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위시송님이 다른 데서 이야기를 하셨던 건데, 소드 & 위저드리(Swords & Wizardry)의 제작자인 매튜 J. 핀치가 썼던

올드 스쿨 RPG 입문서가 있음. 오늘의 뻘글은 거기에 대한 나름대로의 부연 설명글임. OSR이 왜 하는 놈들만 하는 장르인지

이거 보면 이해가 될 듯.

기본적인 마스터링 요령

하나하나 룰에 의존하는 대신 상식으로 플레이하기 (룰 말고 룰링)

쉽게 말해서 OSR에서는 네가 원하는 행동이 뭐든지 일단 해 본다고 선언할 수 있음. 그러면 레프리 / 마스터가 상황을 봐서

네가 하려는 게 상식적으로 실패할 리가 없다면 아예 판정을 안 하고 넘어가기도 하고, 반대로 뭔가 노력 같은 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판정을 시키고, 아예 불가능하다면 어째서 불가능한지 그 부분을 지적하고 뭐 그런 식임.

예를 들어서 한 2미터 되는 담을 넘는다고 치자. 인간이나 엘프라면 어렵지 않게 넘겠지만, 하플링이나 노움이라면 어떨까?

현대적인 RPG라면 도약이나 오르기 등의 판정을 요구하라고 써 있을 수 있겠지. 근데 OSR에서 얌전히 그러라고 적혀 있는

경우는 거의 없음. 그러니까 마스터가 알아서 판정을 해 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혹은 플레이어 중의 누군가가 머리를 조금

굴려서 키가 큰 종족 파티원들이 키가 작은 종족 파티원들을 어깨에 태워서 담 위에 올린 뒤에 자기들은 자력으로 넘어가고,

담을 넘어간 이후에 담 위에 올려놓은 키 작은 동료들을 내려주거나 걔들이 직접 아래로 뛰어 내린다고 할 수 있다는 거임.

뭔가 이거 판정을 후루룩 넘긴 거 같다고? 어. 그렇다. 그런 거 맞음. 그런데 원래 OSR이 이럼. 다만 아무리 말빨이 좋아도

결국 마스터가 갑이므로 아무리 말을 잘해서 판정을 넘겨보려 해도 "네 뻘소리 잘 들었구여 일단 그걸 하시려면 판정이나

하세요 ^^"하면 닥치고 판정을 해야 함. 다른 예로 "그거 혹시 룰북에 나오나요?' 같은 거 마스터에게 물어보면 "아뇨.

좀 전에 내가 정했어요"라는 말을 듣게 될 수 있음. 뭔가 불-편하다고? 그럼 넌 OSR 체질이 아닌 거야.

캐릭터 능력 말고 플레이어 능력으로 해결

왜 OSR에서는 스킬 / 어빌리티가 졸라게 적을까? 답은 간단하다. 왜냐면 그 나머지 부분은 말빨로 때우라고 그러는 거임.

예를 들어서 경비병을 속여야 할 때 현대적인 RPG라면 판정을 하는 게 원칙이겠지만 OSR에서는 경비병을 속일 거짓말을

한다고 선언하고 그 내용을 말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플레이어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잔머리를 굴리고

이걸 어떻게 자기 캐릭터로 실행한다고 하느냐가 OSR에서는 중요한 문제 해결법이 됨. 후자가 왜 필요하냐면... 예를 들어

공돌이가 바바리안을 플레이하다가 이상한 기계를 봤다고 치자. 공돌이는 이걸 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을지 떠올린 이후에

분해하기로 했음. 근데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바바리안이 처음 보는 기계를 볼트 너트 풀어가면서 얌전히 분해한다는 건

좀 웃기지 않냐? 그러니까 이대로 한다면 마스터는 바바리안에게 지능 판정을 요구한다거나 하는 제약을 할 수 있을 거임.

그런 판정을 하기 싫다면 공돌이는 기계의 회전축을 무기로 까서 망가뜨린다거나 뭐 그런 다른 '좀 더 말이 되는' 방식으로

바바리안의 행동을 묘사해서 기계를 멈추겠지 뭐.

이게 OSR의 호불호를 가르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임. '실력겜'이 되어버리니까 그런 말빨이나 재치가 없는 사람은 뭐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만 능력치 판정 같은 걸로 다 때워주는 거도 뭔가 좀 이상하거든. 그러니까 이게 너무 차이나거나 하면

결국은 모두 다 능력치 등으로 판정을 한다거나 그렇게 하게 됨. 멀쩡한 사람을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 만들 수는 없잖냐?

그래서 아예 '실패할 가능성이 있으면 능력치 판정을 하세요' 해서 기승전 판정으로 가는 좀 변칙적인 OSR 물건도 나오고

그러는 거임. 

평범한 인간이 영웅적인 업적을 이루는 플레이 지향

쉽게 말해서 OSR은 후대의, 특히 3.5판 같은 거하고 비교하면 낮은 레벨 수준에 가까운 플레이를 지향하는 장르임. 그러니

기본적으로 내 캐릭터가 뭐 킹왕짱 강력한 괴물이 되어서 날뛰는 그런 걸 보고 싶으면 이거 하면 안 됨. 물론 그게 잘못된 건

아닌데 일단 OSR은 그런 거 다루는 장르가 아니라는 거야.  

인위적인 “게임 밸런스”는 잊어라.

OSR의 플레이는 대개 핫햐! 죽어라! 하는 게 일상임. 그러므로 뭔가 딱 보기에도 개노답인 상대같은 게 나온다고 불평하면

안 된다는 거. 그보다는 위에서 말한 "실력" 아니 꼼수로 어떻게 저놈을 별 피해 없이 조질까 내지는 어떻게 저놈을 피해서

지나갈까 등을 생각하는 게 더 낫다는 거지. OSR의 기본 목적은 끝까지 살아남아서 부와 명예를 얻는 거라고.

추가적인 마스터링 팁

탐색 - 더듬더듬 만지작만지작할게요

판정을 하거나 혹은 패시브 체크 등을 사용해 넘기는 후대의 물건들과는 달리 OSR에서는 대개 무엇을 어떻게 조사해 볼 지도

직접 말로 설명해 가면서 진행하는 게 일반적임. 그러니까 이것도 위에서 말한 "실력"이 필요한 상황이 초래됨. 토할 거 같지?

전투 - 어 씽귤러 스트라이크!

혹시 선키스트... 아니 다키스트 던전 해 봤냐? 해 봤으면 이해가 빠를 내용임.

OSR의 전투는 말빨이 없으면 개-지루하게 돌아감. 근데 위에서 말한 말빨을 섞어서 다이나믹하게 만들 수 있음. 예를 들어서

함정을 등지고 싸우다가 달려드는 적을 피해서 함정에 떨어뜨려본다거나 뭐 그런 걸 할 수 있다 이거지. 물론 판정을 시킬 게

분명하고 실패하면 아마 네가 함정에 떨어지겠지만. 거기다가 룰북에는 나오지 않는 온갖 다양한 상황들이 마스터에 의해서

묘사될 수 있음. 예를 들어서 보물 상자가 있는 방에서 싸운다면 빗나간 마법에 보물상자의 자물쇠가 파괴된다거나, 아니면

상자째로 부서져서 보물 조각과 금화들이 사방으로 튄다거나 뭐 그럴 수 있다는 거야.

이런 걸 좀 더 쉽게 말하자면 AWE에서의 판정 결과 묘사를 하듯이 묘사를 해서 상황을 다이나믹하게 만들 수 있고, 가급적

그러는 게 더 재미있다는 거임. 전투가 너무 늘어진다고? 원래 OSR은 말빨 때문에 대개 상황이 늘어지기 쉬움. 이해해라.

그런 게 싫으면 사탄은 어떠냐?

자원 관리 - 배고픔(식량 0)

너희 파티가 던전 한가운데서 횃불하고 식량이 다 떨어져서 어둠 속에서 패널티를 받으며 진행해야 한다면 그건 좀 아니겠지?

근데 OSR에서는 그런 일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음. 그러니까 마스터는 이런 걸로도 PC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안 주면서도

압박할 수 있고, 반대로 PC들이 이런 거 신경을 쓰지 않고 진행을 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해 줘야 함.

이쯤되면 이 지옥같은 실력겜을 누가 하나 궁금하지? 이래서 OSR은 메이저한 장르가 못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