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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김수영을 위하여> - 강신주 감상

싱밍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23 13:36:08
조회 579 추천 14 댓글 5
														


이 책은 김수영의 시, 문예지와 일간지 기고글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평론이라면 평론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전기라면 전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총 10장으로 이루어져있는데, 한 장을 읽을 때마다 머리가 너무 뜨거워져 단숨에 읽을 수는 없었다.

하루에 하나 내지 두개의 챕터를 하루이틀에 걸쳐서 천천히 읽었다.

왜냐하면, 매 장마다 자유! 혁명! 사랑! 인간! 이런 주제들을 다뤘고, 김수영의 인생이 그만큼 뜨거웠기 때문이다.


먼저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김수영 시인의 삶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종로구에 살고 있던 김수영은 김현경이란 여인과 사랑에 빠졌고, 결혼한다.

그러나 이내 한국전쟁이 터졌고, 남침한 인민군에게 끌려가서 인민군이 되었다.

김수영은 자유주의자였기에, 아내가 보고싶었기에 탈출을 꿈꿨다.

인민군이 전라도 즈음까지 진격했을 때, 김수영은 총기와 군복을 땅에 묻고는 탈영했다.

그러나 붙잡혀서 총살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살아남기 위해 인민군이었고 목숨의 위험을 느껴 군복과 총기를 숨겼다고 고백한다.

3일 내내 돌아다니며 자신이 묻어둔 군복과 총기를 찾아내며 사실을 증명하고 살아남은 김수영.

그때부터 시인은 살아남기 위해서 진실된 속마음을 저버리고, 거짓을 고한 자신에게 비참함을 느낀다.


이 뒤가 더 골때린다.

그렇게 다시 복귀한 인민군 소속에서 이번엔 한국군에 붙잡혀서 포로가 되버렸으니까.

포로로 붙잡히고, 경찰에게 조사를 받는 김수영은 이전 상황들을 경찰들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지만, 경찰들은 몰루? 하면서 김수영을 줘팬다.

그리고는 거제도 수용소로 끌려간다. 그 수용소 안은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고 한다.

사회주의자 패거리와 자유주의자 패거리가 맨날 쌈박질하고, 사상검증을 하고. 그렇게 맞다가 죽은 사람도 허다하다한다.

김수영은 그 모습을 보면서, 이념이란 놈이 대체 뭔지, xx주의가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인지,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고뇌했다.


동료들의 탄원으로 2년간 수용소생활을 마무리하며 김수영은 겨우 풀려난다.

이 정도만 했으면, 참 스펙타클한 인생이구나 했을텐데. 이 뒤는 더 골때린다.

남편이 인민군에 끌려가고,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끌려가는 동안, 아내 김현경은 딴 남자와 딴 살림을 차렸다.

인민군 시절, 포로수용소 시절, 김수영의 유일한 희망은 신혼을 마저 다 보내지 못해 아쉬웠던 아내였다.

3년이 넘는 시간동안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버티고, 살아남은 것인데... 그 아내가 딴 살림을 차렸다고 한다.


더 웃긴 건 그 아내가 몇 년 후에 돌아왔고, 김수영은 그 아내를 받아줬다는 것이다.

사내다움이란 체면때문에.


이 정신나갈 것 같은 스토리에 홀려서 정말 재밌게 읽었다.


저자인 강신주는 이런 김수영을 똥꼬가 뽀얗게 될 때까지 빨아준다.

그의 저항정신, 자유정신에 반해서.


여기서 말하는 저항이란,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저항이 아니다.

김수영이 저항한 것은 모든 것이다.

동료들의 시선, 사회적인 인식, 이념이든 자본이든.

그런 모든 것들에 저항하면서, 시인은 오로지 '온몸'으로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시를 써냈다.


김수영의 시론은 그런 것이다.

온몸으로 처절하게 자신을 얽메는 관념, 인습, 전통, 권력, 심지어 일상에까지 저항하고,

자신의 모자란 점을 치열하게 탐구하고 분석하며, 그것을 시로 승화하면서 삶을 개척해내는 것.

김수영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시는 그런 시들이었고, 그가 꿈꾸는 세상은 모든 사람이 시인처럼 '단독자'로 사는 세상이었다.


비록 그런 세상에는 시인이 필요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저자는 이런 김수영의 정신에 반해서, 힘든 순간마다 김수영에게 위로를 받으며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지금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강신주는 강신주 답게가 아니라,

김수영처럼 살려하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는 멀리서 보기 위해, 떠나보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꽤 많은 위로를 받은 느낌도 받았고, 반골기질이 드는 순간도 제법 있었다.


위로가 되었던 것은, 나 또한 항상 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무엇을 찾았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질문 있는 사람?' 하면, 호기심을 견디지 못해서 손을 번쩍 들었을 때, 반에 있던 학생들의 눈총들.

프로게이머를 목표로 게임하던 무렵에 부모님에게 받은 냉담함.

소개팅 자리에서 취미로 시를 쓴다고 이야기했다가 받은 경멸.

그 외에도 무수한 억압과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선들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나를 키웠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슴 한켠에는 항상 외로움과 설움이 있었다.


그런 내게 김수영 이야기는 비슷한 길을 걸은 인생 선배가 어깨를 툭툭 두들겨주며 '잘하고 있다'고 응원의 말을 건넨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읽기 힘든, 머리가 뜨거운 책이었다.

과거의 나 자신은 어땠는가, 지금 나는 저항하고 있는가. 이런 무수한 상념들이 떠올랐기에.

또한 반골기질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며, 강신주에 대해 저항했기에.


강신주는 주장했다.

모든 사람들이 인문주의 정신, 반항하는 정신이 필요하다고.

여기서 강신주의 주장과 내 주장이 부딪혔다.


동의하는 부분은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무엇'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음식장사를 하는 사람은 자신만이 낼 수 있는 맛을 추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학교 교사라면 수업방식에서, 택시기사라면 자신만의 접객방식까지.

이런 식으로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 만들어낸 것들이 갖가지로 넘쳐 흘러서 다양성이 넘치는 세상.

그것이 진정한 자유다라는 의견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정신적인 부분에서, 모든 일상에서 자신을 억압하는 무언가를 벗어던져야 한다는 주장은 반박하고 싶었다.

삶에는 수 많은 면들이 있다.

경제적 측면, 심리적 측면, 인간관계적인 측면, 나의 아주 작은 꿈들까지.

그 모든 면에서 일일이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은 미치광이일 뿐이다.

누군가에겐 시장경제체제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의존이 필요할 수도 있고,

가족이나 애인에 대한 사랑과 의존이 필요할 수도 있고,

하다못해 혁명! 프롤레타리아를 위해! 하는 사상에 의존이 필요할 수도 있다.

또한 인간 문명은 집단/사회/조직/국가 등의 군집적인 생활을 통해 진화해온 동물이다.

인간의 본성에는 '군집'이라는 속성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 본성을 모두 부정한다면, 어느 순간 사회는 파편화되고, 갈라지고, 그 이후에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반항심이 들었다.


물론 이에 대해선 더 깊은 사유가 필요하지만, 다 읽고 바로 드는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또한 저자도 '자유'라는 주제를 강조하고자, 한계를 앎에도 일부러 더 강하게 말하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이 책을 통해 김수영 시인이라는 인물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고, 진정한 자유는 무엇인가,라는 사색을 한 번 더 할 기회를 얻었다.


이런 좋은 책을 써준 강신주 박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면서 마무리한다.


총점 : 8/10


3줄 요약.

1. 김수영의 인생은 진짜 재밌다.

2. 김수영의 자유정신과 그를 바탕으로 한 시들이 끝내줬다.

3. 자유! 오직 자유! 머리가 뜨거워지고 싶다면 일독을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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