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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감평 좀 요 유 치함

ㅇㅇ(114.205) 2024.05.26 06:30:34
조회 326 추천 0 댓글 6

내가 조금 어렸을 때, 그러니까 한 2살 때였나.

한창 쪽쪽이 빨며 아장아장 걸어 다녔을 시절 내 인생은 한차례 대격변을 맞이했다.

고작 2살짜리 아이의 인생관을 완전히 바꾸어 버리는 일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에."

바로 전생을 깨달은 것이었다.

"나, 고아였어?"

한창 이가 가려워서 쪽쪽이를 빨고 있던 나는 충격을 받고 쪽쪽이를 떨어뜨렸다.

"심지어 왕따?"

점점 전생의 기억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고 나는 그때마다 일일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심지어 중졸······?"

지구-1의 대한민국 청년, ‘이승민’의 인생을 대충 요약해보자면 이러했다.

보육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부모 없다고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으며, 대학교 갈 머리도 안되는 것 같으니 중학교만 졸업하고 그대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어느 겨울날 아이를 밀치고 대신 트럭과 충돌하여 사망.

조금 더 대충 요약하자면.

고아, 왕따, 중졸, 만 23세에 교통사고로 사망.

부모 없음.

친구 없음.

지인 없음.

"이런, 시발."

내 전생은 2살 아이의 입에서도 그런 욕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안쓰러웠다.

그리고 의문이 들었다.

대체 어째서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전생이 떠오른단 말인가?

"비참하던 전생을 반추하고 이번 생에 감사함을 가지라는 신의 뜻인가."

"아유, 도련님. 뭐가 그리 즐거우세요?"

고작 2살짜리 아이의 입에서 나올 내용은 아니었지만, 유모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날 안아 들었다.

나는 이가 다 나지 않은 나이답게 똑똑한 발음으로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유모에게는 대충 아따따 아따 아따 쯤으로 들리지 않았을까?

"아따따 아따."

번역: 놔 봐, 유모. 나 지금 진지한 생각 중이라고.

유모가 있다는 점에서 눈치챘겠지만, 이번 생의 나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기업, 그 이름도 찬란한 상송의 재벌가 장남으로 태어난 것이다.

중요한 점은 삼X가 아니라 상송이라는 이름이다.

내가 아무리 중졸이래도 한국 최고 기업의 이름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X성!

"그래, 평행 세계로군."

당시의 나는 그렇게 추측했다.

전생의 지구와 흡사하지만 완벽히 같지는 않은 곳 이라고.

그리고 결정했다.

"······나는 아가야. 아가는 소중해."

나는 그 기억을 얌전히 봉인했다.

‘나’라는 자아는 존재의 연속성에 있는 법.

이승민의 육체가 화장되어 세상에서 사라진 순간 그는 죽은 것이었다.

이승민의 기억을 가진 로봇이 이승민이 아니듯, 나 역시 이승민이 될 수 없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순간.

나는 마침내 참아왔던 일을 할 수 있었다.

쉬이이-

"아이구! 시원하세요? 도련님 꼬치 봐 드려야겠네!"

유모가 내 기저귀를 내리고 일을 처리하는 동안, 나는 엄숙하게 눈을 감았다.

"나는 아가다. 나는 아가다. 나는······."

나의 인격이 무참히 살해당할 뻔한 위험에서 벗어나고, 이후로 스스로 아가라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질 무렵 또다시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아들, 봐봐. 네 여동생이야. 꼬물꼬물 귀엽지?"

"흠 그 정돈가."

나는 어머니가 안고 온 갓난아기를 보며 정직한 감상을 내놓았다.

"에이, 다시 한번 제대로 봐봐."

"흠."

어머니가 조금 더 제대로 된 감상을 바라시기에 정말 마음속 심상을 그대로 내뱉었다.

"쭈글쭈글하고 붉은 피부, 홉고블린인가."

"음? 그게 뭐야. 귀엽다는 거 맞지?"

"무서운데."

"쓰읍. 너 용돈······."

5살을 먹은 나는 돈 쓸 일이 많았다.

"엄마랑 아빠 반반씩 닮아서 너무 귀여워. 나중에 크면 미스코리아 나가는 거 아냐? 하, 돈도 많은데 이쁘기까지 하면 이거 뭐 일등 신붓감이네."

"벌써 거기까지 생각했어? 완전 동생 바보네 이놈."

아버지가 내 볼을 잡고 쭈욱 늘리는 걸 고소하다는 듯 보시던 어머니가 말했다.

"네가 이 애 오빠야. 그냥 오빠도 아니고 5살 오빠. 무슨 일 생기면 지켜줘야 하고 아빠 없을 때는 네가 가장인 거야. 알겠지?"

"흠. 조건이,"

내 손을 꼭 붙잡고 진지하게 말씀하시는 어머니······.

콰앙!

한창 이어지던 회상이 끊겼다.

머리가 흔들린다.

"내 오빠는, 죽었어?"

그러니까, 그때 내가 뭐라고 했더라?

아마 용돈 인상을 대가로 수락했던 것 같은데······.

"대답해. 묻잖아!"

누군가 내 목을 붙잡고 벽에 밀어붙였다.

슬슬 정신이 돌아오며, 내가 해야 할 일이 떠오른다.

나는 끊어졌던 연기를 다시 이어갔다.

"······김다솜, 우스운 말이다. 너는 아직도 망령에 사로잡혀 있나? 내 마지막을 장식할 영웅이 고작 이런 어리숙한 계집이라니 미치겠군."

나를 죽일 듯이 증오하고 있는 눈.

불살의 히어로라는 이명에 어울리지 않게 살의로 가득하다.

내 역할은 그녀의 숙적을 연기하는 것이다.

"닥치고, 대답하라고!"

"크, 크큭. 그래, 몇 번을 물어봐도 내 답은 변하지 않는다. 네년의 오빠는 옛적에 죽었어."

"······그래? 어떻게 죽었는데?"

돌연 고개를 숙인 그녀의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내 몇 번이고 말해주지."

어릴 적의 나는 크나큰 착각을 했다.

이 세계는 평행세계 따위가 아니었다.

"마기를 이식하는 과정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고 죽었다. 당연한 일 아닌가? 마왕님의 그릇으로 재능 없는 15살 꼬마가 가당키나 하냔 말이다. 애초 계획대로, 그 동생을 잡아 왔더라면 성공했겠지. 너 말이다. 김다솜."

김다솜.

내가 왜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단번에 알아채지 못했을까.

한때 가장 좋아했던 웹툰에 나오는 빌런의 본명이라는 것을.

"······."

그녀, 김다솜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웹툰 속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깨진 눈동자와는 다른, 비록 살의를 띄고 있지만 여전히 깨끗한 그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죽어, 개자식아. 죽어!"

내 발이 땅에서 띄어졌다.

그녀의 손아귀 힘에 목이 부러질 듯 조여왔다.

"케헥, 드디어. 현실을 받아들였나? 그래, 죽여라. 나는, 숙적에게 죽는다!"

마지막까지 나는 연기를 이어갔다.

그것이 경고를 알아먹지 못한 나의 속죄였다.

우드득!

***

전생, 이승민은 일찍이 취업 전선에 뛰어든 탓에 별달리 취미랄게 없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인생.

남아도는 시간을 버릴 수단이 절실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방 안에 틀어박혀서도 가능한 웹툰이 그의 눈에 띄었다.

남들이 마블 영화네 뭐니 히어로 나오는 것을 보길래 따라서 히어로 나오는 웹툰을 봤다.

그 웹툰은 어느 히어로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었다.

재벌가 출신 히어로가 악의 조직에 가족을 모두 잃고 히어로로 활동한다는 내용.

댓글에서는 디시의 배트맨을 빼다 박았네, 조센 웹툰은 이래서 안 되네 등등의 비난이 주를 이었지만 이승민은 원본을 몰랐으므로 그 비난에 공감하지 못했다.

죽은 줄 알았던 주인공의 여동생이 사실 그를 지긋하게 괴롭히던 섹시한 빌런이었다는 반전에 거금 1천원을 들여 쿠키까지 구웠을 정도로 재밌게 읽었다.

매주 월요일은 그 웹툰 덕에 출근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날, 아이를 밀치고 대신 트럭에 부딫혔을 때도 그것을 읽고 있었다.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 보건대, 그 웹툰의 주인공은 나였다.




응 애아 가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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