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처럼 도망치듯 선택한 호주에서는 얻은 것이 없었다.

오히려 나는 피를 흘리듯 잃어가고 있었다. 진취, 행복, 희망. 여자친구에 대한 신뢰까지도.

2만원에 달하는 호주의 짭잘한 시급도 나에게 피난처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돈을 태우면서 자신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모아둔 돈으로 비싼 스마트폰도 샀다. 일시불로 사서 타격은 컸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단지 그 비싼 스마트폰으로 한 것이 고작 여자친구와의 싸움뿐이라는 점은 우스웠다.

카지노에도 가봤다. 밥을 먹듯 잃고, 때때로는 벌었지만, 평균적인 잔고는 점점 줄어만 갔다.

결국 나에게 남은 것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저가항공사 티켓 비용 뿐이었다.

만약 스마트폰을 사지 않았더라면, 꽤 괜찮은 항공사로 귀향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금의환향도 아닌걸 뭐 어떤가?

그래선 안 됐다.

창문너머로 보이는 비행기가 볼품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래선 안 됐다.

기내에서 땅콩 한 봉지가 무려 5달러나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그건... 이번 일이랑은 상관 없지만, 상도덕이란게 있었다면 그래선 안 됐다.

난기류라도 만난건지 비행기가 달달 흔들렸지만, 나는 초연하게 땅콩 한 봉지를 주문했을 뿐이었다.

그래선 안 됐다.

그걸 다 먹지도 못 했으니까.

흔들거림이 심해지고 수십 개의 산소호흡기가 동시에 떨어지자, 상황이 무언가 잘못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엄청난 충격과 함께 운명과 땅콩은 내 손을 떠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무기력하게 백톤짜리 쇳덩이와 함께 바다로 처박히는 일 말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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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무렵에 '걍 어디 섬에 꼬라박히고 싶다' 는 생각에 썼던건데, 구글 독스가 아니라 워드파일로 써놔서 지금 잃어버림... 나중에 다서 써야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