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점, 그것이 미조구치에게 어두운 용기를 주기 시작했다.


결국 미조구치는 가시와기보다 한 발 더 나가기로 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은 그의 앞날을 어둡게 했다. 주지가 암암리에 보이는 추태, 전후에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란, 인생의 허무함... 그런 것들이 미조구치의 머릿속을 흔들자 미조구치는 더욱 아름다움에 목매게 됐다. 자꾸만 현실 앞에서 나타나는 금각에 대고 "언젠가 반드시 너를 지배할 테다!"라고 독기 어린 외침을 보이는 장면은 전율을 일으켰다. 음모를 꾸미는 미조구치에게 가시와기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인식이라고. 인식만이, 세계를 불변인 채로, 그대로의 상태에서 변모시키지. 인식의 눈으로 보면, 세계는 영구히 불변이고, 또한 영구히 변모한다고.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너는 말하겠지. 하지만만 이 삶을 견디기 위해서, 인간은 인식을 무기로 삼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여태 견해가 불확실하거나 견해가 있어도 숨기던 미조구치는 이 말을 듣고 당당히 맞선다.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행위야. 그것밖에 없어. 미는... 미적인 건 이미 나에게는 원수야." 그는 결국 자신의 파괴적인 욕망, 영원히 미의 상징일 금각사를 불태우는 욕망을 실현하고 만다. 그러나 한 가지가 변한다. 그는 아름다운 금각과 함께 자신도 화형 시킬 생각이었지만, 이내 금각이 자신의 죽음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포기한다. 그는 삶의 방식으로 미가 아니라 행위를 좇기로 한 것이다. "나는 담배를 피웠다. 일을 하나 끝내고 담배를 한 모금 피우는 사람이 흔히 그렇게 생각하듯이, 살아야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것으로 「금각사」는 끝난다.


「금각사」를 읽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주된 생각은 '도대체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였다. 사실 사건들 자체만 보면 내가 공감할 구석은 없다. 난 말더듬이가 그렇게 심한 장애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미조구치처럼 아름다움을 노골적으로 갈망한 적도 없다. '저렇게 되지 말자'라는 결론만 얻기에는, 난 애초에 저렇게 될 염려가 없는 인간으로 보였다. 「금각사」를 읽는 나의 태도는, 마치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당사자들의 진지한 행위들을 유희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금각사」를 읽으면서 종종 폐부를 찌르는 느낌을 얻을 때가 있었다. 미조구치가 이상을 성취하기 직전에 자신이 아름다움이 아니라 욕망을 성취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이상 너머의 이상을 다시 바라보는 장면들이 특히 그랬다. 금각은 집요하게 미조구치를 괴롭힌다. 미조구치와 금각 사이에는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 없는 괴리가 있었고, 미조구치는 그 괴리를 인식할 때마다 단념 대신 독기를 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미조구치의 여정은, 곧 자신이 진입할 수 없는 세계에 포격을 가해 부순 것과도 같다. '얻을 수 없다면, 부숴버린다.' 미조구치는 본인의 정신을 홀리면서도 그 자신은 우뚝 서있는 금각의 아름다움에 복수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도 아니고 미시마 자신이 미조구치의 모습으로 죽었다. 그는 강한 일본에 자부심을 품고 자위대를 궐기시키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강한 몸의 자신'을 죽임으로써 '강한 일본'을 죽였다. 그의 목에서 느껴지던 괴이한 이미지가 이것이었다. 무언가를 갈망하다가 죽었지만, 그 죽음의 결과로 자신도 '무언가'도 동등하게 추해진, 그 모순이 주검의 비뚤어진 입으로 새어 나오던 것이었다.


이 심오하지만 그릇된 갈망을 찾아내니 뜻밖에도 나는 미조구치와 미시마로부터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앞서 말했듯 내가 눈으로 본 금각을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도 이상(理想)은 있다. 예를 들어 내게도 이런 경험이 있다. TV 광고를 보고 간절히 갖고 싶었던 장난감이 있었는데, 막상 부모님이 사줘서 갖고 놀아보니 별것 아니라 생각하고 금방 질려 방치해두니 언젠가 없어진 것들이 있다. 이것들은 특정한 사물에 한정된 욕망이기 때문에 특별한 사건은 일으키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사물이 아니라 가치를 욕망한다면? 내가 어떤 가치를 이루고 싶지만 도무지 이룰 수 없는 사회에 앙심을 품고 무언가 행동을 저지른다면? 그 순간 나는 「금각사」의 이야기를 내 차원으로 실현시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가치를 악한 행위를 통해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 결국 가치에게 복수하는 셈이 된다. 즉 계속 갈망하는 이상이 있고 세상에 그것이 구현될 턱이 없는 한 나도 「금각사」와 어떻게든 관련이 있다. 나아가 정말로 우리 인생의 고통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벌어지는 것이며, 이 괴리에 복수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미조구치가 되는 길이 열려 있는 셈이다.


물론 모두가 미조구치와 미시마처럼 테러를 자행하지는 않는다.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괴리를 이겨내려고 노력한다. 가시와기처럼 인식을 바꿈으로써 괴리를 이겨내려 할 수도 있다. 쓰루카와가 미조구치를 보던 방식처럼 괴리를 아예 없는 셈 치고 살 수도 있다. 사실 최상위의 조건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라면 대개 이상을 이룰 수 없다. 오히려 이상과 너무도 다른 현실에 절망하기 마련이다. 결국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자아내는 고통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필연적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대개는 이성을 유지하며 행동이 아니라 내면적인 복수를, 미시마 같은 몇몇은 행동을 통한 복수를 하며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려 한다. 이제서야 알겠다. 복수야말로 삶의 목표이다. 복수의 방식이 곧 삶의 방식이다. 실로 복수야말로 모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복수가 가장 적합한가. 나는 가시와기처럼 인식을 통해 복수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식을 바꾸려 해도 현실의 힘은 강해서 바꾼 인식을 몇 번이고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조구치처럼 행동을 통해 복수하고 싶지는 않다. 미조구치의 방법은 목표물을 파괴하고 자기 자신마저도 파괴한다. 분명 세상은 내가 지향하는 바를 눈앞에 아른거리게 만들어 나를 흔들어 놓은 뒤, 그것을 내 눈앞에서 좌절시키면서 나를 희롱할 것이다. 이런 세상에 나는 어떤 방식으로 복수해야 할까?


나는 「금각사」의 '남천참묘(南泉斬猫)' 일화로부터 실마리를 발견한다. 이 일화의 내용은 이렇다. 승려들이 어느 날 절에 나타난 새끼 고양이의 소유를 두고 싸우자, 남천 스님이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고양이를 베어버리겠다."라고 엄포를 놓는다. 하지만 승려들은 해결책을 찾지 못했고, 남천 스님은 고양이를 베어버린다. 날이 저물어, 수제자인 조주(趙州)가 돌아온다. 남천 스님은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고 조주에게 의견을 물었다. 조주는 곧바로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서 머리 위에 올린 채 나가버렸다고 한다. 이것을 보고 남천 스님은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아아, 오늘 네가 있어 주었더라면 고양이 새끼도 목숨을 건졌을 텐데."


미조구치의 노사는 이를 이렇게 해석한다. 고양이를 벤 것은 자아의 미망을 끊기 위함이었고, 조주의 행동은 흙투성이가 되어 사람들에게 천대받는 신발을 머리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무한한 관용을 보였다는 것이다. 가시와기는 이렇게 해석한다. 고양이는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양쪽 중들이 다툰 것은, 각자의 인식 속에서 고양이를 보호하여, 기르고, 편히 쉬게끔 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남천 스님은 행위자니까, 단숨에 고양이를 베어버렸지. 나중에 온 조주는, 자신의 신발을 머리 위에 올렸지. 조주가 하려던 말은 이거야. 역시 그는 미가 인식의 보호를 받으며 지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개개의 인식, 각각의 인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다. 인식이란 인간의 바다이기도 하고, 인간의 벌판이기도 하며, 인간 일반의 존재 양식이지." 즉 가시와기는 조주가 승려들이 고양이의 소유를 두고 싸우는 일 자체가 헛됨을 보여주려던 것이라고 해석한다.


나는 이렇게 해석해 본다. 고양이가 무엇을 상징하든 간에, 승려들 각자에게는 고양이를 맡을 권리가 있었다. 다만 고양이를 독점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남천의 행동은 공정을 표방한다. 하지만 누구도 향유하지 못하게 한 것은 공정이 아니라 말살이다. 남천은 미조구치의 모델과 다름없다. 남천이 해야 할 바람직한 방법은 고양이를 가만 놔두는 것이었다. 승려들의 목적이 '고양이'라는 가치에 경도되도록 놔두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신이 어떤 가치를 내세우며 행동으로 옮기지도 않는 것, 즉 무위(無爲)가 가장 바람직한 해답이었다. 조주는 그것을 알고, 그런 해답을 모른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은 자신을 신발 아래에 깔릴 천한 존재로 자조한 것이다.


복수에 어떤 방도가 답안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각자가 자신의 방식을 주장하며 여기에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복수는 여러 가지로 나뉠 수밖에 없다. 다만 삶 자체보다 복수를 앞세우면, 즉 삶 자체가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게 되면 삶은 복수의 대상과 함께 파괴된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좋은 복수는 '복수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은 이상을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이상을 이룰 수도 없다면, 차라리 자신이 이룰 수 있는 한에서만 소박하게 행동할 수는 있을 것이다. 꼭 자신의 이상이 세계의 문제가 될 수는 없으며, 다른 사람의 이상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맞닥뜨리는 것에 우리의 이상이 배어있으면 그것을 소소하게 향유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런대로 만족하며 삶 자체를 즐기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자세는 「금각사」 후반에 젠카이 스님이라는 단역을 통해 암시된다. "그는 자신의 단순하고 강한 눈에 비치는 사물에, 굳이 의미를 구하려고 들지는 않았다. 의미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았다. 또한 스님이 무엇보다도 나에게 위대하게 느껴진 것은, 사물을 보고, 가령 나를 보는 데에도, 스님의 눈만이 볼 수 있는 특별한 점에만 의지해서 이의를 내세우려 들지 않고, 타인이 보리라고 생각되는 그대로 본다는 점이었다. 스님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주관적인 세계는 의미가 없었다." 즉 가치와 삶이 주객전도되지 않고 각자가 각자대로 남아서 유유자적하게 흐르는 삶이 가장 좋은 삶이다. 복수하지 않는 것으로 복수하는 일이 가장 행복한 복수다. 모든 것을 인정하고 그대로 두는 것, 이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 이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이것이 「금각사」를 통해 내린 결론이다.


이제야 금각을 직접 보고 느낀 '인위성'의 원인을 알 것 같다. 나무, 돌, 연못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주변의 사물들로 짓고 꾸민 건축물은 자연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반면 금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꾸밀 목적으로 갖다 붙여진 것이어서, 주변의 사물과 조화하고 있지 않고 혼자 빛을 발하고 있었기에, 내 눈에 이상하게 보였던 것이다. 모든 가치가 각자의 자리에서 인정받고, 추한 현실마저 아름다움과는 별개로 사실로 인정받는 그런 세계.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며, 각자가 각자의 처지에 만족하기에 복수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세계. 이런 세계가 내가 갈망하는 세계이며, 그런 면에서 금각사가 아름답지 않게 보였던 것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세계의 모습을 「금각사」를 통해 얻었다.


그러므로 이 광기 어린 이야기에서 나는 너무도 소중한 것을 배웠다. 그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정상 궤도를 벗어날 생각이 없어서 관찰할 수도 없었던, 나의 지향점이 「금각사」를 통해 드러났다. 이것만으로도 큰 소득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나는 나의 자아가 사물들과 가치들을 어떻게 보고 싶어 하는지 어렴풋이 알게 됐다. 앞으로 이 결심이 흔들리지 않을지는 알 수 없다. 유약한 유년을 보낸 미시마도 자신이 그렇게 죽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복수하지 않는 복수도 인식의 변화이기 때문에, 나도 행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거리에 나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금각사」를 통해 깨달은 나의 모습을 최대한 지키기 위해 애쓰려 한다.


마지막으로 복수라는 키워드로 성찰을 할 기회를 준 독서 갤러리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복수'라는 단어가 없었으면 나도 이런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써서 중구난방인 글이 되어버렸지만 이 글을 완독해 주신 분들께도 감사를 표하고 싶다. 독서는 우리 삶을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서는 타인의 뇌를 빌리는 행동이다. 이것으로 우리는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고, 자기 자신도 들여다볼 수 있다. 내가 이번 대회를 통해 한 체험이야말로 독서의 이로움의 좋은 예시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독서를 취미로 삼은, 혹은 취미로 삼고자 하는 분들께 격려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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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935 일반 폴 오스터가 죽은 걸 방금 알았음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24 54 0
627934 일반 죄와 벌 흡입력 미쳤네 ㅇㅇ(59.9) 22:21 58 0
627933 일반 무언가 느끼기 전에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생각하심? [7] 독린이(210.100) 22:18 120 0
627932 일반 참존가 읽으면 안나카레니라 스포 당하냐? [1] ㅇㅇ(210.104) 22:15 59 0
627931 일반 러브크래프트 단편선 4권짜리 나만 좀 읽기 어렵니?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4 38 0
627930 일반 그러고 보니 벨르이 페테르부르크는 어디서 내줄려나 [5] 스터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2 11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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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927 일반 책상에 책을 올려두고 사니까 영 불편하네 [8] Dadoukho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52 158 3
627926 일반 박상륭 죽음의 한 연구<- 좀 짜치는 점 ㅇㅇ(223.39) 21:52 129 2
627925 일반 독해력 기를 수 있는 책 추천좀 [10] ㅇㅇ(223.39) 21:44 257 0
627924 일반 도서관 있는데 책 사는건 별로지...? [5] ㅇㅇ(221.161) 21:38 134 0
627923 일반 ㅋㅋㅋ책시키니까 우울증 사라지네 [4] ㅇㅇ(223.39) 21:29 282 0
627922 인증 책 또 샀다 [7] 그랑불레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25 226 6
627921 감상 모래의 여자 개인적인 감상 [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8 122 6
627920 일반 쇼펜하우어가 읽기만 하지 말고 많이 쓰래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8 150 0
627919 일반 슈노 마사유키 <미노타우로스> 재밌어보이는데 Pi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2 50 0
627918 일반 처음 보는 책 읽을 때 정들이기가 쉽지 않네요 서리(118.220) 21:12 39 0
627917 일반 스포)돼지가 철학애 빠진 날 읽다가 나니아연대기 마지막전투 스포 봤는데 ㅇㅇ(218.237) 21:11 4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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