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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특수부대 MACV-SOG가 겪은 역대급 사건들

베트콩과월맹군의키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12.22 21: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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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당사자의 신념이 부족했던 전쟁이 대개 그러하듯 미군의 동맹인 남베트남 군대의 기강은 매우 해이한 상태였다.

전쟁 중 하노이에 고위급 관리를 친척으로 둔 남베트남군 최고의 장성 두옹반민의 경우처럼 위-아래로 썩은 것이다.

당연히 미군의 작전 정보는 안팎으로 새고 있었고, 이는 미군 자신도 알고 있었다.

심지어 남베트남군으로 위장한 베트콩이나 베트콩이나 북베트남군으로 이적할 마음을 가진 남베트남군도 많았다.

결국 미군들 일부는 자신의 작전계획을 상부에 허위보고 하는 방식으로 자신과 부대의 안전을 최고한도로 보호하는

자구책을 쓰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은 최고 비밀기관인 특수부대 SOG도 다를 것이 없어서 지휘부들은 자신들의 작전팀이 왜 그렇게 쉽게 들키는지

적이 어떻게 미리 대기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스파이의 소재를 의심한 그들은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는 물론이고 거짓정보 흘리기, 의심스러운 관련자들을 최면제를 투여해

심문하는 등 갖가지 방법으로 기밀누설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필사적인 노력으로 상당수의 스파이를 제거하는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현장 실무팀의 피해는 그칠 날이 없었고 결국 고위급에

거물 스파이가 침투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종전이 될 때까지 그 비밀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음은 SOG 부대 내에서 실제로 벌어진 충격저긴 사건 2개를 소개한다.

 

 

1) SOG 남베트남 장교 살인 사건


한마디로 미군 내부의 알력으로 정당한 결과가 뒤바뀐 씁쓸한 사건이다. 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69년 5월 10일, 특전단 "마이크포스" 팀이 작전중 흥미로운 자료를 입수했다. 한 무리의 크메르 루주들 단체사진에

낯이 익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특전단 "프로젝트 감마"의 남베트남 요원 "타이 칵 응우옌" 이었다.

이 사진은 작전팀 내부적으로 상당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사실 응우옌이 채용된 이후 현장에서 사라지는 프로젝트 감마 요원들이 많아졌다. 이전에도 이런 일이 심심찮게 있었고

내부에 스파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체를 증명할 만한 사진정보가 획득된 이상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프로젝트 감마는 캄보디아 접경의 특전단 캠프의 안전과 정보수집을 위해 캄보디아로 요원들을 침투시키는 작전이다)

 

SOG는 응우옌을 체포해 심문하기 시작했다. 최면제 등 각종 방법을 사용하던 중 거짓말 탐지기에서 꼬리가 잡혔다.

미군들은 응우옌에게 이중스파이가 될 것을 회유했다. 당시 공산군과 미군 사이에서 이중스파이를 하던 이들은 많았다.

적절한 보상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응우옌은 아니라며 완강했고 미군으로서도 마땅한 처리방법이 없었다.

 

남베트남군에 넘기면 비밀이 없는 조직이라 프로젝트 감마가 동네방네 소문날 것이고 작전은 그날로 종치게 되는

것은 뻔한 이치였다. 그렇다고 중앙정보국에 넘기려니 일찌감치 도움을 거절해버렸다.

결국 특전단은 OSS의 오래된 방식을 채택했다. 바로 직접 제거하는 것이다.

 

문제는 응우옌은 제네바 협정상 스파이이므로 제거에 문제가 없지만 미군 규정상으로는 불법이었다.

(물론 상대방인 북베트남군은 포로든 스파이든 자유롭게 처단할 수 있었다.)

결국 이 문제의 결정은 제5특전단장인 로버트 롤트 대령의 결정에 맡겨졌고 대령의 결론은 간단했다.


"그의 이적행위가 확실하다면 그대로 처리하라!"

 

응우옌은 마취된 채 사살되었고 시체는 특전단이 주둔하던 나트랑 만에 떠올랐다.

이로서 종결되는 듯 보였던 이 사건은 엉뚱한 곳에서 불똥이 튀었다. 

평소 명령계통을 잘 따르지 않는 특전단을 곱게 보지 않았던 주월미군총사령관의 클레이튼 에이브람스 장군이

이를 걸고 넘어간 것이다.


에이브람스 장군은 즉각 군수사대의 수사를 지시했고 대령은 체포되었다.

당연한 일을 처리했다고 생각한 특전단은 크게 혼란에 빠졌다. 당시에는 특전단원들이 롤트대령을 구하기 위해 감옥을

습격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질 정도로 흉흉했다. 

게다가 사건이 일반에 알려진 이상 보다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공산군의 역선전에 휘말릴 수 있었다.

 

난처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특전단원들은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확실한 증거가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정찰팀 "플로리다"가  캄보디아로의 장거리 침투 작전을 수행 중 일단의 크메르루주를 매복공격하였다.

팀장 켄 워슬리는 사살한 크메르 루주의 시체를 수색하던 중 보기에도 인상적인 가죽 가방 하나를 발견했다.

 

중요한 물건임을 확신한 워슬리는 작전을 중단하고 취득한 물품을 회수하여 퇴각했다.

그러나 정찰팀은 얼마 뒤 수 십 명의 크메르루주에 쫓기게 되었고 치열한 교전 끝에 탈출에 성공해 귀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팀장 워슬리가 전사하고  다른 대원들도 중상을 입었다.

 

회수된 가방을 조사하던 특전단은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크메르루주 게릴라 정보장교의 것으로 추정되는 가방에서는 남베트남에서 활약 중인 스파이의 명단과 응우옌의 사망으로

인해 벌어질 사건에 대해 주의하라는 경고문이 들어있었다. 

워슬리의 팀이 사살한 가방의 주인은 바로 크메르루주 정보장교로 대령급 고급장교(응우옌)였던 것이다.

 

특전단장이 체포된 이후 확증을 찾기 위해 발 벗고 나섰던 워슬리는 결국 우연한 기회였지만 생명을 걸고 회수한 물건

덕분에 목표를 이룬 셈이 되었다.

 

이 자료는 대령의 무죄를 입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육군장관은 모든 혐의가 풀렸다는 선언을 했다.

그러나 특전단으로의 복귀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에이브람스 장군이 끝까지 거부한 것이다. 결국 제5특전단장

로버트 롤트 대령은 예편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베트남전쟁 중 단위 부대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이견이 있을지 모르지만 수치상으로는 육군도 해병대도 아닌 특수부대 SOG가 정답이다.

 

작전투입병력수나 작전 횟수당 병력 손실율에서 이들의 피해를 능가할 만한 부대는 별로 없다.  

SOG는 전쟁 내내 정찰팀, 타격팀 등을 운용하며 국경침투작전을 수행하였는데 실종된 팀만 14개가 넘고 

월맹군이나 베트콩, 파테트라오, 크메르루주와의 교전에서 거의 궤멸된 팀도 거의 같은 숫자에 육박한다.

 

실종된 SOG 병력은 대략 160여명이라고 하며 포로 교환으로 돌아온 이는 남베트남 아사우 계곡에서 월맹군에 의해

생포된 병사 1명이 전부다.

남베트남 내나 라오스나 캄보디아에서 실종된 이들은 포로로 인정되지 못해 돌아오지 못했다.

실제로 베트콩, 파테트라오, 크메르루주는 월맹군에 비해 포로 대우가 훨씬 잔혹했다.

 

 

2.에이전트 프랑수와


정찰팀으로 국경을 넘은 경험이 있는 대부분의 대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경험담은 헬기가 착륙하는 지점에

북베트남군이 먼저가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월맹군의 관측능력이 뛰어나서 먼저 위치를 확보할 수도 있겠지만

반복되는 경험에서 대원들을 비롯해 SOG 관계자 들은 스파이의 존재 가능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SOG자체가 창설초기부터 남베트남군 요원들을 대거 프로젝트에 참가시켰기에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SOG는 미군 주도의 정찰팀을 파견하기 전에 남베트남인으로 구성된 팀을 여럿 북베트남에 파견하였고

이들 중 상당수가 체포되어 이중간첩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 수시로 역정보를 흘리거나 거짓말 탐지기 사용을 통해 내부 스파이의 색출에 공을 들였다.

실제로 상당수의 스파이를 제거하는 성과도 거두었지만 규모의 차이만 있을뿐 정보의 유출은 계속되었다.

 

심지어 SOG가 보안에 특히 신경을 썼던 COSVN(북베트남군 남파 사령부-캄보디아 소재)에 대한 습격 작전

역시 월맹군이 미리 매복하고 있었던 탓에 성과없이 큰 손실만 입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SOG는 내부에

거물급 스파이가 있음을 직감했다.  일상적인 덫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고급정보를 취급하는 스파이가 누구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미군들은 끊임없이 내부 감찰을 실시했지만 결국 종전 시까지 정체를 밝히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스파이의 실체는 우연한 기회에 드러나게 되었다.

정보분석가인 "시즈윅 투리즌"은 종전후 우연한 기회에 베트남의 선전방송을 시청하게 되었다.

방송은 전쟁 중에 SOG에 침투해 정보를 빼돌린 "에이전트 프랑수와" 라는 인물에 대한 것이었다.

에이전트 프랑수와는 이 공으로 인민영웅의 칭호를 받았다.

 

흥미를 가진 투리즌은 SOG에 근무했다는 것을 단서로 인물을 좁혀 나갔다. 당시 SOG에서 소령으로 근무했던

개스퍼드의 개인사진을 중심으로 북베트남 선전방송상의 인물과 대조해 나갔던 투리즌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에이전트 프랑수와"는 놀랍게도 장거리 정찰팀을 운용하는 프로젝트에 동참했던 남베트남군 정보국 소령이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프로젝트에 관한 고급정보를 접할수 있었던 까닭에

정찰팀들의 기만수단은 그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개스퍼드 소령에 의하면, 에이전트 프랑수와는 프랑스와의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에

프랑스군 정보국 "제2국"에서 정보담당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전문가  라고 한다.

 

결국 정보가 드러난 통에 그동안 동료라고 믿었던 미군들은 심한 배신감을 느낀 것은 당연했고 그래서인지 출간된

서적에서도 그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고 단순히 "에이전트 프랑수와" 라고만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보복의 우려때문일 것이다.


실례로 북베트남군을 상대로 맹활약했던 SOG 출신 장교가 퇴역 후 필리핀군의 고문관으로 근무하던 중

필리핀 공산 반군의 테러로 사망한 일이 있었다.

당시에 북베트남의 사주를 받아 공산반군에 의해 살해했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돌았었다.


이 두 사건은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정보분야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어느 나라라고 100% 자유롭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경각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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