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에 삽니다.
원룸 특성 상 완전 박멸은 불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만 이사를 갈 수 없는 형편이니 뭐라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높으신 분이 보면 나도 바퀴일텐데 그렇다면 도망친 바퀴보다 승리한 바퀴가 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만 2년 하고 6개월을 살았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밖에서 길을 잃고 유입된 귀뚜라미 2마리를 빼면 어떤 벌레도 보지 못했습니다.
바퀴가 나타난 것은 지난 4월 말이었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데 놈이 CRT모니터 앞에서 더듬이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20년 넘게 바퀴를 잊고 살았기에 혼비백산했습니다.
가까스로 집 밖으로 던져버렸지만, 그것을 살려보냈던 것은 옳은 대응이 아니었겠지요.

어쩌다 집 안으로 들어온 귀뚜라미처럼 어쩌다 들어온 것이겠지 싶어 추가 대응 없이 살다가 마찬가지로 컴퓨터 책상에 기어다니는 바퀴를 한 마리 더 보았습니다.

그 순간 오랜 세월 잊고 있었던 끔찍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IMF 시절 반지하에 살 적, 싱크대 밑에 설치한 끈끈이 덫에 붙어있던 수십 마리의 바퀴벌레들, 꿈질대는 수백의 더듬이들, 어린 나의 것이었을 비명소리.
제 안의 살충 본능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고, 그 원초적 의지에 따라 저는 맥스포스갤을 샀습니다. 로켓 배송으로요.

맥스포스갤이 배송되는 동안 저는 그들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오는지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정체는 쉽게 판별할 수 있었습니다.
1.5센티미터 안밖의 작은 크기, 특유의 색상과 무늬.
독일바퀴였습니다.
극가주성인 그들은 이웃집에서 오는 것임이 틀림 없었습니다.
2년 반이나 보이지 않았고 청소도 열심히 했으니까요.
무엇보다 바퀴가 목격된 컴퓨터 책상과 바퀴가 주로 서식한다는 부엌과는 5미터 이상 거리가 있었습니다.
독일바퀴의 일반 행동 반경이 3~4미터인데 그보다 먼 거리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서식지의 개체수 포화를 의미하는 것일진대 정작 부엌에서는 바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어디에서 오는자 찾던 저는 컴퓨터 책상 바로 밑에서 그들이 오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을 찾았습니다.
랜선 포트의 덮개가 파손되어서 손이라도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랜선 포트를 시작으로 천장에 난 의미불명의 환풍구, 화장실의 환풍구 등 이웃과 연결된 곳을 전부 틀어막았습니다.

또한 혹시 모르는 일이기에 부엌도 한번 뒤집어 엎었습니다.
살아있는 바퀴, 죽은 바퀴, 바퀴 알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경첩 밑에 녹슨 철가루 같은 것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철가루일 수도 있고 바퀴 배설물일 수도 있었습니다.
집안에서 이미 두 마리나 목격한 이상 안이할 수는 없었습니다.
바퀴 배설물로 판단하고 더욱 깨끗하게 청소했습니다.

맥스포스갤이 배송되었습니다.
바퀴벌레가 최초 목격된 CRT모니터 후면에 하나, 부엌의 구석진 곳에 2개 설치했습니다.
원룸 복도와 계단에도 대량 살포했습니다.

오늘, 그로부터 2주가 지났습니다.
그 후로 살아있는 바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구석에서 죽은 새끼바퀴를 두 마리 보았습니다.
시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섬찟했지만 새끼바퀴가 죽어있다는 것은 좋은 지표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대응을 잘 하고 있는 것인지, 미흡한 점이 있는지, 추가적으로 행할만한 조치가 있는지 조언을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