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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최초 국산군용기 부활호는 어떤 비행기인가? (1)

SV-001/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01 17:3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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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가 2021년에 공군역사기록관리단의 주관하에 저술한 『최초 국산 경비행기 부활호』의 내용을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해당 책은 국회전자도서관에서 무료로 열람 가능합니다.





작년(2023년)은 한국 최초의 국산 군용기라 할 수 있는 부활호(復活號)의 개발 70주년을 맞는 해였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부활호가 '부활'이라는 이름을 받은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자 이 비행기가 다시 발굴되어 복원된 지 2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나 작년, 부활호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공군 내에서 부활호에 대한 어떤 특별한 현양행사와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나마 민간기업인 KAI가 부활호 개발책임자인 故 이원복 선생님의 유족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ADEX 2023에 자사 부스에 부활호 모형을 전시한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부활호라는 비행기에 대해서 다시 되새겨 보자는 차원에서 글을 올립니다.




1. 부활호의 개발 배경


부활호는 6.25 전쟁이 휴전한 직후인 1953년 10월에 개발된 비행기입니다.


당시 자전거 정도나 겨우 생산할 수 있었던 한국의 공업력을 감안하면 어떻게 비행기를 개발했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한데, 이 비행기가 개발된 배경을 살펴보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한반도에서의 항공활동은 1차대전 직후인 1920년대부터 수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비행기를 독립운동에 활용하려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개인 사업을 위해서 사용하였으며 또다른 사람들은 일본군에 입대하여 항공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부활호 개발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항공기 연구개발과 관련된 활동은 일제강점기 말기까지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나마 장극과 같이 독일 유학을 통해 항공공학 학위를 취득한 경우는 있었으나 상당히 특수한 경우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신용욱, 박흥식과 같은 기업인들이 일본군을 위해 항공기 생산시설을 한반도 내에 세우기도 했으나 한 자릿수 수준의 생산량으로 태평양전쟁 종전을 맞고 말았습니다.



한반도 내에서 항공기 연구개발과 관련된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해방 직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그 아래에 항공조선학과가 생겨나면서부터로 보아야 합니다.


당시 서울대 공대의 학과 중에 항공조선학과가 왜 포함되었는지를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문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개인의 회고나 증언, 당시 신문기사 내용들도 조금씩 엇갈리는 대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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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복 학생항공연맹 학생대표의 대학생 시절 모습

(출처: 신아일보 「한국항공 60년」, 원본사진은 현재 국립항공박물관이 故 이원복 선생님으로부터 생전에 기증받아 소장중임이 확인되었음)



예를 들어 이 학과의 제1회 졸업생이자 후일 부활호 개발에 주된 역할을 수행한 故 이원복 선생님께서는 자신들(증언의 맥락으로 보았을 때 당시 항공분야에 관심이 많던 청소년 집단으로 해석됨)이 미군정에 요청하여 서울대 공대에 항공학과를 만들려 했는데, 사람이 부족해서 조선공학을 하겠다는 6명의 학생과 더불어 10명의 학생으로 시작하게 되었다고 증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원복 선생님과 대학 동기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항공공학자 중 한 명인 故 위상규 박사님께서는 한국의 대표적인 과학기술인 중 한 명인 안동혁 박사님이 항공 및 조선분야에 대한 교육을 주장하였기 때문이라고 서술하여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밖의 다른 서술이나 기사들도 내용이 조금씩 엇갈려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서울대 공대에 항공조선학과가 생겨났는지를 명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일부 문헌이나 증언 내용을 감안하면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항공력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높아진 것이 주된 계기가 아니었나 짐작할 뿐입니다.


서울대학교 항공조선학과는 설립 몇년 후 조선항공학과로 이름이 바뀝니다. 서울대 조선항공학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1950년 1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게 되는데요. 현재 국가기록원에 남아 있는 서울대학교 졸업생 명단을 살펴보면 항공전공으로 졸업한 사람은 서윤석, 신태균, 위상규, 이원복 이 네 사람입니다. 즉 이들이 한국에서 항공공학을 전공한 첫 번째 사람들이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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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 졸업자명단에 수록된 조선항공학과 항공전공 4명의 명단. 현재 국가기록원 소장 중


그리고 이렇게 항공에 뜻을 두었던 학생들은 학교활동과 별개로 '학생항공연맹'이라는 동아리활동을 통해 항공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학생항공연맹은 일제가 남기고 간 글라이더를 활용해서 활공훈련을 하거나 모형항공기 대회, 항공 관련 전시회를 주관 및 주최하는 등 당시 기성 항공인들이 연합군의 항공금지령(SCAPIN 301)에 막혀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학생 신분으로 나름 활발한 활동을 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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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펴낸 '활공기정비'라는 책의 내용. 사진 속의 글라이더는 문부성식 1형 활공기로 학생들의 활공훈련에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독일이 1930년대 당시 국가사회주의비행대(Nationalsozialistisches Fliegerkorps; NSFK)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항공활동을 장려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독일이 NSFK 활동을 통해 우수한 조종인력을 길러냈듯이 일본 또한 그러한 의도로 청소년들에게 글라이더 활동을 시킨 것이죠. 일제 패망 이후 한반도에 남았던 글라이더들도 대개 이런 기종들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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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6년 조선학생항공연맹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학생항공연맹은 글라이더 훈련뿐만이 아니라 전람회 개최, 모형항공기 대회 주관은 물론 자체적으로 모형 글라이더를 개발해서 판매하고 심지어 항공 관련 가곡집을 지어 배포하기까지 하는 등 여러가지 활동을 했는데요. 이러한 활동사항이 6.25 전쟁 후에 발간된 학생항공연맹 안내책자에 자세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학생 대상 연합동아리였던 학생항공연맹은 6.25 전쟁 발발 이후 연맹원 대부분이 공군에 입대하면서 그 명맥이 끊어져버리게 됩니다.



부활호의 개발배경으로 중요하게 볼 수 있는 또다른 사항은 바로 미국에서 가성비가 좋은 일반항공(general aviation; GA)용 항공기가 등장하고 이들이 군에 연락용으로 도입되었다는 것입니다. 경제대공황 이후 미국에서는 값싸게 획득 및 운용할 수 있는 경비행기에 대한 수요가 생겨났는데 여기에 적절히 대응하여 시장을 장악한 것이 항덕들에게도 유명한 파이퍼(Piper) 사의 J-3 Cub 입니다.


미국 외 다른 열강들은 앞서 설명한 독일, 일본의 예와 마찬가지로 예비 항공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청년 항공활동을 국가적으로 장려했습니다. 미국 또한 이에 지지 않기 위해 전국의 고등학교 및 대학교에 민간조종사 훈련과정(civil pilot training program; CPTP)을 설치했고 많은 학교들이 파이퍼 컵을 훈련용으로 채택하게 됩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파이퍼 컵은 군용 연락기로도 채택되었으며 미 육군에서 L-4라는 명칭을 얻게 되며 이외에도 몇몇 경비행기들이 2차대전에서 연락 및 일선 정찰용으로, 심지어는 지상공격용으로도 활약하게 됩니다.


연락(liaison)의 약자인 L을 따서 'L형 항공기'(L-type Aircraft)라고 불렸던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여러 나라에 공급되면서 이른바 '빈자의 공군'을 만드는 데 기여했는데 그 빈자들 가운데는 신생 대한민국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948년 조선경비대 휘하에 항공부대가 창설될 때 미군으로부터 L-4 10대를 인수한 것이 최초였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6.25 전쟁 발발 직후, F-51 전투기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한국에 공군력이 사실상 없었던 것으로 표현되는데 사실 그 당시 T-6와 함께 용감히 전장을 누비며 자신만의 전쟁을 벌였던 기종이 바로 L-4, L-5를 비롯한 L형 항공기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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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대한민국 공군 소속 L-4의 비행훈련 장면, 故 이강화 장군님 제공.


이런 L형 항공기들은 도입 직후부터 여순 14연대 반란사건, 제주 4.3사건, 그밖의 여러 국지도발사태나 6.25 전쟁 초반 제공전투를 제외한 여러 종류의 항공작전을 수행합니다. 예를 들면 적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전단지를 살포하거나 아군에게 감미품을 지급하거나 아측 요인을 수송하거나... 특히 6.25 전쟁 초반에는 후방에 앉은 정비사가 2발의 30파운드 폭탄(육군 병기창에서 생산한 최초의 국산폭탄)을 가지고 올라탄 뒤 남하하는 적의 머리 위에서 투하하는 방식으로 진격 저지를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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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초기 대한민국 공군 소속 L형 항공기의 이른바 '맨손폭격'을 그린 전쟁기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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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 초반 연락, 정찰, 포격지원, 항공화력유도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던 제2정찰비행전대 전대원들의 사진. 뒤쪽에 있는 항공기는 L-5로 보입니다. 국립항공박물관 소장 故 이원복 선생님 기증자료 중.



이렇게 6.25 전쟁 동안 대한민국 공군이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는 와중에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중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부분은 바로 해방 직후부터 길러지고 있던 항공공학 관련 인력들이 공군에 입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전쟁 직전 서울대학교 조선항공학과를 제1회로 졸업했고, 김포 공군사관학교 부설 항공기술원양성소에서 문관(군무원) 신분의 교관으로 근무했던 이원복 선생님이 군에 입대하신 것은 서울 수복 직후인 1950년 10월이었습니다. 이밖에도 서울대학교 조선항공학과를 졸업했거나 재학 중이었던 사람들이 공군에 입대하게 되지요. 한편으로 공군이 1.4 후퇴를 전후하여 '기술장교'라는 특별전형을 통해 400여 명이 넘는 전문인력을 받아들인 것도 중요한 변화로 손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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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 조선항공학과 출신이자 부활호의 개발에 참여한 사람 중 하나인 임달연 전 인하공과대학교 학장님의 저술서 '항공인생 70년'의 일부. 공군 기술장교 3기로 임관한 당시 촬영한 사진입니다.



다른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바로 공군의 전략이 자주적인 항공작전이 가능한 군대를 만드는 것으로 변경되면서 군 자원의 상당량을 교육훈련에 투자하고자 했고, 이에 따라 공군의 많은 장비와 인력들이 후방에 위치한 사천기지로 집결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당시 L형 항공기를 운용하고 있던 제2정찰비행전대 역시 연락이나 포병관측과 같은 임무는 신생 대한민국 육군항공대에 넘겨주고 사천기지에서 조종사들의 초등훈련 수행을 주로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당시 공군에서 별도의 학교가 없이 근무 현장에서의 OJT 형식으로 진행되던 항공기술병력 양성교육이, 정식 과정을 갖춘 교육으로 바뀌는 것도 이 무렵으로 볼 수 있는데요. 바로 1951년 10월 제2정찰비행전대 휘하에 정비하사관교육대가 창설된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항공기술병력 양성교육은 1952년 6월 제80항공본창 휘하의 정비교육대로 창설되면서 학교교육 형태로 발전하였고, 같은 해 12월 1일 여기에 기반한 '공군기술학교'가 공군본부 직할로 창설되었습니다. 부활호는 바로 이 기술학교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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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호 개발 종료 직전인 1953년 10월 초 당시 공군기술학교의 편제. 공군 기관지 『코메트』 제7호 기사 내용에 근거해서 작성했습니다.




2. 부활호의 개발 경위



현재는 주로 故 이원복 선생님의 증언에 기반하여 부활호가 1953년 6월부터 기술학교 정비교육대에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여러 문건을 찾아보면 정확한 개발 시작 시점이 문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1953년 7월, 9월을 이야기하는 문헌에서부터 이전해인 1952년 11월을 이야기하는 문헌도 있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이원복 선생님 자신도 어떤 기고문에서 부활호의 개발이 1953년 봄에 시작되었다고 적고 있는 등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향후 추가적인 사료가 발굴되지 않는 한 부활호가 정확히 언제부터 개발되기 시작한 것인지에 대해서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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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대 기술학교장 김성태 대령, 출처는 코메트 제7호



부활호가 개발된 경위 역시 미궁 속에 있습니다. 개발책임자인 故 이원복 선생님께서는 줄기차게 부활호의 개발 시작이 당시 기술학교장이었던 故 김성태 대령의 지시에 의해서였다고 증언하셨습니다. 김성태 대령은 원래 만주군 항공대 출신의 기성 항공인이었는데, 창군초기 대한민국 공군 내부에서는 일본 육군항공대 출신이 주류였으므로 자연스레 권력에서 밀려나게 되었고 그 때문에 비행기 조종을 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스스로가 비행기를 타고 싶다는 열망으로 부하인 이원복 당시 소령에게 비행기 개발을 의뢰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원복 선생님께서 설명하셨던 비행기 개발 의뢰의 경위 역시 재미있는데 당시 고인께서는 부산으로 피난가 있던 서울대학교 조선항공학과 후배들에게 잠깐씩 짬을 내서 항공공학 강의를 해주곤 하셨다고 합니다. (실제로 서울대 측의 기록에도 당시 강사로 근무했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새로 기술학교장으로 부임한 김성태 대령에게 출강을 위한 허락을 구하는 과정에서 이원복 소령이 항공공학 전공자임을 알게 되자 비행기를 만들 수 있겠냐고 물어왔고 고인께서는 L형 항공기 정도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답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세간에서는 다른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공군이 항공기 개발의 필요성을 느껴서였다고 하는 이야기가 주류고 더러는 (정떡)이 항공기 개발을 지시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최초 국산 경비행기 부활호』 저술을 위한 연구 기간 도중 대한민국 공군 상부나 경무대 등에서 항공기 개발을 정식으로 명령한 것에 대한 증거를 단 한 건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위의 증언도 개인의 이야기이니만큼 걸러들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만 아직까지는 故 이원복 선생님의 생전 증언이 가장 신빙성 있어 보입니다. 다만 최근에 찾아낸 자료 중에서 기술학교가 '군의 보유기 부족을 절감해서' 비행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한 것도 있어서 이것도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현재로서는 당시 기술학교에서 근무했고 부활호 개발의 속사정을 잘 알법한 다른 장교들, 특히 부활호 개발참여자로 기록된 사람 중에 기술학교 부교장이었던 故 김석환 전 항공대학교 학장님이나 故 김용배 대령님 같은 분들의 입장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면 좋을텐데 아직까지 성과는 없는 실정입니다.




어쨌든 1953년의 언젠가로 여겨지는 시기 부활호의 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부활호의 개발이 정확히 어떤 일정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는지 정확히 알려주는 문서는 아직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부활호 개발 과정에서 촬영된 사진이 여럿 남아 있고 이런 사진들을 가지고 대략적인 과정을 추정하는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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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군기술학교 정비과장 이원복 소령이 다른 기술학교 장교들에게 '국산기 신형 비행기', 즉 부활호의 설계요구조건을 설명하는 장면.


칠판에 적힌 글은 이러함:



국산기 신형 비행기제작(안)

요구조건


4286


1. 목적

a. 국산 제작용이

b. 관측, 연락용

c. 육상기 수상기로 전환 가능할 것


2.성능

a. 착륙속도 70~75 km/h

b. 항속거리 약 300 km


3. 승원 2명

하물 30 kg


(꼬리바퀴 부분) 좌우 각 2개

(기체 후하방 부분) 하방시계 고려




전반적으로 공군이 기존 운용하던 항공기 가운데 L-4와 비슷하거나 약간 낮은 성능을 상정하고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부활호의 기체구성을 보면 전체적으로 당시 공군이 운용하였던 다른 L형 항공기(L-4, L-5, L-16 등)의 설계개념이나 요소를 많이 차용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애시당초 개발목적에서부터 명시되어 있었음이 보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단지 기존 L형 항공기를 추종하지 않고 꼬리바퀴를 2개 설치했다든가, 꼬리바퀴의 위치를 아래쪽으로 낮게 설정해서 지상에서 기수 높이를 낮춘다든가, 투명한 투하창을 설치한다든가 하는 것과 같이 우리 나름대로의 요구사항에 맞는 기체를 설계하려 했음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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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산기 신형 비행기'의 설계로 짐작되는 장면. 사람들이 손에 붙잡고 있는 것은 각각 계산자와 기계식 계산기로 보이는데 부활호 개발에 공학적인 설계과정이 수반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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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작업인지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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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품을 조달하는 장면으로 보이는데 사진에서 장병들이 들고 있는 부품은 L형 항공기, 특히 L-16의 위쪽 카울링으로 보입니다.


空軍 자가 적혀 있는 지프차가 인상깊네요.


참고로 범퍼 앞에 적혀 있는 ATS는 Air Force Technical School, 공군기술학교의 줄임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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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르방(드릴프레스)으로 부품을 가공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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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강타로 짐작되는 부품에 천을 꿰매는 모습. L형 항공기와 같은 경비행기들은 외피가 천으로 만들어지고 이를 트러스 골조에 바느질로 고정하는 작업이 필히 수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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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날개 날개보(spar)로 보이는 부품을 가공중인 모습


사진에 보면 한국사람이 아닌 외국인이 보이는데 미 공군 제6146공군군사고문단(故 딘 헤스 대령님의 '바우트원 대대'로 알려진 제6146기지부대의 후신) 소속 장병으로 짐작됩니다.


실제로 현재 미 공군이 소장중인 6146군사고문단의 부대사에 부활호 개발에 관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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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146공군군사고문단 부대사에 기재된 공군기술학교의 부활호 개발 관련 내용. 현재 외국에서 발견된 유일한 부활호 관련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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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날개 구조물을 살펴보는 기술학교장 김성태 대령과 기술학교 장병들. L-4와 비슷한 트러스 구조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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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계장면으로 짐작되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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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체 기골이 완성된 상태에서 바닥에 놓인 도면인 듯한 종이를 살펴보는 장병들.


자세히 보시면 동체 기골이 V자 모양으로 놓은 I형빔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개발에 참여했던 손재하 예비역 상사님께서는 저런 건축용 자재를 치공구 삼아서 사용하셨다고 증언하셨습니다.


항공기 조립에 필수적인 치공구 만들 별도의 자원도 없었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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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계 도중의 장면으로 짐작되는데 아래쪽에 펴져 있는 책은 L-16의 기술도서 가운데 조종면의 타각에 대한 페이지로 확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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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페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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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날개 및 엔진 조립까지 완료된 '국산기 신형 비행기'


엔진은 4기통 수평대향형이고 공기흡입구 및 배기구 위치를 가지고 따져보면 L-16의 C85-8FJ 엔진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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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성된 '국산기 신형 비행기'의 모습.


우선 꼬리날개에 1007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는데 이는 1950년 9월 1일 다부동 전투를 지원하다가 의성 방면에서 격추당해 전사한 L형 항공기 조종사 천봉식 대위를 추념하기 위해 그의 성인 천(千)에 행운의 숫자 7을 합하여 만든 번호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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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 출신으로 일본 육군 소년비행병 15기이며 해방 이후에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조선항공학과 수조무원을 맡다가 조선경비대 항공부대 창설 이후 입대해서 조종교관 및 연락기 조종사로 활약하셨던 분이십니다.


부활호 개발을 지휘하신 故 이원복 선생님 뿐만이 아니라 시험비행 조종을 맡으셨던 故 민영락 선생님과도 인연이 있으신 분입니다. 이래저래 부활호에 이름을 남길 만한 분이셨던 것이죠.



한편으로 위 사진을 보면 부활호의 이후 도색과 도색이 좀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배경에 보이는 격납고는 부활호가 개발된 격납고이고 뒤의 천막은 기술학교의 교사 및 생활관으로 쓰였던 곳인데 지금은 그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향후 공군에서 정확한 위치를 찾아서 기념비라도 세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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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호의 비행. 초도비행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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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호에서 내리는 듯한 기술학교장 김성태 대령.


부활호의 초도비행은 지금까지 故 이원복 선생님 증언에 기반해서 제1훈련비행단 훈련비행전대 본부원이던 민영락 소령이 조종하고 기술학교 정비교육대 정비과장 이원복 소령이 후방석에 동승한 비행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부활호 개발에 관여하신 다른 분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이들이 아닌 기술학교장 김성태 대령이 초도비행을 수행했다는 증언이 나와서 현재로서는 미궁에 빠진 상황입니다.


이게 부활호의 개발 동기하고도 엮여 있는 문제인데 故 이원복 선생님 증언대로 김성태 대령이 자기를 위해 비행기 개발을 지시한 게 맞다면 분명 본인이 제일 첫번째로 타보려 했을텐데 아직 명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어느 쪽도 증명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더불어서 이 사진이 현재 남아있는 것들 가운데 유일하게 부활호의 계기 부분이 보이는 사진입니다. 부활호의 조종석 부분만을 찍은 사진이 발견되지 않은 가운데 조종석 형태를 유추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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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학교장 김성태 대령 및 장병들이 부활호 앞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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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공군 장병도 같이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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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다 모여서 한컷 또



현재 부활호 개발에 참여한 인원은 총 27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관련자들의 증언에서는 실제로 개발에 참여했음에도 기여도가 낮아서 기록되지 않은 경우나 단순사역에 동원된 경우도 있다고 하여 실제 개발에 참여한 사람은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심지어 이원복 선생님께서는 서울대학교 조선항공학과 학생들도 개발에 참여시켰다는 증언을 남기셔서 군인이 아닌 민간인도 개발에 참여하였을 정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활호의 정확한 개발 참여 인원에 대해서도 향후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밝혀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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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군 기관지 '코메트' 제7호에 실린 부활호 개발관련 내용. 현재로서는 부활호 개발 도중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유일한 한국어 자료입니다. 내용을 옮기자면:



(6) 비행기제작 실습


쭈욱 한바퀴 돌고 우리 일행은 교육대 실습장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더 놀라운 작업을 하고 있다. 비행기를 제작하고 있는 것이다. 있는 기성기재를 가지고 조립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손으로 설계해 가지고 재료도 여기저기서 얻어서 제작하고 있다. 물론 경항공기다. 그러나 우리 공군의 손으로 비행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물론 학습실험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윙」(날개)의 모양도 L타잎과는 좀 다르다. 기재가 여의치 못해서 약간 중량이 넘으리라는 예측이 있으나 하여튼 열의제작중에 있다


전에 모 공과대학 항공조선과에서 우리 기술학교에 와서 일개월간 실습한 뒤에 비행기 한 대를 조립한 일도 있다. 비행기 제작시설이라군 되 있지도 않은 창고 같은 실습장에서 이원복(李元復) 소령 이하 김정철(金鼎喆) 상사, 전형규(田亨奎) 상사, 문용호(文容浩) 중사 등 15명이 아침부텀 해저물도록 붙어 있다. 주익은 이미 부쳤고 미익에 칠을 뿌리며 몇몇은 기체를 맞추고 있다. 그 얼굴마다 모두, 딴 생각 없는 골골한 표정이다. 시험비행할 날은 목표에 두고 민첩하게 움지기고 있다. 교장 김성태 대령 이하 전원이 이것의 성공을 위해서 비상한 노력을 기우리고 있다.

(※주: 본문에서 김정철은 오기이며 정확히는 김정혁[金鼎赫]임)


『미 고문관들이 제가끔 시험비행에는 자기를 먼저 태워달라고 벌써부터 야단이오 아무턴 이것이 성공하면 비단 기술학교의 일로 끝이지 않고 전국적인 큰 화제가 될 거요.』


그는 사천기지를 떠날 때 교장실에 찾아뵈온 필자에게 그렇게 자부하며 소신을 피력하였다.





3. 부활호 개발 완료 이후 있었던 일



'국산기 신형 비행기', 또는 '1007호'의 개발은 1953년 10월 중순에 완료되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공군과 미 공군의 기록이 공히 일치하는데 대한민국 공군은 10월 10일 완성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반면 미 공군 제6146공군군사고문단은 10월 13일이라고 하고 있는 데서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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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군일지 1953년 10월 10일자에 적힌 '국산기 신형 비행기' 개발완료 기사. 내용을 옮기면:


1953.10.10. 국산기 신형 비행기 제작완료


86년 8월 14일에 소령 이원복이 설계하여 일상 김정혁 외 19명이 약 2개월간에 걸쳐 국산기 신형을 제작완료


성능은 절대상승한도 5,800 m 실용상승한도 4,970 m 실속속도 70 km/h 이며 일반적으로 고익 단엽 지주식 육상기이나 강착장치 교환으로서 수상기로 전환 가능한 신형기임


(제1훈련비행단 기술학교)





개발 다음날인 1953년 10월 11일에는 부활호의 시험비행이 있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날 조종은 제1훈련비행단 소속 민영락 소령이 맡고 설계자인 정비교육대 정비과장 이원복 소령은 후방석에 동승해서 성능을 기록했습니다. 이날 있었던 비행에 대한 고인들의 증언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이렇습니다.



이원복(2019년 10월 22일 증언): (산소장비) 안 가져갔어. …(중략)… 괜찮아. 그런 정도 고도까지는 안 올라간다고. 이게 12,000피트 이상 안 올라간다고. 내 한 3,000미터밖에 안 되니깐 필요 없다고. …(중략)… 낙하산도 안 멨어 그냥. 낙하산 메고 내려올 바에 비행기하고 같이 죽어 버려야지. (웃음) 시험비행 올라갈 때는 비행기가 나빠서 죽으면 죽어버려야지. 살아 있으면 그 욕을 무슨… 바가지로 욕을 먹어야 돼.


(2011년 7월 14일 증언): 민영락 소령은 비행교육대장을 하고 저는 정비사 양성을 책임지고 있었고… 58년 전에 사천 상공을 처음 뜨는데 이 민영락 소령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올라타서 막바로 올라갔습니다 그냥. 12,000피트까지 올라갔습니다. 85마력 가지고 못 올라간다니까 올라가 보자고, 원래 설계고도가 12,000피트거든요. 올라갔더니 올라가서 실속할 때까지 올라갔어. 그 정도로 간이 굉장히 큰 사람이라고.



민영락(2015년 10월 8일 증언): 일요일날 □□□ 내일 시험비행한다고 이제 이원복 소령이 그래요. 시험비행을 하자고. 뭐 약속은 전날 저녁에 했겠죠. 근데 지금 기억은 안 납니다. 낙하산을 메고 올라갔는지 안 메고 올라갔는지 그것도 모르겠어요. …(중략)… 근데 여기서 이 비행기, 비행기가 헐렁헐렁해요. 그래도 가는 철사들, 강철은 튼튼했던 모양이지요. 털렁털렁하는 그런 기분이에요. 그런데도 할 일 다 했으니까, 비행기가 떨어져 죽지도 않고 용케 살았구나 하는 그런 정도라야지. …(중략)… 그러니까 그 비행기를 믿게 된 거는 이원복이를 믿었고, 이원복이 자체가… 그 사람 타지 않으면 기록하는 사람도 없고 누가 인정해 주는 사람도 없잖아요. 이렇게 해서 올라가게 된 거예요.





故 민영락 선생님께서는 6.25 전쟁 전부터 항공에 미쳐 살았다는 이원복 선생님을 믿었기 때문에 비행기에 올라탄 것이고, 설계자로부터 사전에 한계성능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조종 도중 기체의 만듦새가 안 좋음을 깨달았음에도 용감하게 한계 이상으로 기체를 몰았다는 것이고, 故 이원복 선생님께서는 자신이 설계한 비행기가 혹시라도 잘못되면 같이 떨어져 죽겠다는 각오로 올라가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살벌한 이야기인데 어쩌면 그런 정도의 각오를 하실 수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최초의 국산비행기를 만들어 내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국산기 신형 비행기' 개발 성공 직후 그 소식은 당시 대구에 주둔하고 있던 공군본부로 전파되었고 곧바로 공군본부에서 기체를 가져오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이때 대구에 있던 동명비행장(지금의 미군기지 캠프 워커 A3 비행장 자리)에 다녀오는 길은 김성태 대령이 조종하고 이원복 소령이 동승했다고 합니다.


이때 최용덕 당시 공군참모총장을 비롯한 공군 지휘관 참모들이 마중을 나왔고 최용덕 장군은 김신 작전국장을 시켜 부활호의 시승평가를 합니다. 이날의 일 역시 별도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은데 이원복 선생님 증언에 따르면 그날 저녁을 최용덕 장군께서 사셔서 같이 드시고 다음날 사천으로 되돌아오셨다고 합니다. 다녀오는 길은 강을 따라서 비행했다고 하니 아마 남강에서 낙동강을 따라간 것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이듬해 부활호 개발에 수공한 장병들은 훈장 및 표창을 받았고 (정떡) 대통령은 비행기에 '부활'이라는 이름을 지어 내립니다. 그것이 바로 70년 전인 1954년 4월 3일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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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명식 당시 부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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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명식 당시 부활호 휘호에 덮인 장막을 제거하기 위해 접근하는 부통령. 원래는 대통령이 참석하려고 했으나 알 수 없는 사정으로 부통령이 대신 참석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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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명식 당일 공군총참모장 최용덕 중장을 포함한 한미 군 수뇌부들과 부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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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명식 당일 부통령과 관계자들과 부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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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명식 당일 부활호 제작요원들에게 수여된 표창장. 최용덕 장군의 명의로 되어 있습니다.


명단: (계급은 표창장 기준이 아닌 자력기록표상에 기재된 실제 1954년 4월 3일 당시 계급임)


중령 김석환

소령 김용배

소령 이원복

소령 김우석

대위 이희명

중위 임달연

중위 이건호

일등상사 김정혁

일등상사 전형규

일등중사 문용호

일등중사 이현재

일등중사 류일선

이등중사 고명식

이등중사 정기효

일등중사 이영수

일등중사 오영교

이등중사 이경환

이등중사 지수홍

이등중사 김두환

이등중사 박두원

이등중사 손재하

이등중사 박노정

이등중사 어한우

이등중사 이기웅

하사 고재일

하사 조경구

하사 서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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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명식 당일 부활호 제작요원 중 한 명인 어한우 선생님께 수여된 은성화랑무공훈장 실물.



그런데 부활호 개발 공로 훈장은 개발공로 표창장에서 명시한 27명 전원이 받지 못했습니다.


훈장을 받은 것은 장교들을 제외한 사병 20명(위 명단에서 김정혁 일등상사 이하의 인원들) 뿐이었던 것입니다!


특히 개발을 총지휘했던 이원복 소령이 수훈에서 제외된 사실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입니다.


이런저런 정황을 살펴보면 국방부 공적심사위원회에서 뭔가 잘못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나 아직까지 단서는 찾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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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호 개발 사실에 관한 공군 기관지 '공군 위-클리'의 기사


내용:


군내 뉴―스

우리 손으로 비행기 제작

함 부통령 각하 맞어 명명식 성거


지난 4월 3일 김해 공군기술학교에서는 한국 최초의 국산비행기에 대한 명명식을 성대히 거행하였다. 이날 하오 2시부터 기지활주로에서 거행된 동 식전에는 함태영 부통령 각하를 비롯하여 정 국방장관, 이 합동참모본부의장, 최 총참모장, 해군총참모장, 김 해병대사령관, 작전국장 김신 준장, 그 밖에 한미 고급참모, 그리고 동교 전 장병이 참열한 가운데 먼저 동 비행기 제작경과 보고가 있은 다음 이 대통령 각하에 의하여 復活號라고 명명된 동기를 함 부통령 각하가 포장을 제거하고 명명하였다. 그리고 동기 제작에 수공한 장병에 대하여 총참모장 각하로부터 표창장이 수여되었고 함 부통령 각하의 간곡한 유시와 이형근 대장의 축사에 이어서 기술학교장 김성태 대령이 명명된 동기를 조종하여 축하비행을 하고 하오 3시 반 이 날의 의의깊은 명명식을 끝마쳤다.


그런데 동기는 공군기술 연마를 주안으로 하였으나 초급연습기의 국산가능성을 입증하고 우리나라 항공과학발전을 촉진하는 데 원동력이 되었으며 3인승 실제로는 2인승이다. 이 부분은 오기인 것으로 보인다.


8백리의 항속거리와 최고 120리(哩)의 우수한 성능을 가졌으며 45일 간이라는 단시일 내에 완성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동기 제작은 기술학교의 이원복 소령이 설계하였으며 정비과 사병들의 협력으로서 완성되었던 것이다. (사진은 명명된 부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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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호 개발 사실과 관련해서 '공군 위-클리'에 실린 사설


내용:


자립하는 공군


자립하는 공군은 우리 총참모장 각하의 원대한 포부의 하나이다. 물론 현재 여러가지 관계는 우리 공군을 미국의 군원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장구한 목표가 자립하는 공군에 있음은 당연한 일이고 또 그래야 마땅할 것이다. 이에 그 첫 단계로서 비록 연락정찰기라 할지라도 우리 기술학교에서 설계하고 제작한 국산기체 1호 부활호가 출현한 것은 공군은 물론 전 국민의 중대 관심사이며, 또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각하께서 부통령각하를 그 명명식에 대리로 참석케 하시고 국방장관 및 합동참모부 의장각하로 하여금 격려의 말슴을 전하게 하신 것은 그 표현이라고 할것이다.


우리는 김성태 기술학교 교장을 위시한 관계병의 로고에 대하여 마음으로 치사하는 동시에 금후의 일단의 연구와 노력을 기대하는 바이다.


우리 하늘을 우리 조종사가 우리 비행기로써!






그런데 부활이라는 이름에는 의문점이 있습니다.


지금 세간에는 부활이라는 기체명칭에 (정떡) 대통령이 전쟁으로 파괴된 대한민국의 부활을 의미하면서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퍼져 있는데요.


당시 대통령이 어떤 의미를 담아서 그런 이름을 지은 것인지 설명하는 당시의 자료는 단 한 건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밖에 故 이원복 선생님께서는 대통령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음을 이야기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염두에 두고 이름을 붙였을 것이라고 주장하셨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어느쪽도 명확한 근거가 없는 한 이렇다고 확실히 이야기할 처지는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 비행기에 애시당초 1007호라는 호수가 붙여져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부활이라는 이름이 혹시 천봉식 대위의 부활을 일컫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만 이것도 그냥 제 추측에 불과한 것이지요.


진정한 진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정떡) 자신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명명식 이후 부활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세간에는 부활호가 1955년 혹은 1960년까지 공군에서 운용했다고 되어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공군사관학교 생도들의 비행훈련용으로 사용된 것은 기존의 L-4, L-5보다 훨씬 발전된 세스나 사의 L-19 이었습니다.


특히나 1950년대 후반 기술학교에서 촬영된 부활호의 사진이나 부활호를 보유장비로 명시하고 있는 공군기술교육단(지금의 공군교육사령부의 전신)의 문건을 감안하면, 부활호는 그저 기술학교가 계속 보관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故 이원복 선생님께서는 자신이 미 공군에 유학을 다녀온 1955년에 다시 돌아와 보니 부활호가 없어져 있었다는 증언을 생전에 남기셨다는 것입니다.


증언과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 점인데 이는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차후에 확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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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8년 8월 14일 공군기술학교 소속 윤서종 씨와 그 자제분이 부활호 앞에서 촬영한 사진.


지금까지 발견된 부활호 사진 중에서는 유일하게 정확한 촬영일시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진 속의 부활호를 보면 착륙장치와 전방 방풍창이 깨져 있고 창문은 흐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부활호의 관리상태가 영 좋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부활호 관리부실의 정점을 보여주는 문건은 국가기록원에서 보관 중인 한국항공초급대학 관련 문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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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잘 안 보이실 수도 있는데 원본을 보고 적은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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