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후기] D&D 장기 캠페인 후기(장문)

missehiryo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9.23 23:05:55
조회 1346 추천 28 댓글 10
														

갤을 자주 보진 않고 가끔 눈팅만 하는데, 마스터링하던 장기 캠페인이 엔딩을 내서 그 후기를 써보려 한다. 간단히 캠페인을 소개하고, 진행하면서 느꼈던 점과 시행착오를 적었다. 혹시 자작 캠페인 만들 생각 있는 사람이 보고 참고할 게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참고로 나는 맨날 커스텀 캠페인만 해대서 포가튼 렐름은 잘 모르고, 룰도 던월이나 D&D 외엔 모르니까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감안해줬으면 좋겠다.


1. 캠페인 소개


이번에 진행했던 캠페인은 D&D 5e 기반으로 커스텀한 세계관이고, 5레벨로 시작해서 20레벨까지 가는 1년짜리 모험이다. 엘든 링을 하고 나서 소울류 비슷한 느낌으로 하나 캠페인 말아볼 수 있겠는데 하고 설계를 시작했다. 덕분에 보통의 캠페인은 개판이 되기 전에 그 음모를 파악하고 막기 위한 모험이라면 여긴 이미 망해버린 곳들을 찾아가서 정화 및 정리를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소울류 느낌도 내고 편의를 생각해서 모험의 배경이 되는 대륙 자체에 몇 가지 커스텀 룰을 걸었다. 일단 소울류 하면 불사자. 생명체에 수명이 없어 늙어 죽지 않고, 신념이나 의지가 흐려지지 않은 동안 계속해서 살아있을 수 있다고 했다. 또 시간이 모호하게 흘러가고, 생명체는 살기 위해서 식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덕분에 날짜를 세거나, 긴 휴식마다 레이션을 까는 작업을 생략했다. 사망 시에도 웬만한 상황에선 부활이 가능한데, 소울류의 화방녀와 같은 역할을 하는 npc가 있어 부활을 시켜주는 느낌이다. 파티가 전멸해도 모험이 끝날 걱정은 없지만, 이 경우 대부분의 적들도 불사기 때문에 되살아난다고 했다. 난이도가 그리 어렵지 않아 어차피 게임이 끝날 때 까지 전멸을 한 번도 본 적은 없기 때문에 상관은 없었다.


2. 플레이어 소개

24b0d121e09c28a8699fe8b115ef046f5d499d9da1



(맨 왼쪽의 흉측하게 생긴 괴물은 오너가 직접 그렸다.)
몇달 걸려서 캠페인을 대충 중간정도 만들고, 엔딩까지 생각해둔 뒤에 플레이어들을 구인했다. 원래 게임을 같이 해오던 친구들이 있어서 여기서 두명을 뽑았고, D&D는 처음이지만 티알에 대해 대충 아는 후배가 있어 하기로 했다. 이 후배가 TRPG는 처음이지만 시간이 잘 나는 친구도 데려와서 하게 됐다.

한 명은 총든 인남캐를 좋아하는 레인저 빠돌이였는데, 이 녀석은 캠페인을 할 때마다 레인저를 들고 온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레인저를 하냐고 물어봤는데, 레인저 성능이 안 좋다며 고민을 좀 하고 있었다. 그럼 파이터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 맛이 아니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냐고 하니 정식판에 반영되지 않은 레인저 개편안을 몇 들고 오면서 뭐는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별로 맘에 들진 않았지만 그 개편안을 참고해서 공용 레인저 특성들을 상향시키거나 개편시켜줬더니 좋아하면서 석궁 레인저를 하겠단다.

그 광경을 본 후배는 D&D 룰은 잘 모르고 한 턴에 한 대만 쎄게 때리는 밀리가 하고싶다고 했다. 굳이 한 턴에 한 대만 때릴 이유가 없다고 했지만 고집을 굽히지 않았기에 도적 암습이 괜찮을 거라 했고, 다른 친구들도 끼어들어 이야기는 어느새 바바리안을 디핑하고 민첩을 버린 무모하게 암습하는 힘 도적을 향해 가고 있었다. 스스로 패널티를 안고 특이한 빌드를 하려고 하기에 컨셉이 좀 더 매끄러울 수 있게 공격에 패널티를 넣은 대신 대형 무기로 암습이 가능하게 했다. 암습 발동 또한 뒤에 숨어서 약점을 찌르는 게 아니라 무모한 일격 사용 시 바바리안 처럼 괴성을 질러 적을 놀라게 해 대놓고 치명적인 공격을 해서 암습 피해가 들어간다고 해버렸다.

그 외에 새로 들어온 뉴비는 자기는 튼튼한 게 좋다면서 팔라딘을 하겠다고 했다. D&D에선 도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딱히 탱커랄 건 없다고 하니 탱커 역할보다는 그냥 정말 튼튼한게 좋댄다. 그러더니 이 친구는 내성굴림에도 약점이 없어야 한다며 힘을 버리고 민첩을 올렸다. 마지막 남은 친구는 D&D 룰 이해도도 높고, 전반적으로 어떤 역할군도 묵묵히 수행하는 편인지라 위자드를 하기로 했다. 대신 좀 마이너한 환영학파를 골랐고, 레인저나 도적에게 말도 안되는 개편을 해줬기 때문에 좀 안좋아 보이는 특성 한두개를 쓰기 좋게 바꿔줬다.

그렇게 총든인남캐 애호가의 건강을 덤핑한 레인저, 한 턴에 한 대만 때리는 로그(바바리안), 안 맞는게 좋은 민첩 팔라딘, 그냥 환영학파 위자드의 파티로 진행하기로 했다. “건강을 덤핑하지 마라”, “한 턴에 여러대 때리는 것은 단순히 딜이 좀 올라가는 것 보다 훨씬 좋다” 이런식으로 다 한번씩 말렸지만 그 고집들을 꺾을 순 없었다. 다행히도 최적주의자가 없었고 하려고 하는게 명확했기 때문에 어떤 인카운터를 주고 어떤 보상을 줘야 이들이 좋아할 지는 확실히 보였다. 이 정도면 거의 이마에 누르면 만족하는 만족 버튼이 달린 수준. 개인적으로 어차피 난이도를 파티 전체의 화력에 맞춰서 변화시키는 편이기 때문에 DM으로서도 이 쪽이 훨씬 다루기 편했던 것 같다.

3. 캠페인 진행

시작 레벨은 5로, npc로부터 각자 모종의 거래를 하고 모험의 무대인 상흔의 땅이라는 곳으로 소환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상흔의 땅은 지역별로 가지각색의 이유로 망하기 직전이고 사람들은 죽어가고 우호적인 사람이 손에 꼽을 만한 마경이다. 그나마 몇 있는 우호적인 npc들의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이 개판을 수습하고, 이 사건들의 배후에 있는 원흉을 쫓아가며 힘을 쌓아 강자가 되어 도로 세계에 본인들이 영향을 미치게 되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전까지 만들었던 캠페인들은 전투 위주인 성격이 강했어도, 단서를 모으고 판정을 시도하면 무혈로 원하는 방식으로 퀘스트를 끝내는 루트를 항상 마련해두곤 했었다. 이번 캠페인에선 오히려 대화로 피할 수 있는 전투들이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전투에 초점을 맞췄다. 오히려 선택지에 따라 적이 더 생기면 생겼고, 우호적이었던 npc들도 몇몇은 배신한다. 발더게가 1년 더 일찍 나왔다면 발더게에서 정말 많이 참고했을 텐데 이 점이 좀 아쉽다.

레벨 5로 시작해서 1~4레벨의 힘겨운 구간을 그냥 넘겨버렸다. 몬스터를 잡거나 스토리를 진행해서 얻은 XP로 레벨업을 하는 캠페인들도 진행해 봤으나, 이번에는 분명하게 20레벨 플레이를 목표로 해서 지역을 클리어 할 때 마다 레벨이 1씩 올라가는 구조로 했다. 그 지역에 있는 강대한 자들의 경험과 생명력을 직접 흡수해서 강해질 수 있다는 설정상의 장치를 달아두어 잡몹은 부활하지만 보스들은 부활하지 않는 이유도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이 방식 덕분에 굉장히 빠른 속도로 캐릭터들이 성장했으며, 많은 모험가들의 로망인 20레벨의 전설적인 전투들을 체험하기도 했다. 처음 D&D를 맛본다면 그래도 1레벨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 사람들 중 절반은 20레벨 전투를 갈망하는 고인물들이었고 결국 만족도도 높았기에 이 결정은 좋았다고 생각한다.

24b0d121e09c28a8699fe8b115ef046c68f7294a9eea


다만 어쩔 수 없이 진행은 완전 오픈월드보다는 다소 직선형이 되었다. 위 사진은 캠페인의 전체 지도인데 (판타지 에셋 브러쉬로 직접 만들었다), 여기서 일정 영역마다 끊어서 한 지역이라고 정해두었다. 그나마 자유도를 챙겨주기 위해서 갈림길이 나왔을 때 어느 쪽을 먼저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선택지가 존재하고, 몇 가지 큰 스토리 줄기들이 있어 메인 스토리 말고도 다른 지역들을 갈 동기를 마련해주려고 했다. 시간의 흐름이 모호함이라는 단서는 날짜를 세지 않아도 되는 편의성도 줬지만, 한 쪽 퀘스트라인을 밀러 가거나 긴 휴식을 많이 해도 다른 쪽에서 무슨 일이 안 일어난다는 장치로도 쓰였다.

4. 세계관 설계

개인적으로 세계관을 짤 때 핍진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다. 판타지니까 허무맹랑한 설정을 넣을 순 있지만, 그 설정으로 인한 인과관계는 허무맹랑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계관을 짤 때 집단이나 지역에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것으로부터 어떤 사건이나 문화가 형성될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이를 테면 생명체가 살기 위해 식사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은 곧 농업과 어업의 후퇴를 불러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의 측면에서 식사가 주는 쾌감은 동일하기 때문에 식사는 고위층들만을 위한 문화로 자리잡을 것이다. 요리사는 흔히 볼 수 없는 귀한 직업인 대신 예술가처럼 고위층들의 유희와 영감을 주는 직업군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시간의 모호함도 편의적으로는 날짜를 카운팅하지 않기 위해, 스토리상으로 선택한 퀘스트 라인만 집중해서 밀거나 긴 휴식을 부담없이 하기 위해 넣어뒀지만 설정상으로도 이렇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밤낮의 길이가 제멋대로기 때문에 특정 지역에선 밤이 끝나질 않는다던지, 밤이 언제 끝날 지 모른다는 인간들의 두려움으로부터 파생된 괴물이 있다던지 하는 식으로 연결시키거나 한다.

지역에 대한 핍진성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가 있다. 스토리는 시작점 근처의 서쪽 지방이 저레벨 구간이고, 게임이 진행될수록 대륙의 동쪽으로 진행하게 된다. 시작 마을 주변이 약하고, 게임 후반으로 갈 수록 강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나름대로 파워 밸런스를 맞추려는 시도들을 했다. 먼저 대륙 전체의 파워 밸런스를 후반부 지역으로 맞춘 다음, 초중반 지역들이 모험하기 쉬운 이유들을 각자 붙이기로 했다. 초반 지역들은 괴물들이 쓸어서 이미 개판이 되서 정복할 가치가 없이 버려진 땅인 곳이라거나, 플레이어들의 의도를 이해하고 힘을 보태서 대륙의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일부러 잡혀주는 적이 있거나 하는 식으로 설명했다. 중반 지역들은 예전에 강대한 존재였다가 한번 토벌되서 약하다거나, 이제 막 힘을 키우기 시작한 신생 집단이라거나, 지도자급 상층부들이 다른 일을 하러 후반부 지역으로 가 있는 상태라거나 하는 식으로 설명했다.


24b0d121e09c28a8699fe8b115ef046c68f92c4b9d (폐허)

24b0d121e09c28a8699fe8b115ef046ecc4dccff26 (불바다)

24b0d121e09c28a8699fe8b115ef046c69f02d4f9d (프롬의 명물 독늪)


개판이 난 방식도 각자 개성있게(?) 혼란스럽고, 그것이 맵을 진입하자마자 몸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테면 어떤 지역은 하늘에서 항상 비가 내리는데, 땅에는 항상 불길이 치솟아 있다던지, 어떤 지역은 밤이 끝나지 않는다던지, 어떤 지역은 싸움에 미친 불사자들이 수련이랍시고 끝없이 부활하며 전투를 해서 그 피로 호수를 이뤘다던지. 아예 살아있는 생명체가 없는 지역도 몇 된다. 여기서 무슨 일이 과거에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정한 케이스도 있고, 반대로 이런 지역을 넣으려면 과거에 어떤 일이 있어야 할까? 라는 생각으로 과거에 어떤 사건이 있었다고 사건을 넣기도 했다. 사건과 지역의 컨셉, 거주자들의 특징들이 정해지면 적들과 지역에서 할 만한 퀘스트들, 그에 따른 보상을 넣었다.

적들은 대부분 커스텀으로 했다. 이미지는 대부분 구글링으로 파쿠리를 했고, 룰북에 있는 뼈대를 컨셉에 맞춰 고쳤다. 대포를 집으로 삼은 달팽이나 날붙이로 이루어진 슬라임같이 구글링이 아예 안 되는 창작 몬스터들은 직접 합성을 하거나 최대한 비슷해보이는 사진으로 대체했다. 3번째 지역부터 슬슬 힘싸움보다 기믹이 중요시되는 녀석들이 나오기 시작해서 후반부로 갈 수록 퍼즐을 풀 듯이 복잡한 패턴들도 넣었다. 아무래도 액션게임들은 적의 공격을 조작으로 피하거나 막고 딜타임을 확보하는 식이지만 턴제 게임에선 그런게 없으니까. 그래도 적들의 패턴이나 기믹들은 다른 게임 여기저기서 영감을 많이 얻거나 열심히 생각했다. 나름 독창적이라고 생각해서 넣은 기믹 인카운터랑 비슷한 게 나중에 발더게를 하면서 나오니까 반갑기도 하고 인정받은? 느낌도 들었다. 지역별로 맵도 2~5장, 몬스터도 많게는 수십 종류 필요했기 때문에 지역 하나를 만드는 데 2~3주씩 걸리기도 했다.

루팅도 플레이어들의 사정이나 다른 지역에서 나오는 아이템의 밸런스를 고려했지만 그 적이 쓰던 장비거나 그 적의 특징을 담을 수 있도록 했다. 프롬 게임들이 그렇듯이 얘가 왜 이 아이템을 갖고 있지? 얘가 왜 여기있지? 에서 그 뒷이야기를 유추할 수 있도록 하려 한 부분도 있다. 다만 TRPG는 플레이어들이 이러한 유추를 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판정을 시켜서 말을 해주거나 직접적으로 알려준 부분들도 꽤 된다. 소울류의 시스템을 따라 다크소울 시리즈의 보스 소울이나 엘든 링의 추억과 같은 상흔 장비라는 것을 도입했다. 단순히 강하다기보단 강렬한 의지나 신념이 있는 인물들의 영혼은 상흔이라는 것을 남기고, 이 상흔으로부터 세 가지 선택지 중에 하나를 골라 전리품으로 가공하는 식이다. 전리품들은 단순히 무기나 방어구가 될 수도 있고, 주문이나 캐릭터에게 영구적으로 버프를 주는 외침, 장비에 특별한 효과를 인챈트 할 수 있는 무늬 등 여러 종류로 준비했다. 파격적인 성능을 가짐과 동시에 서로 다른 세 옵션 중 가장 파티에 맞는 걸 골라서 파티에게 모자란 부분을 채우거나 빌드의 장점을 극대화 하도록 했다. 아래 사진들은 상흔 장비들의 예시.


a16711aa372a76b660b8f68b12d21a1ddf81d93bc485


npc들도 소울류 npc들 처럼 마을에 모여서 각자의 기능을 하는 npc들이나 중간중간에 한번씩 만나면서 각자 스토리가 진행되도록 했다. 종족과 소속, 기능, 클래스, 성별, 가치관이 골고루 분배되도록 하니 한 명 한 명의 중요성이 꽤나 올라가게 됐다. 성격도 개인주의자, 낙천주의자, 극단적인 사랑꾼, 소신 있는 좀도둑, 신념을 위해 신앙을 저버린 맹세파기자 등등 이런저런 컨셉들을 시도했다. 주인공들을 스카웃하고자 하는 팩션들도 여럿 있다 보니 선택에 따라 어떤 팩션에 소속된 npc들과 동시에 우호적이기 힘들다. 그래도 일단 npc로 나온 애들은 플레이어 파티를 조력하는 순간이 한 시점이라도 있을 수 있게 했다.

엔딩은 결국 20레벨 근처에 가야 난다. 중간에 지역을 넘기면서 왔다면 20레벨이 안 된 상태로 엔딩을 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전설적인 싸움들을 연출하기 위해 패턴들을 많이 연구했다. 대단한 스토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떤 녀석들을 마주하게 될 것인지 중간에 최대한 복선들을 깔아두려고 했고, 그에 걸맞게 전투와 선택에 따라 대륙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도록 했다. 리스크를 주기 위해서 최후반 구간에선 부활을 불가능하게 죽이는 적들도 다수 출현했다.

흥미로운 지역과 등장인물들, 사건들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억에 남는 명장면은 결국 플레이어의 게임 진행과 주사위가 만든다고 생각한다. 준비해온 것 중에 플레이어들이 미처 못 발견하고 그냥 넘겨버린 부분들도 꽤 있고,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만들었는데 플레이어들이 흥미진진하게 만든 부분도 있다.

5. 개선점

전반적으로 많은 공을 들여서 만든 캠페인이고, 리소스도 다 있어서 한두번 하고 말기엔 아깝기 때문에 개량해서 다른 사람들과 한번 더 해볼 생각으로 피드백을 받았다. 스토리나 세계관에 대한 불만사항보다 게임적으로 지적받은 문제들이 주였다. 가장 많이 지적된 부분은 루팅 장비에 대한 시스템. 상흔 장비가 성능도 파격적이고 가공 시 선택지가 있는 것 자체는 괜찮았지만, 상흔 장비를 얻은 뒤 구간의 몬스터들에게 장비가 역상성인 경우들이 상당히 있는 것이 지적받았다. 고유 속성을 가진 장비를 선택했더니 그 다음 지역엔 그 속성에 저항을 가진 적들이 출몰한다던가. 또 빌드가 제한된다는 점도 지적받았다. 걸출한 성능을 지닌 장비에, 무늬와 같이 이미 있는 장비품을 더 강화하는 방법이 있다보니 쓰던 무기만 쓰게 된다는 점. 앞서 말한 단점과 결합되어 쓰던 무기만 쓰다가 그 무기에 저항력을 갖춘 상대가 나오면 마땅히 쓸 보조무기가 없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그 외에도 힘 캐릭들이 쓸만한 투척 원거리 무기가 부족하다던지, 파티가 목말라하는 아이템을 제 때 지급 못해준 감도 있는 것 같다. 쓸 만한 장비들이 많이 나오는 것에 비해 Attune 3회 제한은 빡빡하게 굴어 대부분의 장비를 마음대로 못 쓴 것도 플레이어들이 아쉬워했다.

이 부분은 전체적인 장비 수를 늘리고, Attune의 기준을 크게 완화하기로 했다. 발더게는 Attune이 아예 없던데 이렇게는 못할 것 같다. 추가한 장비들을 주는 자잘한 이벤트들도 넣어,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묘사 부분이나 비중있게 다루어지지 않은 부분들을 겸사겸사 보강할 생각이다. 상흔 장비도 재가공 수단이나 복제가 아예 없는건 아니었지만, 가치와 쓰임새, 혹은 장착 부위를 상흔별로 비슷하게 조정해 기회 비용의 아쉬움을 줄일 생각이다. 원래 주문 / 버프 / 화살 중에서 고르는 상흔이었다면 버프나 화살을 주문의 형식으로 바꿔서 주문 / 주문 / 주문으로 만드는 식.

6. 작업하면서 쓴 툴

룰북은 D&D beyond 에서 구입했고, 주로 몬스터 목록과 매직 아이템들을 참고했다. 커스텀 캠페인만 진행하긴 하지만 몬스터의 뼈대가 되는 것은 D&D 원판의 밸런스를 참조하려고 했다. 아이디어를 짜는 단계에서 각종 설정들은 구글 스프레드 시트에 기입했다. 편집이 간편하고 지역별로 시트를 나누기도 좋았다. 줄글로 스토리나 설정을 정리하거나 몬스터에 대한 설명은 notion에 정리했다. 위키 형식으로 서술했는데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기록을 남겨두는 용도로 좋은 것 같다. notion의 경우 여러명이 같이 쓰는 문서는 문단 수 제한이 있기 때문에 개인용으로 작성한 뒤 공유 링크를 걸어 플레이어들에게 뿌리곤 했다.

24b0d121e09c28a8699fe8b115ef046541adfb39f0

(미리-구현된 드래곤)


24b0d121e09c28a8699fe8b115ef046b696b973427

(매직 아이템도 효과가 자동으로 적용된다)


세션 진행은 Foundry VTT를 사용했다. Roll 20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고 나도 한 때 roll 20을 썼지만 Foundry VTT는 정말 다양한 기능들을 제공하고 있다. 유저가 만든 모듈들을 추가로 받으면 마법 내성굴림 자동화, 시각적 오라 이펙트, 조명과 벽 표시 등 많은 기능들이 추가되도록 할 수 있다. D&D beyond 에서 산 룰북에 있는 특성, 매직 아이템, 몬스터 정보들을 그대로 가져오는 모듈이 있는가 하면, 다른 툴에서 그려둔 맵을 갖고온다던지, 맵에 고저차를 구현해준다던지 하는 갖가지 모듈이 있다. 위 사진처럼 몬스터나 매직 아이템들이 쓰기 좋게 준비되어 있고, 코드로 기능도 구현되어 있어 장착만 하면 바로 적용된다. UI를 바꿔주는 모듈들도 있어 찾아본다면 게임 플레이 경험을 끌어올리고 진행을 원활하게 해준다. 뭣보다 주문이나 장비품들이 이미 구비되어 있어 기존에 있는걸 갖다 쓰기도 편하고, 새로 만들때도 기존 걸 조금만 변경시켜주면 된다. 물론 진입장벽은 좀 높은 편이지만, 맘 잡고 공부를 좀 하면 정말 편하게 세션을 진행할 수 있다. 물론 고생은 DM만 한다. 온라인으로 D&D를 하는 것이나 주사위를 굴리지 않고 자동화된 진행에 로망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동네에서 돌아다니는거면 모를 까 전신에 매직아이템을 두른 20레벨 파티 전투는 수동으로 하기 쉽지 않다. 생각해야 할 효과, 한 명이 한 턴에 굴리는 주사위의 수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사칙연산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면 편리한 컴퓨터에게 모든것을 맡기는 게 좋다.

24b0d121e09c28a8699fe8b115ef04699039f1b9f1

roll 20에서 굴릴 때는 고저차가 심한 등반 컨셉의 맵 같은건 상상하기 힘들었겠지만 foundry vtt에서는 지원하기 때문에 상상한 맵들은 거의 구현에 성공했던 것 같다. 위 사진은 Levels 모듈을 써서 고저차 맵을 구현한 것이다. 아래층을 어둡고 흐리게 한 건 직접 레이어를 쌓아서 효과를 준 거고 사실 층별로 이미지를 하나씩 넣었고 돌릴 때 버그도 있었지만 이렇게라도 높낮이가 구현되는게 어딘가. 만약 좀 더 욕심이 있다면 oracle 에서 제공하는 무료 서버에 리눅스용 foundry vtt를 설치할 경우 게임을 서버에서 돌릴 수도 있다. 나는 이렇게 했는데, 서버가 가끔 뻗긴 하지만 그래도 대체로 편했다. 구현하고자 하는 게 많은 DM이라면 foundry vtt를 꼭 써보길 권한다.

맵 제작은 dungeon draft 라는 툴을 이용했다. 에셋들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dd2vtt 확장자 파일을 foundry vtt에서 바로 읽어올 수 있는 모듈이 foundry vtt에 있다. 그래서 dungeon draft에서 맵을 만들어 놓으면 벽, 조명데이터도 자동으로 들어온다. 아래 맵 역시 dungeon draft에서 그리고 foundry vtt로 바로 import한 맵인데 표시된 선들이 벽 데이터들이다. 형태가 이미 고정된 상태라 편리하게 벽 및 시야 작업을 할 수 있다.

24b0d121e09c28a8699fe8b115ef046b6f6891352a

(적들을 휩쓸고 적들의 거처에서 긴 휴식을 취하고 있다)


7. 마치며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 분량 때문에 플레이하면서 있었던 일화들은 거의 싣지 않고 캠페인을 어떻게 만들었냐에 초점을 맞췄다. 일정문제 때문에 유야무야 끝난 게 아니라 정식으로 엔딩 본 커스텀 캠페인은 처음이라 어떻게 만들었는지 후기를 쓰고 싶었거든. 캠페인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설정덕후 DM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고, 더 좋은 툴이나 작법이 있으면 알려주면 좋겠다. 다음엔 이 캠페인을 패치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랑 하거나, 아케인 펑크 세계관에서 특수부대 시점으로 총질하면서 인질도 구출하고 임무도 수행하는 캠페인을 만들어볼까 한다. 기대가 된다. 다들 즐거운 TRPG 즐기길 바란다.


추천 비추천

28

고정닉 5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68 설문 힘들게 성공한 만큼 절대 논란 안 만들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10 - -
2869 AD 딥 블루 호라이즌 사전예약 6.14-7.4 운영자 24/06/14 - -
184888 일반 시노비가미하면서 제일 잘짰다고 생각하는 빌드 하나씩 있음? [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24 251 0
184887 일반 TRPG와 섹스의 공통점 [21] ㅇㅇ(223.38) 23.09.24 1369 20
184886 일반 던전월드 친구랑 처음했는데 [3] ㅇㅇ(119.67) 23.09.24 246 3
184885 일반 라그나 썰 보는데 [5] ㅇㅇ(121.129) 23.09.24 362 0
184884 일반 5판) 3레벨 집중 스펠 대결 헤이스트 vs. 슬로우 [7] ㅇㅇ(114.162) 23.09.24 243 0
184883 일반 던월 그런 룰 아닌데 [17] ㅇㅇ(104.28) 23.09.24 447 3
184882 로그/ 시노비가미 6인 리플레이 『친선시합』 1~2화 [2] ㅇㅇ(221.145) 23.09.23 263 14
후기 D&D 장기 캠페인 후기(장문) [10] missehiryo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23 1346 28
184880 일반 2017년도 쯤에 했던 턴제게임인데 제목이 생각안남 [6] ㅇㅇ(49.171) 23.09.23 207 0
184879 일반 마기로기 플레이 영상 없냐? [1] uchihamadar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23 94 0
184878 질문 롤20 컴뱃마스터 턴종매크로나 턴메이커 오라없애는법 아는사람? 카페인폐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23 73 0
184877 일반 AL상 부활 서비스 비용 [3] ㅇㅇ(124.197) 23.09.23 168 0
184876 질문 엘더스크롤 캠페인 끝내고 바하 trpg하는 사람인데 [4] ㅇㅇ(121.142) 23.09.23 168 1
184874 일반 준비를 대충 해도 되는 룰과 아닌 룰이 있음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23 231 1
184873 질문 발게3) D&D 5판 죽음에 대해 궁금한게 있음 [7] ㅇㅇ(116.37) 23.09.23 246 0
184872 일반 정발 안된 룰 중에 국내에 좀 돌아가던 룰 뭐가 있지 [9] ㅇㅇ(218.238) 23.09.23 218 0
184871 일반 카서스가 좀 더 신중했다면 가능성이 있었을까? [5] ㅇㅇ(211.185) 23.09.23 241 0
184868 일반 너네 사타스페라고 아냐? [2] ㅇㅇ(58.226) 23.09.23 133 0
184866 질문 뉴비 디엠인데 질문 [4] ㅇㅇ(114.206) 23.09.23 153 0
184865 일반 trpg coc 시나리오중에 탐사자끼리 싸우는 형태의 시나리오는 없나요? [7] 흐으으음(59.8) 23.09.23 200 0

게시물은 1만 개 단위로 검색됩니다.

갤러리 내부 검색
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